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19화 (19/215)

〈 19화 〉 EP08. 실수해도 괜찮아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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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8.실수해도 괜찮아요. (3)

수요일.

수업을 위해 교실로 왔다.

학생은 변동이 없다.

알렉산더 왕자, 아셰리아 공주, 기디언, 아샤.

알렉산더와 기디언은 타라스 마을에서의 일이 있다 보니 약간은 기가 죽어있다.

근본적으로 착한 녀석들이라, 그때의 일을 잘 반성하고 있는 것이면 좋겠다.

“첫 수업으로 돌아가 보죠. 우리는 서로 처한 상황이나 추구하는 행복이 죄다 달라요.”

오늘 이 수업은 하나의 준비 작업.

“오늘은 여기서 처한 상황만 봅시다. 마력을 쓰는 사람과 쓸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해봅시다. 마력의 유무에 따라 직업 또한 달라지겠죠.”

알렉산더가 끄덕인다.

수업은 잘 들어주고 있네.

“자연스럽게 받는 보수도 다르겠죠. 마력이 있다면 일반적으로 좀 더 좋은 직종에 있을 수 있으니까요. 둘 다 같은 사람인데 보수가 다르죠. 이건 올바른 일인가요?”

알렉산더는 생각에 잠겼다.

이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마력이 있는 사람들은 그만큼 수련도 했고, 더 특수한 일을 합니다. 그러니 더 많은 보수를 받는 게 아닐까요.”

“좋은 생각입니다. 아셰리아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무표정한 아셰리아 공주님이 말했다.

“애초에 마력을 수련할 수 있는 환경이었는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 제가 왕족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왕족인 건 아니니까요. 출생은 정할 수 없습니다. 마력을 못 쓰는 분들은 운이 나빴던 거죠.”

역시나 똑똑하네.

열 한살이 사회의 부조리를 알고 있다.

그것도 부유한 공주님이.

그나저나 공주님도 분위기가 안 좋아 보인다. 저번 마법 소동부터 계속 저 상태니 걱정되네.

“여기 두 분의 의견은 다르네요. 기디언님과 아샤는 어떻게 생각해요?”

“… 왕자님 의견이 무난하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노력을 부정할 순 없으니까요.”

“난 공주님 편.”

편 가르기, 멈춰! 이 메이드 녀석아!

그래도 기디언은 왕자님 의견을 이유도 없이 따라가진 않았다. 원래 저 정도의 말도 버거워하던 아이다. 따라만 다니지 말라고 한 게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을까.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알렉산더가 물었다.

“제 생각은 나중에 이야기해드릴게요. 그것보다 먼저, 타라스 마을에서 제가 왕자님께 숙제를 내드렸었습니다.”

알렉산더는 이걸 지금 물을 줄은 몰랐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어리둥절하면서도 곤란한 표정.

‘왕족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왕족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요.’

두 질문이 계속해서 저 아이의 마음을 찔렀을 것이다.

“답은 찾으셨나요?”

녀석은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 동안 계속해서 고민했을 것이다.

그런 녀석이니까.

녀석은 고개를 숙인채 아직도 고민하다가.

이후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아직 백성을 위해야 한다는 건 변하지 않았습니다.”

역시나 게임의 주인공답다.

“하지만, 어떤 행동을 해야 저걸 이룰 수 있는지는…”

말을 흐리는 알렉산더.

저번 그 일로 깨달았겠지.

자신의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걸.

“합격입니다.”

“네?”

“나머지 수업은 오늘 야외수업으로 하죠.”

알렉산더의 어리둥절한 표정은 다른 아이들에게도 전염되었다.

“헤르만! 준비한 복장들 들고 와요!”

“내가 조수도 아니고~ 네에~ 네. ”

남매가 쌍으로.

어휴.

.

.

우리는 머리 스타일을 감출 모자를 쓰고, 옷도 하급 귀족들이 입을만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왕성 바깥으로 나와 내가 이틀 전 왔었던 분수 거리에 도착했다.

분수 앞에는 기다란 벤치 하나가 있어서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 앞으로는 직각으로 이어진 두 거리가 보인다.

고작 분수 하나를 사이에 둔 채, 서로 맞닿아 있는 두 거리의 배경은 사뭇 달랐다.

한 곳은 빈민가에 가까운 허름한 상점가, 한 곳은 그와 대비되게 멀쩡히 관리된 상점가.

‘판타지 세계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지.’

대한민국에서 하늘을 찌를듯한 아파트촌과 옛 주택촌이 대비를 이루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아이들을 앉혀두고 허름한 상점가의 첫 가게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가게의 주인은 동양인 느낌이 나는 여성. 가게 안쪽으로는 왕자님과 또래 나이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한 명 있었다.

