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생체병기가 되었다-42화 (42/65)

〈 42화 〉 1.40

* * *

몬스터가 나타난 것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베르제스. 확실한 거지?"

긍정.

무슨 놈인진 모르겠지만 일렁이는 파도가 만드는 명암을 이용해 교묘하게 숨는다곤 해도 마나를 먹고 사는 나를 속일 순 없다.

생명의 보고인 만큼 미생물부터 시작해서 동식물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는 바다지만, 그 사이에서 '결'이 다른 몬스터의 마나를 알아채는 것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활동 중인 에이션트 슬라임인 나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다.

냄새가 난다고.

끈적끈적하고 불쾌한 냄새가.

"1­2진지에서 적성 몬스터 발견. 종류는 불명. 베르제스, 큰 놈? 그럼 작은 놈? ……소형입니다."

마도구를 이용해 바로 옆의 지휘관에게 보고하는 리소테.

지휘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내 팔이 지향하고 있는 방향의 바다를 노려보지만 상대를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소피 역시 그동안 소형 몬스터를 사냥하며 내가 투영 마법으로 표시하는 화살표와 조준경 기호의 의미, 그리고 그 정밀도를 체감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덮어놓고 믿지는 않았겠지.

신뢰를 넘어, 아예 학습이 끝난 그녀가 내가 화살표를 표시함과 동시에 해당 방향으로 다짜고짜 흙탄두를 들이부으려고 했을 땐 조금 당황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이 세계에선 유도 기능이 내장된 마법조차도 시전자가 정신 집중을 유지하며 궤도를 수정하는 지령 유도 방식이 고작이다.

뭐든지 사람이 지속해서 신경쓰고 재검토 한 뒤에도 불확실성을 안고 판단을 내리는 게 당연한 세상.

자동화의 개념조차 없는 상황에서 소피가 내 조언에 푹 빠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아, 모르는 건가?

이것은 서포트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직관적이고 사용자 친화적이지.

"소피. 발사해도 된,"

투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리소테의 전달이 다 끝나기도 전에 핸드 발칸이 탄두를 토해낸다.

루드보어와 전투한 지도 오래 됐고, 드디어 기나긴 토벌 여정의 본래 목적을 수행하려는 참이다.

몸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소피는 그동안 쌓이고 쌓인 욕구를 막대한 마나와 함께 쏟아붓는다.

쏴아아아아──.

해수면에 착탄한 흙탄두가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킨다.

지휘관에게서 익숙한 감정의 배합이 느껴진다.

놀라움.

내가 느끼는 것은 그의 감정 뿐이지만, 지금 사출 마법이 만들어내는 거대하고 연속적인 물보라의 향연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크고 빠른 인공물은 그 존재만으로도 다른 것들은 흉내낼 수 없는 특유의 감동을 선사한다.

그것의 소리가 요란하다면 더욱.

아무리 문명화가 진행된다 해도, 거대한 바위와 귀를 찢는 천둥을 숭배하던 인간의 본능은 쉽게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하지만 거창하게 쏟아낸 것 치고는 효율이 나오지 않는다.

첫째로는 흙탄두의 속도와 파괴력이 수중에서 급격하게 낮아졌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흙탄두가 만들어낸 파도에 몸집이 작은 공격 대상이 휩쓸려 떠내려가 좀처럼 적중시키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자는 얼추 예상하고 있었던 문제였고, 어뢰처럼 자체적으로 추진력을 발생시킬 수 있는 무장이 없는 이상 짊어지고 가야할 리스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별다른 감흥은 없었지만 후자는 이야기가 달랐다.

이 역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정도가 훨씬 더 심했다.

흙탄두가 바닷속에서 만들어내는 파도와, 일시적으로 비어있던 물의 빈자리가 다시 채워지면서 생겨나는 소용돌이의 움직임을 전혀 예측할 수가 없었다.

지상에선 약간 대충 쏴제껴도 착탄과 동시에 비산하는 파편이 제멋대로 적들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일시적으로 전투 불능 상태를 만들었다면, 수중에선 탄환이 만들어내는 와류가 상대방의 움직임을 제한할 순 있어도 살상에는 심각한 방해물이 되었다.

저 몬스터 한 마리를 죽이는 데 탄환을 10발이 넘게 소비했다.

소피의 마나가 한정된 상황에서 이런 교환비는 용납할 수 없다.

