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1.28
* * *
"안녕~! 오래 기다렸지?."
그로부터 3일 뒤.
준비를 마친 마법사가 다시 소피를 찾아왔다.
마법 한 번 펼치는 것 치고는 필요한 기간이 짧은 편은 아니었기에, 무언가 대단한 재료나 희귀한 촉매같은 걸 구해오나 했는데 마법사가 메고 있는 가방은 이전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성문 남동쪽에 반나절 정도 가면 공터가 있어. 마법 실험이나 병기 실험을 할 때 보통 그쪽에서 많이 하거든."
"어딘지 알아. 베르제스랑 같이 가면 금방 갈 거야."
"앗! 태워주는 거야?"
마법사가 말 하는 공터라는 건 난쟁이 집단이 내 동체를 본격적으로 뜯어보고 이래저래 성능시험을 할 때 사용했던 곳인 듯했다.
그들에겐 조금 미안한 짓을 했다.
난쟁이 집단이 거금을 내밀며 내 동체를 뜯어보고 싶다고 말한 이유는 역설계를 통한 카피 동체의 제작일 게 뻔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비슷한 무언가를 만들거나 다른 병기나 도구를 제작할 때 적용시킬 수 있는 영감을 얻길 원했겠지.
하지만 내 동체에선 그들이 얻어낼 수 있는 게 전혀 없었다.
겉모습은 멀쩡해 보여도, 안을 조금만 뜯어보면 동체를 구동시키기 위한 장치가 전혀 없다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다.
특수한 기술이나 신비한 마법따윈 일절 찾아볼 수 없는 그저 거대한 꼭두각시 인형, 혹은 거대한 석상이 내 동체의 정체인 것이다.
내 동체 정도는 그들로서도 만들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만들 수 있었다.
거기에 동체의 형태와 신체 비율 역시 내가 '적당히' 움직이기 편하면서 초보 파일럿이었던 소피가 '적당히' 조종법을 터득하기 쉬운 모습(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이었기 때문에, 그런 사정을 모르는 난쟁이 집단이 설계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나처럼 사람을 태우고 작동하는 거대한 갑옷이나 골렘 따위의 중장비는 없던 것 같기에, 내 콕피트를 뜯어보고 '이런 게 있더라' 하는 식의 자료를 남기는 정도가 그들이 얻을 수 있었던 최대의 수확이다.
"나 이거 열리는 거 처음 봐! 우와!"
성문을 나와 동체의 콕피트를 개방하자 마법사가 호들갑을 떤다.
주변에는 몇몇 구경꾼들이 널찍한 반원을 그리며 드문드문 서 있다.
성벽에 내 동체를 기대놓은 지 벌써 반년이 지났다.
한동안 난쟁이 집단이 와서 이런저런 측량을 하기도 했고, 종종 그림쟁이나 마법사들이 내 동체를 그려 가기도 했으며, 가끔씩은 귀족이 찾아와 내 동체를 배경으로 자신의 그림을 남기고 싶으니 며칠간 휴업해달라며 돈을 주기도 했다.
눈에 안 띄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그런 일이 더욱 많았을 것이다.
도시에서 내 동체는 이미 랜드 마크, 혹은 관광 명소의 기능을 약간은 수행하고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사람이 모인 날엔 가판을 끌고와 거기서 간단한 먹거리를 파는 장사꾼도 있다고 한다.
"밖이 그대로 보이잖아? 이거 마법이야? 마법 같은데? 니가 쓰는 거야?"
"베르제스가 쓰는 거야. 나는 '부나따쉬토'라서 마법은 못 써."
"아. 그렇구나……."
부나따쉬토라는 단어는 종종 대화에 나오긴 하는데 가정교사도, 책도 딱히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무슨 뜻인진 모르겠다.
그저 대화의 맥락 상 소피와 같은 체질을 일컫는 말이라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마나를 체외로 지속적으로 내보내는 사람.
소피는 숨만 쉬어도 몸에서 마나가 빠져나온다.
물론 그 소비량을 상회할 만큼의 회복력은 있다.
거기에 몸 안의 마나를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집중시키거나 빠르게 순환시키는 제어력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나를 더욱 빠르게 몸 밖으로 배출하고, 그 소비량은 평소 회복력을 넘어선다.
그런 체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부나따쉬토이며, 오러와 마법은 절대 사용하지 못하는 듯하다.
마나의 배출 없이 체내 제어가 가능하면 오러 사용자가 되고, 배출과 흡수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으면 마법사가 되는 게 아닐까.
신체의 근육량에 비해 근력이 강한 소피의 체질과, 그녀의 마나를 끌어다 써서 사출마법을 발동할 수 있는 것을 토대로 세운 내 나름의 이론이다.
물론 관찰한 케이스도 적고, 관련 배경 지식도 전혀 없기 때문에 확신하진 못 한다.
도착한 공터에는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마법사가 준비한 마법진이다.
3일의 시간을 저것을 위한 시간이었나보다.
직경 7m의 원형에, 검은색으로 그려진 마법진은 폭이 200mm 정도 되는 도랑을 파서 끈적한 액체를 채워넣은 모양이었는데 실외에 그려진 것 치고는 훼손된 부분도 없고 액체에 이물질이 섞이거나, 땅속으로 스며들어 양이 줄어드는 것 같지도 않았으며, 기하학적인 도형의 동축도나 진원도, 직진도도 꽤나 정확하고 정교했다.