상점의 메뉴는 밀가루 반죽에 팥을 넣어 만든 동그란 빵이었다. 약간 알이 큰 호두과자에서 호두 무늬만 뺀 느낌. 스무 개 정도가 팔리길 기다리고 있다.

“이거 얼마에요?”

“세 개에 동화 한 장입니다.”

천 원에 세 개라는 느낌인가.

성인 둘. 남자아이 둘에, 여자아이 둘.

나는 대동화 한 장을 꺼냈다.

“여기 지금 있는 것만 포장지 네 개에 나눠서 주세요. 거스름돈은 안 주셔도 됩니다.”

“그래도 거스름돈은…”

“잔돈 챙기기가 귀찮아서요.”

“… 감사합니다.”

동양인 여성은 봉투 네 개에 빵을 나눠 담아 나에게 건네어 주었다.

“수고하세요.”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뭔가 허름한 상점치고는 예의가 좋네.

나는 분수 앞 벤치에 돌아와서 모두에게 적당히 빵을 나누어줬다.

맛은 그냥 팥이 적은 호두과자.

맛있다고는 못 하겠네.

아이들도 맛있어하는 표정은 아니다.

“그래서 제 생각은 지금 말한다 했었죠.”

나는 빵 한 알을 높게 들었다.

“여러분, 이 빵의 모양이 어떻게 보이세요?”

무슨 당연한 걸 묻느냐는 표정들.

“당연히 동그랗죠.”

“네, 여러분들이 어느 위치에 있건 동그랗죠.”

나는 말을 하면서 빵을 죄다 입에 털어 넣었다. 수분기가 적어서 엄청 퍽퍽하네. 물 마시고 싶어.

“선생님, 여기.”

“오. 감사합니다, 아셰리아님.”

오, 역시 관찰력이 좋은 아이.

나는 건네받은 물로 빵을 대강 넘겨버렸다.

이제 나에게 남은 건 네모난 포장지 뿐.

“선생님, 빵 더 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알렉산더 녀석이 빵을 더 주려고 하는데, 제가 빵이 맛있어서 이렇게 먹던 게 아니에요…. 그래도 착하긴 하다.

나는 빵 봉투를 네모나게 접고 평면이 보이도록 했다.

“여러분, 제게 이 봉투는 어떻게 보일까요?”

“네모죠.”

“이렇게 하면요?”

이번엔 빵 봉투의 모서리가 보이도록.

“선으로 보이겠죠.”

“맞아요. 이 순간에도 저와 여러분의 눈에는 각자 다르게 보이죠.”

나는 잠시 말을 쉬었다.

“결국에, 교실에서 알렉산더님과 아셰리아님이 말씀하셨던 두 관점은요. 우리가 지금 빵 봉투를 바라보는 시점과 같아요.”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들이다.

“알렉산더님의 관점으로는 우리 앞의 두 거리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차이를 설명할 수 없어요. 노력만으로 재산의 차이를 설명할 순 없으니까요. 환경은 아주 중요해요.”

“그렇죠….”

알렉산더가 침울하게 대답했다.

자기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닌데 말이야.

확실히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긴 하다.

평소 밝은 모습은 이걸 감추려는 거겠지.

“반면에 아셰리아님의 관점에서는 만약, 가정입니다. 저 허름한 골목에서 노력으로 성공한 천재가 나타났다고 합시다. 운으로만 단정 지을 수는 없는 일이죠. 어렵긴 하겠지만 무작정 불가능한 일은 아니잖아요?”

노력이란 참 신기하지. 운도 크겠지만.

“이 빵 봉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면 최소한 두 번은 돌려 봐야 해요. 그것처럼 우리 삶도 여러 방면에서 살펴야 하는 겁니다.”

알렉산더는 빵 봉투를 유심히 보고 있다.

뚫어버리겠다는 듯이.

동시에 이틀 전 보았던 불량배들이 나타났다. 아모스와 비실이, 그리고 순해 보이는 여성.

같은 조합이었다.

‘타이밍 참 좋게 나타나 주는구만.’

이 정도로 정확할 줄은 몰랐는데.

비실이는 내가 빵을 샀던 가게로 가 수금을 하려 했다. 가게 주인인 여성이 약간 시간을 더 달라는 자세를 취했지만, 비실이는 오히려 여성을 때리기 시작했다.

아모스는 그저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서 있고, 순해 보이는 여성은 고개를 돌린 상태.

알렉산더가 그 모습을 보고 일어났다.

“선생님!”

나에게 허락을 구하는 듯한.

그런 눈으로 날 보고 있다.

“해보실래요?”

“예?”

