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EP12. 결투 준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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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결투 준비. (1)
결투를 신청한 그 날 저녁.
“그래서 선생님, 발람 프라시스 장군에게 결투를 신청했다고요?”
“그런데?”
“뭐가 그런데? 예요!”
나는 프로네시스 공작저로 향하는 마차에서 창밖 구경을 하고 있다. 한나가 타박을 하는 것 같지만 기분 탓 아닐까.
“쉬는 날에는 뭐요? 헤르만 오라버니에게 다 들었어요. 재앙을 찔러 죽였다면서요? 그래서 월요일에 쉬는 건 이해가 됐어! 그런데 그 뒤로 이틀간 슬럼가를 뒤엎어요? 이 인간아!”
어허.
공녀님이 그런 말 쓰시면 안 되죠.
“저기 한나? 진정해…”
“뭘 진정해요! 그래놓고 오늘은 아무리 썩었어도 공작가의 가주, 원수부 제2군 장군 면상에 손수건을 던지셨다고요. 미쳤어요?”
미쳤냐니.
사실 그때 미치진 않았어.
……
그냥 짜증 좀 났을 뿐이지.
“어쩌려고 결투를 걸어요, 결투를! 검도 마법도 없는 세계에서 오셨다면서, 두 주 만에 결투를 건다니. 어이가 없어서.”
어라?
창밖으로 알렉산더가 보인다.
저번에 분수에 갈 때 그 복장.
옆에 검은 머리 여자애가 있는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디였지…
“집중 좀 해요!도대체 어쩔 생각이에요?”
“뭐 어쩌긴, 이겨야지.”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니까 더 짜증 나. 진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도 짜증이 나고.”
너 속마음이 샌다…
그나저나 할 수 있을 것 같다니, 재앙을 잡은 것 때문에 그러나? 하지만 나는 그때 쓴 마법이 뭔지도 모르고 쓸 줄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어느 정도 확신이 있어서 싸움을 걸었다. 아직 가설일 뿐이지만.
“한나, 원소계열 자연 마법을 쓰는 요령을 좀 가르쳐 줄 수 있어?”
“에엑?”
프로네시스 가는 에서 연계성이 짙은 자연 마법을 사용해 상대를 압박한다. 작중 에우데미아 국내에서 자연 마법사용자 중 최강 가문.
“그래도 프라시스 가문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검으로 베어버리는 집안이에요? 글로리아님은 산까지 갈랐다고요. 그런 집안을 상대로 원소 마법을 쓰겠다고요?”
“어허, 자신의 마법에 자부심이 있어야지.”
물론 프로네시스는 심상 마법사용자로 보이는 상대에게는 질 때도 많았다. 심상 마법 자체가 자연법칙을 무시하는 마법이니까.
하지만 나는 게임에서 심상 마법사용자로 보이는 캐릭터들이 어이없게 지는 경우도 많이 보아왔다. 사기처럼 보이는 심상 마력도 약점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심상 마법이라도 만능은 아냐.”
“나… 여기서 17년을 살았는데, 왜 에코니아 생활 2주차 선생님에게 마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들어야 해?”
심상.
자신의 마음속 이미지.
말 그대로 심상에 크게 좌우되는 마법이다 보니, 사용자의 감정이 흔들리거나 이미지가 뚜렷하지 못하면 오히려 독이 될 것이다.
그 전에 나는 하나 확인할 것이 있다. 내가 알현실에서부터 이상하게 생각한 부분.
“그런데 한나, 확실히 프라시스 가문은 에우데미아의 유서 깊은 집안이지?”
“당연하죠. 역사가 천년을 넘었는걸요.”
내가 게임에서 본 프라시스 가문의 인물은 늙은 용병 한 명이 끝이었다. 정말 이상하네. 도대체 프라시스는 왜 망한 걸까….음, 지금 중요한 건 프라시스 가문 자체가 아닌 발람이니까 생각을 돌리자.
용병이 말한 프라시스의 정체성은 ‘올곧은 마음으로 벤다’. 그 용병은 엄청 강했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마법을 전부 베어버린다거나, 원거리에 검기를 쏘아버린다던가… 성격도 정말 ‘이 사람은 무인이다’라는 느낌이 강했지.
