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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생체병기가 되었다-43화 (43/65)

〈 43화 〉 1.41

* * *

몬스터의 상륙이 시작되고 일주일 쯤 지났지만 병사들의 체력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배식과 함께 불출된 성수니, 피로 회복 물약이니 하는 게 도움이 된 듯했다.

소형 몬스터는 이젠 거의 보이지 않았고, 바다뱀보다 거대한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 정도로 거대한 몬스터가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활동을 하려면 상당히 넓은 공간이 필요할 것이고, 필연적으로 깊은 심해에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그리고 높은 수압에 견딜 수 있도록 적응한 생물은 수심이 낮은 연안까지 스스로 올라오는 것 자체가 쉽지 않겠지.

무스파날라 거북이 어디까지 잠수해서 어떤 놈들을 먹이로 삼는지까진 알 수 없지만, 진짜 커다란 놈들은 햇볕마저 닿지 않는 깊은 곳에서 거북이 지나갈 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거나, 억지로 밀려 나 연안까지 오기 전에 수압차에 견디지 못하고 리타이어 했을 가능성이 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게만 보이던 섬은 점점 커져서 이젠 섬을 구성하고 있는 바위의 모양까지 식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저녁놀이 만들어 내는 강렬한 빛에 소피는 눈살을 찌푸린다.

하지만 투영 마법의 명도를 조절하진 않는다.

지휘관의 말에 따르면 오늘 밤에 고대 병기를 가동시켜 거북을 죽인다고 했다.

본부에선 거북이 산란을 마쳤다는 확신을 가진 것 같았다.

더 이상 성벽으로 달려드는 몬스터도 없으니, 토벌의 마지막 날엔 붉게 물든 하늘과 회색 마다, 그림자 진 섬이 만들어 내는 광경을 기억에 남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천천히 지는 해, 가라앉는 감정, 파도 소리와 바다의 짠 냄새.

빌딩숲 속에서 살아갔던 전생엔 저녁놀이라는 것을 볼 공간 자체가 많지 않았고 굳이 보려는 생각도 들지 않았지만, 기회가 되어 찾아간 바다에서 하염없이 바라봤던 일몰엔 매번 내 혼을 쏙 빼놓는 마력이 있었다.

이 세계는 마음만 먹으면 지평선을 찾을 수 있어 비슷한 광경을 볼 수 있을지라도, 바다의 일몰은 특별하다.

그것을 소피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녀의 기억을 정리한 앨범 한 켠에 지금 이 순간을 남길 수 있길 바랬다.

태양이 완전히 사라지고 수평선 위에 조금이나마 남았던 붉은 띠까지 사라지기 무섭게 성벽에서 강렬한 탐조등이 켜져 해안가를 비춘다.

실제 서치라이트를 본 적도 없고, 가시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축구장이나 야구장에 있던 조명보단 강한 것 같았다.

아직까지 거리가 꽤나 떨어져있는 거북의 섬까지 조명 거리가 닿는다.

경계 작전 중엔 무스파날라 거북 토벌의 발전 과정과 영광스러운 왕국의 전력 따위를 자랑스럽게 설명하던 지휘관은 이 탐조등에 대한 이야기만은 제대로 하지 않았다.

눈치로 봐선 왕국에서 만든 건 아니고, 또 어디 제국이나 다른 나라의 지원을 받아 설치한 것 같았는데 내 생각엔 관련 지식을 가진 마법사가 적당히 뜯어보면 역설계를 통해 유사품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간단한 마도구이기 때문인 것 같다.

아마 왕국도 비슷한 걸 만들어서 꽁쳐둔 채로 개량을 진행하고 있을 것이다.

눈앞에 뻔히 보이는데 모두가 쉬쉬하는 기업 비밀이나 국가 기밀같은 건 대체로 그런 면이 있다.

