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1.42
* * *
쿵쿵쿵쿵쿵쿵쿵!!
"베르제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내 끊이지 않는 적대감과 돌발행동에 소피도 답답하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조금만 참아라.
금방 보여줄 수 있다.
성문을 향해 직선으로 달려가 빗장을 제낀다.
투박하게 만든 손가락과 급한 마음 탓에 생각처럼 확 제껴지지가 않는다.
긴급 상황이니 팔을 내리쳐 빗장 걸이 자체를 부숴버린다.
성문은 안에서 당겨야 열리는 타입이었다.
이미 부숴버린 거, 섬세하게 손가락을 걸어 잡아당기느니 몸을 부딪쳐 바깥으로 열다 턱에 걸리면 반작용으로 안을 향해 튕겨져 나오게 할 생각으로 동체를 들이받는다.
토벌 기간 동안 약해진 건지, 세월이 쌓이다 빗장 걸이를 부순 충격에 아주 가버린 건지, 내 출력이 생각보다 강했던 건지.
거대한 소리와 함께 경첩이 아주 박살이 나버린다.
너덜거리는 성문을 잡아 떼어 완전히 열어버리고 시야를 개방한다.
"미친 새끼야! 넌 군법 재판이……."
"저, 저거 뭐야! 저거 왜 저래!!"
"뭐야? 뭐길래 그래?"
나를 뒤따라오던 병사와 지휘관들이 웅성댄다.
내 동체에 가려질 것 같아서 천천히 걸어 모래사장으로 내려간다.
철퍽.
모래사장엔 모래는 없고 시체만 한 가득 쌓여있다.
토벌 기간 동안 시체를 치울 시간도 마땅히 없었으니 어쩔 수 없다.
질퍽대는 고깃덩이와 비죽비죽 솟아 있는 뼈를 짓이긴다.
"섬이……."
다행히 성벽에 붙어 있던 탐조등은 아직도 밝게 빛나며 바다를 비추고 있다.
"섬이 가까워졌어……."
탐조등 불빛 끄트머리에서 가라앉았을 터인 섬은 어느새 거의 육지까지 다가선 상태다.
가까이서 보니 정말 크기가 어마어마하군.
조금 크기가 작은 드래곤보다도 크겠어.
"저거, 저거 살아 있는 거야?"
소피가 묻지만 대답할 수 없다.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거대 거북에게서 느껴지는 마나 파동은 분명히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었을 때와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언데드라도 된 건가?
하지만 언데드는 그 몸에서 시중일관 찝찝한 마나를 풀풀 뿜어내고 다닌다.
적어도 내가 봤던 언데드는 모두 그랬다.
저 정도 크기의 생명체가 언데드로 변질됐는데 그런 찝찝한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섬 자체가 언데드의 사기를 뿌리고 다닌다면 평범한 인간들은 숨도 못 쉬고, 모래사장에 쌓인 시체는 그 사기에 영향을 받아 모조리 일어서야 정상인 것이다.
그놈의 고대 병기같은 걸 이전에 본 적이 있어야 지금 이게 정상인지 아닌지 판단을 할 텐데.
"비상! 비상~~~!!"
땡땡땡땡땡땡땡땡땡땡땡──.
"가서 다 불러! 얼른!!"
얼굴이 시뻘게져서 따라오던 사람들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 각자 성벽 위로 급하게 올라가 경보를 울리거나 뒤로 돌아 회식장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병사들이 제대로 무장을 갖추고 다시 성벽에 배치될 때까진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니, 저런 압도적인 크기의 몬스터 상대로 일반 병사들이 할 수 있는 건 없나.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전사나 마법사가 필요하겠지만, 사실 그들도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누구든지 사람이 도착하는 것보다 거북이 육지로 상륙하는 것이 빠르다는 건 불 보듯 뻔하다.
나와 소피가 어떻게든 지연전을 펼쳐야 한다.
투타타타타타타타타타!!
소피가 바위섬을 향해 돌탄환을 들이붓는다.
딱히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효과는 없었다.
발사된 돌탄환은 불똥을 튕기며 중간중간 높이 솟아 있는 바위를 부러트리거나 깨트리는 덴 성공했어도 바위섬의 근간이 되는 거북 껍질까지 관통하는 건 어림도 없었다.
자연 생태계에서도 거북의 껍질을 깨트릴 수 있는 건 압도적인 힘을 지닌 상위 포식자 뿐이다.
하지만 아직 내게는 그런 힘이 부족하고, 사람들마저 방법을 떠올리지 못해 거북을 전자레인지에 돌려버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겠지.
