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Side. 원래 세계에서 01. 소꿉친구의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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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원래 세계에서 01. 소꿉친구의 회상.
"시하요? 요즘 저 대회기간이라 선수촌에 있어서… 만나지는 못하고 있었는데요."
이시하. 내 어릴적 소꿉친구다.
예전에 시하가 대학 과동기라며 나에게 소개해줬던 남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주일동안 연락이 안돼요? 집엔 찾아가보셨구요?"
무언가 잘못된 건 아닐까.
"그럴리가요…"
집에도 없다니.
멋대로 사라질 녀석은 아닌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틀림없다.
시하 그 녀석과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생까지, 거의 9년을 같이 지냈었다. 말하기 싫어하는 본명도 알고 있을 정도로 친하다.
도중에 서로의 꿈이 달랐기에 진로가 갈리긴 했지만, 그래도 연락은 꾸준히 하고 지내는 중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설마 아주머니가 돌아가신 충격으로…
아니다 이런 생각은 하지 말자.
그 바보는 약간 성격이 겉으로만 밝고 속은 곯아있긴 해도, 자살같은 걸 할 애는 아니다.
갑자기 산으로 들어가 자연인이 되겠다고 하는 편이 나로서는 훨씬 믿을만 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초조한 내 시선은 내 방 구석의 진열장으로 향했다. 자연스레 그 바보와 함께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
어느 초등학교 1학년 교실.
첫 학교, 첫 교실. 첫 급우.
소년과 소녀는 책상을 붙여앉는 짝이 되었다.
소녀가 소년에게 가지던 첫 인상은 이랬다.
'어디서 맞고라도 다니나?'
얼굴을 제외한 곳에 약간씩 멍이 보였다.
그것도 옷 틈으로 약간씩만 보이는 정도.
소녀가 이 멍울들을 본 것은 우연.
그 의미를 아는 것도 우연일 것이다.
겉으로 안보이는 부분만을 때린 악질.
그런 사람에게 당하고 사는걸까.
소녀의 생각은 거기까지 이르렀다.
초등학교 1학년 치고는 대단한 추론이다.
하지만 가해자가 가족이란 발상은 하지 못했다.
소녀의 가족은 충분히 '정상적'이었으니까.
차마 상상할 수 없던 것이었다.
'맞고 다니지 않게 도장에 오라고 해볼까.'
마침 소녀의 아버지는 태권도장의 관장.
거기다 작은 아버지는 검도장의 관장이었다.
정말이지 운동에 모든 게 쏠린 집안.
"우리집이 태권도 도장을 하거든?"
"엥?"
소년의 대답에는 영 힘이 없었다.
소녀가 듣기에는 기빠지는 대답.
"체험이라 해야하나. 태권도 배워볼래?"
"갑자기?"
"갑자기…긴 하지? 그래도 잘 배워두면 나쁜 녀석들 전부 날려버릴 수 있어!"
"돈이라던가 그런건 어쩌게."
갑자기 들이닥친 현실적인 문제.
하지만 고민은 소년만이 하고 있었다.
"우리 아빠가 친구 데려오라 했어."
"친구…"
"같은 반 옆자리잖아!"
비록 모든 것을 알진 못하더라도, 소녀가 소년에게 내민 작은 성의는 충분히 값진 것이었다.
정말이지 얼떨결에 태권도를 시작하게 된 소년. 그래도 몸을 쓴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거기다 집에서 '그것'과 마주할 시간을 합당하게 줄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메리트였다.
소년의 어머니 역시 소년이 집에 있게 되는 시간을 줄이고 싶었기에, 없는 돈을 모아 도장만큼은 보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소년은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소녀 역시 소년의 집사정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소년이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도 소녀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살게 된 소년을 축하할 정도로 그를 이해했다.
비슷한 사건이라도 각자의 마음에 다른 감상을 남긴다. 적어도 소년에게 부모의 이혼이 희소식인 것이다. 그 사실을 소녀는 알고 있었다.
다시 그 후로 6년. 둘은 15세. 중학교 2학년.
