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19. 학생을 위한 주변 환경 조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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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학생을 위한 주변 환경 조성 (1)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새로이 왕실 가정교사를 맡게 된 이시하라고 합니다.”
'수업용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는 나.
오늘은 첫 수업이다.
이 수업을 준비하는 것에 얼마나 큰 공을 들였던가. 아샤에게 부탁한 명단을 하나하나 검토하느라 이리저리 발품을 팔았고, 수업을 위해 미리 정책에 대한 배경 공부까지 해야했다.
마지막에는 정말이지 귀한 손님들을 모실 준비를 하느라 얼마나 애가 탔는지.
어머니.
저... 노력했어요.
일단 학생은 네 명이다.
알렉산더 에우데미아.
아셰리아 에우데미아.
기디언 프라시스.
아샤 티오리아.
사실 왕자와 공주만 먼저 가르치기로 했지만, 기디언과 아샤는 각자 주인의 수행을 목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기디언은 알고 보니 프라시스 공작가의 자제였다. 현 가주인 흑돼지, 발람 프라시스의 조카라고 한다.
지금까지 느낌으로는 알렉산더의 충실한 호위역할이라는 느낌. 흑돼지와 닮지는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수업 장소는 왕성의 방치고는 아담한 후궁의 어느 방. 아담한 방이라 해도 내가 살던 세계의 교실 둘을 붙인 크기다. 거기다 테라스까지 딸려 있다.
교실 안에는 학생용 책상과 의자 8세트. 그 뒤로는 참관용 의자가 여러개. 그 의자에는 오늘의 수업 도우미 분들께서 앉아계신다.
수업의 도우미는 지금 당장에 중요하지는 않다. 지금은 그들을 의식하지 않고 수업을 진행해야겠다.
“여러분, 오늘 첫 수업의 과목은 정책학으로 정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답을 가르칠 생각이 없습니다.”
학생들은 ‘저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라는 표정이다. 아셰리아 공주만이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상태.
“여러분들은 장차 이 나라의 중심이 될 분들입니다. 여러분들의 선택 하나하나가 이 나라 백성들의 앞길을 정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생각하겠죠. 그렇기에 당신은 정답을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역시 왕자님이라는 걸까. 알렉산더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는 것만 같았다. 다른 아이들 역시 수업 초반부에 집중하고 있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세상에는 애시당초 정답이라는 게 없습니다. 사람이란 각자 추구하는 가치나 처한 상황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죠.”
너무 추상적인 말을 해서일까. 학생들은 집중은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공주의 무표정을 제외하면 영 반응이 안좋다.
나름 왕족과 귀족들이니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이른 말이었나 보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모양이네요. 그럼 예시를 한 번 들어보죠. 여기에서 한 분씩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시겠나요? 알렉산더님부터 말씀해주세요.”
알렉산더는 고민에 빠졌다.
다른 학생들도 나름 고민하는 듯 하다.
“저에게는 백성의 평안이 제 행복입니다.”
역시나 인기 1위 캐릭터다운 대답이었다.
이 녀석은 머릿속에 왕족의 의무와 백성이라는 단어가 너무 크게 적혀있는 아이다.
그 다음으로 기디언이 소극적으로 말했다.
“알렉산더님을... 보좌하고 싶습니다.”
태도는 유약했지만 포부가 넘치는 대답이다.
그런 기디언의 모습을 알렉산더가 흐뭇하게 보고 있다. 둘 사이에 무언가 일화가 있나 보다.
기디언 프라시스는 본편에 텍스트조차 나오지 않아 나는 모르는 내용이지만.
다음으로 아샤가 말했다.
“저는 편해지고 싶습니다.”
저 귀차니스트 암살자 메이드... 수업을 빨리 끝내라는 모종의 압박이라도 되는걸까.
마지막으로 아셰리아 공주의 차례다.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답변이 기대되는 학생이다.
“저는 올바른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올바른 세상이라...
아셰리아 여왕에게 올바름이란 무엇일까.
내가 과연 저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과연 저 아이에겐 가르칠 것이 있을까.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답변이었다.
“행복이란 것은 사람들을 움직이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여기 계신 네 분의 행복은 전부 다른데, 궁성 안팎의 모든 이들의 행복은 어떨까요.”
“세상에는 수많은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가치의 다름은 갈등을 일으켜요. 예를들어, 알렉산더님이 백성을 위한다고 갈 수 있는 길이, 알렉산더님의 희생이나 손해가 요구한다면?”
