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1.52
* * *
몬스터는 어디에나 있다.
산에도, 하늘에도, 땅 밑에도, 강에도, 바다에도.
물론 광산 역시 다르지 않다.
다이너마이트가 없는 이 세계에선 광산을 따로 개발하지 않는다.
마법으로 비슷한 작업을 할 수는 있지만, 괜히 무작정 땅을 파고 내려가다 말도 안 되게 강한 몬스터와 맞닥뜨리게 되면 귀중한 전문 인력이 증발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 대신 사람들이 선택한 방법은 지저에 굴을 파고 사는, 비교적 만만한 대형 몬스터 둥지의 토벌이었다.
몬스터의 생태계는 한정된 공간에서 저마다 가지고 있는 습성과 무력에 따라 각자의 영역을 가지게 되고, 그 안에서 살아간다.
대부분이 호전적이고 채집 생활보단 사냥을 통해 목숨을 연명하는 놈들이 태반이니 필연적으로 싸움이 일어나며 그 결과에 따라 영역의 경계선이 새로 그려지거나 지역의 패자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 한 종류의 몬스터가 왕으로 군림한 굴은 아무래도 돌발적인 변수가 적은 축에 속하는 편이다.
"가장 좋은 건 뿔개미 둥지다. 다른 놈들은 굴 파다가 이상한 놈들을 깨워서 아주 전멸을 당하기도 하는데, 뿔개미는 어떻게 아는 건지 굴을 깊게 파면서 쓸데없는 놈들은 절대 안 건드리거든. 지금 광산 도시라고 할 만한 데는 다 뿔개미 둥지 털어서 광산으로 쓰는 데야."
"그럼 뭐가 문젠데요? 광석을 다 캤어요?"
"그건 아니고. 좋다고 캐다가 캐다가 결국 사단을 내버린 게지.."
광석을 캔다는 것은 결국 돌을 깎아내고 굴을 넓힌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뿔개미라는 전문가를 믿고 채굴을 진행할수록, 언젠가는 뿔개미의 둥지가 아니라 사람의 광산으로 변하고 만다.
"마그마 드레이크라는 놈들의 서식지랑 굴이 이어졌다지 뭐냐. 광산에서 그렇게 굴이 한 번 이어지면 아주 골치 아파져. 구멍 몇 개 막는다고 끝이 아니야. 주변에서 아주 싹 몰아내고 완전히 단절을 시켜놔야 채굴을 계속할 수가 있다."
하필이면 그 시기가 공교롭게도 무스파날라 거북 토벌 일정과 겹쳐, 오랫동안 왕국 서부의 철광석 공급을 책임져온 최대 광산이 봉쇄된 상황.
한가락 한다는 모험가와 용병, 영지군들이 소집되어 토벌을 떠난 판에 강력한 몬스터의 서식지와 연결된 광산으로 들어가려는 자들은 많지 않다.
"소피, 네가 돌아왔으니 그쪽에도 병력들이 돌아갔겠지. 조금만 더 기다리면 다시 정상적으로 광산이 돌아가기 시작할 게다. 옳지. 너랑 베르제스가 다른 광산에서 철광석을 옮겨오는 건 어떠냐? 마차보다 빠르고 힘도 좋으니까 몇 번만 왔다 갔다 하면 이번 기회에 돈방석에 앉게 될 게다."
***
"마그마 드레이크, 마그마 드레이크……. 아, 이거네. 마그마 드레이크는 아룡종에 속하는 몬스터이다. 산지 주변의 지저 깊은 곳에서 서식하며 아룡종 중에선 지능이 낮은 편이다. 몸 길이는……."
체장은 2m에서 5m.
체고는 그 1/3 정도인가.
유체와 성체의 차이가 크군.
화산이 폭발할 때 분출된 마그마에 휩쓸려 지표면까지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고?
상당히 터프한 녀석이다.
몸을 감싸고 있는 가죽이 그렇게 내열성이 뛰어난 건가.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의 인간들도 몬스터의 가죽이나 뼈 따위를 소재로 무구를 만드는 일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불을 다루는 마법사나 작업자들이 꼭 손발에 착용하는 가죽 장비가 있었는데, 이 놈의 머나먼 조상으로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아~. 한동안 쉬려고 했는데 이게 뭐야."
항목을 다 읽은 소피가 기지개를 켠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미래를 대비하라는 성녀와 지금은 철광석 수급이 안 돼 장비든 뭐든 제대로 만들 수 없다는 난쟁이.
그 둘 중 누구도 소피에게 지금 당장 문제를 해결하라고 한 적이 없지만, 소피는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는 듯했다.
몬스터 때문에 사람이 고생한다는 말만 들어도 발 뻗고 자지 못하고, 직접 가서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진짜 용사의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용사.
용사인가.
소피가 건네주는 동전을 먹고 동체를 뱉어내는 연습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베르제스. 용사라는 게 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훌륭한 사람인 거잖아. 그러면 공부하려던 걸 내팽개치고 싸우러 가는 사람이 훌륭한 거야, 자기가 말한 걸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훌륭한 거야?"
소피는 머리를 긁다가 내게 묻지만, 아직 이 세계에선 사회화가 덜 됐고 애초에 사람이 아닌 내게 물어봐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 한해선 다른 방향이라도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선, 나는 내 동체를 강철로 교체할 생각을 버렸다.