그런데 발람은 가문의 정체성에 어울리는 인간도 아닌 것 같은데, 심상 마력을 사용할 수나 있을까? 대비는 하겠지만, 그 돼지가 용병처럼 검기를 날린다 생각하니 상상이 안 간다.
“건국제까지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예법수업하고 남는 시간에 가르쳐 드릴게요. 이 이상은 안 돼요.”
“그거면 충분하지. 압도적 감사!”
“그런 말 쓰지 마요. 식사예절은 거의 다 된 것 같긴 한데… 댄스, 승마, 파티 인사법, 리드…… 선생님, 듣고 있어요?”
아.
예법.
너무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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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나의 예법수업에 더해 원소 마법수업을 연달아 받고선 반쯤 K.O 상태가 되었다.
지금은 겨우 동관 앞에 도착한 상태.
시간은 자정에 가깝다.
체력이 줄어든 게 확실히 체감되네…
예전엔 기초 체력은 어느 정도 되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너무 폐인같이 살았다.
……
어쩔 수 없었던 거지 뭐.
사실 에 온 뒤로 교사 일을 받지 않았다면 그대로 객사했을 거다. 어차피 망할 세계인데 빨리 죽자는 느낌으로 살았겠지.
이렇게 생각하면 루시아 왕비와 아셰리아 공주가 날 지금까지 살게 한 것 아닐까.
그렇다면 아셰리아 여왕은 게임에서도 한번, 지금도 한번 내 목숨을 연명시킨 거나 마찬가지네. 11살에 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다.
그때는 내가 철이 안 들어서, 현실에서 시선을 돌려야만 버틸 수 있었으니까.
“와, 도착!”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오니, 어느새 내 방문 앞에 도착했다. 나는 나를 반기는 침대를 생각하며 손잡이를 돌렸다.
“침대야, 반갑다! …… 엥?”
“이제야 오셨군요, 선생님.”
은근히 가라앉은, 은방울 같은 목소리.
방에는 아셰리아 공주가 내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자신의 눈 색을 닮은 수면용 원피스에 바람막이 정도만 걸친 채로.
당황스럽네. 방금까지 아셰리아 공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만나버리니까.
“공주님, 어쩐 일로 여기 계신가요?”
공주는 내 눈을 계속해서 보고 있다.
유심히 관찰이라도 하는 듯이.
그러고 보면, 루시아 왕비는 아셰리아 공주가 사람을 따르는 걸 본 게 처음이라 했었지. 나는 왜 그녀에게 예외가 된 걸까.
“선생님께서… 발람 장군에게 결투를 신청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소문 정말 빠르네.
하긴 궁내에서 벌어진 일이니까.
왕궁의 사람들 전원이 다 알겠지.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번엔 기디언님 때문입니까?”
“아마도, 그렇네요.”
평소부터 발람이 마음에 안들긴 했다.
하지만 막상 결투를 신청한 건, 아이가 어른에게 이용당하는 기분이라 저지른 게 크다. 이렇게 보면 기디언 때문에 벌어진 일이겠지.
“이번 선택도 저번처럼, 틀린 선택지라는 건 알고 있으신 거죠?”
“일반적으로는 틀린 게 맞아요.”
“그걸 알고도 가정교사 직책을 거셨다고요?”
약간 화가 난 듯해 보인다. 평소와 같은 무표정이지만, 어조가 약간 따지는 듯하다.
물론 목소리가 따지기엔 어울리지 않아서, 무섭게 느껴지진 않는다. 분위기는 무섭지만.
“이길 자신은 있습니다.”
“자신만으로는 다 되지 않아요…”
……
너무 걱정시켰나.
“걱정시켜서 죄송합니다.”
나는 공주 옆에 약간 거리를 둔 채로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루시아 왕비에게 공주를 잘 부탁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어놓고, 그런 내기를 해서는 안 됐다. 이 부분은 분명히 내 잘못이다.
“딱히, 걱정하진 않아요…”
고개를 숙이면서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저렇게 말해도 신빙성은 없다.
