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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17화 (17/215)

〈 17화 〉 EP08. 실수해도 괜찮아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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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8.실수해도 괜찮아요. (1)

솔직히, 힘들어 죽겠다.

온몸에 고통과 피로가 퍼지고 있다.

누워서 쉬고 싶다.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꼭 한마디를 해야 한다.

이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인지시켜야 한다.

알량한 정의감 하나로 세상만사가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어. 하지만 그럴 리가 없잖아.

지금 알렉산더는 내 뒤에서 멍하게 서 있다.

“뭐하시는 겁니까? 못 들었어요?”

“네?”

무릎을 꿇어본 적이 없나?

왕 앞에서 말곤 그럴 일이 없긴 하겠다.

“제 앞으로 와요.”

원래라면 내가 뒤돌겠는데, 진짜 힘이 풀려서 뒤돌 수조차 없다. 지난 반년간 운동도 일절 끊은 채로 집에 있었으니까, 이럴 수밖에 없나.

알렉산더는 터벅터벅 내 앞으로 걸어왔다.

“헤르만, 아샤가 들고 다니는 약 있어요?”

“네,”

“효과는 뭐에요?”

“피로 완화와 마력통 개선입니다.”

“저랑 알렉산더에게 하나씩 주시고, 기디언의 상태도 봐주세요.”

나는 헤르만에게 약을 받았다. 파란색 작은 환약이었다. 그냥 물 없이 먹는 것 같던데.

약을 먹자마자 약효가 퍼지면서 온몸의 고통을 약간 완화해줬다. 마력과 관련 있는 건가.

“무릎 꿇고 앉아요.”

알렉산더는 내 말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자세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제가 왜 이러는지 아시겠습니까?”

“그게….”

약간 생각을 하는 바보.

“제가 질 뻔해서….”

“제가 그딴 이유로 열 받았을 것 같아요?”

나는 결과를 물어본 게 아니다.

재앙에게 질 수도 있는 건 당연하다.

게임에서도 해봐야 잡몹이라면서 멍청하게 헤딩하다가 죽는 뉴비가 얼마나 많았는데.

그 쓰레기같은 게임은 스토리 게임의 탈을 써놓고선 전투가 더러웠다. 패턴 하나 잘못 피하거나 자원을 잘못 쓰면 공략이 꼬여버린다.

당장에 지금도 왕자보다 강할 헤르만이 상성 차이로 밀려 질 뻔했다. 왕자와 같이 있어서 겨우 대치상황이었던 거지.

하지만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봤을까?

자신 한 명의 목숨이 주변 여러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되는지는 알까?

“죽을 수도 있었다고요? 자각은 있어요?”

“네.”

“왕자가 죽었다고 왕도 신문에 나고 싶어요?”

고개를 가로젓는 왕자.

“도대체 왜 왔어요?”

“판타스매터를 잡는 건 왕족의 의무이고, 저와 기디언이 둘이서 잡을 수 있는 재앙이니까요.”

“그래서 당연한 일이었다?”

“네…”

자신이 왜 혼이 나는지 모르는 눈치다.

“재앙을 때려잡는 것만 왕족의 의무에요?”

“아뇨.”

“그걸 알면서도 왔어요?”

“그게… 저는 이런 것 말곤 없으니까….”

역시나.

집무 면에서 아셰리아에게 밀리니까.

이런 쪽으로 도망친 것이다.

왕좌라는 책임도 동생이 더 잘 어울린다 생각해서. 아카데미로 도망친 것이다.

이 바보는 자신의 장점을 모른다.

“죽음을 각오한다고 백성이 평안해져요?”

“약간은요.”

“오히려 평안하지 못하게 되는데요?”

“네?”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민폐인지는 아나?

게임에서도 이방인의 도움 없이는 다른 병사를 다 잃어놓고 울먹거린다. 게임에서 기디언이 없는 걸 보면, 여기서 죽었을 가능성도 있다.

내가 전이된 스노우볼이 굴러갔을 뿐이다.

그 기디언은 헤르만의 부축을 받아 우리 근처로 오고 있다. 충격으로 기절만 했었나 보다. 몸의 불편함은 없어 보인다.

거기다 위병이 요청한 것으로 보이는 증원도 멀리서 오고 있었다. 기사단인 것 같았다.

원래 이런 상황에서 하운드 한 마리를 잡기 위해서는 기사 한 파티만 보내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40명 정도가 오고 있다.

