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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생체병기가 되었다-28화 (28/65)

〈 28화 〉 1.26

* * *

"다들 나빴어, 정말."

와구와구.

"그렇게 말하면 내가 모를 줄 알아? 집락촌에서 살던 계집애가 갑자기 기사를 갈아버리니까 무서워서 그러는 거 아냐."

쩝쩝.

"전략 물자는 무슨 전략 물자야. 그러면 집락촌에 흩어져 있는 모험가들, 사냥꾼들 다 뭉치면 전쟁 나겠네?"

긍정.

"베르제스, 너까지 그럴 거야? 여기 꼬치 아저씨가 쇠꼬챙이 모아서 군대 만드는 반역자로 보이냐구."

"아저씨 아니다."

"꼬치나 빨리 구워요."

소피는 노점상을 아예 전세내고 전투적으로 꼬치구이를 뜯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생긴 그녀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얼마 되지 않는 사치라고 볼 수도 있고.

이렇게 주기적으로 먹는 걸 보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보다.

꼬치를 굽는 청년은 처음엔 가게에 남은 고기를 앉은 자리에서 전부 뱃속으로 밀어넣는 소피를 보고 놀라움과 고마움이 섞인 표정을 보였지만, 지금은 그냥저냥 시큰둥한 반응이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가보다.

혹은, 소피가 본격적으로 혼잣말에 가까운 넋두리를 하면서 원수를 물어뜯듯이 꼬치를 먹는 모습이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소피가 청년을 부르는 호칭이 아저씨로 정착된 된 게 접객 태도가 불량해진 원인이 됐든가.

어찌 됐든 꼬치 청년은 순식간에 꼬치를 전부 팔고 하루 장사를 일찍 접을 수 있고, 소피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으며, 나는 파일럿의 멘탈 케어에 특별한 방법을 떠올리지 않아도 됐으니 서로 득이 되는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 이제 돈 모은 거 어디 쓰지. 집이나 살까?"

마지막까지 남았던 창잡이까지 떠나고, 소피는 지금까지 딱히 방향성이랄 것도 없이 트롤을 사냥하며 돈을 모았다.

일단 철제 동체를 당면의 목표로 잡고 있었겠지.

그런데, 그렇게 지금까지 차곡차곡 모으고 있던 돈의 쓰임새가 단번에 사라졌다.

설마 소피가 내 돈과 자신의 돈을 여유분 없이 전부 들이부어서 내 동체를 바꾸려들 줄은 몰랐기에 계획이 무산되더라도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차라리 지금 알게 된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무한에 가깝게 남아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나와는 다르게, 소피의 인생은 짧다.

기왕이면 매 순간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게 좋다.

고블린의 습격으로 혈육과 친지를 모두 잃은 그녀가 막연하게 몬스터를 사냥하는 모험가를 업으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 있겠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고 길드 사무소가 의뢰하는 몬스터들만 죽이기보다는 조금 더 체계적이면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명확하고 단계적인 목표가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또한, 모험가로서의 소피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소피 역시 중요하다.

워커 홀릭은 일정 기간 내의 업무 성취도는 높을지 몰라도, 언젠가 회의감을 느끼거나 의욕을 잃는 순간 예전 폼을 되찾기가 힘들다.

나는 내 파일럿이 가족을 잃고 복수에 미친 살인귀보단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물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소피의 인생은 소피의 인생이다.

내가 그녀의 사회적 보호자도 아니고, 지금은 성인까지 됐으니 그런 쪽으로 왈가왈부 할 입장은 아닐 것이다.

만약 소피가 밤늦게까지 술을 먹고 돌아다닌다고 해도 무릎 위에 얹어놓고 엉덩이를 때리거나 몽둥이 들고 쫓아와서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리겠다고 엄포를 놓을 방법도 없다.

다행히도 술은 내가 부정의 사념파를 열심히 발하니 입에 대지 않고 있지만, 기껏해야 그 정도인 것이다.

명확하게 의사 소통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선 어디까지나 그녀가 가는 방향에 맞춰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되겠지. 베르제스, 너무 그렇게 고민하지 마."

소피는 어느새 꼬치를 다 먹었는지, 값을 치르고 나를 툭툭 두드리며 가게를 떠났다.

자신의 배를 쓰다듬는 건지, 나를 쓰다듬는 건지.

어쨌든 그녀의 기분이 조금 나아진 것 같으니 됐다.

그리고 다음날.

전날 그렇게 꼬치 구이를 먹어놓고 여관에서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까지 든든하게 챙겨먹은 소피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마법사."

"응! 단카프루그 학파에서 수련중인 리소테랍니다~."

식사를 마치고 곡물을 우린 차로 입가심을 하던 소피 앞에 떡 하고 버티고 서서 주의를 끄는 여자.

여타 마법사들처럼, 온몸에 '나 마법사요' 하고 써붙인 듯한 복장을 입은 여자다.

