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11화 (11/215)

〈 11화 〉 1­10. 학생을 위한 주변 환경 조성 (2)

* * *

1­10. 학생을 위한 주변 환경 조성 (2)

학생의 학업성취나 자아 발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무엇일까?

대부분은 다음을 떠올린다.

좋은 학교.

능력 있는 교사.

알찬 커리큘럼.

깨달음이 있는 수업.

이를 증명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대규모 연구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의회의 거금이 투입된 진행된 이 연구는 결론적으로 망했다.

저런 요소들보다 학생들에게 더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의 양육방법.

사회문화적 교양.

가정배경과 친구.

사회경제적 지위.

학교의 요소보다 사회적 배경, 즉 주변의 환경이 학생에게 더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교육을 받더라도 주변 환경이 안 좋으면 아이의 인격발달에 악영향을 끼친다.

알렉산더 왕자와 아셰리아 공주에게 있어 주변 환경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 왕궁이겠지.

지금 내가 아는 선에서 알렉산더 왕자에게 제일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저 관리들. 집무실에서는 대놓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뒤에서는 왕자를 까내리기 바빴지.

여기에 더해 아셰리아 공주의 시간을 빼앗아 가며 자신들의 일을 떠넘기는 것도 나에겐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나에게는 저것들을 직접 치울 수 있는 명분이 없다. 하지만, 나는 수업을 할 권리가 있다.

그렇기에.

발표라는 이름의 단두대를 만들었다.

지금 여기에 있는 관리들은 자신의 업무 내용조차 제대로 숙지 못했기에 버벅거리고 있다.

정말 발표란 어렵지. 하지만 현대의 학생들과 직장인들은 이걸 밥 먹듯이 한다. 그들에게 리스펙트….

재상부와 왕공부의 관리들.

국왕을 비롯한 수뇌부 4명.

정말 큰 규모의 참관수업이다.

하지만 이 수업을 구성하기는 쉬웠다.

마냥 협조요청을 보낸 것은 아니다.

부모의 심정을 약간 긁었을 뿐이다.

* * *

(이틀 전)

지금 나는 집무실에 와있다.

집무실에는 나와 왕비님, 재상님뿐이다.

왕비님은 집무실 중앙의 회의용 소파 상석에 앉아있고, 재상님은 구석에 차를 타러 가셨다.

무려 재상이 타주는 차라니. 부담스럽다.

“그래서 어쩐 일로 찾아오신 거죠?”

“수업을 구성에 도움이 필요해서 왔습니다."

“그렇군요.”

여기서부터는 말을 잘해야 한다.

“저는 이번 수업을 학생들이 참여하는 수업으로 만들어 보려 합니다. 여러 정책 현안들을 보면서 직접 거기서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제시해보는 거죠.”

왕비님은 반신반의하여 물었다.

“그 수업을 해서 어떤 것이 좋을까요?”

“먼저 문제를 여러 가지 방향에서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장차 나라를 이끌어가실 분들 아닌가요.”

“흠, 그래서 무엇이 필요하신 건가요?”

“재상부와 왕궁부 관리들이 필요합니다.”

“네?”

왕비님은 이번엔 정말 의외라는 표정.

사실 꼭 필요한 건 아니다. 관리들을 부르려는 건 높으신 분들 앞에서 엿이나 먹어보라는 이유가 더 크다.

“수업에 왜 관리들이 필요한가요?”

“관리분들이 직접 자신이 담당하는 일을 설명해 주시도록 요청할 예정입니다. 학생들은 그걸 듣고 질문과 토의를 하는 거죠.”

재상님이 이윽고 차를 가져오신 뒤, 나와 왕비님께 한 잔씩 내려놓았다.

왕비님은 그 찻잔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 업무를 하던 사람들을 끌어다 써야 하나, 그 정도 투자가치가 있는 수업인가 싶겠지.

왕비님이 고민하는 차에 집무실 문이 열렸다.

“나 왔어, 루시아. 윽?”

“방금 돌아왔습니다. 오, 자네로군?”

국왕과 카일 왕궁부장이었다.

그런데 국왕님, 대놓고 ‘윽’ 은 너무 하시네요.

국왕은 들어오자마자 자신의 책상으로 직행해 앉았다. 그러고선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척을 하면서 이쪽을 계속 흘낏흘낏 보고 있는데...

이거 나한텐 기회 아닐까.

“왕비님, 제가 이런 수업을 구상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와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무슨 이유인가요?”

“아셰리아 공주님이 무언가를 표현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표하는 일이 적지 않은가요?”

“흐음….”

아.

국왕님이 앞으로 몸을 약간 기울였다.

한번 찔러본건데. 바로 낚이네.

나는 왕비에게 설명을 계속했다.

물론 유심히 듣는 건 두 사람이긴 하다.