그러고 보니 리소테가 보수 기간 동안 보수에 동원되지 않고 통신 마도구 사용법이니, 통신 마법이니 하는 걸 교육받은 것도 성벽 너머에 설치된 탐조등을 관찰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

"소피. 눈 가릴 준비를 하래."

"눈? 갑자기 왜?"

"고대 병기를 가동시킬 건가 봐. 1, 15초 뒤! 13! 12!"

성벽 위엔 거의 모든 전투병력이 올라와 그놈의 고대 병기가 뭔지 구경하려고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자리가 모자랐기 때문에 양해를 구하고 내 어깨와 팔, 머리 위까지 올라와 있다.

발을 헛디뎌 떨어지면 즉사할 높이지만, 한 목소리로 사정사정 하는 바람에 결국 지휘관마저도 통제를 포기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세계인에게 50년에 한 번 있는 거대한 이벤트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 할 가치가 있는 모양이다.

눈을 가려야 한다는데도 기어코 달려드는데 어찌하겠는가.

혹시 몰라 흙탄두 보충용으로 남겨둔 흙을 끌어모아 간이 난간이라도 만든다.

"3! 2! 1!"

리소테의 카운트다운에 맞춰 각 진지에 설치된 종이 울린다.

그리고 약속된 시간.

"……아무 일도 없는, 어? 저기 봐!"

거북을 비추고 있던 빛이 서서히 강해진다.

폭발적인 마력의 흐름.

발원지는 어디지?

성문을 넘어 한참 오른쪽으로 간 절벽.

구불구불한 해안선에서 만에 해당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곶에 있는 우리에겐 보이지 않는다.

어떤 병기인진 모르겠지만, 마력의 소용돌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고 격렬해진다.

"점점 밝아지고 있어!"

"이, 이게 무슨……. 소피! 눈 감아!"

나와 비슷하게 마력의 흐름을 관찰했는지, 리소테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아 소리친다.

서치 라이트보다 강해진 빛은 한밤중에도 거북의 섬을 새하얗게 물들인다.

다급히 투영 마법을 해제한다.

광도가 끝을 모르고 높아지고 있었다.

종족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람의 시신경을 태워버릴 수 있을 정도의 밝기다.

주변의 병사들 사이에서 비명이 들린다.

미련하게 눈을 계속 뜨고 있던 거겠지.

빛은 더욱 강해진다.

방사되는 마력이 거북의 섬을 파고든다.

해수면 아래에 있어서 보이지 않지만, 거대한 마력의 덩어리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을 알 수 있다.

폭력적인 마력의 소용돌이가 사선에 있는 대상의 마력 흐름까지 뒤흔들어 역류를 일으키는 방식의 병기인가.

원리도 다르고 결과도 다른데도 어쩐지 이세계 전자레인지라는 인상이 떠오른다.

지금 거대 거북은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려진 것처럼 내부의 마나가 엉망진창으로 충돌하며 끓어오르고 있다.

'대단하군.'

대형 몬스터가 돼본 적은 없어도 거대한 동체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생태는 대충 알고 있다.

거대한 생물체나 그에 준하는 존재가 스스로의 하중을 버티기 위해서 사용하는 지지력은 뼈와 근육보단 각자 터득하고 있는 신비한 마나의 작용에서 나온다.

개체마다 마나의 힘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다를 수 있어도, 마나를 아예 사용하지 않을 순 없다.

내가 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와 같다.

때문에 몹집과 체급이 커지면 커질수록, 내부의 마나 흐름이 뒤틀린다는 것은 신체 일부의 결손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치명상으로 다가온다.

몸이 내부에서 무너져내리는 것이다.

물론 거대한 몸을 지탱하는 본능적인 마나 작용은 그만큼 견고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힘으로는 그 흐름을 바꿀 수 없다.

내가 만들어진 시대의 인간들도 이런 식으로 적을 공격하진 않았다.

자의적으로 마법을 사용하고 마나를 다룰 수 있는 몬스터라면 지금 이뤄진 형태의 공격에도 어느정도 대응 할 수 있겠지만, 분명히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며 집중을 해야 겨우 막아내는 정도일 것이다.

