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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생체병기가 되었다-31화 (31/65)

〈 31화 〉 1.29

* * *

마법사가 영창을 시작하자, 검은색을 띠던 마법진의 액체에 빛이 일렁이더니 점점 흰색으로 변해갔다.

저건 빛나는 건가?

야간에 사용한다면 기도비닉은 포기해야겠군.

"─────────────."

영창을 하는 언어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와는 또 다른 말인 듯하다.

규칙과 체계 위에 정제된 언어라기 보단, 사념파로 착각할 정도로 날 것의 감정이 강하게 느껴지는 울음소리나 노래에 가까웠다.

마법사가 팔을 휘두르며 발을 구르고 좌우로 움직이며 펼치는 몸짓도 수정구에서 봤던 것보다 동작이 크다.

지팡이를 쥐고 할 땐 얌전한 편이었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소피의 말처럼 인신공양을 할 때에도 지금 마법사가 하는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짓을 할 것 같았다.

마법사의 감정이 점점 고조된다.

목소리도 점점 커지며 발성 자체가 달라진다.

저 조그마한 몸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조금 멋있군.

그에 맞춰 마법진에서 흘러나오는 빛도 점점 강해져 뙤약볕 아래에서도 빛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됐을 때쯤, 마법사가 영창을 마쳤다.

"하아…하아…하아…."

"끝…이야?"

"응…. 끝이야…하아…. 도중에 조금 창피해져서 잘 됐는지 모르겠네."

영창 중에 보인 몸짓이 역시 정상적인 행동은 아니었는지, 얼굴이 조금 상기된 마법사.

마법이란 건 영창 중에 창피해하면 효과나 결과물의 질이 떨어지는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세상 모든 일이 그런 면이 있긴 하다.

"끝난 거 맞지?"

동체로 천천히 다가가는 소피.

마법진을 주위를 느긋하게 걸으며 달라진 점을 찾지만 딱히 눈에 띄는 변경점은 없다.

저번에 설명을 들은 바로는 매개체가 오래될수록 효과가 강해진다고 했는데, 지금 내 동체는 수천 년은 가뿐히 넘는 기간동안 굳어졌을 바위임과 동시에 만든지 몇 개월밖에 되지 않은 석재 파츠다.

둘 중에 어느 쪽이 적용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형태를 띠게 된 넉 달 정도 되는 기간만이 카운트됐다면 수정구에서 보았던, 불꽃이 순간적으로 일렁거리고 마는 마법만 발동되고 말았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타고 싸우는 게 용도였다고 했잖아. 직접 타보기 전엔 모를 거야."

숨을 고르던 마법사는 앓는 소리를 내며 이내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소비된 마나가 크다고 티를 팍팍 낸다.

마법이 실패했을 가능성은 염두에도 두지 않는 듯한 태도다.

소피는 어느새 검은 액체가 전부 증발해버린 마법진의 도랑을 조심스럽게 건너 콕피트에 올랐다.

평소 순서대로 콕피트를 닫고 서서히 동체를 기동시킨다.

"잘 모르겠는데?"

소피는 서서히 몸을 풀듯이 동체를 움직이며 바뀐 부분이 있는지 체크한다.

일어서고, 앉아보고, 팔을 들었다 내려보고, 사선을 확인한 뒤 잠깐 숨을 고른 채 흙탄두를 발사.

하지만 딱히 달라진 곳은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베르제스. 넌 뭐 알겠어?"

긍정.

소피는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의사를 느끼고 직접 동체를 움직이는 나는 알 것 같다.

내가 직접 돌을 깎아 만들어낸 동체.

그 동체의 목적은 내가 원하는 대로 특정한 움직임을 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대의 마법은 그 목적에 따른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현된 것 같다.

소피가 취했던 동작을 그대로 반복한다.

동체를 눕혔다가, 일어서고, 앉아보고, 팔을 들었다 내려보고, 흙탄두를 발사.

하지만 소피는 아직 감을 잡지 못 한 것 같다.

상관없다.

나도 이 성능 향상이 어디까지 이뤄졌는지는 모르겠다.

이번엔 좀 더 빠르게.

다시 동체를 눕혔다가, 일어서고, 앉아보고, 팔을 들었다 내려보고, 흙탄두를 발사.

소피가 눈치를 채기 시작했다.

더 빠르게.

마치 버피 테스트를 하듯, 한 세트를 반복.

더 빠르게.

내 동체의 움직임에 따라 땅이 울리고 바람이 갈라진다.

하지만 모자라.

빠르게.

소피의 의지가 더해진다.

역시 인간형 동체를 제어하는 감각은 나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억지로 속도를 높이면서 흔들림이 생기던 동작이 매끄러워지고 안정적으로 변한다.

더욱 빠르게.

동체를 일으키던 소피가 아예 무게중심을 전면으로 확 기울여 앞으로 구른다.

수십 톤의 중량이 손목, 팔꿈치를 거쳐 어깨 파츠로 집중된다.

아무리 내가 장악해서 단단해졌다 하더라도 이런 충격량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꿍, 꽈앙!