장갑이 찢어지거나 우그러진 정도라면 나 혼자 충분히 복구할 수 있기 때문에 석재 동체보다야 오래 사용할 수 있고 전투력도 상승하겠지만, 지금은 내 체급을 늘리고 탑승자 보호 장치를 확보하는 게 우선이다.
무스파날라 거북 토벌 후 뒷정리 작업으로 많은 양의 흙을 옮겼을 때, 나는 내 동체의 크기를 지금 보다 2배 이상으로 키울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충 주워다 만든 동체나 인간들이 완성해준 동체에 그치지 않고 내 스스로 동체와 탄환, 각종 파츠를 갈고 깎으며 '내게 익숙한 형태'가 생겼기 때문이다.
동체 구조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동체의 형태를 유지하고 움직이는 데 들이는 마나를 줄이고 줄여 최적화를 이뤄낸 결과다.
고대에도 이런 식의 궁리를 했다면 더욱 효율적으로 전투를 수행할 수 있었겠지만……, 솔직히 콕피트에 탈 만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만사가 귀찮아졌다.
동체의 크기를 혁신적으로 키울 수 있게 된 두 번째 이유는 소피의 의지에 따라 파일럿의 마나를 보다 적극적으로 끌어다 쓰게 된 것이다.
솔직히 기여도를 따지자면 이쪽의 비중이 훨씬 크다.
지금까지 동체를 운용할 때의 기본 원칙은 통상 기동 시엔 내 자체의 동력만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격렬한 전투 기동과 사출 마법에는 소피의 마나를 사용하니, 소피의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한계에 달하거나 마나가 고갈되어 기동 한계가 온다면 평범한 개량 슬라임의 움직임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내 나름 생각해낸 합리적인 운용 방침.
하지만, 그것은 이론상의 이야기고 실상은 달랐다.
소피는 군인이 아니라 모험가고, 몬스터에게 포위된 채 수 일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전투를 수행한다는 상황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다.
기동 시간은 하루 15시간 정도면 충분한 것이다.
그 사이에 사출 마법 없이 전투를 수행한다면 6시간.
10분의 버스트 모드를 포함한 격렬한 전투는 3시간.
소피가 완전히 지쳐서 나가 떨어질 때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전보다 전투 시간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 셈이지만 지금까지 수행한 전투 이력을 따져 봤을 때 이렇게 운용하는 게 맞다.
석재 동체를 사용한다면 기동 한계에 달해 더 이상 동체를 움직일 수 없더라도 동체 자체를 방어 쉘터 삼아 휴식을 취할 수 있으리라.
재수가 없으면 주변을 지나다니는 짐승이나 몬스터들이 배변 따위로 영역 표시를 하려고 들 가능성이 있지만…….
그 쪽은 몬스터를 쫓는 약초나 마법 같은 것으로 대책을 세워야겠지.
탑승자 보호 장치는 내가 꾸준히 생각을 떠올린 결과 소피에게 내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고, 리소테와 상담해 얼추 견적을 잡을 수 있었다.
리소테는 견습 마법사 시절 여러 가지 마도구를 제작한 경험이 있었고, 그것들이 마도구점에 진열됐을 때 얼마에 팔리는지 알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산이 부족했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각자 분배한 소집 보상금으로는 내가 생각한 기능들을 모두 탑재하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방수, 방한, 방열, 충격 완화, 공기 정화, 사기(??) 정화, 정신 마법 및 저주 내성 등등.
지금은 안전을 무시한다면 콕피트에 사람이 여럿 탑승할 수 있을 정도로 넓기에, 동체 거대화에 맞춰 콕피트의 구조를 생체 병기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삽입식 플러그 형태로 좁힌다면 단가가 내려가겠지만 그래도 모자랐다.
토벌의 특별 수당이 정산되어 추가 자금이 생긴다고 해도 몇 가지 기능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철제 동체는 사치다.
때문에, 소피가 지금 당장 광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일 필요는 없다.
철광석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이야기를 들은 바로는 광산을 가지고 있는 영지 내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피가 아무리 용사로 지정됐다지만 결국은 한낱 모험가일 뿐이다.
갑자기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원레 세상살이라는 게 쉴 새 없이 삐걱이긴 해도 어떻게 돌아가긴 하는 것이다.
"갈 필요 없다고? 그런 거야?"
긍정.
마그마 드레이크의 가죽이 있다면 방열 면에선 한시름 놓을 수 있겠지만, 굳이 소피가 지금 갈 필요는 없다.
"그, 런 거야?"
긍정.
강철 동체는 포기했지만, 파일 벙커를 잃었으니 한 자루를 새로 만들어야 했고 절삭력의 필요성을 느낀 참에 거대한 원형 톱을 운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시험해보고 싶긴 해도 언젠가는 철광석 광산이 정상화 될 테니 꼭 지금 움직여야 할 필요는 없다.
"갈 필요 없는 거 맞지?"
긍정.
함께 지낸 일 년 가량의 기간은 짧은 기간이지만 24시간 붙어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던 소피의 성향은, 아무리 봐도 책상물림 타입은 아니고 직접 발로 뛰고 머리를 들이밀어 보는 게 도움이 되는 현장 타입이지만, 그래도 이번 기회에 진득하게 공부를 해봐야 차후에 괜히 스스로 머리를 굴리다 일을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두뇌 노동을 대신 해줄 사람을 옆에 붙이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지 모르니 지금은 움직이지 않는 게 좋다.
"……무슨 생각 하는지 몰랐을 때는 귀여웠는데."
소피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험가 길드로 갈 채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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