소년과 소녀는 도 단위의 태권도 대회에서 수상을 할 정도의 유망주로 자라났다.
소녀의 경우에는 집안 특유의 유전적 기질과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맺은 결과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소녀는 도장의 벽에 기댄 채로 자신의 소꿉 친구가 대련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친구의 상대는 세 살차이의 남고생이다.
지난 7년간 함께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배웠지만, 소년과 소녀의 스타일은 전혀 달랐다.
'또 가만히 있네.'
소년은 그저 상대방을 보고 있다.
서로가 왼발을 앞에 둔 대칭의 상황. 그 상황에 답답했던 상대방은 앞발을 들어올려 가벼운 돌려차기를 시도했다.
소년은 오히려 등을 돌리며 가볍게 뛰었다. 자연스레 상대의 발차기는 소년의 등을 향하게 되었다
역으로 소년은 그대로 뒤차기를 날려 상대의 얼굴을 차버렸다.
'또 끝났네…'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는 부분이나 적은 득점을 내준다. 그리고 본인은 큰 득점을 노린다.
소녀는 체력차이와 기술의 차이로 상대방을 누르는 편이라 둘의 스타일은 대조적이었다.
대련 인사를 마친 소년은 소녀의 곁으로 왔다.
"시하 너는 상대방이 앞발차기 하는 걸 어떻게 대응하는거야?"
자신도 상대의 공격을 알 수는 있다. 하지만 소년처럼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건 힘들었다.
"선택지를 세우고 전체를 본다 해야하나…"
"전체를 본다고?"
"앞발차기를 할 때는 상체가 뒤로 쏠려."
"아."
이상적인 앞발차기 자세에서는 자연스럽게 상체는 뒤로 넘어가면서 발을 뻗게 된다.
준비동작을 보고 대응한다 생각하면 되려나. 소녀는 소년의 말을 적당히 가공해 받아들였다.
"방금은 발이 대칭이었지? 그럼 반 발을 내밀고 득점을 노리던가, 머리를 노리던가, 앞발차기를 하던가. 페이크를 주던가 크게 네 가지겠지."
"그렇지."
"그럼 반 발을 내밀 때 돌려차기를 박고, 머리를 노리면 반 걸음 빼서 회피, 앞발차기는 방금처럼. 페이크는 무게중심이 이동하지 않으니까 침착하게 낚이지만 않으면 돼."
"하아… 말은 그게 쉬운데. 그걸 일일이 어떻게 생각해."
"미리 생각하면 쉬워. 너도 해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소년.
따라할 수 있으면 따라하고 싶다. 자신은 몇번이나 연습한 발차기로 겨우겨우 이기는 느낌이 강한데, 소년의 방식은 정말 깔끔하기 때문이다.
"나도 너처럼 재능이 있으면 좋겠다~"
"재능은 오히려 너가 더 뛰어나지."
소년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말.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묻게되었다.
"무슨 소리야. 재능이라니."
"너 가끔 연습할 때 보면 근육의 부자연스러움이라던가 그런걸 느껴서 약간씩 자세를 고치지 않아?"
"그건 당연한건데. 자세를 천천히 움직이다보면 그런건 바로 느껴지잖아."
"그걸 겨우 몇 번만에 느낄 수 있는게 재능이야. 너는 연습 두세번만에 자세가 완벽해지잖아. 나는 그거 안 돼."
재능충이라니.
누구 입에서 나올 소린가?
이런 생각이 드는 소녀였다.
둘은 잠시간 말이 없어졌다.
이윽고 소년의 한마디.
"나, 선생님이 되어보려고."
"갑자기? 운동은 그만두려고?"
소녀는 어릴 적, 자신이 소년에게 태권도를 권유하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 대화가 반대가 된 느낌이다.
"나는 딱 취미반에서 관두는 게 맞아. 너같은 천재가 생각까지 하게 되면 나는 절대 못 이겨."
"천재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가 천재면 넌?"
"그냥 사람 관찰 좋아하는 일반인."
"웃기고 앉았어. 갑자기 선생님은 왜."