나는 기사단 따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당신이 죽었다면. 당장 기디언부터 죽어요?”

얼굴이 굳는다.

“당신을 보내준 위병들은 어떻게 되죠? 아랫사람들이 왕자가 멋대로 나가는 걸 막을 수도 없는데, 문책이나 당하고 직장부터 잃겠네요. 그럼 그 가족들은 당분간 수입도 없을 거고요.”

“아바마마가… 그렇지는…”

역시나 아버지를 존경하는구나.

새삼 느낀다.

하지만.

“사실 그 정도로 끝나면 다행입니다. 당신이 국왕 폐하께 그 정도 가치밖에 없는 사람 같아요? 사람은 자신의 소중한 가치 앞에서는 이성적이지 못해요. 국왕님도 결국엔 사람이고요?”

“……”

“당신을 찾는다고 기사들도 왔네요. 저와 헤르만이 먼저 와서 망정이지. 원래대로라면 당신과 기디언의 시체나 보게 되겠죠. 아니, 다 먹혀서 시체조차도 없겠죠.”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물론 겁주는 거다.

죽어도 기디언만 죽었겠지.

알렉산더는 게임에 나오니까.

기사들은 멍하게 우리를 보고 있다.

특히 왕자를 혼내는 어떤 불경한 남자를.

그때 갑자기 기디언이 소리쳤다.

“선생님, 말씀이 심하십니다!”

이때까지 들은 중에 가장 목소리가 컸다.

근데 너가 잘한 게 뭐 있는데.

“기디언, 당신은 잘한 게 뭐 있다고 소리를 질러요? 둘 다 지금은 상식적인 절차조차 못 지킨 멍청이들이에요!”

“그래도, 그래도 백성들은…!”

“백성! 인간! 소중하죠! 그런데 말이죠. 오늘 죽은 백성들의 수천, 수만 배를 짊어지실 일국의 왕자와 공작가의 도련님. 그 두 분이 다른 병사들의 지원도 없이 온 게 잘한 일이에요?”

기디언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와서 졌으면 그래, 희생이겠죠! 그런데 그 만반의 준비가 단둘이서, 개죽음을 당할 리스크를 지고 온 거예요?”

기디언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다.

“기디언. 뭐가 실수인지 알고 있는데도, 왕자님을 말리지 않은 건 아니겠죠? 백성이 소중하다는 말에 당신 생각을 못 말한 건가요?”

“왕자를 지키고 싶다 하는 인간이, 왕자 뒤에서 숨은 채로, 자기 생각과 결정을 전~부 맡긴 채로, 졸졸 따라다니기만 하면, 그건 그저 자신이 책임지기 싫어서 전부 떠넘긴 겁니다.”

알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소극적인 성격에 따라 왔겠지.

“원래의 하운드라면 기사 한 파티만 와도 되겠죠. 그런데 저 기사들은 왜 저렇게 많이 왔을까요. 왕자님 구하려고 죄다 온 겁니다!”

왕자도 고개를 푹 숙인 상태다.

“저번에 이런 일이 있었을 때, 그냥 잘했다고 하면서 넘어갔어요? 그랬다면 제가 기사단이든! 군부든! 알현실이든! 죽는 한이 있어도 죄다 찾아가서 관련자들 다 엎어버릴 거에요.”

진심이다.

누군가는 이 아이들을 혼냈어야 한다.

결과만 놓고 판단하는 건 어른들 사이의 일.

결과에 책임지는 것은 어른들이 할 일이다.

아이들은 커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과정에서 배울 기회가 남아있는 것이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알렉산더의 눈앞에서 눈높이를 맞췄다.

내 그림자에 가려진 눈동자가 떨리고 있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는 큰 생각은 하지 않았겠지.

자신이 무엇을 못하는지 알기에, 열등감을 피하려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본인이 할 수 있는 것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아마 오늘 기디언을 잃고 꺾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점점 자신을 몰아가다 도망친 끝에 미래의 너가 되었겠지.

하지만.

“알아두세요. 저는, 당신들이 저 쓰레기를 잡지 못한 것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에요.”

알렉산더.

“도대체 왕족은 당신에게 뭔가요?”

이 정도 혼났다고.

“도대체 왕족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도대체 왕족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요?”

내가 아무리 게임 속 네가 싫었다 해도.

“다음 수업에, 물어볼 거에요.”

