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1.60
* * *
"이, 이게 다……?"
"마그마 드레이크죠."
정확히는, '였던 것'이다.
영지군의 지휘관은 몬스터를 산더미만큼 상대했다는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사실 확인을 위해 부소대장급 병사를 두 명 빼서 대공동에 파견했다.
물론 이동 수단은 내 동체였다.
덕분에 의뢰 기간이 수 일 추가된 셈이지만, 이 세계는 계약이고 뭐고 기본적으로 시간 관념 자체가 아주 많이 느슨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국가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수많은 영지가 참여한 거대 거북 토벌 쯤 돼야, 일정이란 게 제대로 굴러가는 느낌이 나는 편이지.
"이게 대체 몇 마리야?"
"성수 모자랄 것 같은데……."
병사는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드레이크의 시체를 헤아려보다 포기하고 성수를 뿌리며 정화 작업을 시작했다.
얼추 서른 마리 쯤 될 텐데, 통로의 시체를 대공동으로 옮기는 작업은 귀찮고 지루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일행도 정확한 숫자를 카운트하진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신체의 일부를 잘라 챙기거나 시체 자체를 들고 가서 정산을 했겠지만, 마그마 드레이크의 사체에 손을 댈 방법이 마땅히 없는 상황이었고, 그렇다고 편도에만 수 일이 걸리는 지하 통로를 대여섯 번씩 왕복하기엔 그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소피가 아주 질색을 했기에 대공동에 쌓인 시체들은 이대로 방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서른 둘. 광산에 올려놓은 놈들까지 합치면 서른 일곱이군."
"그걸 다 셌어요?"
"이런 건 세 봐야지. 내가 살면서 언제 이런 걸 다 보겠냐. 진짜 장관이다, 장관."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병사는 팔을 쭉 펼치며 감탄했다.
후끈후끈한 지하에 숨어 있던 광활한 공간과 체고 2미터 가량의 거대한 도마뱀이 만들어낸 피와 고기의 동산.
내 투영 마법의 도움을 받지 못해 보급 받은 마법 램프의 빛에 의존하며 시체 정화 작업을 진행하면서도 꼼꼼하게 자신이 본 것들을 기억에 담아두었나 보다.
지금 이 순간이 그에겐 앞으로 심심할 때마다 꺼낼 술안주 거리가 되겠지.
"어이! 성수 좀 올려 줘 봐! 한참 모자라!"
"여기도 이제 없어! 그냥 내려와!"
"없다고? 에이 씨, 괜히 올라왔네."
"아, 저희가 챙겨 온 거 있어요! 이거 쓰세요!"
정화 작업은 성수를 물에 희섞한 액체를 물뿌리개를 닮은 도구로 시체에 한 방울 씩 떨어트리는 식으로 진행됐다.
겨우 그것만 해도 사체의 언데드화를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저런 도구가 만들어져 있고 병사들이 익숙하게 작업하는 걸 보면 이미 매뉴얼로 정립된 방식인 듯했다.
반면에 소피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블린에게 몸을 던진 친오빠의 장례를 옛 방법으로 치렀었지.
아마 그녀가 살던 집락촌에는 성수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도 이번에 지하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성수를 처음 구입했는데, 목숨값이나 다름없는 포션보다도 값이 비쌌다.
리소테의 말에 따르면 유통기한이 한 달 정도라던데, 비싼 돈 주고 사놓고 들고만 있다가 효력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하던 참에 이렇게라도 쓰이니 다행이다.
"조심히 내려오세요!"
"괜찮아. 저거 절대 안 미끄러져."
병사들은 시체의 산을 올라갈 때에도 척척 올라가더니 내려올 때에도 가뿐하게 내려왔다.
미끄럼 방지 마법이 걸린 신발이라더니, 효과가 확실했다.
같은 마법을 내 동체에도 적용시킬 수 있지 않을까 잠깐 고민했지만, 궤도 동체를 폐기하게 되면 별달리 쓸 만한 구석은 없어 보였다.
