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1.32
* * *
영주 아들의 시선.
그 뒤의 기사들의 시선.
도열해있는 군대의 이목.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것을 느낀다.
아무리 거대하다고 해도, 이 정도 군대가 저런 털뭉치를 퇴치하지 못 할 리는 없다.
내가 봐왔던 이 세계엔 저런 몬스터들은 쌔고 쌨다.
저런 몬스터를 만날 때마다 큰 곤란을 겪었다면 한 곳에 정착해 제대로 된 문명을 일궈내는 것은 꿈도 꾸지 못 한다.
몬스터의 눈을 피해 숨어 살고, 도망치며 사는 삶을 사는 게 최선이었겠지.
원래 목적은 아닐지라도 토벌의 준비를 마치고 출정한 군인들이 벌판 한 가운데 발이 묶인 데엔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병력의 소모.
이곳이 거대한 거북이의 등에 올려진 판타지 세계라고는 하지만, 푸줏간 총각이 도축칼에 오러를 두르거나 삯바느질을 하는 아낙이 마법으로 마을을 불태우진 못 한다.
특별한 전투 능력이 없는 일반인이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눈앞에 있는 군대 역시 비율이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반면에 평야에 자리 잡고 있는 적들은 다수.
몇 마리는 새끼로 보이지만, 저 정도 크기라면 아무리 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일반인이 쉽게 당해낼 수 있는 몬스터는 아닐 듯하다.
맞붙으면 분명히 피해가 나온다.
물론 왕국 단위의 토벌을 위해 모인 자들이니 어느 정도 병력의 소모는 예상했을 것이고, 영주 아들의 말에 따르면 토벌이 아니라 사냥 대회 같은 느낌이라곤 했지만 예정에 없던 손해를 입는 상황을 달가워할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골머리를 썩히고 있었겠지.
거대 거북을 토벌하기 위해 각지의 병력이 차출되어 집결하고 있는 상황.
그만큼 민간 주거지의 방위력이 약해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물론 저들이 이 영지 소속이 아닐 가능성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기껏해야 이웃 영지 소속일 것이고 우리 영주의 아들과 그러했듯 서로 다 아는 얼굴일 수 있었다.
상대가 껄끄럽다고 모른 척 지나갈 수는 없다는 뜻이다.
부대의 지휘관……, 아마도 저 말을 탄 기사 두 명은 머리를 맞대고 전진과 우회 사이에서 손익을 저울질하며 서서히 각오를 다지고 있었겠지.
로스트 테크놀로지의 정수가 담긴 인형 병기가 나타나기 전까진.
콕피트를 닫는다.
몸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소피가 성급하게 털뭉치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그녀는 이런 곳에 조금 약한 면이 있다.
물론 투지를 불태우는 자세는 나무랄 것이 없지만, 그냥 싸워서 이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다.
그리고 거대 인형 병기를 타고 '아무나'가 되는 것은,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을 짓밟는 범죄적인 행위다.
필요한 것은 임팩트.
소피의 조종을 무시하고 천천히 발을 내딛는다.
팔을 천천히 들어올리자 내 동체를 구경하던 기사들이 긴장하는 것이 느껴진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잠시 어깨를 푸는 동작일 뿐이니까.
물론 점액질로 구성된 내 본체로 움직이는 동체의 어깨를 풀 필요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돌을 깎아 만들어낸 어깨는 인간의 관절처럼 유연한 구조도 아니다.
그럼에도 한다.
그러니까 한다.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은, 한정된 범위 안에서 일정하게 팔을 돌리는 일종의 '시늉'.
인간에게서 볼 수 없는 정확한 움직임이 불러일으키는 위화감 .
왠지 모르게 동요하는 감정.
이 세계에도 불쾌한 골짜기 같은 개념이 있어서, 저들이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대충이나마 파악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좋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것에서 오는 감정적 충격에 대한 내성이 낮다.
있어서 손해만 보는 파츠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서 동체를 석재로 변경하며 머리 파츠의 구조를 최대한 간단하게 개편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이목구비를 밀어버린 것은 조금 아쉽다.
이럴 때 인간적인 표정을 짓는다면 저들에게 더욱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을 텐데.
"루드보어는 간단히 말 하자면 그냥 큰 멧돼지야. 과거에 비슷한 기록이 없어서 비교적 최근에 나타나긴 시작한 몬스터로 알려져있는데, 발생 기원에 대한 가설로……."
"그래서, 습성은?"
"그냥 멧돼지랑 똑같대. 그런데 그냥 멧돼지 습성이 어떤 건진 잘 모르겠어. 미안해……."
리소테가 콕피트의 조종석 뒤에 마련된 자신의 자리에 안전 로프로 몸을 꽉 고정시키며 간단하게 브리핑을 진행했다.
인증된 마법 학파에서 실습을 나온 마법사들은 6급 모험가부터 시작한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나 보다.
어떻게 이세계에서 모험가 활동까지 하면서 멧돼지의 습성을 모를 수가 있지.
물론 나라고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 괜찮아. 내가 알고 있으니까."
소피는 혀로 입술을 적시며 다시 한 번 다리에 마나를 빡 흘리고 땅을 박찬다.
준비는 끝났다.
작전은 전직 산골 소녀 소피에게 맡겨도 좋을 듯하다.
몸을 앞으로 숙여 이족 보행을 포기하고 두 팔 두 다리로 털뭉치를 향해 달려나간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몸의 윤곽이 식별되며 놈들의 크기를 체감할 수 있게 된다.
체고가 트롤 급은 돼보인다.