거세게 요동치던 해수면이 잠잠해지자 조각조각난 고깃덩이들이 둥둥 떠올라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변의 바닷물이 조금 검게 변한 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내 흙탄두가 바다를 그렇게 들쑤셔놓았으니 단순히 기분탓일지도 모른다.

"자, 잘했대!"

리소테의 전달을 듣고 지휘관을 확인하니 매우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거북이 토벌은 반쯤은 사냥 대회 같은 느낌으로 변질됐다고 했었지.

첫 실적을 올린 쪽에 무언가 추가 보상이 예정돼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반면에 소피는 오히려 고양감이 가라앉으며 심장 박동이 점점 평상시로 돌아오고 있다.

한바탕 쏟아내고 나니 조금은 머리가 식어서 '이게 아닌데?'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체면치레도 했고, 소피도 어느 정도 제정신이 돌아온 것 같으니 이런 마력 낭비는 중지다.

지금까지 문제가 없었기에 방치하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팔 속에 구멍을 내서 사격용 강선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생겼다.

물론 지금 당장 그런 작업을 할 수는 없었다.

내가 돌을 깎아내는 속도는 느렸고, 적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이미 한 놈이 당해서 조심하고 있는 건지, 해수면 아래서 숨을 죽이고 있지만 방금 그 녀석과 같은 종류의 몬스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소피의 마나를 온존하기 위해 바로 표시하지 않고,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물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내거나 아예 육지에 상륙한다면 아까보단 죽이기 쉬워질 것이다.

***

사냥 대회라는 비유가 틀린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이 정도 인원이 몰려서 계획적으로 사냥을 한다면 그것은 이미 전쟁이다.

다른 진지엔 어느샌가 전투조가 잔뜩 몰려와서 경계 단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인원이 성벽 위에 빽빽이 배치돼있었고, 우리의 뒤에도 예비대의 일부가 성벽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성벽을 따라 사람들이 쏟아내는 화살과 마법, 돌, 창 따위의 공격에 팔다리가 달리다 만 생선처럼 생긴 어인들이 픽픽 쓰러져간다.

어느 무엇 하나 감히 성벽에 닿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 한다.

공성 병기는 커녕, 육지에서 행하는 공성전에 대한 경험 자체가 없으니 그저 죽자사자 앞으로 달려와서 그대로 죽고 마는 모습을 보면 조금 씁쓸한 기분도 든다.

따지고 보면 저것들은 무스파날라 거북이란 재앙에게서 도망쳐온 피난민같은 게 아닌가?

먼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외치는 온갖 소리가 뒤섞여 알아들을 순 없지만, 아군의 함성은 사기가 높고 기쁨의 감정이 섞여있다.

저들의 입장에선 구축해야할 몬스터를 쉽고 빠르게 많이 죽이는 셈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겠지만, 사람이냐 몬스터냐를 따지면 몬스터에 속하는 내가 몬스터 감수성을 발휘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일 것이다.

탕­! 탕­! 탕­!

"저기, 베르제스. 내가 다른 사람들을 좀 더 믿으라고 한 건 맞는데……."

긍정.

탕­! 탕­!

"이런 식으로 믿으라고 한 건……."

그렇다고 내가 이렇게 건성건성 싸우는 건 몬스터를 불쌍히 여겨 죽이기 싫은 걸 억지로 죽이기 때문은 아니다.

어차피 저것들은 뒤로 돌아도 죽고 앞으로 와도 죽는다.

지금 상황에서 살려두더라도, 살아봐야 얼마나 살겠는가.

수 천 년 이상을 살아온 내 기준으론 지금 죽나 제 명에 죽나 거기서 거기다.

노리는 것은 소피의 마나 보존.

당연하게도 우리가 담당하는 방어 구역은 옆 진지와 겹치는 영역이 있다.

거기다 지금은 흥분한 병사들이 지정된 구역을 넘어 눈에 보이면 닥치는 대로 죽여대고 있는 상황.

소피의 말대로, 다른 사람들이 나서서 도와주겠다는데 우리가 애써 거절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바다의 몬스터들은 적당히 흩어서 옆 진지로 넘기고, 가까이 다가와 절벽 등반을 시도하는 놈들만 노려서 죽인다.

그 중에서도 용을 쓴답시고 신체를 펄떡이다가 스스로 떨어지는 놈들이 절반이고, 절벽을 타다 미끄러지거나 지쳐서 또 바다에 떨어지는 놈들이 나머지 절반이지만 상관없다.