결국 노린다면 머리를 내밀었을 때가 기회다.
육지에 상륙하기 전엔 반드시 머리를 수면 위로 내밀 것이다.
꽈앙───────────────!!!!!!!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던 거대 거북이 해저지형에 부딪쳤는지, 물 바깥에서도 엄청난 소리가 들리며 꽤 오랫동안 땅이 흔들린다.
이 정도면 지진이다.
중심을 잡기 위해 자세를 낮췄지만 물컹한 시체 탓에 쉽지가 않다.
양팔로 땅을 짚고 어떻게든 버티던 와중, 출렁이는 바다에 부자연스럽게 부풀어오르는 지역이 나타난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비좁은 해안가로 들어오려다 사고가 나니 정신을 못 차릴 만도 하지.
고개를 들어 숨을 돌리고 주변을 살피려고 하는 지금이 기회다.
쏴아아아아아아아…….
"베르제스, 지금……, 우웁! 웨엑───!!"
'저건…….'
거북의 머리가 퍼올린 대량의 바닷물이 모두 쏟아지고 난 후 드디어 드러난 그 모습은, 역겹다는 말로 퉁 칠 수 있는 몰골이 아니었다.
머리의 살덩이란 살덩이에 모조리 종양이 돋아나도 저런 꼴이 되진 않을 것이다.
찢어지고, 터져나가고, 뒤집히고, 갈리고, 베어지고, 함몰되고, 부어오르고, 달라붙고…….
근육이 변형되고 손상될 수 있는 형태란 형태는 모두 취한 듯한 거북의 머리는, 덜렁덜렁거림과 동시에 땡땡하게 이어붙은 채로 맥동하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거대 거북은 저런 모습이 아니었다.
훨씬 더 당당하고 고고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엔 관심이 없다는 듯 초탈한 눈동자가 인상적인 생김새였다.
아군에 괴멸적인 피해를 입혔음에도 넋을 놓고 바라봤던 그 안구는 터진 풍선처럼 쪼그라든 채로 삐져나와 시신경에 의지한 채 콧잔등에 붙어 있다.
'저런 꼴로도 살아 있는 건가…….'
아니, 뭔가 다르다.
저건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니다.
내 본능은 저것이 정상적인 거대 거북이 아니라고 호소하고 있다.
"흡! 후우──. 욱──────."
회식 때 먹은 내용물을 그대로 주륵주륵 쏟아내고 있는 소피를 위해 토사물을 처리하며 투영 마법에 비치는 거북의 모습을 윤곽선만 남긴 채 회색으로 덧칠한다.
저건 파일럿의 정신 건강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친다.
어느새 성벽 위에서 울리던 경보도 멈춰있다.
병사들도 저 꼴을 보고 정신을 차리지 못 하는 거겠지.
이 정도로 단시간에 상대 군세를 무력화 시키는 외형은 이미 정신 공격의 영역에 도달해 있다.
뭐가 보이긴 하는 건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제스쳐를 취하며 이리저리 흔들어대는 저 머리를 보면 나조차도 썩 좋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으, 아아아아아아!!"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소피가 회색 덩어리를 조준하고 사출 마법을 사용한다.
돌탄환이 닿을 때마다,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 같던 거대 거북의 머리가 진짜로 터져나가고 떨어져나간다.
중간부터 돌탄환이 떨어져 흙탄환으로 전환했는데도 결과는 같다.
이미 고대 병기에 의해 거대 거북의 육체는 붕괴한 상태다.
어째서인지 그 상태로도 육체를 이어 붙여 활동하고 있지만, 약간의 충격만으로도 살덩이의 결합이 와해되고 만다.
우리와 가까운 안면부부터, 해수면 위로 올라온 목까지.
화면 상에선 회색 덩어리일 뿐이라 분간하기 어렵겠지만, 내 표시에 따라 소피는 꼼꼼하게 거대 거북의 머리를 지워나간다.
터무니없는 크기에 어울리는 커다란 살덩이들이 떨어져나가며 파도에 비견되는 물보라를 일으킨다.
"해치웠나?"
부정.
완벽한 사용법이었지만 지금은 말하지 않길 바랬다.
머리가 사라지는 것과 함께 바위섬은 다시금 가라앉는다.
하지만 여전히 생명 반응은 끊기지 않고 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마나의 파동…….
불안한 예감을 애써 부정하며 반응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정신을 집중한다.
"소피!"
"거북은 어떻게 됐나!"
리소테가 얼굴을 모르는 기사와 함께 도착했다.
본대가 움직이려면 아직인가.
