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1.59
* * *
전생에선 새로 들어온 이웃이 내는 층간 소음에 고통 받던 입주민들이 자신이 느끼는 괴로움을 이웃에게 되돌려주기 위한 갖가지 방법이 있었다.
우르르르르르르릉─.
들어 본 것 중에 가장 사악한 방법은 고주파 스피커로 이웃의 아이에게 난청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그런 게 가능한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도시 괴담일 뿐이었지만 묘한 현실성을 가지고 있어 특히 기억에 남았다.
"꾸아아악! 캬아아아악!"
이곳도 비슷한 일은 일어난다.
근 삼일간 광산부터 쉬지 않고 울려내던 내 궤도의 소음.
감각이 뛰어난 몬스터들 입장에선 처음엔 그저 뭔가 싶다가도, 끊이지 않고 계속 울려대며 신경을 긁으면 점점 참기 힘들어지겠지.
심지어 그 소음이 점점 다가오며, 피 냄새까지 몰고와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트린다면 누구라도 가만 있지 못할 것이다.
"갑자기 너무 몰려드는 거 아니야!?"
"일단 돌파할 거야. 꽉 잡아!"
하지만 마그마 드레이크에게 동족 의식이 있다는 건 의외군.
눈앞에 보이는 것만 여섯 마리, 뒤에 네 마리.
그리고 멀리서 합류하는 녀석들까지 합치면 꽤나 피곤해지겠는걸.
지금까지 혼자 다니거나 새끼를 끼고 두세 마리 씩 모여 다니길래 방심했다.
아니, 어쩌면 평화롭던 서식지를 어지럽히는 난동 분자를 배제하기 위해 드물게 합심해서 움직이는 걸지도 모르겠군.
야생동물의 생태계에도 종을 뛰어넘는 암묵적인 룰을 어기는 녀석은 구성원의 대다수를 적으로 돌리게 돼 있으니.
그동안 매달고 다니던 시체를 대공동에 버리고 와서 다행이다.
"이 녀석들이 광산으로 들어가는 걸 막아야 해. 일단 구멍까지 돌아가자."
긍정.
놈들은 명백히 이쪽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구멍이 뚫려 있다 해도 옆길로 새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 수가 몰려들었으니 혹시 모르는 일이다.
소피에게서 끌어오는 마나량을 늘려 궤도의 출력을 높인다.
이 정도 수의 적들에게 포위당하는 건 고블린 토벌 이래로 처음인가.
적들의 체급이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올라갔지만, 나와 소피도 서로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예전과는 전혀 다르다.
"지금!"
전속전진!
와아아아아아아아앙!!
축의 회전수가 높아짐에 따라 맞물린 감속기가 한 층 높은 비명을 지른다.
그에 맞춰 가속하는 동체.
울퉁불퉁한 노면을 따라 한 박자 늦게 요동치는 콕피트.
지척의 마그마 드레이크.
먼저 두 마리!
"흥!"
쾅!
"꽈악!"
소피는 몸을 날려 머리를 노리는 녀석의 움직임에 맞춰 상체를 뒤로 젖히며 복부에 주먹을 박아넣고, 그대로 뒤로 넘겨버린다.
마무리를 할 필요는 없다.
다음엔 아래로 들어오는 놈.
마그마 드레이크의 돌진력은 대충 알고 있다.
이 정도 속도면 충분하다.
그대로 전진!
쿵! 우드드득!
"꺄악!"
"비켜!"
애매한 각도로 머리를 들이밀던 녀석은 내 하체 파츠에 머리를 찧고 자세를 무너트린다.
깎아놓은 전면 경사부의 모서리가 떨어져나갈 정도의 충격에 리소테가 비명을 지른다.
미안하지만 참을 수밖에 없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드레이크를 그대로 밀고 나가, 궤도로 짓밟으며 전진.
땅에 발을 단단히 박아넣고 내 동체를 받아내려는 놈을 발견.
소피가 녀석에게 맞추듯 상체를 전면으로 숙여 대기하다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놈의 몸 아래로 손을 슥, 집어넣어 단번에 뒤집는다.
예의 울음소리를 내며 날아간 놈의 몸뚱이는, 다시 내 상체로 달려들던 네 번째 녀석과 부딪치며 어딘가 부러지는 소리를 낸다.
목뼈 부근인 것 같은데, 안 됐군.
돌진이 무력화된 네 번째를 옆으로 치우니 나타나는 세 마리.
상하로 달려들던 두 마리와는 다르게 일렬로 몸을 던지며 돌격.
저것도 나름의 전술인가?
하지만 아쉽게도 원중근거리의 시간차 공격이 없는 연계는 두려울 게 없다.
"베르제스, 날려버려!"
소피는 좌완을 앞으로 내민 채 외친다.
소재 수급이 어렵기에 벌써 사용하는 게 아깝긴 하지만, 이럴 때 쓰려고 준비해온 탄환이니 어쩔 수 없군.
사격용 보조 디스플레이는 필요 없다.
내찌른 왼주먹에 그대로 사출 마법을 사용.
발포.
쾅!!
"꾸악!"
탄환으로 사용된 왼주먹의 빈자리를 보관해둔 돌탄환으로 채워넣는다.
쾅!!!
머리 부분이 아니라면 가공된 탄환이 아니라도 관통할 수 있겠군.
이번엔 광산 진입 후 긁어모은 돌로 재장전.
발포.
쾅!!!!
"꾸엑."