그 게임에서 ‘메인’은 결국 너였다.

이 정도는 이겨내야하는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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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우리는 도망칠 수 있었던 생존자들을 추려 기사단과 함께 왕도로 돌아오는 중이다.

기사단은 토벌에서 돌아온 기사단장의 병력 중 일부가 소식을 듣자마자 온 것이라고 한다.

원래라면 쉬어야 했을 텐데 고생이다.

알렉산더와 기디언은 침울한 상태.

헤르만은 분위기를 살피면서 가만히.

나는 첫 마력 사용의 후유증 때문인지, 몸이 굳어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거기에 중세의 구린 마차에 타니 죽을 맛이다.

마을의 생존자는 단 열 명.

3명 정도는 왕도에 있었기에 재앙을 회피.

공터에 누워있던 사람들도 세 명만 살았다.

나머지 네 명은 아이였다.

원래 마을에 살던 사람은 대략 50명.

아예 초반부터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칠 수 있었다면 이런 결과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숲속에 채집을 나갔던 주민들과 농사를 짓던 주민들이 분단되어 피해가 더 심했던 것 같다. 한 명씩 먹혀버려서 재앙의 몸이 불어난 게 너무나 큰 결과로 굴러갔다.

한 오누이는 어른들이 몸을 방패 삼아 도망치게 해주었고, 나머지 둘은 지하실에 몰래 숨어있었다. 만약 알렉산더와 기디언이 가지 않았더라면 지하실 쪽도 죽었을 것이다.

알렉산더와 기디언이라도 갔기에 일곱 명이 살았다고 해야 하나. 처참하다.

그나저나 위화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군이 뻔히 순찰을 자주 다니는 마을에서.

군이 자리를 비운 틈에 나타난 판타스매터.

왕도 정문에 운 좋게 있던 왕자가 달려가고.

하필 재앙은 타이밍 나쁘게 포식을 끝낸 상황.

그저 내가 단순히 민감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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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의 자정쯤에 왕궁에 도착했다.

다른 일을 할 새도 없이 그냥 침대에 누웠다.

쑤셔오던 전신이 치유받는 기분.

하지만 머릿속은 그러지 못했다.

피로 물든 마을.

널부러진 가구들.

아이들의 장난감.

오늘 보았던 모든 것이 다시 생각난다.

거기다 알렉산더와 기디언이 죽었다면.

이런 생각까지 떠오른다.

당연하게도.

머릿속의 그 상상은 일러스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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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 필레몬 에우데미아는 재앙을 토벌하고 밤이 되어서야 왕도로 돌아왔다. 오늘 토벌한 재앙은 꽤나 애를 쓰게 하는 놈이었다.

필레몬이 서관에서 병사들과 작별하고 후궁으로 가 쉬려고 하던 찰나,그런 그에게 한 기사의 보고가 들어왔다.

"폐하, 오늘 타라스 마을에서 재앙이 발생했고, 왕자님께 큰 위기가 있었습니다."

"뭣?"

가족을 1순위로 아끼는 그에게 청천벽력같은 보고였다.

"다행히, 왕실 가정교사님과 헤르만 티오리아 경이 재앙을 제압하셨습니다."

"가정교사가?"

"네, 그런데…"

머뭇거리는 기사.

"괜찮네, 말해보게나."

"그게, 왕실 가정교사께서 왕자님과 기디언님께 꽤나 심하게 꾸중을 하신 것 같아…"

"흠."

왕실 가정교사 이시하.

원래라면 필레몬은 화부터 냈을 것이다.

자신의 가족을 건들인 자니까.

하지만 잠시 생각했다.

딸인 아셰리아가 관심을 보인 인물.

루시아는 그런 딸과 자신을 믿으라 했다.

일전 참관수업도 어찌보면 자신의 아들을 위해 벌인 일인 것 같다고 수뇌부 사이에서는 이야기가 나왔던 상황.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일의 전말을 더 알아보지 않은 채 그를 힐난할 수는 없었다.

"왕자는 동관에 있는가?"

"네, 폐하께서 귀환하시기 30분 정도 전에 도착하셨습니다."

"고맙네."

국왕은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몸은 너무나 고단하다.하지만 자신의 아들이 오늘 위험에 쳐했었고, 왕실 가정교사에게 큰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아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

깨어 있다면 이야기를 나누고, 수면 중이라면 후궁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동관으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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