그야말로 마법이다.
마법사가 수련중인 학파에선 10년 동안 마법진 그리는 법만 가르친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리소테 씨? 설마 크피크 어쩌고 하는 데랑 아는 사이는 아니지?"
"크피크? 프피크핸치림 마법 연구회?"
"응. 거기."
"어쩜 그렇게 심한 말을! 거긴 마법 하는 데 아니야!! 인신공양 하는 데라구!"
"예전에 베르제스 한 번만 빌려달라고 하던 데에서 이거랑 똑같은 걸 하려고했는데……."
"뭐가 똑같……! 아니, 어떻게. 아니. 아……!"
억울하고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힌다는 표정의 마법사.
소피의 말을 듣고 기억을 되짚어봤지만 딱히 그런 기억은 없었다.
전쟁 후에 이런 마법진을 눈으로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그나마 비슷한 기억이라면 난쟁이 집단의 영업맨이 보여줬던 그림과, 소피에게 마법사들이 네 차례 정도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지막엔 서로 언성을 높히며 싸운 뒤엔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 기억.
아마도 후자가 뭐시기 마법 연구회였나보다.
그 때 당시엔 아직도 사람의 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대화의 절반도 알아듣지 못하는 상태였고, 마녀의 건도 있던 터라 마법사와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었는데 그런 이야기가 있었나?
어쩌면 영업맨에게 의뢰를 넣은 마법사 단체 역시 같은 집단일 가능성도 있었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아무리 이세계라도 인신공양을 행하는 단체가 소피에게 당당히 이름을 밝히고 목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았을 것 같지만…….
그런 의혹을 받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얽혀서 좋을 건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이 마법진은 내가 이 돌덩이에 마법을 걸기 위한 장치야. 가구 정도 되면 어떻게 할 수 있어도 이런 석상에 매달려서 마법을 쓸 수 없으니까 마법진을 그려서 쓰는 거라구."
"나랑 베르제스한테 영향은 없는 거지?"
"저어어언혀 없어! 아니, 그냥 내려! 내려서 해도 되니까 내리자."
마법사의 유도에 따라 동체를 마법진의 중앙에 맞춰서 앉혀놓고 콕피트에서 내린다.
널찍한 공터 한켠에서 볼일을 보던 다른 집단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본다.
싸워본 적도 없는 나의 전술에 대한 대책을 세워놓았던 이웃 영지군이 떠올랐지만, 구경꾼을 굳이 막진 않기로 했다.
막대한 부지의 공장같은 장소라도 있지 않는 한, 내 동체에 대한 정보를 완벽히 숨길 수는 없다.
거기에 그들은 내가 실제로 흙탄두를 발사하는 모습을 본 것처럼 대응을 했는데, 공터에서는 표적을 두고 흙탄두를 발사한 적이 없는 걸 감안하면 정보를 빼가는 쪽은 공터에서 대놓고 보는 쪽이 아니라 소피가 토벌이나 사냥을 나갈 때 몰래 따라와서 관측하는 쪽일 것이다.
그리고 그쪽 역시 내가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지금까지 전투중에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인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육안을 통한 관측은 아니었다.
망원 마법이라도 있는 거겠지.
내가 투영 마법으로 줌 인, 줌 아웃 기능을 구현할 수 있었으니 인간이라고 비슷한 마법을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다.
반경 수 키로미터의 마나를 흐트러뜨려서 마법을 엉망으로 만드는 이세계 EMP라도 있지 않는 한 정보 차단은 요원한 이야기다.
"자. 이거 가지고 있어. 내 마법에 다치는 일이 없게 해줄 거야."
마법사가 자그마한 가죽 주머니를 내민다.
꼬불꼬불한 글씨로 '주의 : 절대 열지 말 것!' 이라고 써져있다.
일부러 열어보게 만들려고 이렇게 써놓은 걸까.
"다칠 수도 있는 거야?"
"그건 모르지! 평소에 저걸 어떤 용도로 썼는데?"
"용도라니……. 때리고, 부수고, 쏘고. 그러는 데 썼지."
"쏴? 뭘 쏴?"
"흙기둥이랑 돌기둥."
"흙이랑 돌……. 그럼 괜찮지 않을까? 갑자기 폭발하진 않을 것 같은데? 혹시 평소에 흙기둥이 날아가서 펑! 하고 터지는 상상 했어?"
"에이. 누가 그런 상상을 해."
긍정.
"……베르제스?"
긍정.
"너, 그런 상상 했니?"
긍정. 긍정.
정확히는 언젠가 흙이나 돌탄두가 아니라 제대로 구조를 갖춘 고폭탄을 쏠 날이 올 거라고 상상했다.
작약을 손에 넣으면 어떤 모양으로 탄을 만들지도 계획해 놓았고.
어떻게든 시한 신관을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까지 진행된 상태다.
동체를 움직여 등 부분에 적재해놓은 돌탄두를 모두 마법진 밖으로 빼놓은 후 다시 마법진 밖으로 나갔다.
무슨무슨 나무로 만든 깃대가 회오리 바람을 일으킨 것처럼, 내가 정성스레 깎아놓은 돌탄두가 갑자기 연쇄 폭발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으니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다.
소피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이런저런 말을 아끼는 듯했지만, 무엇이든지 안전이 제일이다.
안전하면 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