“아셰리아 공주님은 제 첫인상에 매우 총명하신 분입니다. 하지만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집무실에서 제가 본 바로는 관리분들께서 공주님께 많이 의지하시더군요. 당장에는 바람직한 일입니다.”

끄덕이는 카일 왕궁부장과 제드로 재상.

속단은 금물이다.

장관들은 일반 관리들이 어려운 일만 아셰리아 공주에게 의존한다고 알고있을 수 있다.

나는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너무나 뛰어난 사람은 본인의 생각을 타인에게 이해시키는 걸 제일 어려워합니다. 결국엔 소통을 피하게 되죠.”

어차피 말해봐야 너는 이해도 못해. 그런 생각이 들어 설명을 넘길 수도 있다. 물론 공주의 경우는 약간 다르긴 하지.

도서관에서도 남에게 부탁할 생각도 없이 스스로 하려는 걸 보면... 오히려 일을 너무 묵묵히 하려는 게 탈일 수도 있다.

“소통을 피하면 언젠가 업무상 소통이 일방적인 관계가 되어버리겠지요.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두 가지 가능성 모두 하나의 공동체에서는 위험한 일이다.

한 사람의 외침에 돌아오는 메아리가 없다면, 그건 올바른 소통이 되지 않은 것이다.

“그 후엔 윗사람은 명령하고, 아랫사람은 수동적으로 따를 뿐인 관계가 되어버리죠. 그것은 비효율적입니다.”

사실 이미 그렇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집무실에 안 계시면 관리들이 밀물처럼 옵니다. 그 증거로 지금 집무실에 관리가 한 명도 없잖아요.

“리아가 남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도록 하기 위해... 그런 수업이 필요하다는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셰리아 공주는 국왕 내외에게 신경쓰이는 부분이었나 보다. 내가 공주의 이야기를 하는 그 순간에는, 국왕이 더 적극적으로 내 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의 반응을 파악한 나는 두번째 이유를 대기 시작했다.

“알렉산더님은 요즘 들어 자신의 성과에 자신이 없어 보이셨습니다. 제가 이곳에 온 지 사흘인가요. 지난 이틀간 검을 연습하며 하늘을 보시는데, 쓸쓸한 말을 하시더군요.”

“알렉이요?”

금시초문이었다는 왕비님.

내 감각으로는 애초에 아이들에게 일을 시킨 것이 문제가 되지만, 왕족이다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사내 왕따를 왕자가 당할 거라고는 그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왕비가 내게 캐물었다

“무슨 말을 했나요?”

“방향성을 못 잡으시는 모양입니다.”

“잘 감이 안오네요.”

“제가 집무실에 왔던 그 날, 재상부와 왕궁부의 관리분들이 ‘서른 분’ 정도 오셨습니다. 그런데 아셰리아님께만 몰리더군요. 추측일 뿐이지만, 그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지신 건 아닐까요?”

가만있다 화들짝 놀라는 두 장관.

적어도 둘에게 경각심은 주고 싶다.

저 둘이 관리단속에 힘써야할 때다.

그리고 왕비가 내 미끼를 물었다.

“집무실에 그 정도로 인파가 심했나요?”

“저는 집무실이 그 날 처음이였어서... 일상적인 일인 줄 알았습니다만, 아니었나요?”

집무실 안이 빙하기가 되었다.

누가 기온조절계 마법을 썼나?

참고로 이곳은 지금 초가을이다.

날씨는 아직 꽤 따뜻한 편이지.

“제드로... 카일?”

“누님... 나는 누님과 회의로 바빴잖아.”

“저도 국왕님과 요즘 토벌을...”

제드로 재상은 내 앞인 것도 잊고 루시아 왕비를 누님이라 불렀다. 카일 왕궁부장도 약간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왕실과 삼대 가문은 어릴 적부터 친구처럼 자란다던데, 그 관계 안에선 루시아 왕비가 가장 강한가 보다.

국왕도 뭔가 말하고 싶은가 몸을 떨고 있다. 근데 저 사람은 아직도 내 앞에서 엄격, 근엄, 진지한 척을 한다. 이미 들켰는데.

기세를 잡았으니 할 말을 계속해야지.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자면, 저는 수업에서 크게 두 가지 목표를 잡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왕자님이 정책 현안들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의견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

두 번째를 국왕 앞에서 말할 수 있다니, 말하기에 앞서 너무 기대된다.

“두 번째로. 공주님께서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고 그 근거를 타인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탄원 당시 국왕의 팔불출 행보와 공주의 소극적 태도를 보면, 적어도 국왕은 공주에게 관심은 많을 것이다.

공주가 국왕을 어려워하는 걸 보면, 둘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 일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정적이 감도는 집무실.

국왕은 말을 참고 있고.

왕비는 당장 집무실을 엎을듯한 기세.