차이점이라면 화려한 원색 계열이 아닌, 짙은 녹색과 갈색 기조의 로브와 챙이 달린 고깔 모자라는 점일까.

지금까지 만난 마녀와 마법사라는 것들은 대부분 책상 물림에, 어깨에 힘을 주고 다녀야 하는 직군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저 여자는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그런데 신체적 특징이…….

"소인족……이야?"

"혼혈이야! 이래 봬도 어른이라구~."

소피보다 키가 그렇게 작진 않았지만, 신체 곳곳에 난쟁이보다 조금 더 작고 마른 소인족의 특징이 나타나있다.

비율에 맞지 않게 통통한 손과 발이라든가.

거대하다고 할 수 있는 이목구비라든가.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왠지 모르게 쉴 새 없이 까불까불 대는 듯한 분위기라든가.

"그래서, 리소테 씨? 나한텐 무슨 볼일이야?"

"혼자 다닌다며? 동료 안 필요해?"

약간의 경계심을 드러내는 소피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팡이를 휙휙 돌리며 웃음을 잃지 않는다.

어딘가 못 미더워 보이는 모습.

그 역시, 지금까지 만난 마법사들이 차분하고 무게 있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느끼는 감상이겠지.

하지만 전투에 들어가서 강력하거나 시기적절한 마법으로 아군을 지원해주는 것 보다는, 지팡이를 샤랄라 뾰로롱 흔들다가 마법을 실패하거나 아군까지 휘말리게 하는 상황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진짜 그런 짓을 했으면 옛날 옛적에 감옥에 투옥됐다가 모험가 면허 박탈이든 학파라는 데서 내쫓기든 했을 테지만, 어쨌든 첫 인상은 그랬다.

"지금 당장은 안 필요해. 나중에 산지키미라도 사냥할 때면 몰라도."

"산지키미!? 그런 걸 왜!?!"

"사람을 죽이니까."

마치 등산가 같은 말투였다.

산이 거기 있으니까.

몬스터가 사람을 죽이니까.

소피가 말한 산지키미가 어떤 몬스터를 일컫는 말인지는 알 수 없다.

당연히 산을 자신의 영토로 잡고 지나가는 사람을 죽이는 몬스터겠지.

마법사의 반응을 보면 사냥이나 토벌은 꿈도 못 꾸고, 그저 영토 밖으로 나오지 않길 빌며 서로 소 닭 보듯 하며 살고 있는, 그런 몬스터일 것 같다.

과거의 전쟁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면 몇 가지 후보군이 떠오르긴 한다.

하지만 놈들이 아직까지 멸종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보장도 없고, 어쩌면 진화를 거쳐 전혀 다른 종으로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다.

저번에 오러를 다루는 전사를 죽였을 때 단번에 끝낸 게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소피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기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지금 시대의 전투력과 파워 밸런스에 대한 정보가 아직 부족하다.

'토벌을 잠정적으로 포기한 몬스터라…….'

과거의 전쟁에서, 악마가 본격적으로 참전하기 전까진 인간들이 마음을 먹고 싸워서 못 이길 전투는 없었다.

개량 슬라임을 써먹은 건 단순히 코스트와 숫자의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죽지 않고 지치지 않는 병사가, 그것도 강력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병사가 수없이 양산되는데, 그걸 안 하는 게 이상하다.

아무리 인간들이 강해도 싸우다보면 지치고, 언젠가는 목숨을 잃을 수 있으니까.

그 정도 수준의 병사를 다시 키워내서 충원시키려면 오랜 시간과 막대한 자본이 소요되겠지.

슬라임을 개량하는 데 코스트가 얼마나 들어갔는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매 전투마다 인간들이 보는 손해는 제로에 가까웠을 것이다.

일단 만들어두면 감가상각이랄 것도 없이, 적당한 유지비용으로 무한정 결과를 얻어낸다.

개량 슬라임이 전투의 주축이 된 건 그런 이유였다.

반면에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개량 슬라임이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대형 몬스터를 토벌하려면 강자 중의 강자가 모여 목숨을 걸고 도전해야 하며, 당연히 전투 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다.

무력이 부와 명예를 불러올 수 있는 지금 사회 특성상, 투철한 애국심과 불굴의 신념으로 위험한 몬스터를 발 벗고 토벌하려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걸 하려고 달려들었던 과거의 인간들이, 어떤 광기에 사로잡힌 편이었지.

아마 그들에게도 무언가 사정이 있었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동료가 필요 없어. 사람이 베르제스랑 손발을 맞출 수도 없고. 아마 너랑 같이 행동해도 네가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야."

"그건 뭘 모르시는 말씀! 나도 소문은 들었어. 하지만 이걸 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대화를 끝내려는 소피였지만, 마법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가방에 손을 집어넣고 뒤적거렸다.

무언가 한 수가 있는 건가?

혹시 모르는 암살의 가능성에 대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마법사의 가방에 의식을 집중한다.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헤치고 그녀의 손에 들려나온 것은 수박 크기의 수정구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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