벌려놓은 음식도 있고, 다들 술에 취해 있을 테니 출동이 늦어지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방금 전의 지진으로 모두가 상황을 인지했을 것이다.
조금만 더 버티면 병력이 제대로 배치될 수 있겠지.
지금 저기서 일어서는 거대한 시체덩어리를 막아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 저기 봐……!"
리소테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신음한다.
시체덩어리의 형태를 보고 이전처럼 회색 블러 처리를 한다.
그나마 바닥에 깔린 고깃덩이가 뭉치고 있기 때문에 갑자기 드러난 거북이 머리(였던 것)보단 정신적 충격이 덜 한 것 같지만 그걸 적나라하게 보여줄 이유는 없다.
크기는……나보다 조금 작다.
4m 정도인가.
죽었던 거북이 꾸득꾸득 기어오고, 죽었던 생선 대가리들이 뭉쳐서 거대한 형상을 이루고.
저 어디 해저 도시라도 부상하는 모양이군.
"사악한 흑마법사의 피조물인가! 와라! 나는 버드나무 기사단의 장 씨몽이다!"
콕피트를 열어 리소테를 태우는 사이에 그녀를 태우고 온 기사가 말에서 내려 돌격한다.
오라고 해놓고 직접 가는 게 우습긴 하지만, '우오오오오오오!' 하는 기합 소리가 마음에 들어 응원하게 된다.
자고로 사내라면 저런 면이 있어야지.
기사의 근육에 세차게 펌핑되는 오러.
물컹한 시체를 박찼음에도 쏜살같이 나아가는 신체.
검신을 타고 일렁이는 푸른 검기.
고지능 생물만이 다룰 수 있는 응축된 생명의 힘.
오러는 전투에 있어서 떠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대상을 베어낼 수 있다.
할 수 있어.
서걱.
"하!"
기사는 시체덩어리를 지나치며 경쾌하게 발목, 혹은 지지기반 중 하나를 잘라내곤 기세 좋은 웃음소리를 낸다.
느껴지는 기쁨.
멍청한 녀석, 뒤를 봐라!
퍼억.
"욱."
시체덩어리의, 명칭을 알 수 없는 모종의 부위에서 뻗어나온 촉수가 기사의 몸통을 친다.
나름 갑옷을 입었는데도 허리가 직각으로 꺾이고 입에서 피를 토해내는 걸 보면 보통 충격이 아니다.
시체덩어리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촉수를 몇 가닥 더 뽑아내어 기사의 몸을 하늘로 들어올린다.
"기사님!"
리소테가 안전 로프를 제대로 매기도 전에 소피가 달려나간다.
이런 상황에 어리광을 받아줄 순 없지.
진짜 애는 아니니 어떻게든 할 거다.
소피는 시체덩어리를 향해 곧게 달려나가 팔을 휘두른다.
내게 날카로운 무장이 있었다면 촉수를 베어냈을 것이고, 신체 구조가 조금 더 얄상했다면 어깨로 밀쳐냈겠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기사의 안전은 보장하지 못 해도, 오러 사용자는 기본적으로 몸이 튼튼하니 어떻게든 되겠지.
거대 거북도 그렇고, 음침한 사기가 흐르지 않는 걸 보면 일단 저것도 생물은 생물이다.
조악한 실력으로 뭉쳐놓은 몸이 터져나가는 고통을 견딜 순 없다.
"베르제스! 터트려!!!"
발포.
촤학!!
시체덩어리에 깊숙이 박아넣은 주먹에 사출 마법을 사용한다.
어설프게 뭉쳐놓은 고기와 뼈가 사방으로 튀며 내 동체를 후드득 때려댄다.
시체덩어리가 장악력을 잃은 동시에 기사가 하늘에서 떨어졌기에 왼팔로 어떻게든 받아냈다.
암석에 부딪쳐 몸을 비틀며 신음하지만 일단 목숨은 붙어있다.
붙어있긴 한데…….
"기, 기사님이!"
"할아버지가 됐어!"
저 녀석.
이런 걸 먹고 사는 건가.
상대는 역시나 쓸모없어진 시체를 버리고 새로운 시체로 몸을 구성한다.
이번엔 신체의 결합이 조금 더 단단하다.
학습하고 있군.
아니, 정신을 차리고 있는 거라고 봐야 한다.
"저게 대체 뭐야?"
"나, 나도 몰라!"
이번 만큼은 모른척하고 싶었기에 꿈틀거리는 감정을 꾹 눌러 참는다.
전쟁이 끝난 후, 반갑게 맞고 싶었던 동족과의 재회는 최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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