재상과 왕궁부장은 눈만 굴리고 있다.

“제 세계에서는 이걸 문제 해결형 학습이라 합니다. 이런 수업에는 학부모님들이 참관하는 일도 잦습니다.”

이제는 쐐기를 박을 때다.

나는 들고온 가방을 뒤적거리며 뜸을 들였다.

“수업에 협조를 부탁드리고 싶은 분들이... 제가 이름을 아는 관리분들이 엊그제 집무실에 오셨던 분들뿐이라... 명단을 여기 가져 왔는데... 아 찾았습니다!”

나는 최대한 분위기를 못 읽는 척하며, 아샤에게 부탁했던 ‘쓰레기들’ 명단을 왕비님 앞 다탁에 놓았다.

집무실에 있는 건 나까지 다섯 명.

잠시간 아무런 말도 없이, 나를 제외한 네 명의 시선이 '쓰레기들' 명단에 머물렀다.

* * *

참 바로 전에 일어난 일처럼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이다. 그 이후론 국왕님과 왕비님이 엄청난 기세로 참관을 결정했었다.

당시 국왕이 말하길.

'발람 놈에게 사흘간 토벌은 다 나가라고 해! 중요 업무다! 난 안 간다! 난. 못. 가! 그 자식 오냐오냐했더니, 요즘 쉬고만 있잖아!'

엄.근.진 컨셉을 바로 버렸었다.

그리고 왕비는 이를 꽉 물고 말하길...

'당장. 소집해서. 수업에 보내죠.'

지금은 관리들이 벌벌 떨면서 학생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뭐, 답한다기 보다는 어버버댄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학생들은 내가 첫 관리에게 약간의 ‘시범’을 보이자 금방 따라 했다.

“해당 정책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과정을 통해 산출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이 안건은 어떤 기대효과가 있나요? 멀쩡한 왕도의 도로를 갈아엎는다고 해서 뭐가 바뀌려나요?”

“에우데미아의 현 시국에 적합한 정책인가요? 어떤 점에서 적합하다고 생각하셨나요? 재앙이 넘치고 있는데 이런 걸 해도…”

이런 질문을 보내면 관리들은 건드릴 것도 없이 자폭해서 정책의 허점을 드러냈으며.

“여러분, 이런 문제점이 있는데, 어떤 보완을 해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아셰리아 공주님, 그 방법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알렉산더 왕자님, 그 보완책은 확실히 장점이 큽니다. 하지만 단점 역시 존재하는 걸 잊지 마세요.”

“기디언님, 조금 더 자신을 갖고 말씀하셔도 됩니다. 기디언님이 말씀하시는 것 자체가 다른 분들의 생각에 도움을 줍니다.”

관리들이 보인 그 허점을 문제점 삼아 학생들의 토론을 유도했다.

아셰리아 공주와 알렉산더 왕자는 내가 수업을 계획한 대로의 반응을 보였다. 처음엔 꺼리더니 나중엔 열심히 참여해주었다.

기디언의 경우에는 자기 주관이 약해서 말을 하지 않길래 애를 먹었지만, 나중 가서는 작게나마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고.

아샤는… 평소에 관리들에게 불만이 컸나보다. 무서운 얼굴을 한채 관리들을 뚫어버릴 기세로 내 ‘시범’을 응용해 질문 폭격을 해버렸다.

관리들이 그 기세에 기가 죽긴 했지만….

나만 아니면 된다. 하하.

이후부터는 내가 굳이 손을 대지 않아도, 아이들이 열심히 참여해주었기에 알아서 굴러가는 수업이 되었다.

그렇게 관리들과 아이들의 토론이 모두 끝나고, 나는 강단에 다시 올라섰다.

아샤 덕분에 관리들이 녹초가 되어버렸기에, 관리들만 집어넣고 벌이는 콜로세움은 생략했다.

이건 좀 아쉽구만.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오늘 수업은 분명 정책학 수업이었습니다만, 정책이 이 수업의 주요 내용은 아닙니다."

아이들은 모두 나에게 집중해주었다.

그래도 첫 수업은 성공적이네.

"저는 오늘 여러분이 자신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을 비교하며, 한 가지를 보아도 그것을 대하는 관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강단에 서니 참관인들의 얼굴도 보인다.

국왕은 아셰리아 공주가 자신에게 말하는 것도 아닌데 약간 기특하다고 감동하는 분위기.

왕비님은 얼굴에 쌩쌩 찬바람이 불고 있다. 또 누가 왕비님 주변에만 온도조절계 마법을 썼나보다.

장관들은 왕비님 눈치만 보았다. 두 사람은 바빠서 관리를 못한 것일 뿐인데 안쓰럽게 되었다.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

그렇게 모두가 행복한 첫 수업이 끝났다.

... 내 모두에 저 쓰레기들은 들어가지 않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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