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1.56
* * *
본격적인 토벌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영지군의 일부는 이미 광산에 투입되어 민간인의 출입을 금하고 내부 순찰을 돌며 마그마 드레이크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우리는 보급을 겸한 교대조와 함께 광산까지 이동했다.
우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윽. 느낌이 이상해……."
"모모모몸이이이 이이이사사사상해애애!"
동체의 무한 궤도를 움직이는 힘은 당연히 엔진이 아니라 내 본체의 제어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지금 울리는 소리는 정밀하지 못한 감속기가 회전하고 맞물리며 내는 소음이다.
바퀴와 축이 제법 말끔하고 공차가 적은 것 같았기에 무리를 해서 맡겨보았는데, 아직까지 톱니바퀴를 고속으로 회전시켰을 때 진동이 크게 발생되지 않을 만큼 가공 기술이 발달하진 않은 것 같았다.
톱니바퀴 이빨의 길이라든가, 필렛을 딸 때 기울기라든가 하는 수치가 꽤나 중요하다는 걸 전생에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했으니 어쩌면 디자인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 지식이 없는 내가 대충 발상을 떠올려 만든 동체는 기껏해야 이 정도고, 의도대로 돌아간다는 것 자체에 감사해야 한다.
어차피 장기간에 걸쳐 사용할 동체는 아니다.
이곳의 난쟁이들이 궤도 동체에 전체적으로 흥미를 느꼈으니, 세월이 지나면 괜찮은 물건이 나올 거라고 기대해 보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궤도를 이용한 주행은 꽤나 호평이었다.
리소테가 진동에 몸을 맡기고 '아아아아아아아.'하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즐기는 모습이다.
마차가 긴급한 상황에 빠르게 이동하며 흔들리고 출렁일 때의 불쾌한 승차감보다야 훨씬 나을 것이다.
보급 물품을 실은 수레에 탄 병사들 역시 수레를 꽉 붙잡고 있긴 해도 다들 표정이 밝다.
일개 병사가 말을 타고 전력으로 달릴 일은 거의 없으니, 이들은 인생에서 다시 느끼지 못할 속도감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
소피는 내 궤도와 감각을 연동시키더니 다리를 이상하게 꼬고 발가락을 움찔거리며 가만히 있질 못하고 있는데, 저러다 종아리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아서 멈추게 했다.
거대 회전톱────컴뱃 체인소를 운용하게 됐을 때 소피가 톱의 공격 범위와 위력에 대한 감각을 잡아야 할 것 같아, 회전체에 익숙해지도록 감각 공유를 권해봤는데 역시 아직 허들이 높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일단 때려박으면 되는 파일 벙커와 다르게 거리를 재면서 상대를 베어내고, 튕겨내고, 얽어내는 등의 폭넓은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톱은 적어도 팔다리 수준으로 동체의 피드백을 받아들였으면 한다.
궤도는 수많은 회전체가 한꺼번에 돌아가지만 톱은 회전하는 게 하나 뿐이니, 아주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지금은 잠깐잠깐 감각을 연동시키며 회전하는 물체에 대한 감각을 맛만 보는 수준으로 충분하다.
'배틀 서클소……. 컴뱃 체인소…….'
처음엔 회전 무장을 원형톱의 형태로 생각했지만, 궤도를 만들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통짜 원형톱을 사용할 경우 날이 상한다면 석재 동체를 사용했을 때처럼 조금씩 갈아내면서 다시 날을 세워야 했다.
무장 전체가 소모품이 돼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전기톱은 교체용 체인을 적재해둔다면 원형톱보다 오래 사용할 수 있고, 무엇보다 이름이 멋있었다.
서클소라는 이름은 가슴 속에 꽂히는 무언가가 없다.
체인을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 수 있느냐가 쟁점이겠지만, 지금 동체를 우리 영지까지 끌고가서 난쟁이에게 보여준다면 경쟁심에 불이 붙어 심혈을 기울인 체인을 만들어줄 것이다.
난쟁이라는 건, 그리고 남자라는 건 그런 족속들이었다.
***
자작이 신경 써서 깔아놓은, 넓은 대로의 수명을 아낌없이 깎아먹으며 광산 안으로 진입했다.
진동과 소음을 감수하고 감속기를 넣은 만큼, 경사로에서도 출력이 모자라 끙끙대는 일은 없었다.
의뢰 첫날은 광산 입구에서 파수를 보던 병사들이 처음 보는 해괴한 물체가 저 멀리서부터 굉음을 내며 보급 수레를 끌고 오는 것을 보고 넋이 나가고, 주둔하고 있던 지휘관이 갱도를 안내해주겠다며 내 동체에 어떻게든 기어올라 광산을 얼추 한 바퀴 돈 뒤에, 복귀할 때엔 자신이 현장을 감찰하고 결과를 영주에게 직접 보고를 해야하기 때문에 반드시 다시 찾아오라는 당부를 듣는 등의 과정으로 하루가 꼬박 지나갔다.