공주는 내가 자연 마력 적성이 높은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사실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이다
는 심상 마력의 힘이 더 강하다고 평가되는 세계, 거기다 상대방인 발람은 아무리 썩었더라도 심상 마력을 보유해온 공작 가문. 내가 질 확률이 높은 건 사실이다.
“걱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셰리아 공주님께서 절 신경 써주시다니 감사하네요.”
아셰리아 공주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서 내 쪽을 본다. 나는 곁눈질로만 보고 있는 상황.
“선생님은 어떻게, 그런선택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고를 수 있는 건가요.”
“알현실에서도, 타라스 마을도, 알렉산더 오라버니와 불량배의 건에도, 이번 일에도.”
새삼 공주에게 들어보니, 나는 에 와서 도박수를 엄청나게 저질러댔네.
내가 를 5년 동안 플레이하며 쌓아온 배경 지식은 객관적으로 따져 봐도 많다. 하지만 본편 이전의 시점인 지금을 살기엔 이 정도로 충분하지 않다.
거기다 저 선택들의 실패할 확률과 리스크를 따지고 보면, 확실히 나는 틀린 선택을 해온 것이다. 저런 선택들이 좋은 결과로 끝난 것은 우연이 겹쳤을 뿐이다.
발람의 전과도 몰랐고, 타라스에서 겪은 그 이상한 상태도 몰랐고, 불량배들의 규모가 예상보다 적었던 것도 우연이다.
“글쎄요….”
사실 이런 모습은 나답지 않다. 원래 세계에서의 나는, 오히려 ‘아셰리아 여왕’처럼 현실적인 판단을 더… 숭배했다. 다른 단어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나는 실패가 무서웠다.
물론 현실적인 판단만 추구한 결과, 오히려 더 큰 실패를 한 경험도 많다. 아무리 이성적인 척을 하더라도, 나 역시 결국 흔하디흔한, 불완전한 인간일 뿐이다.
“공주님 말씀대로 제가 정말 무리수만 두긴 했네요. 이 세계에 온 뒤로.”
“그게… 무리수라는 건 아니었어요. 틀린 선택지라 한 것도 선생님의 선택을 비난하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죄송해요.”
“죄송할 일이 아닌걸요. 지금도 가정교사 직을 멋대로 걸어버린 사람이랍니다. 공주님께서 말씀해주셨기에 수락한 가정교사 직인데요.”
“딱히 그렇지는….”
알현실에서도 이랬었지.
모든 일에 소극적인 느낌.
가정교사를 해볼까, 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 것은 공주였다. 아마 공주가 옆에 없었다면 난 가정교사 직을 거절했겠지.
“무리수가 성공해서 다행이지, 하나라도 실패했다면 전 아마 죽었겠죠. 지금 이렇게 공주님과 말도 못 하고 있을 거예요.”
“……”
살면서 실패에서 배운 것도 많긴 하지. 하지만 잃은 것도 분명히 많다. 이곳에 와서는 목숨을 건 선택이 운 좋게 성공했을 뿐, 저쪽이었다면 절대 이런 선택들은 안 했을 거다.
그랬던 내가 이 세계에 와서 변한 걸까. 어쩌다 무리수를 두게 된 걸까. 결과가 좋아 다행이지만 정말 나도 모르겠다.
“가정교사 직을 계속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무리수도 성공시켜야겠네요.”
공주는 말이 없다.
그저 나를 보고 있을 뿐이다.
“나름대로 계획은 있어요. 확언을 드릴 수는 없지만, 아예 생각 없이 이런 건 아니에요.”
내가 저지른 일이지만.
큰 걱정은 안 했으면 좋겠다.
“만약에.”
공주가 입을 열었다.
자연스레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번에 이기신다면, 제가 드리는 부탁을 하나 들어주실래요?”
“부탁…이요?”
“네.”
정말 조심스럽게 말하는 공주.
공주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만약 지더라도, 공주님 부탁이라면 할 수 있는건 다들어드릴게요.”
음.
전이 첫날이 기억난다.
공주가 했던 말을내가비슷하게 하네.
과연 무슨 부탁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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