내가 해보라고 할 줄은 몰랐나 보다.

“기디언님과 같이 가서, 하려는 걸 해보세요.”

알렉산더는 우물쭈물하더니 기디언과 함께 빵 가게로 향했다. 내 옆에서 아셰리아 공주님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선생님, 이건 절대로 틀린 선택지입니다.”

“네, 맞아요. 틀린 선택지죠.”

“그런데 왜….”

“가끔은, 이런 것도 필요한 법이에요.”

“…….”

시선이 따갑다.

공주는 내가 이유를 붙이길 기다리듯 계속해서 보다가, 알렉산더의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실이는 처음에는 약간 어이가 없다는 표정.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귀족가 자제들 같다보니, 비실이는 어디의 악당같이 ‘두고 보자!’라는 대사를 하고 물러났다. 나머지 둘도 그를 따라간다.

알렉산더는 씩씩거리는 표정으로 그 뒤를 보고 있다가 가게 주인 여성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하지만 알렉산더.

진짜 시련은 지금부터란다.

여성을 도움을 받았지만, 알렉산더와의 대화를 꺼리고 있다.

우리의 왕자님은 그런 기색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말을 거는 상태.

곧 터지겠지.

“어차피 저 사람들은 저녁에 또 와요! 그 땐 지금보다 더 심하게 하겠죠. 몇 대 맞고 치울 수 있을 일을 왜 크게…!”

여성은 울분에 받쳐 말을 잇지 못했다.

물론, 도움을 받고 왜 저러냐고 할 수 있다.

저건 예의가 없는 행동이라고.

도와준 사람에게 무슨 말이냐고.

하지만 인간의 도덕은 자신의 이익 안에서 판단되는 법.

저 여인에게는 저것이 당연한 삶이었고,

그 당연함을 한 번 거스른 대가는 너무나 크기에 저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결국, 사람이기에 저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헤르만.”

“네.”

“왕자님과 기디언님에게 여기로 돌아오라고 말해줘, 저 가게 주인분께 적당하게 돈 좀 드려. 오늘 저것들 소탕한다는 것도 알려주고.”

“에휴.”

한숨을 쉬면서도 헤르만은 일하러 갔다.

티오리아 가문, 역시 유능하다.

왕자와 기디언은 풀이 죽은 채로 벤치 앞에 돌아와서는 내 앞에 섰다.

내가 좀 심한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녀석이 아니라면 이러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녀석은 이 정도 고난은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다.

알렉산더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는 잘 하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상황만 보면, 그렇죠.”

고개를 더 숙이는 알렉산더.

하지만 지금 실수하지 않으면 더 클 수 없다.

“알렉산더님. 당신에게는 그래도 가장 큰 장점이 하나 있습니다.”

“네?”

“백성을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마음은 정말 칭찬받아 마땅한 거예요? 마음을 한결같이 유지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요.”

게임의 너는 몇번의 좌절에도 불구하고 마음만큼은 잃지 않았었다. 그러니까 인기 투표에서 1위를 하는 주인공님이셨지.

“그저 이번엔 빵 봉투의 모서리를 못 본 것일 뿐이에요. 그 양아치들이 저 여인에게 보복한다는 사실을 못 보았다. 그뿐인 거에요.”

녀석은 내가 손이 든 빵 봉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빵 봉투를 이리저리 돌리니 눈이 계속 따라가고 있다. 기디언 역시 마찬가지다.

“알렉산더님, 기디언님. 제 나이는 스물셋이고, 당신들은 그 반밖에 안 됩니다. 저에겐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예요.”

“아이에게 실수는 죄가 아니에요. 오히려 실수에서 배우지 못하고 포기하면 죄입니다. 고작 이런 일로 당신의 신념을 포기하고 당신의 선행을 깎아내리려고요?”

알렉산더와 기디언은 고개를 들고 나를 본다.

아직도 눈은 약간 풀린 상태.

“이번에 못 보았다면, 다음에 보도록 노력하세요. 당신이 왕족이라면 더 노력하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그것 말고는 백성에게 보답할 길이 없어요.”

“기디언, 당신은 알렉산더님의 눈이 되세요. 검이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왕자님 옆에 있어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을 목표로 삼는 겁니다.”

아이들의 눈에 약간은 빛이 도는 느낌이다.

아마도, 이 둘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 실수는 어른인 제가 치울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실수에서 눈을 돌리거나 포기하지 마세요. 배울 생각을 하세요.”

나도 실수는 많이 했었으니까.

"만약 무엇을 배워야할 지 모르겠다면, 저에게 물어보세요. 괜찮습니다. 오히려 좋습니다."

“실수해도. 괜찮아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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