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생체병기가 되었다-39화 (39/65)

〈 39화 〉 1.37

* * *

성벽의 보수 작업을 진행하는 와중에도 소피의 인생 수집은 멈추지 않았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 했다.

함께 작업을 하며 안면을 튼 작업자들이 모두 각 영지에서 차출되어 파견된 정규군이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어째서 군인이 되는가.

그들 각자의 사정을 모두 세세하게 파헤쳐보면 자잘한 디테일이야 모두 다르겠지만, 큰 줄기를 따지면 몇 개의 카테고리로 나눠지는 경향이 있었다.

우리 가족과 고향을 지키기 위해서.

기사가 되고 싶어서.

성미에 맞아서.

집에 형제 자매들이 많아 가업을 이을 상황이 아니라서.

딱히 먹고 살 기술이 없어서.

초보 모험가는 생존률이 낮아서.

물론 그들이 내놓은 대답 중엔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말한 것들과 타 영지의 한 창 때 여자에게 내세우기 적당한 대답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사실은 별 생각 없이 영지의 경비병이 되었지만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투철한 군인 정신을 가진 것처럼 포장을 했다거나.

반대로 부패하지 않은 영지 치안의 수호자가 됨과 동시에 몬스터와 적군에게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병사로 지원했지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자리에서 그런 사실을 진지하게 말하기가 부끄러워 대충 얼버무렸다든가.

소피가 그런 사실을 분간하는 것은 그들과 보낸 시간이 짧기에 불가능할 것이다.

내 입장에선 토벌이 끝나면 볼일도 없고, 어쩌면 적으로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병사들의 인생이 실제로 어떻든 관심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소피는 대체적으로 고만고만 하고, 진짜인지 아닐지 모르는 그들의 인생과 사정을 참을성 있게 모두 들어주었다.

어쩌면 그녀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내가 찾지 못 한 모종의 가치를 발견한 것일지도 몰랐다.

***

하늘의 별은 밝았고, 세 개의 달이 제각각 다른 위치에서 지상을 비춰 밤인데도 사물을 식별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다.

바람이 강한지 절벽 아래서 크게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성벽까지 타고 올라와 뭉개져서 낮게 울린다.

이런 곳에서도 귀뚜라미 종류의 풀벌레가 사는지 찌르찌르 우는 소리가 간간이 섞이는, 그런 밤이었다.

"베르제스. 네가 내 몸에서 나오는 마나를 양분으로 골렘을 움직이는 건 알고 있어."

하루의 작업을 마치고 잠들 준비를 하기 전에, 산책을 한 바퀴 돌고온다며 인적이 없는 성벽으로 온 소피가 내게 건넨 말이다.

읊조리듯 낮은 목소리.

내가 관리해줄 것을 믿는 건지,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성벽에 등을 기댄다.

"그게 느껴져. 특히 돌기둥을 오랫동안 쏘면 피곤해지고 배가 고파."

사출 마법은 단순 기동보다 소피의 마나를 많이 사용한다.

아니, 비전투시에 내 템포대로 기동하는 것뿐이라면 소피의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도 충분히 움직일 수 있다.

소피에게 시야를 제공하는 투영 마법은 사출 마법만큼 마나를 소모하지 않았고, 내 직감으로는 지금 보다 동체가 1.5배는 커지지 않는 이상 그저 움직이기만 할 뿐이라면 내가 대기에서 흡수하는 마나만으로도 투영 마법을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

"생각해 보면 처음에 너를 만나서 흙골렘을 움직였을 때도 그랬어. 그런데 점점 힘이 덜 들게 되더라. 나는 부나­따쉬토라서 마나량이 늘어날 리도 없는데 말이야."

소피가 내 본체를 천천히 쓰다듬는다.

그녀는 심심하거나, 생각할 거리가 있을 때마다, 때로는 애완 동물을 쓰담듬듯이, 때로는 지점토를 꽉 쥐거나 뜯어내듯이 내 몸을 가지고 놀곤 한다.

어렸을 적부터 노동을 해온 그녀의 손은, 전생의 내 기준으로 봤을 땐 억세고 두꺼운 편이다.

아귀 힘도 좋다.

그러고보니 소피와 처음 만났을 때, 콕피트 벽면에 박혀있던 짱돌을 단번에 뽑아내는 걸 보고 보통 내기가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었지.

"혹시 힘을 조절하고 있니?"

……긍정.

"역시 내 마나를 더 많이 가져가면, 더 강하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거지?"

긍정.

"아주 많이 가져가면 리소테의 마법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니?"

부정.

"그렇구나."

어쩐지 느낌이 쎄 하더라니.

그녀의 말대로, 지금 내가 소피에게서 흡수하는 마나량을 조절하면서 동체의 출력을 의도적으로 낮추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출 마법의 마나 소모가 생각보다 크고, 소피의 컨디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이어진 행동이었다.

트롤을 상대할 때엔 근접전 위주로 싸워왔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고블린 토벌처럼 대규모 섬멸전을 벌일 때에는 사출 마법을 오랫동안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략 가늠해본 결과, 소피가 전술 기동을 펼치며 사출 마법을 지속적으로 사용했을 때 무리가 오지 않는 시간은 30분 내외.