지금 굳이 힘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소 잡는 칼로 닭을 썰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큰 인형 병기를 만들어 놨으면 큰일을 해야한다.

***

전투가 지속될수록 점점 크고 강한 녀석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3일째 되는 날엔 거대한 바다뱀이 모습을 드러냈다.

씨­서펜트인가.

굵기는 내 팔 파츠 정도지만, 체장이 상당히 길어서 가만히 놔두면 순식간에 해안가를 주파해 성벽을 타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런 놈들까지 밀려서 도망치는 건가.

"배, 뱀이다! 바다뱀이야! 엄청 커다래! 와, 무지막지하게 셀 것 같은데? 저런 건 다른 사람들한테 함부로 넘기고 그러면 안 되겠다. 그치?"

소피가 내 눈치를 보며 과장된 말투로 애원한다.

적들을 눈앞에 두고 3일이나 불완전 연소를 시킨 건 너무했나.

어제 야간에 진지를 방어하던 예비대와 교대할 때 과장이란 과장은 다 끌어모은 허풍을 듣고 정말로 분해서 뾰루퉁한 표정을 짓더니, 슬슬 한계가 다가온 것 같다.

"바다뱀은 건드리지 말래!"

"누가! 왜?!"

"아마 예정된 사람이…. 아, 시작된다."

거대한 바다뱀이 용트림을 하듯, 해상에서 난동을 부리다 몸을 쭉 뻗어 모래사장에 상륙함과 동시에 성벽 쪽에서 같은 갑옷을 입은 전사 5명이 뛰쳐나간다.

이 왕국에도 실적 밀어주기라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었나보군.

하지만 낙하산에게 실적을 몰아주는 행위라고 단정 짓기엔 무리가 있는 게, 기사들의 전투에 군더더기가 전혀 없었다.

모두에게 잘 보이도록 부대 자루를 거꾸로 엎어 자신의 몸에 붉은 가루를 들이부은 전사가 선행해서 시선을 끌었고, 다른 인원은 적절히 소산.

그 후 붉은 전사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고개를 돌려 물어 뜯고, 몸통으로 조이고, 꼬리로 쳐내려는 바다뱀의 움직임을 적절한 동선으로 회피하거나 좋은 타이밍에 몸통으로 올라타 무력화 시킨다.

막을 수 없는 공격은 어떠한 방어 마법이 상쇄했다.

마도구, 아니면 성벽에 있는 마법사의 지원.

다른 인원들은 바다뱀의 공격이 무산됨과 동시에 진입해서 일격을 먹이고, 다시 시선 밖으로 이탈하기를 반복.

기세 좋게 성벽을 향해 돌격했던 바다뱀은 모래 사장 위에서 금세 피투성이가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과다 출혈로 인한 체력 소진으로 고개가 잠시 땅바닥에 처박히자 기회를 놓치지 않은 기사 한 명이 목을 쳐내면서 사냥이 마무리되었다.

기사들이 힘을 합쳐 베어낸 대가리를 높이 들자 성벽에서 일제히 함성이 일어난다.

마치 전통 무용을 피로하는 연극같은 느낌도 들었다.

'좋은 구경 했군.'

전투를 주의깊게 살펴본 결과, 이 시대 사람들의 전투법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대의 전사는 자신의 피지컬과 순간적인 판단에 모든것을 맡기고 상황에 맞춰 전투를 풀어나갔다면, 지금 시대의 전사는 대상에 대한 '공략법'을 숙지하고 변수를 줄이는 방식을 택했다.

상대하기 너무나도 귀찮은 방식이다.

공략의 완성도가 상당히 뛰어나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전사들의 실력 역시 흠잡을 데가 없다.

사냥이 연극처럼 보인 것은 전사들이 바다뱀보다 몇 수는 앞서있었기 때문에 힘과 덩치에 비해 바다뱀이 싱겁게 잡혀버렸기 때문이었다.

처음 보는 상대에겐 고대의 전사가 더 나았겠지만, 상대를 파악하고 전문 대응 팀을 훈련시킨다면 지금 시대의 전사가 이기지 못 할 적은 없어보였다.

"치사하게 지들끼리만……."

소피는 억울하다는 듯이 꽉 쥔 주먹을 깨물고 있다.

자신에겐 기회조차 오지 않은 상태에서 아군이 멋드러지게 활약하니 부럽기만 한 것이다.

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경우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거겠지.

저들의 상대법을 떠올리려면 나 혼자 골머리를 썩혀야 할 것 같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