물론 무스파날라 거북은 순수한 육체파이기 때문에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다.

병기가 쏟아내는 빛과 마력의 흐름이 꽤나 잦아들었기에 투영 마법을 다시 발동하고 소피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서서히 가라앉는 거북의 섬을 탐조등이 고요히 비추고 있다.

소피와 리소테는 큰 충격을 받은 듯 연신 감탄했지만, 글쎄.

물론 고대 병기는 시각적으로 훌륭했고 성능도 파괴적이었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방향성이 조금 달랐다.

'저런 건 빔 병기가 아니야.'

적에게 피해를 입히는 원리와 빛을 발생시킨다는 점에선 더없이 훌륭하고 효율적지만, 아무런 발사음이 없었고 반동도 없었으며 광선이 너무 밝아 육안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대상에게 즉각적으로 물리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 역시 컸다.

하다못해 폭발이라도 일어났다면…….

저 병기의 제작자가 생각하는 우주에선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게 분명했다.

"왜 그래, 베르제스. 저 거북이랑 싸우고 싶었어? 아무리 그래도 저런 놈한텐 못 덤벼."

내 감정의 움직임을 파악한 소피가 내 본체를 죽죽 잡아당기며 타이른다.

하지만, 아니다.

나라면 더 잘 할 수 있다.

내게 충분한 시간과 예산만 주어진다면 저런 것보다 훨씬 멋지고 파괴적인 빔 병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아하하! 얘 삐졌나 봐! 베르제스는 거북이 하나 못 잡는 대요~."

"리소테. 너무 그러지 마."

빌어먹을.

수 천만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해낸다.

두고봐라.

거의 완전히 가라앉아 섬의 꼭대기만 보이는 바다 거북을 보면서 다짐한다.

온몸이 무너져가는데도 미약한 마나의 파동을 통해 아직도 명줄이 붙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쌍한 것.

언젠가는 저 거북이의 자손들은 고통스럽지 않게 보내줄 날이 올 수 있길 바라며, 내 동체에 올라와있던 병사들을 내려놓고 고대 병기의 빛에 눈을 당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부상자들을 회수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아쉬운 병기다.

***

거북 토벌은 완전히 끝난 건지, 병력은 완전히 성벽에서 물러나 거대한 회식을 진행했다.

시각을 잃은 병사들도 의무 막사에서 한참 동안 잔소리를 들은 후 물약을 눈에 뿌리자 금세 눈을 떠서 회식에 참여했다.

잃었던 시신경까지 복구시키는 물약인가.

내 동체에 타오르거나 강렬한 빛에도 눈을 가리지 않는 병사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 정도의 효과를 가지고 있는 물약은 평소엔 구경도 하기 힘들기 때문에, 다쳐서 물약으로 회복하는 것까지 '50년 주기 이벤트'의 일환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막사 구석구석에 이런저런 찰과상이나 타박상을 치료하는 사제들의 모습도 보인다.

지금까지 소피나 일행이 신전을 방문한 적이 없어 반쯤 잊고 있었지만, 이곳은 신성력이 존재하는 이세계다.

신, 혹은 유사한 존재가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었다.

병사들은 띄엄띄엄 떨어진 곳에 준비된 거대한 캠프 파이어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그동안 먹던 빵과 스프, 뭔지 모를 고기가 아닌 제대로 된 특식을 먹었다.

그래 봤자 통으로 구운 들짐승이나 날짐승, 혹은 생선이 주를 이룬 투박한 메뉴에 술이 추가됐을 뿐이지만 오랫동안 고생한 병사들은 대단히 만족해서 웃고 떠들었다.

나는 회식을 진행하는 의미와 분위기를 대충 알고 있었기에 딱히 흥미를 가지진 않았다.

­어쩐지 안 좋은 느낌이 들어. 토벌 도중에 뭔가가 일어날 것만 같아.

