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18화 (18/215)

〈 18화 〉 EP08. 실수해도 괜찮아요. (2)

* * *

EP08.실수해도 괜찮아요. (2)

요즘 들어 꿈을 자주 꾸네.

또 어머니와 걷는 꿈이다.

꿈에서라도 자주 뵈니 반갑다.

어린아이인 나는 어머니와 함께 시장의 벤치에 앉아 무표정하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이때는…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그 소굴을 나와 별거를 시작했을 무렵, 아마 처음 시장에 왔을 때다.

‘그 사람’은 이혼소송을 당한 뒤 몇 번 찾아오긴 했다. 하지만 경찰신고를 당한 뒤로는 접근금지 명령을 받아 우리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어린 나와 비슷한 여자아이, 그 부모님.

손을 잡고 함께 걷고 있다.

여자아이는 어딘가를 손으로 가리켰다.

인형뽑기 기계였다.

기계 앞에는 어떤 커플이 한창 뽑기 중이다.

여자아이의 가족은 기계 앞으로 갔다.

기계 앞에서 커플이 여아에게 인형을 주었다.

부모는 자신들이 뽑는다며 인형을 마다했다.

커플은 사양하지 말라며 인형을 결국엔 줬다.

여자아이는 인형을 받고 활짝 웃었다.

“아,”

내 옛날 이름이다. 오랜만이네.

“무슨 생각이 드니.”

“가증스러워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니?”

나는 저 때 정말 삐뚤어진 아이였지.

책은 많이 읽어서 쓰는 단어는 고급스럽네.

“엄마와 나는 도움받지 못했잖아요.”

…….

“그렇게까지 큰 소리가 나는데, 사람들은 전부 우리를 무시했잖아요. 사람들은 가식적이에요.”

지금은 안다.

이웃이 친절하긴 했지만, ‘그 사람’은 피했다.

그만큼 ‘그 사람’이 미친 짓을 했었다.

“결국, 정말로 힘든 일은 도움받지 못해요.”

“그렇지.”

어머니는 잠시 생각에 빠지셨다.

“그래도 저 사람들을 미워하진 말아라.”

“왜요?”

“정말 미워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지 않니?”

어린 나는 어머니를 보며 말문이 막혔다.

“아, 너의 마음속에는 엄청 큰불이 있어.”

“불이요?”

저런 말도 하셨었나. 불이라니.

“마음속에 있는걸 어디로, 어떻게 향할지. 항상 고민하고 항상 신중히 하렴. 여러 번 생각해.”

“…….”

“저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간단다. 저 아이가 너처럼은 되지 않게 해주렴.”

어린 나는 뽑기 기계 앞의 아이를 보았다.

감사합니다, 커플에게 배꼽 인사를 하고 있다.

“제가, 할 수 있어요?”

“그럼,.”

마지막은 노이즈가 낀 듯, 들리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거겠지.

이제 갈까, 하며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간다.

내 시야에서 모자는 점점 멀어져갔다.

자연스럽게 시야 한구석.

시장에 달린 전자시계가 보인다.

Mon. 11:58. AM.

음.

뭐지.

잊어버린 게 있는 것 같다.

.

.

나는 이불 속이다.

혹시 모르니 벽에 붙은 시계를 본다.

열두 시다.

오늘은? 월요일.

큰일 났다.

늦잠 자버렸다.

‘왕실 가정교사, 수업 땡땡이 논란– 파문­’ 이라는 표지가 적힌 왕도 신문이 떠오른다.

수업이 있는 날이다.

10시에 시작하는 수업인데 12시다. 망했다.

나는 튀듯이 침대에서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런데.

툭.

내 허벅지에 접은 물수건 하나가 떨어진다.

“일어나셨나요?”

은방울 같은 목소리.

“아?”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안녕하세요…?”

왜 아셰리아 공주님과는 항상 이런 구도일까. 혼절했다가 일어나면 왼편에 앉아계신…

“오라버님과 기디언님의 몸살이 심하다고 하셔서 수업이 취소되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방문하니 열이 너무 많이 나시는 듯해서.”

“아…, 감사합니다.”

아픈 것 치곤 몸이 개운하다.

오히려 더 편해진 기분도 난다.

“식사. 왔습니다.”

아샤가 방으로 들어왔다.

식사로 가져온 건 스프.

“아, 고마워요. 아샤.”

“웬만하면 고마울 일이 없으면 좋겠는데요.”

이 귀차니스트. 아픈 사람한테도…

그런데 공주님이 무언가 나를 빤히 보고 있다.

“저기 공주님.”

“네?”

“무슨 일 있나요? 왜 그렇게 빤히….”

“음.”