갱도엔 영롱한 빛을 내는 마도구가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있어 소피의 시선을 끌었지만, 미관 목적이 아닌 조명은 단조로웠기 때문에 갱도 관광이 중간을 넘어설 때쯤부턴 흥미를 잃었다.
하지만 소피의 호의를 사려던 지휘관이 교체용으로 보관하고 있었던 마도구를 하나 손에 쥐어줬기에, 리소테가 손을 봐 ON/OFF 기능을 추가한 뒤 콕피트 천장에 설치했다.
널찍한 공간에 줄지어 설치된 상태에서 내는 빛과 원형 콕피트 내부에 단 하나 달린 마도구가 내는 빛은 또 다른 맛이 있어서, 소피는 잘 시간이 조금 지나서도 리소테에게 부탁해 마도구의 빛을 눈에 담았다.
별을 따다 달은 것 같다는 듯.
리소테는 몇 번 봐온 마도구였기에 처음엔 무신경했지만, 소피가 신선한 반응을 보이는 데 감화되어 그녀 역시 어떠한 감상에 빠졌고, 예의 수행 일지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투영 마법을 해제하면 콕피트엔 그대로 어둠이 내려앉았고,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캄캄한 밤엔 내가 별도의 필터를 씌우지 않는 한 투영 마법도 소용이 없었다.
지금까지 야간 기동을 한 적이 거의 없었고(동족과 싸울 땐 탐조등이 있었다) 네온과 전등 불빛이 없는 이 세계의 밤은 밝은 편이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지만, 어느샌가 주거의 기능도 수행하고 있는 내 콕피트에 이제야 조명이 설치되었다는 건 반성해야 할 점이다.
아직도 멀었구나.
여러모로 생각에 빠지게 하는 불빛이었다.
***
콕피트 내부의 수면에 익숙해진 일행은 광산 내에서도 체내 시계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뿔개미라는 몬스터의 둥지로 사용되었던 갱도는 굽이진 길이 끝을 모르고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제 지휘관이 안내해줄 때에도 이동에 시간을 상당히 많이 잡아먹었는데, 그게 뿔개미 굴 전체가 아니라 현재 광산으로 이용되는 부분만 둘러본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폐쇄된 길도 있는가 하면, 아직 손도 안댄 구역도 있다.
영주 입장에선 한참을 캐낼 수 있는 광산에 문제가 발생했으니 속이 어지간히 쓰렸겠군.
하지만 광산의 작업자들이 철광석을 실은 수레를 이끌고 끝에서 끝까지 이동하려면, 하루 종일 걸어도 닿지 못할 수준이었기 때문에 외부인의 시선으로는 조금 꺼림칙한 부분이 있었다.
지휘관에게 받은 지도를 보면 실제로 군데군데 휴식처가 표시돼있다.
블랙 기업이라는 단어가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규모가 큰 산업이라는 건 모습은 다를지라도 다들 한두 군데 씩 이런 면이 있었다.
애초에 목숨 내놓고 돌아다니는 모험가가 이러니 저러니 할 문제는 아니기도 했다.
마그마 드레이크의 서식지와 연결된 구멍에 도착해 도료 다섯 통을 들이부었다.
한 통만 까려고 했는데, 직접 와보니 구멍 수준이 아니라 아예 벽이 무너진 형태였고 우리의 목적은 결국 이 구간에 몬스터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으니 아낄 필요는 없어보였다.
눈앞의 구멍엔 당연하게도 조명이 없었다.
진입하기 전에 투영 마법을 조정한다.
통로를 따라 흐르고 부딪치는 마나를 통해 형태를 파악하고 색을 입힌다.
동족의 끔찍한 동체를 덧칠했을 때와 비슷한 작업이다.
멀리 있는 곳까진 내 감각이 닿지 않아 그려낼 수 없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물체가 있다면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생물체마다 가지고 있는 독특한 마나 파동은 감지하기 쉬운 편이기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전방 300m의 적성 생물체와 같은 경우처럼.
"어, 응? 벌써 나온 거야?"
긍정.
저 멀리 백과 사전의 삽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녀석 한 마리가 어슬렁 거리며 다가오고 있다.
한참 구판을 샀다지만, 그래도 읽어두니 확실히 도움이 되는군.
마그마 드레이크는 그냥 갈색의 거대한 도마뱀이었다.
열을 받으면 붉게 빛난다는데, 밤새 땀을 쪽 흘리고 눈 뜨자마자 냉각 마법이 걸린 천을 소피 몫까지 몸에 두른 리소테와는 다르게 광산의 지열 정도는 녀석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내 본체에 약간의 온도 조절 기능이 있다고 하지만, 리소테는 사양이라는 게 없다.
한가롭게 어슬렁거리고 두리번거리다, 마도구의 광원 아래 내 동체를 발견하는 녀석.
지저에서 울리는 내 궤도 소리는 먼 곳까지 타고 울려퍼진다.
지금은 멈춰있지만,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던 소리에 흥미를 느낀 놈이 천천히 이동해 이제야 도착한 걸지도 모른다.