정말 단순히 거대해진 멧돼지라면 체장은 그 두세배 쯤 되겠지.
엄니가 길게 돌출돼 있다.
수컷인가.
소피를 태운 이후로 덩치에서 완전히 밀리는 상대는 처음이다.
커다란 발소리에 루드보어가 몸을 일으켜 제 몸의 절반도 채 안 되는 새끼들을 뒤로 숨긴다.
저쪽이 물러설 이유는 없겠지.
온몸이 근육으로 가득 찬 멧돼지의 돌진은 상위 포식자에게도 생명의 위협으로 다가온다.
하물며 지금은 내가 체급이 딸리는 상황.
저 몸통에 정통으로 부딪치면 내 동체가 볼링 핀처럼 날아갈지도 모른다.
"리소테, 눈 멀기!"
"으, 응! ────……. 팬시 라이트!"
리소테는 내가 전력으로 달리는 중에도 혀를 깨물지 않고 훌륭하게 영창을 해냈다.
그동안 충분히 연습하고, 안전 로프를 개량한 보람이 있었다.
발동된 마법은 내 생각과는 다르게 대상의 눈 주변에 밝은 빛을 아주 잠깐 터트릴 뿐이었지만, 전투 중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맨 눈으로 강한 태양빛을 쳐다본 것처럼 시야에 잔영이 생긴 멧돼지는 더욱 거칠게 달리며 앞으로 뛰쳐나온다.
놀랐을 때 몸이 순간적으로 굳는 동물이 있고, 더욱 흥분해서 무작정 달려나가는 동물이 있다.
대부분의 야생 동물은 후자였다.
물론 멧돼지는 특유의 후각으로 눈이 먼 상태에서도 상대를 찾을 수 있겠지만, 과연 내 동체를 이루고 있는 석재를 위협으로 인식하고 반응할까?
돌이나 나무 냄새는 어디에서든 난다.
대부분의 생물은 비교적 익숙한 자극은 주의 깊게 처리하지 않는 한,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소피는 돌진 경로를 가늠하며 자세를 잡고 정지한다.
시야의 대부분을 잃은 멧돼지는 앞으로 달려나가며넛도 발놀림이 난잡해지고 자세가 불안정해졌다.
멀쩡했을 때보다야 충격량이 덜 하겠지만, 그대로 부딪쳤을 때 내가 한심하게 날아간다는 건 매한가지다.
"베르제스. 새 무기, 쓰고 싶지?"
이심전심이라는 걸까.
무작정 돌격해오는 루드보어를 봤을 때, 돌탄두를 난사하면 놈이 내게 도달하기 전에 곤죽을 만들어놓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놈의 몸은 거대하고, 가죽은 단단하지 않았다.
정면으로 발사한다면 몸을 관통하고 지나가진 않겠지만, 강철도 뚫는 돌탄두는 놈의 살을 찢고 뼈를 부숴 주요 장기를 갈아버릴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떠올린 것은 소피도 떠올릴 수 있다.
전투에 관해선 그녀가 나의 앞을 몇 수나 앞서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쉬운 방법을 두고, 구태여 위험한 수를 취한다.
그 길을 택한 이유는 나처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맨십이 아니다.
재밌으니까.
내 동체를 움직여 싸우고, 승리를 쟁취하는 전투가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즐거우니까.
강하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으니까.
"반드시 맞출게. 뒤는 부탁해."
리소테는 우리가 하려는 게 어떤 건지 슬슬 감이 잡히는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안전 로프를 꽉 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입으로 '아닐 거야, 아닐 거야.' 하는 걸 보니 확실하다.
점점 다가오는 루드보어의 거구.
발굽 때문인지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발소리가 쿵쾅쿵쾅 울리진 않는다.
보다 가벼운, 투닥투닥 소리.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놈의 움직임이 더욱 날렵하게,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허리춤에 주먹을 두고 기다리는 소피의 감정 밑바닥에서 기쁨이 스믈스믈 올라온다.
마치 마른 우물에 물이 차오르듯이.
소피의 호흡이 잦아든다.
위아래로 움직이던 어깨가 고정된다.
20걸음.
18걸음.
15걸음.
13걸음.
"흡."
왼발에 체중을 싣고.
기동 처음에 휘둘렀던 텔레폰 펀치와는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세련된 훅.
7걸음.
5걸음.
3걸음.
파일 벙커 격발.
동시에 우완 퍼지.
반걸음.
"꺄아아아아아악!!"
"크흣……."
최대한 아슬아슬한 타이밍까지만 버텼는데, 그래도 전해지는 충격이 어마어마하다.
내 동체가 오른쪽으로 빙글 돌며 튕겨져 나간다.
어찌나 충격이 컸는지, 땅에 꼴사납게 엎어진 후에도 동체가 반바퀴를 더 돌아 바닥에 누운 형태가 되었다.
"베르제스, 놓치면 안 돼!"
소피는 그 사이에 멀리 떨어져있는 새끼들의 방향을 파악하고 왼팔을 뻗는다.
움직임에 맞춰 추가 디스플레이를 가동 시키고, 조준. 그리고 격발.
"뀌이이이이!!"
거대한 굉음에 놀라 도망가던 새끼 멧돼지들의 몸이 쏟아지는 돌탄두에 분해된다.
사방으로 떨어져나가는 다리와 눈알, 뇌, 내장, 살덩이, 피.
거대하게 키워놨다지만, 그래도 인간이 호감을 느낄 법한 생김새의 새끼들에게도 소피는 자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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