공주는 잠시 생각했다. 말할지말지 고민하는 모양세다.

“혹시 마법이라도 쓰셨나요?”

“어제, 무의식적으로? 쓴 것 같아요.”

정말 얼떨결에 쓰긴 했지. 아직도 그 괴물을 어떻게 죽였나 실감이 안 든다.

그런데 어떻게 아신걸까. 뻗은 걸 보고?

“창문을 열겠습니다. 한번 써보실래요?”

연습이라도 해보라는 걸까.

공주님이 봐주신다면 나야 좋다.

게임에서 ‘아셰리아 여왕’의 마법도 엄청났지.

마법을 아는 사람에게 검증받을 기회다.

“그런데 쓰는 방법을 책으로만 봐서요.”

“물 속성으로, 주문은 알려드릴게요.”

공주님이 직접 내 방의 큰 창문이 열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은 뒤, 공주님이 시키는 대로 손을 허공에 댄 채 주문을 외웠다.

“물을 관장하는 동방의 용이여, 저의 손에 물방울이 맺히게 해주세요. 워터 볼?”

게임이었으면 클릭 한 번에 될 초급마법이다.

그나저나 주문을 외우다니. 쪽팔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어제의 그 청량한 기운이 내 몸에 돌더니 손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얼른 잡생각을 지우려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동그란 물방울을 상상했다.

일단 크게 해볼까?

해봐야 얼마나 크겠어.

물방울, 물방울, 물방울, 물방울…

“에에엑?”

아샤의 이상한 소리.

그 소리에 나도 실눈을 살짝 떴다.

내 손에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근데 뭔가 이상한데?

물방울이 좀 크다? 많이 크다?

“으엑?”

나도 이상한 소릴 냈다.

물방울 지름은 거의 내 상반신만 했다.

“선생님, 날려요. 날려버려요.”

무언가 힘내라는 듯이 말하는 공주님.

이 상황에도 침착하다니 대단하다. 사실 그냥 무표정이라 티가 잘 안 나는 거지만.

머릿속으로 물방울이 날아가는 상상을 했다.

일단 무서우니까 좀 빠르게. 대포처럼?

펑!

쨍그랑!

열린 창문이 아닌 곳으로 날려버렸다.

… 나는 유리창을 깨먹었다.

.

“내가 정말 못 살아.”

아샤는 아들을 둔 어머니처럼 말하면서 창문의 잔해를 치운 뒤, 새로운 창으로 갈아주고 있다.

… 다 큰 어른이 창문을 깨 먹다니.

그래도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자괴감에 정신을 못 차리는 중.

“나름대로 억제가 붙은 주문이었는데요. 자연마력 소질은 좋으신 것 같습니다. 힘내서 제어 수련을 하시면 잘 하실 거에요….”

공주님은 나름대로 칭찬을 하고 있다.

하지만 표정은 영 좋지 않네.

어딘가 실망한 기색, 풀이 죽었을 때의 어조다.

알현실에서의 그 느낌이다.

내가 창문을 깨서 그런가.

자괴감이 계속해서 쌓여간다.

음.

이왕 수업도 취소됐으니까 거기나 가볼까.

꿈 생각도 나다 보니, 한번 가보고 싶다.

“제가 갈 곳이 있었는데, 잠시 다녀올게요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올라갔다.

무섭다.

“네…. 다녀오세요.”

… 창문을 깨서 저런 건 아닌 듯한데….

나는 아셰리아 공주님과 아샤를 남겨둔 채로.

마법서 개론을 챙겨서 급하게 방을 나갔다.

.

그렇게 나온 나는 왕도의 한 카페에 도착.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차와 디저트를 시켰다.

카페는 사거리 모퉁이에 있는데, 사거리 중앙에 분수가 하나 설치되어 있다. 마법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나는 어디까지나 수업을 준비하러 온 거다.

절대로 도망친 건 아니다.

정말로.

“그래서 도망치신 거죠?”

“아뇨, 엄연히 수업 준비하러 온 겁니다.”

왕성을 나선 순간 헤르만이 따라 붙어있었다.

그 뒤로 계속 쫓아오며 날 놀리고 있다.

“차랑 와플을 시켜놓고 그러셔도…”

“어허”

그런데 헤르만도 어제 무리하지 않았나?

“몸은 괜찮아요?”

“교사님보다야 훨씬 팔팔하죠. 어제 그 정도로는 괜찮다고요.”

뭐 괜찮으면 다행이지.

나는 가지고 온 마법서를 폈다.

“그래서 교사님, 여긴 왜 오신거에요?”

“수업준비라니까요?”