말을 꺼낸 장본인은 각종 동물의 뼈를 쌓아가며, 사람이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의 산을 만들 것이라 선언한 상태다.

긴장이 완전히 풀린 눈치다.

결국 뒤통수를 질질 잡아 끄는 듯한 이 찝찝함은 나 혼자 밝혀내야 할 것 같다.

생각을 해 보자.

대체 뭘 놓쳤지?

뭐길래 이런 찝찝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무스파날라 거북 토벌 자체는 고대 병기를 가동시키기만 하면 큰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거북에게 밀려 도망쳐오는 해양 몬스터들.

아마도 고대 병기를 가동시키기 위해 준비 시간이 필요한 거겠지.

저런 병기를 언제 어디서나 뻥뻥 쏴댈 수 있다면 사람들은 진작에 대부분의 몬스터를 구축해냈을 것이다.

성벽을 쌓고 병력을 소집한 것은 병기 가동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좋다. 여기까진 쉽다.

그런데, 왜?

어째서 이렇게까지 거북 토벌에 집착하는 거지?

솔직히 체감한 바로는, 거대 거북이고 해양 몬스터고 하나 같이 육지에 사는 사람들에게 큰 위협이 되진 않았다.

거북은 산란을 위해 해안가로 다가왔을 뿐이고 거북과 비슷하거나 조금 아래 체급의 몬스터들은 아예 얼굴도 비추지 않았다.

육지로 올라올 가능성이 있는 몬스터들도 있었지만, 그것들이 과연 산을 타고 강을 넘어 사람이 사는 곳까지 피해를 끼치려고 할까?

내 생각엔 아니다.

수륙 양용이 된다고 해도 그것들은 결국 해양 생물이다.

육지와 민물에선 오래 살아가기 힘들다.

거북이 산란을 마치고 먼바다로 돌아간다면 그에 맞춰 자신들의 영역으로 다시 헤엄쳐 갔겠지.

심지어 이 주변엔 사람 사는 곳이 없다고 들었다.

유일하게 있는 도시는 해양 방비를 위한 군사 목적으로 건설된 일종의 전진 기지일 뿐이다.

'단서가 적군.'

생각을 돌린다.

고대 병기.

말이 고대 병기지,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듣지 못했다.

그걸 어떻게 발견해서 복원하고 사용법을 알아냈는지도.

상당히 구체적인 자료가 남아 있던 것일까?

아니면 이 무스파날라 거북 토벌 자체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의 행사인걸까.

그러고 보니 바다를 비추던 탐조등과 고대 병기가 만들어내는 마력의 파동이 아주 약간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탐조등엔 고대 병기처럼 마나의 소용돌이로 상대를 파괴시키는 힘은 없다.

그런 게 있었다면 병사들이 성벽을 수비할 필요조차 없었겠지.

하지만 탐조등의 강력한 빛은 고대 병기의 빛에서 영감을 얻었을 가능성이 컸다.

왕국의 수뇌부, 혹은 각국의 수뇌부는 고대 병기를 능숙하게 조작하고 그 원리를 흉내 내 변형 기기를 만들어낼 정도로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거북 토벌의 전통과 고대 병기에 대한 자료가 모두 남아있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둘 중에 하나만 남아있었다면 탐조등을 만들어내지 못 했거나 고대 병기를 떼내어 국경, 혹은 강력한 몬스터의 영역에 설치했을 것이다.

알만 낳고 돌아가는 거대 거북을 구태여 죽일 이유가 없으니까.

'상당히 오랫동안 이어진 토벌'

그 정도면 인류 사업이라고 봐도 좋았다.

100년, 200년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바닷가의 섬을 싸그리 밀어버린 게 몇 년 전이라고 했지?

50년에 한 번 있는 해양 생물과의 전투에서 완벽한 공략법을 알아내려면 얼마나 많은 토벌을 행했단 말인가.