내 말을 듣고서 알렉산더는 그저 무덤덤하게 있는 반면, 기디언은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알렉산더님은 필요하다면 거침없이 그 길을 선택하실 것 같네요. 하지만 기디언님에게 알렉산더님의 그 선택은 불행이 되는 겁니다.”
알렉산더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저 아이는 언젠가 알아주었으면 한다. 내가 이 수업을 하는 두 가지 이유를.
나는 ‘수업용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
“이제 다들 이해하신 것 같네요. 여기까지가 서론이었습니다. 뒤를 보시면 오늘 이 교실에 손님분들이 많이 계시죠?”
내 말에 아이들은 저마다 뒤쪽을 돌아보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오늘 수업은, 재상부와 왕궁부 관리 여러분들과 함께합니다. 관리 여러분들께서 오늘 여러 정책 현안들에 대해서 자신의 분석, 입장을 발표하실 예정입니다.”
오늘 수업 도우미들은 재상부와 왕궁부의 관리들, 그것도 아샤에게 부탁했던 쓰레기들 명단에서 추려낸 자들이다. 사흘간 고생해준 고마운 귀차니스트 메이드님께 감사를 표한다.
저 쓰레기들은 지금도 나를 깔보는듯한 눈빛으로 보고 있다. 아직은 별 감흥이 없겠지. 하지만 잠시 후에는 감흥이 생길 것이다. 지금 내 미소가 악마의 미소로 보이겠지.
"이 세상 모든 사람들 하나하나는 자신이 주인공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한가지 정책이더라도 그 의미는 각자의 눈에 다르게 보이는 법이죠."
... 그러고보니 이 세상의 마족은 딱히 나쁜 종족이 아니다. 악마의 미소라 하면 '이거 마족혐오야!'라고 하며 쫓아오지 않을까.
아님 말고.
“그 발표를 듣고, 여러분들은 질문과 토의를 하시면 됩니다. 여러분은 네 명이고, 발표하신 당사자를 포함하면 의견이 다섯이나 되겠네요!”
네 명의 학생들은 전부 예상치 못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특히 알렉산더와 기디언은 이곳 기준으로 파격적인 수업방식에 눈이 커졌다.
하지만 내 세계에서는 유행하는 방식이다.
Problem Based Learning.
문제 중심의 학습. 열린 사고. 창의력의 증진.
지금은 약간 판이 크긴 하지만... 뭐 왕실의 수업인데 어쩌겠나. 나에게는 이것보다도 더 큰 수업을 구성할 권한이 있다.
아샤는 본인이 작성한 명부에 있던 사람들임을 눈치채긴 했지만,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는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아셰리아 공주는 평소의 무표정이 깨졌다. 작은 입술이 약간 벌어진 채로, 얼굴에서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내가 준비한 일을 눈치챈 것 같다. 표정이 드러나니 평소의 어른스러움을 뚫고나오는 아이다움이 돋보인다.
“그리고 오늘. 저희 첫 수업에 참관하신다는 분들이 더 계십니다. 원래 빛나는 분들은 마지막에 불러야 하는 법이죠.”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
“마침 오늘, 시간이 된다고 하시더군요. 정말 바쁘신 와중에 참관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참관자를 본 관리들의 표정은 점점 흙빛으로 변해갔다. 이제서야 분위기를 파악하다니, 능력도 없으면서 눈치까지 없는 놈들이다.
학생들도 역시 부담을 느끼는 듯하지만... 괜찮다. 내가 미친 척하고 부담을 풀어줄 것이다.
참관자들의 정체는 바로.
“필레몬 에우데미아다. 오늘은 국왕이 아닌 한낱 아비로서 당연한 참관을 요청했다. 오늘은 편히 생각하도록.”
“루시아 에우데미아. 저 역시 국왕님과 같아요.”
“제드로 프로네시스. 왕실 가정교사의 평가는 재상부의 수장인 내 책임이니 참관하기로 했다.”
“국왕 수행원 카일 티오리아다. 수행 목적도 있지만, 나 역시 이곳에 딸이 있기에 온 몸이다.”
나는 주요 참관인분들을 관리들의 좌석 뒤에 마련된 귀빈석으로 안내했다. 그리고나서 왕자의 뒷담을 까다 걸렸던 첫번째 인물을 호명했다.
“자, 올리버 테오도시아님부터 시작해볼까요?”
호명된 관리는 잠시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교실 전체를 한번 슥 둘러보더니... 꿈이 아님을 자각했다.
그는 휘청휘청거리며 강단으로 올라왔다.