“굳이 나와서 하실 필요 없잖아요? 남자만 둘이서 카페에 와있는 게 정상은 아니잖아.”

혼자 오려 했는데 멋대로 따라오고선.

그리고 남자가 카페 오는 게 어때서.

그거 성차별이야.

“활발한 거리도 아닌데 여긴 왜 오셨대.”

“확인할 게 있어서요?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으니까, 자연 마법 쓰는 것 좀 알려주세요.”

“에엑, 귀찮은데.”

아샤랑 남매 아니랄까봐.

남매가 쌍으로.

어휴.

이후 나는 헤르만에게 여러 가지 노하우를 배웠다.

마법의 규모나 용도를 정하는 거라던가.

사고에 루틴을 만들어 영창을 생략한다던가.

그래도 연습은 따로 해야할 것 같다.

“저는 심상 마력 적성이 높은 편이라, 자연 마법은 그다지 잘 쓰진 못하지만요.”

“그런 게 있었어요?”

“네. 이건 뭐 상식이에요. 역사적으로? 그렇다고 엄청 못 쓰는 건 아니에요. 과부하가 생길까봐 적당히 사용하는 거죠.”

불친절한 게임.

너무 알려진 것이 적다.

어쩌겠나. 내가 아쉬우니 공부해야지.

그런 와중에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이 나타났다.

아무리 봐도 불량배처럼 입은 세 명이 분수 건너편 길목으로 들어가고 있다.

“저기 왔네.”

“불량배들이요?”

“네.”

홀쭉하고 비열하게 생긴 남자 하나.

키가 2M 조금 안 되는 편에 덩치 큰 남자.

빛바랜 금발에 기가 약한 눈을 한 여자.

나는 게임에서 ‘슬럼가의 지배자 루트’의 핵심 인물을 찾으려고 여기 왔다.

왕도가 넓다 보니 슬럼가 비슷한 건 있다. 자연스럽게 폭력 조직도 몇 개 존재한다.

저 셋 중 홀쭉이는 중요하지 않다.

나머지 중 덩치의 이름은 아모스. 성은 없다.

나이는 지금쯤 열일곱 정도려나.

외모는 미래에서 온 마초 로봇을 닮았다.

17살부터 저랬다니, 피지컬이 대단해.

어릴 적 부모를 잃고 왕도의 슬럼가로 흘러든 그는, 지금쯤 수금만 하며 다니고 있을 것이다.

“헤르만, 여기 여직원에게 저 사람들이 언제 수금하러 오는지 물어봐 주세요.”

“갑자기?”

눈치를 주자 헤르만은 포기하고 일어났다.

그나저나… 외모지상주의는 여기도 있었다.

헤르만이 ‘업무용 스마일’을 펼치자 여직원은 묻지도 않은 정보까지 다 말했다.

“매일. 이 시간에 온대요.”

“그렇구나.”

이 집 밀크티 잘하네.

나는 차를 마시며 불량배들을 관찰했다.

홀쭉이는 카페 정 반대편의 입구에 있는 가게부터 수금을 시작했고, 나머지 둘은 그런 홀쭉이의 뒤를 따라다니기만 했다.

아모스 녀석이 서 있기만 해도 당연히 돈을 뜯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저 덩치를 어떻게 버텨.

“교사님, 혹시 저거 지금 내가 혼자서 조직을 다 잡아야 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맞는데.”

“아?”

순간 망연해지는 헤르만.

근데 너 어제 이후로 엄청 친근하게 군다?

“거짓말인데.”

“그럼 그렇지.”

“확실히 지금은 아니지, 모레 잡으러 갈 거니까. 사법부에 연락해서 왕도 치안본부 사람 몇 명 파견해달라 해요.”

“뭐요?”

헤르만은 어이가 없는 표정.

왕도 치안본부는 사법부에서 관리하는 경찰 비슷한 부서다. 왕도 내에서의 범죄를 담당한다.

“아지트 하나 털게 될 수도 있어요. 실적 좀 내게 해준다 하면 좋다고 올건데요 뭐.”

“그건 그렇지,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데.”

“아론 장관님께도 말씀 잘 전해드리고. 정보는 헤르만이 알아냈다고 해주세요.”

사법부 소속이라는 건.

미모스 가문의 관할.

헬창인 경찰을 생각해보았는가.

지금 생각해보아라.

3대 600치게 생긴 그들이 떼로 몰려다닌다.

그것이 왕도 치안본부다.

“교사님, 도대체 그런 건 어떻게 아는 거야.”

“우주에서 온 계시를 통해?”

“뭐?”

의심스럽겠지.

그래도 나름대로 수업준비니까 봐주라.

언젠가는… 말할 수 있으려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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