돌탄환에 얻어맞은 녀석은 그대로 절명했지만, 주먹 파츠와 돌에 맞은 놈들은 너덜너덜해진 피격부에서 피를 울컥울컥 쏟으며 애매하게 목숨이 붙은 채로 바닥에 나뒹군다.
트롤에 준하는 회복력이 없다면 오래 못 갈 상처다.
소피는 마지막 녀석을 요령 좋게 바닥에서 잡아채, 벽을 타고 달려오는 녀석을 향해 집어던진다.
"다음!!"
소피, 뒤다!
"꽈아악!!"
출력을 높여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할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정면에서 오는 녀석들을 상대하다 보니 순간순간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따라붙은 녀석이 단 하나라는 것.
다른 놈들보다 특출나게 빠른 개체인 듯하다.
나름 아룡족이라고, 작지 않은 몸으로 전력 질주를 수십초간 지속하면서도 아직도 가속할 여지가 남았는지 점점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
좋다.
이를 악물고 내 꽁무니에 딱 달라붙는 녀석들에겐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게 있었지.
내 하체 파츠엔 일부러 브레이크 등을 달지 않았다.
끼이이──!!
"윽, 베르제스? 갑자기 왜 멈, 꺄아아악!!"
콰아아아아아앙!!
* * *
"아야야야야."
"허리……. 허리가……."
전투 종료.
마그마 드레이크 수십 마리를 죽이거나 전투 불능으로 만들자, 나머지 놈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외부 스피커를 통한 소피의 위협에 등을 돌려 달아났다.
그래.
목숨은 소중한 거지.
사기가 떨어져 더 이상의 전투 행위를 지속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는 건 자기보존본능이 있는 모든 생물체에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물론, 몬스터도 예외는 아니다.
"저 아키, 아키가 다리은 건 아이야. 혀음부허 야깐 각오는 해으데, 이거 아이어두 너무 아이야……."
"베르제스, 저거 허리 돌아가는 거 다음부터 없애. 아니, 지금. 지금 없애……."
소피와 리소테는 드레이크 무리가 완전히 물러간 것을 확인한 후 적재 공간의 가방에서 포션을 꺼내 사이좋게 나눠마신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리소테와, 허리 근육이 놀라 움직임이 우스꽝스럽게 뻣뻣한 소피.
쓸 일이 있을 것 같아 상체를 540도까지 회전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실제로 그 기능을 사용한 대가는 처참했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드레이크를 단번에 쳐낼 때까진 좋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감각을 느끼고 조종에 실패한 소피가 허리를 더욱 돌려 회전각이 300도가 넘어가자 이상한 소리를 내며 한순간 무력화 됐고, 계속해서 달려드는 놈들을 소피의 조종 없이 떨쳐내기 위해 팔을 휘두르며 급발진과 급후진을 반복한 결과 리소테가 혀를 깨물었다.
드레이크들이 힘을 합쳐 내 하체 파츠를 아예 뒤집어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생각할 점을 많이 남긴 전투였다.
광신으로 통하는 구멍에서 농성전을 벌이던 일행은 포션을 마시고도 그 자리에서 퍼져, 광산 안까지 들어간 놈들이 있는지 확인할 여력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자면 그런 녀석들이 몇 마리 있어도 우리 관할은 아니긴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의뢰는 마그마 드레이크 서식지를 돌아다니며 영역 표시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몇 마리가 광산으로 숨어드는 것까진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물론 한 마리도 놓치지 않고 여기서 봉쇄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몸이 두 개가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지.
광산의 일은 주둔중인 영지군을 믿는 수밖에 없다.
"으, 시체……. 시체는 또 어떡하지?"
"저번에 거기 버리고 와야지, 뭐."
"저것들 다 치우면 중간보고 하러 가야겠네……. 원래 통로 반대편으로 가 보려고 했는데. 이번 의뢰는 시작부터 계획대로 되는 게 없어."
긍정.
하지만 인생이란 대체로 그런 거다.
아무리 열심히 계획을 세워도 일을 하다 보면 수정을 해야 할 수밖에 없고, 가끔은 한 걸음 내딛자마자 생각해둔 계획을 아예 갈아엎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법.
계획이란 건 기본적으로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덜 당황하고, 본래 목적을 잊지 않기 위해 세우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얄미워.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소피가 괜한 화풀이로 내 본체를 죽죽 잡아당긴다.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탓할 대상을 만들어내고 감정을 배출하는 것도 인간이 무기력에 빠지지 않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녀의 손길을 얌전히 받아들인다.
물론 소피와 리소테가 이런 지하에서 박터지게 싸운 후에 골골대고 있는 원인이 내가 아니라는 건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게 내 잘못이 되려면, 내가 의뢰를 안 받겠다는 소피를 꼬드기고,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테스트 동체를 만들고, 후폭풍을 예측할 수 없는 신기능이라도 넣었어야 했다.
"잘못 했어, 안 했어?"
……미안.
* * *
하지만 마그마 드레이크와 한 차례 크게 드잡이질을 한 보람은 있었다.
놈들의 시체를 치우는 동안, 광산으로 연결된 구멍에서 대공동으로 연결되는 방향과 그 반대 방향 양쪽 모두 추가적인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아직 안심할 순 없지만, 드레이크의 서식지 내에서 화려한 데뷔전을 마치고 주변의 몬스터들을 한 차례 밀어냈다고 봐도 좋을 것 같았다.
약 하루 거리의 통로를 오가며 시체를 대공동에 쌓는 작업우리는 이동에 큰 방해가 되지 않도록 다섯 마리 분량의 마그마 드레이크의 사체를 이끌고 영지군이 주둔하고 있는 영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