인간의 관절과 근육만큼 유연하지 않은 내 동체가 땅을 찍어대고, 목뼈 부분이 꺾이지 않는 머리가 바보처럼 움직임을 방해하고, 둥글게 말리지 않는 등 탓에 이윽고 일어나지 못한 채 바닥에 뻗는다.

뼈와 살로 이루어져있던 전생의 기억이 떠오르며, 동체 곳곳에서 저릿저릿한 감각이 느껴지는 착각이 든다.

아니, 저린 게 아니다.

이건 짜릿함이다.

몸을 움직인다는 단순한 행동에서 오는 기쁨이다.

"대단하잖아."

전생에서도 운동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며 시원하게 땀을 흘리고 근육이 긴장했을 때의 감각은 지식으로나마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동체를 움직이는 게 즐겁다.

이런 감각은 이번 생에서 처음 느껴본다.

"빠르고 단단해졌어. 유연해졌고."

거대한 석재 동체가 이렇게 빠르게 움직여도 되나, 싶을 정도로 속도가 빨라졌다.

물론 그 움직임을 충분히 감당할 만큼 관절부의 내구도도 올라갔다.

난폭한 조종에 충분히 버틸 만큼 동체가 강해졌고, 소피에게 전달되는 충격도 작아졌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실 내가 만든 동체에 관절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따로따로 떨어진 파츠를 내 본체로 붙잡은 상태로 움직이고 있으니, 내가 곧 관절이자 신경인 셈이다.

그런데, 마법의 영향을 일절 받지 않은 관절부가 강화되고 움직임이 부드러워졌다.

동체의 경도가 올라가고, 전해지는 충격이 작아지는 효과는, 지금까지 그런 마법이 있었으니 그러려니 할 수 있었지만 관절부는 다르다.

이건 말도 안 된다.

그야말로 마법이다.

"그렇게 마음에 들어?"

긍정.

내 기쁨의 사념파가 흘러나간 걸까.

소피가 커다란 개를 쓰다듬듯, 내 본체를 마구 헝클어트린다.

그렇게 동체를 눞힌 채로 있다보니, 점점 마법의 효과가 사라지는 게 느껴진다.

고양감이 낮아지고 평소의 무겁고 둔탁한 동체로 돌아온다.

마법의 효과는 10분 정도인가.

충분하다.

소피가 실제 토벌에 들어가 내 동체를 기동시키는 시간은 6시간 내외지만, 그 중에서 격렬하게 마나를 소비하며 전투를 치르는 시간은 여러 전투를 합쳐도 하루에 30분이 채 되지 않는다.

그 중에서 10분.

동체의 성능을 일시적으로 부스트해서 전투의 양상을 뒤집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소피가 드래곤 바로 아래 체급의 강한 몬스터를 토벌하거나, 국가 대 국가 규모의 대회전에 참여하지 않는 이상 전투 기동 시간이나 마법의 지속시간이 짧아서 발목을 잡힐 일은 없을 것이다.

"어때~? 괜찮은 마법이지?"

"응. 베르제스가 많이 좋아했어."

"지금은 마법을 쓰려면 이렇게 거창한 준비가 필요해두, 내가 저 석상에 익숙해지고 석상도 내 마법에 익숙해지면 마법진의 크기를 줄일 수 있을 거야. 평평한 데만 있으면 석상 안에 그려놔도 된다구~."

"평소에 짐을 넣어두는 데가 있긴 한데……."

긍정.

안 그래도 집락촌민의 멤버가 떠나간 이후로, 적재 공간이 많이 여유로워진 상황이다.

그곳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해서 마법진과 마법사 탑재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도 될 것 같다.

지금의 성능 향상은 그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

"정말? 근데, 그게, 쪼끔 오래 걸릴 지도 몰라…."

"괜찮아."

"몇 달이 걸릴지도 모르는데?"

"무슨 학파에서 마법 배웠다고 했지? 지금 이 마법만 쓸 줄 아는 건 아니잖아."

"당연하지!"

"그럼 됐어."

소피는 그 때까지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마법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피야. 여기 슬라임은 베르제스."

"단카프루그 학파의 리소테야! 단카프루그! 기억하라구~."

단카프루그.

기억해둔다.

좋은 마법을 만드는 곳이다.

분명 혀를 씹을 것 같은 이름의 뭐시기 마법 연구회와는 격이 다른 곳이겠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던가.

그곳에서 아직 수련중이라는 리소테만 봐도 단카프루그의 구성원이 모두 허례허식에 빠지지 않고 사회성이 밝으며 미래지향적이면서 성격에 구김이 없는 사람들임과 동시에 세상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마법을 연구할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로써 한동안 바빠질 것 같다.

리소테를 기다리는 동안 난쟁이 집단에게 수주를 넣은 철제 무장을 탑재할 공간도 만들어야 하고, 리소테를 위한 공간도 꾸며야 한다.

그 후엔 리소테를 동반한 채 사냥을 몇 번 다니며 합을 맞춰보고, 동시에 새 무장의 테스트와 강화 마법의 개선…….

아니, 「리미터 해제」에 힘도 쏟아야 한다.

새 무장과 리미터 해제.

이 둘만 있으면 소피가 6급으로 올라가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 새로운 몬스터들과 붙게 되도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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