내 발바닥에 미끄럼 방지 마법을 걸기엔, 평범한 동체로 미끄러질 위험이 있는 지형을 오르내린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고 그나마 적용을 고려해볼 법한 산지에선 지면과의 마찰력보단 지형 자체가 쓸려내려가며 작은 산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막을 방법이 필요했다.
지금까진 비교적 단단해보이는 지형을 힘껏 밟아 더욱 굳히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미끄럼 방지 마법을 사용한다고 뭐가 더 달라질 것 같진 않았다.
작업을 마친 병사들은 주둔지까지 복귀하기 위해 내 하체 파츠에 대충 만들어놓은 좌석에 또 다시 꽁꽁 묶여있어야 한다는 데 절망했지만, 냉각 마법 천을 둘러도 후덥지근하고 습한 온도와 가면형 공기 정화 마도구가 답답한 것이 더욱 컸는지 휴식을 오래 취하지 않고 바로 출발했다.
처음엔 좋다고 자원해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선발된 데 기뻐했어도, 불편한 좌석에서 하루 종일 몸을 뒤척여야 한다는 게 실제로 겪어보면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겠지.
그들은 어떤 의미론 내가 끄는 수레를 타본 병사들에게 속은 희생양이었다.
다행히 돌아가는 길엔 그들의 표정을 살핀 소피가 종종 휴식을 취하며 몸을 풀 시간을 주었다.
***
소피의 보고를 받은 영주는 사람을 물린 뒤 와인을 한 모금 입어 머금어 맛을 음미하며 와인잔을 빙빙 돌렸다.
영주의 손길에 따라 잔에서 회전하는 와인은 투명한 유리에 말갛고, 동시에 새빨간 흔적을 남기며 부드럽게 흔들린다.
꼴깍.
와인을 넘긴 영주의 얼굴이 쓰다.
"소피 경. 이런 것을 본 적이 있소? 이 잔 말이오."
"아니요."
"유리라는 것이오. 우리 영지엔 없지만, 왕궁이나 대신전처럼 큰 신전에선 색을 입힌 유리로 창문을 만들기도 하오. 하지만 이런 시골 영지의 백성들은 접하기 힘든 물건이기도 하지."
서론이 거창하다.
느낌이 안 좋은데.
손을 쉬지 않고 움직이던 소피마저 포크를 잠시 내려놓는다.
"소피 경도 이제 용사의 자리에 올랐으니, 우리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천천히 알아가게 될 것이오. 그걸 이 자리에서 다 가르쳐줄 수는 없지만, 이것만은 말해야겠구려. 우리 귀족, 왕족, 사제, 마법사, 기사……. 소위 지배층에 있거나 지식이 있는 자들은 일반 백성들에게 숨기는 게 많소."
영주는 잠시 탁자 위에 올린 손가락을 까딱이며 단어를 고른다. '이걸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나…….'
"리소테. 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
"으, 응? 조조조, 조금?"
"어쩜……. 실망이야."
"그그, 그치만!"
"수행 마법사 아가씨는 상관 없는 이야기요. 이쪽에 조금은 발을 들인 셈이지만, 적어도 중등 마법사 쯤은 돼야 뭘 좀 분간을 하겠지. 그래, 소피 경. 제국이 세워진 경위를 알고 있소?"
"아니요. 역사는 조금……."
"제국은 약 600년 전, 브린마크 초대 황제에 의해 세워졌다오. '무거운 브린마크'. 잠에 빠져 서서히 가라앉던 최초의 거북을 깨워서 다시 부상시킨 용사지. 그가 발을 세게 구르면 지진이 일어났다고 하오. 놀랍지 않소?"
"그…런가요?"
영주는 마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 있었던 전래 동화를 손녀에게 이야기하듯, 제스쳐를 섞어가며 설명하지만 소피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
믿기지 않는 이야기.
하지만, 사실이겠지.
규모가 아주 많이 작지만, 고대에도 전투 중에 비슷한 맥락의 전술을 사용하던 오러 사용자들이 있었다.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해하오. 하지만 우리는 개인의 무력에 한도가 없는 세상에 살고있소. 마법이든, 오러든. 언제든지 초월적인 강자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오."