아주 태평한 모습을 보면 이 주변의 생태계에선 대적자가 없는 상위 포식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베르제스. 기다려. 아직 싸우면 안 돼."
"으. 진짜 하려구?"
소피의 요청에 따라 적재 공간에서 식료품 가방을 하나 꺼낸다.
빵과 과일, 채소, 육포 등 갖가지 식재료를 아무렇게나 눌러 담은 가방.
일행이 먹을 음식이 아니다.
소피는 놈에게 '먹이'를 주려고 하고 있었다.
"몬스터를 길들이려면 일단 먹이를 주고 교감하라고 했어."
"저런 걸 어떻게 길들여!"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야. 저렇게 사나워 보여도, 사람 손을 타면 애교를 부릴지 어떻게 알아."
소피는 영지에서 활동하는, 무릎 크기의 설치류같은 육식성 몬스터를 길들인 모험가에게 들은 조언을 말하며 가방을 끌렀다.
나한텐 신기한 짓을 많이 한다거나 가끔 이상한 억지를 부린다는 식의 말을 하지만, 사실 엉뚱한 걸로 따지면 일행 중에 소피를 따라갈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 몬스터 끌고다니는 양반, 그 쥐새끼 때문에 언제 한 번 사고를 크게 낼 것 같던데…….
"자, 거기까지! 자꾸 그런 말 하면 될 것도 안 돼."
끙.
야생 동물을 길들이는 것도 간단하지 않은데, 몬스터 테임이 이렇게 막무가내….
그만.
소피는 하품을 쩍 하며 서서히 다가오는 놈에게 손을 흔들며 주의를 끈다.
녀석의 속도에 맞춰 궤도를 천천히 움직이며 다가가다, 놈이 움직임을 멈추는 것을 기다려 이쪽도 정지.
소피는 가방을 적당히 뒤집어 털고 안에 든 식재료를 꺼낸다.
가장 마지막에 산 감자와 양배추같은 채소가 우수수 떨어진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놈의 커다란 눈동자가 굴러다니는 감자알을 따라간다.
"오? 감자 좋아하니? 이거 먹어볼래?"
소피는 바닥에 떨어진 채소를 긁어모아 녀석의 얼굴 앞에서 살랑살랑 흔든다.
가방을 여는 것부터 시작해서, 역시 손가락을 다섯 개 만들어놓으니 더욱 정밀하고 섬세한 동작이 가능해져 뿌듯함을 느낀다.
바닥에 떨어진 것을 집어들 때 채소가 많이 상한 게 옥의 티지만, 저건 쉽게 부러지고 찢어지는 채소 잘못이지 내 잘못은 아니다.
"꾸악."
녀석은 치우라는 듯이 입을 벌려 울음 소리만을 내고, 내민 채소엔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직 경계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아룡족에다가 흉악해 보이는 외견에 비해 울음 소리는 귀엽군.
이거 의외로 될지도 모르겠는데?
"잡식성이라서 아무거나 먹는다고 써있었는데……."
소피는 채소를 땅에 내려놓고 다시 가방을 뒤집는다.
이번에 쏟아지는 것은 육포.
보존을 위해 소금에 절여져있거나 양념이 돼있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몬스터는 고기를 먹는다는 인상이 있다.
아무렴 채소보단 낫지 않을까?
"꾸아악."
소피가 널찍한 육포를 손바닥에 올려 놈의 얼굴 앞으로 가져가지만 역시 놈은 움직이지 않는다.
아까보다 울음 소리가 조금 더 커진 걸 보면 채소보다 나쁜 선택이었나보다.
하긴, 이런 땅속에 서식지가 있으면 싱싱한 채소나 향이 강한 향신료같은 걸 접해볼 기회 자체가 없었겠지.
그렇다면 빵은 어떨까?
지열이 강한 곳, 혹은 그야말로 용암 지대까지 내려간다면 분명히 열에 익은 식물이나 고기 따위를 먹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내민 것보단 구운 빵이 녀석에게 익숙할지 모른다.
"지, 진짜 먹는다구?"
"히히. 봤지? 해보기 전엔 모른다니까."
녀석이 빵을 내민 손을 향해 천천히 움직인다.
냄새를 맡는 건지 잠깐 머리를 들이밀었다가, 잠깐 물러나고, 입을 덥썩 벌리고 손을 문다.
"오! 먹는다! 먹는다! 먹는……?"
까득. 까드득. 까득.
먹으려고 하고는 있다.
놈이 선택한 먹이가 내 손 파츠라는 게 문제지만.
소피의 마나를 조금 끌어다 써 장악력을 강화한다.
흙으로 만든 손 파츠 정도야 줘도 상관은 없지만, 이 주변엔 손쉽게 조형할 수 있는 흙이 없기 때문에 파츠를 대체할 적당한 크기의 바위를 찾아 가공하려면 시간을 꽤나 많이 소비하게 될 것이다.
이제 토벌을 시작했는데 일정에 지장이 가게 할 순 없지.
그리고 무엇보다,
"꾸아아아아악!!"
저 심술 가득한 눈초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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