“잊은 게 있는데 말이죠. 학생들의 질의와 토론이 끝난 후에는 관리분들 간에 서로 질의하실 수 있는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살려주진 않을 거야.
그래도 기회는 줄게.
“현직 관리분들의 원활한 의견 교환의 장이 학생들에게 큰 깨달음을 줄 수 있겠죠. 좋은 의견을 내신다면 가산점이 붙을 수도?”
발악하면서 서로 물어뜯어봐라.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쓰레기들.
* * *
나는 재상부 도로관리청의 올리버 테오도시아. 테오도시아 자작가의 차남이다. 자작령의 상속을 포기한 나는 작위 인정을 위한 실적을 쌓기 위해 재상부에 지원했다.
처음 접한 재상부의 일들은 의외로 전문적인 일들이 많았다. 귀족가의 자제인 나로서는 잘 모르는 분야다.
처음에는 골머리를 앓았다. 내가 어떻게 도로의 관리라던가 교각의 관리를 맡을 수 있는가. 이런 천한 일들은 내가 맡을 일이 아니다.
나는 조금더 이 나라의 중요한 일을 맡아 마땅한 인간이다. 나는 겨우 이 정도 일에서 놀 수는 없는 귀족이다. 고작 이런 일을 배워야한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너무나 모욕적으로 느껴졌다.
그런 와중에 다른 동료들이 문제가 생길 때마다 공주를 찾아가 자문받는 것을 보았다. 놈들은 공주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신다 했다.
나 역시 그 흐름에 동참했을 뿐이다. 공주가 안건에 대해 '약간'의 도움을 주면, 나는 그대로 시행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사흘 전에도 집무실을 찾았다. 그 자리에는 새로 고용된 왕실 가정교사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를 보고 나는 내 교육을 맡았던 가정교사를 떠올렸다. 있지도 않은 명예를 중시하는 볼품없는 남작이었다.
왕실 가정교사는 다른 세계에서 흘러들어온 표류자라고 하던데, 별다른 능력도 없으니 가정교사를 하는 것 아닐까. 유망한 표류자라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일을 하겠지.
어차피 멍청한 왕자만 피해서 공주에게 자문받으면 그만이었다. 공주 쪽으로 줄을 서서 자문받은 뒤로는 퇴근한 기억뿐이다.
평범한 관리인 나는 어제, 갑자기 왕실 가정교사의 수업에 참여해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왕실 가정교사가 정책학 수업을 하는 곳에 와서 내가 맡은 도로관리청의 업무를 소개하면 된다고 했다.
이세계의 표류자 주제에 가정교사를 맡아서는 수업을 짤 능력조차 없는 건가. 하긴 다른 대업을 맡지 못할 찌꺼기다 보니 어쩔 수 없겠지. 그런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생각을 후회하고 있다.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 감상은 무책임한 인간을 보는 것 같았다. 나를 가르치던 가정교사와 다른 바 없었다.
하지만 묘하게 빠져들었다. 그의 논의는 타당했다. 그래도 능력 없음을 잘 포장하는 것일 뿐이리라. 나는 머릿속에서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저희의 첫 수업에 참관하신다는 분들이 더 계십니다. 원래 빛나는 분들은 마지막에 불러야 하는 법.”
가정교사는 참관인들을 모신다고 했다.
끽해봐야 백작가 정도겠지.
왕실의 꼬리에라도 붙어먹을 속셈이리라.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회의로 바빠야 할 왕비와 재상.
국왕 호위나 가야 할 왕궁부장.
재앙 토벌에 나가있어야 할 국왕까지.
참관으로는 있을 리 없는 조합.
난 내 주변을 보았다.
낯이 익다.
집무실에서 자주 보던 이들이었다.
이건 함정이다.
가정교사는 어떤 명단을 보다가…
“자, 올리버 테오도시아님부터 시작해볼까요?”
내 이름이 불렸다.
이것은 사형 선고다.
저 강단이 하나의 교수대다.
“관리분들 간에 서로 질의하실 수 있는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좋은 의견을 내신다면 가산점이 붙을 수도?”
살기 위해서는….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올리버님?”
가정교사는 웃고 있었다.
강의 시작부터 항상 웃고 있었다.
그의 미소는 처음부터 변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는 강단에서 물러났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왕자와 공주 근처에 자릴 잡았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아직도 그의 미소는 변하지 않았다.
꺼림칙할 정도로 변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 근육 하나하나가...
조형된 조각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저것은 악마다.
나는 악마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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