나와 소피를 지그시 바라보는 영주.
이 나라의 지배층에겐 우리도 그런 식으로 보일 것이다.
하루아침에 땅에서 솟아난 괴물.
물자가 갖춰지면 국가 단위의 전력을 단기로 상대할지도 모르는 존재.
"초대 황제가 대륙을 제패하고 제국을 세운 이유 역시 그것이오. 그 전에도 나라가 있었고 귀족이 있었지만, 각자가 가지고 있는 힘에 따라 모든 것이 정해졌고, 다음날에는 또 바뀌었다고 하오. 싸움이 끊이지 않고 서로가 가진 것을 빼앗기 위해 혈안이 된 시대였던 것이오."
"지금도 전쟁은 있지 않나요?"
"물론이오. 전쟁은 사람의 욕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지. 하지만 예전보다는 사정이 나아졌소. 기본적인 예절이란 게 생겼기 때문이오. 어제 얼굴 붉히고 헤어진 이웃이 오늘 갑자기 힘을 얻어 우리 집을 뿌리채 뽑아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젠 모두가 알고 있소. 초대 황제의 일생은 그 증명과 실천이었지. 그리고 마침내 황제는 사람들 사이의 큰 전쟁을 끝냈소. 용사들이 다 그렇듯, 용사가 아니게 된 이후로 더 큰 위업을 세운 것이오."
영주는 잔을 완전히 비우고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민하게 되오. 제국이 압도적인 무력으로 싸움을 멈추게 한 것까진 좋소. 그런데 황제가 죽게 되면? 더 강한 자가 나타나면? 다시 혼란의 시대로 돌아가야만 하는가?'"
"머리가 식었군요."
"아아, 그렇소. 좋은 표현이오. 계속되던 싸움을 멈추고 나니 머리가 식고 난장판을 정리할 일이 남게 됐소. 사람들은 지쳤고 평화는 달콤했지. 애초부터 싸움을 원하는 자들은 황제에 의해 명을 달리하기도 했고. 그렇게 남은, 평화를 원하는 자들끼리 머리를 고민한 결과 서로 약속을 하게 된 것이 있소."
"이제 그만 싸우자고요?"
"그것도 있지만, 다른 게 더 중요하오. 앞으로 나타날 강자가 충분히 강해지지 못 하도록 압도적인 무력을 지배층만 소유하는 것이오."
정보의 통제.
무력의 통제.
영주는 아주 충격적인 고백을 하듯 진지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하지만, 솔직히 이전부터 예상하고 있던 사실이다.
소피마저도 내 동체를 강철 소재로 바꾸려던 시도가 좌절되었을 때 단박에 눈치챈, 공공연한 비밀.
하지만 그것을 굳이 말하는 것은, 심증만 있는 상태와 실제 내용을 들은 상태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겠지.
확실히 소피는 약간의 심적 데미지가 있었는지 심장 박동이 조금 빨라졌다.
"소피 경. 그대의 골렘은 평시라면 3개 영지의 기사와 마법사들이 힘을 합쳐 제압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소. 비상시라면 4급 모험가 두 명까지 내려가고, 소피 경이 그보다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상시로 대응할 방법이 벌써 수십 가지는 정리되어 공유되고 있지. 거북 토벌 때 신비한 힘을 보였고, 우리 영지에 왔을 땐 크기가 커졌기에 지금은 또 다르겠지만, 그래 봐야 개인의 한계가 있는 법이오. 혹시 잠을 자지 않거나 식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체질이 됐소?"
"아, 아니요……."
"그런 것이오. 호전적인 이들은 초대 황제에게 모두 죽어 세상에 남은 귀족과 왕족은 겁쟁이들밖에 없소. 그래서 우리는 많은 것을 숨긴다오. 숨기고 숨겨서, 600년 만에 용사의 힘을 모험가 두 명의 전력으로 축소시키는 데 성공했소. 이 역시 사람의 욕심이고, 또 다른 전쟁일지도 모르오. 하지만 우리는 이 방법으로 사람이 태어나는 것보다 많이 죽는 시대를 끝내고 인류의 발전을 이룩해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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