그리고, 그 동안 죽은 바다 거북의 사체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고대 병기에 직격당한 바다 거북은 온몸이 무너져내려 바다에 가라앉았다.

뼈와 살은 다른 해양 생물이 처리해서 사라진다고 해도, 그만한 바위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파도에 언젠가는 풍화될지 몰라도 50년은 너무 짧다.

바다 아래에 쌓이고 쌓인다.

쌓여서…….

'새로운 육지가 된다.'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이세계식 간척 사업.

거북이 등딱지 위에 올려져있는 세상에서 땅을 늘리려면 거북이 등딱지를 이어 붙이고 쌓아 올리면 된다.

세상의 구조에 대해 지식이 없기 때문에 확신할 순 없어도, 전생의 인류처럼 바다에 둑을 쌓아 바닷물을 퍼내고 흙을 채워넣기엔 무리가 있는 이 세계의 주민들이 선택한 방법일 가능성이 컸다.

사람들은 아직 바다에 진출하지도 못 했고, 산과 들을 완벽히 정복하지도 못 했다.

그것은 나를 만들어 낸 고대의 인간들도 끝끝내 실패한 사업이다.

하지만 땅은 부족하다.

더 넓은 땅을 원한다.

눈곱만큼이라도, 몬스터와 부대끼지 않을 땅이 있다면.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바다에서 땅이 알아서 찾아오는데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없다.

'하지만 뭔가 부족해.'

이게 아니다.

무스파날라 거북 토벌의 실체는 알게 됐지만, 내 머리 한구석에 단단히 자리를 잡고 떠나지 않는 찝찝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무언가, 다른 걸 놓치고 있다.

대체 뭘까.

정규군도 아닌, 고용된 모험가에게 공유된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다.

때문에 이렇게 어떠한 위화감을 느끼고 의문점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행동이다.

아는 것이 없는데, 모르는 게 어딨겠는가.

그냥 저기 저 병사들이나 소피처럼 거북이 잡으러 와서 거북이 잡았으니 속 편하게 한바탕 먹고 놀고 들썩이다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인 것이다.

내가 위화감을 느낀 타이밍부터 시간을 조금씩 뒤로 감아본다.

신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물약의 회복력이 너무나도 뛰어나다?

내가 동체에 만들어놓은 간이 난간이 도움이 됐다?

부상자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회수했다?

가라앉는 거북이에 생명 반응이 끊기지 않았다?

끊기지 않았다.

적대감!

"베르제스? 갑자기 왜, 꺄악!"

긴급 상황이었기 때문에 소피 주위의 땅을 그대로 들어내서 간이 콕피트를 만든다.

흙 동체는 오랜만이군.

하지만 팔다리까지 만들어낼 이유는 없다.

계란형 동체를 데굴데굴 굴려 진영 바깥쪽에 내려놓은 석재 동체까지 굴러간다.

와장창!

우당탕!

"뭐, 뭐야! 어떤 새끼야!"

"씨발놈이, 정신 나갔어!!"

사람이고 음식이고 상관없이 직선으로 구른다.

소피는 속이 울렁거리는지 입을 꾹 막고 필사적으로 구역질을 참아내고 있었다.

석재 동체 앞에 도착해 간이 콕피트를 분해시키고 석재 동체로 갈아타 콕피트를 개방한다.

소피는 바닥에 쓰러져서 헐떡이고 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녀를 손으로 조심히 들어올려 콕피트 안으로 던져넣고 본체로 받아낸다.

그리고 콕피트를 닫자 마자 발포 마법으로 공포탄 발사.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뒤로는 얼굴이 벌게진 병사들과 지휘관 몇 명이 급하게 쫓아오고 있다.

무장은 하지 않은 건가.

상관없다.

지금은 상황을 전달할 사람이 있으면 된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공포탄을 비상 신호에 맞춰 발사하며 성벽을 향해 뛰어간다.

제발 알아채라.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놈이 아직 살아있다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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