매번 다른 친구들이 맞으면 상급생이든 아니든 인원수에 상관없이 패고 다니던 주제에 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는다.
상대가 항상 더 많아서 특수폭행에 걸린다느니 뭐니 어려운 소리를 하며 법정까지 간 적은 없었다. 근데 맞은 걸 보면 항상 상대가 손해였다.
분명 자기 몸을 지키라고 도장에 끌고 왔는데, 소년은 오히려 다른 사람 맞는걸 보면 참을 수 없는 사람이 되다니… 소녀로서는 여러모로 감회가 새로웠다.
"교사가 되면 나같은 애는 좀 덜 생기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
또 그 얼굴.
힘없이 웃는 소년은 가끔 무서운 얼굴을 한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
그런 표정을 할 때는 꼭 무거운 이야기였다.
그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이제 하던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불량배들한테 시비걸릴 행동도 지양하려고."
"이제 철 좀 드셨네. 그래도 너가 운동 계속하면 국가 대표도 되지 않을까?"
"국가 대표는 오히려 너가 해야지."
"내가?"
"매번 상대 머리를 부수고 다니면서 자각이…"
소녀는 생각했다.
이 녀석은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을까.
예전에는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도 없을만큼 조용했었다. 소녀의 말에도 그저 수긍할 뿐이었던 소년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그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녀는 그 시점에 대해 짐작하고 있는 것이 있다.
"역시나 그 여왕님이 덕분인가."
"갑자기 게임 이야기는 왜 나와."
"너 그 게임하고나서 바뀐것같아."
"그런가."
"여왕님이 너무 아름다우셔서 그만!."
"그만 좀 해라…"
학교와 도장을 제외하면 그 게임만 하는데다, 공략같은걸 차곡차곡 적어두는 것까지 소녀는 알고 있다.
그 잔인한 여왕님의 어디가 좋은지는 도통 모르겠지만, 나는 안 보이는 그런게 있겠지. 소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꿈이 생겨서 다행이네~"
"……"
"부끄럽냐? 누님은 시하가 자랑스러워요~"
"하지말라고 진짜."
"흐즈믈르그 즌쯔."
"진짜 이게!"
소녀는... 소년이 가장 힘든 시기를 이겨내게 해준 버팀목 역할을 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이제 그 역할을 넘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 에코니아에 떨어지면 정말 잘 살거같아."
"그거 나 죽으라고 하는 소리지?"
"무슨 소리야~ 진심인데."
"포기할래…"
"흐즈믈르그 즌쯔."
정말이지 그 게임이 소년을 바꾼걸까.
요즘들어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누가 들을까봐 입밖으로 못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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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진열장에서 그 시절의 메달을 꺼내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립네...
그 바보는 나에게 트로피와 메달을 전부 넘겼다. 참 뜬금없었지만 그 녀석은 대학도 잘 갔고, 임용 시험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반면에 난 항상 고민했다.
그리고 고등학생 첫 경기부터 보였다.
정말 미리 생각하니까 보이는구나.
시하는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세상을 봤구나.
다른 선수들도 대부분 공감해준다.
어느 순간부터 눈이 뜨였다고.
하지만 아홉 살부터 이랬던 친구가 있었어요.
라는 말은 전혀 믿어주지 않는다.
"아주머니, 보고 싶다."
아주머니는 정말 친절하고 이해심이 넘치시는 분이셨다. 그런 분이 있었기에 그 녀석이 잘 큰 것 아닐까.
아주머니가 돌아가신 직후에는 시하가 자살이라도 할까 무서웠다. 진정시킨다고 대학 동기들이랑 진을 뺀 기억이 난다.
계속 불안한 생각이 계속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여왕님이라.
정말 오랜만에 생각났다.
그 녀석. 정말로 이세계라도 갔을까.
요즘 그런 소설 자주 나오잖아.
라는 바보같은 생각에 이른 순간.
나는 생각을 포기했다.
"연습이나 해야지."
사라진 시하를 찾을 수는 없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건 기도 뿐이다.
그 바보가 어디서든 잘 살아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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