전투가 그보다 오래 지속되면 호흡이 가빠지고 그녀의 신체에서 젖산이 활발히 분비되며 피로 축적이 가속된다.

그렇게 소비된 마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정량 회복되지만, 사출 마법의 소모량은 그녀의 회복량을 뛰어넘기 때문에 다음날엔 더욱 빨리 지치게 된다.

솔직히 내 기준으론 짧디 짧은 시간이다.

지치지 않는 개량 슬라임과 비교하면 어떤 생물체든 체력이 딸리겠지만은, 그래도 메카에 탑승한 채로 전투를 수행한다면 매일 4시간가량 쪽잠을 잔다고 가정했을 때 3일은 연속으로 기동할 수 있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있다.

물론 참고 자료나 관련 사례 없이 그냥 내가 마음속으로 정한 기준이지만, 몬스터는 득시글대는데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는 이세계에서 싸워나가며 살아남기 위해선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했다.

물론 나는 소피의 마나를 흡수하지 않아도, 그녀의 움직임을 반영해 동체를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전투력의 심대한 저하를 불러오는 게 문제다.

소피는 자신의 몸을 움직이지 않고 체내 마나의 움직임과 감정, 그리고 나와 그녀 사이의 암묵적 룰을 통해 내 동체를 움직이는 법을 터득했다.

그 방법이 가장 퍼포먼스가 좋았으며, 소피가 느끼는 환각통의 강도도 가장 낮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전투력은 소피가 체내에 마나를 흘리며 조종하는 상태가 기준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기준으로 상대를 선택하고, 승산을 재고 있다.

루드보어만 해도 다급해진 소피가 말로는 냉큼 싸우겠다고는 했어도, 실제로 덩치와 특징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고 난 후에야 승산이 높아 보였기에 곧바로 전투에 들어간 경우다.

하지만 만약 거기서 처음 조종 방식을 고수한 상태였다면 저번처럼 깔끔하게 카운터로 파일 벙커를 박아넣지도 못 했을 것이고, 설령 성공했다 하더라도 우완부 퍼지와 함께 소피가 쇼크로 기절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의 오른팔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하늘에 맡겨야 했겠지.

아마 싸우기 전에 내가 소피를 만류하고 퇴각하지 않았을까.

소피의 마나는 이젠 전투를 수행하는 데엔 필수적인 요소다.

동체의 출력 상승.

조작 민감도 상승과 파일럿 보호.

그리고 사출 마법.

하지만 마나는 한정돼있고, 피치 못할 연속 기동으로 소피의 마나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 한 상태에서 다시 전투에 들어가게 된다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나는 어떻게든 마나 연비를 개선해야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동체의 소재를 흙에서 돌로 바꾼 뒤로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내 기준에 어떻게든 근접한 수준으로 맞추고 싶었다.

그렇게 고민해서 떠올린 방법은 결국 동체의 출력을 낮추는 것 밖에는 없었다.

물론 이런 문제는 소피의 마나가 고갈돼 전투 불능이 되어도, 일종의 케어를 해줄 수 있는 동료나 단체가 있다면 해결된다.

하지만 지금 소피와 나에겐 우리를 지원해줄 조력자나 본부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동력을 무진장 공급하는 거대한 파워 케이블이나, 전장의 일정 범위에 동력을 무선 충전해주는 전함, 레이저 유도로 예비 배터리를 사출해줄 전투기같은 건 그야말로 꿈과 같은 이야기인 것이다.

아니, 그런 전투 지원이나 원호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하다못해 기동 한계가 다가왔을 때 소피를 긴급 회수해서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도 있었으면 이런 고민을 안 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것이 없고,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직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많지만 내 생각엔 앞으로도 없을 예정으로 보인다.

물론 리소테는 기동 한계가 다가왔을 때 함께 위기에 처하는 쪽이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소피는 말한다.

"그래도, 필요할 땐 그렇게 해야돼. 리소테의 마법이 완성된 후에도, 필요하다면 해야돼."

효율과 안전을 버리고, 자신을 내던지겠다고.

"네 골렘은 단단하기도 하고, 지금은 같이 싸워주는 사람들도 많잖아. 조금은 더 너를 믿고 사람들을 믿어도 돼."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세상의 선함을 믿으라고.

"어쩐지 안 좋은 느낌이 들어. 토벌 도중에 뭔가가 일어날 것만 같아."

나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소피가 무언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그녀의 마나를 끌어다 써서 동체의 출력을 높힌다고 해도 그 상승량은 대단치 않았다.

리미터 해제 마법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소피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대기중의 마나가 아닌, 파일럿의 마나라는 새로운 동력원에 들뜬 내가 '자고로 메카라면 이 정도 출력은 내야지' 하고서 멋대로 정한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녀의 마나를 의미 있는 수준으로 끌어다 써서 동체의 출력을 약간 올렸을 뿐이다.

그 때의 마나 소모와 출력을 그녀가 어렴풋이라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긴 했지만, 그건 개인적으론 흑역사로 덮어두고 싶은 기억이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분명한 낭비였다.

그것보단 소피에게 내 동체를 골렘이 아닌 메카로 인식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지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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