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EP12. 결투 준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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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결투 준비 (3)
에우데미아 왕국의 강자는 누가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수많은 이름이 오를 것이다. 하지만 ‘최강’을 말한다면, 사람들은 오직 두 명을 거론할 것이다.
국왕 필레몬 에우데미아.
기사단장 어거스트 라코니아.
여기 최강으로서 회자되는 한 인물이 왕성 중앙 정원을 걷고 있다. 기사단장 어거스트 라코니아는 지난 3주간 내리 재앙 토벌에 힘쓰다 지금에서야 귀환했다. 그는 지금 국왕 내외에게 귀환보고를 올리고, 소문의 표류자를 확인하러 가는 길이다.
그런 그에게 주변 관리들이 나누는 대화가 하나하나 들렸으니.
‘에 온 지 보름도 안 된 표류자 왕실 가정교사가 원수부 제2군의 장군 발람 프라시스의 얼굴에 손수건을 던졌다.’
‘그 왕실 가정교사의 고향은 검도 마법도 없는 세상이며, 교사 본인은 전이 당시 본인을 아무런 무력도 없던 학생이라고 소개했다.’
‘그 결투는 다음 주에 치러진다.’
재앙의 위협이 날이 갈수록 드세지는 지금, 표류자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인간이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그였다. 하지만 정작 귀에 들려온 소문들은 자신의 기대를 배신하는 것들뿐이었다.
귀환보고를 하며 들은 표류자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약간의 경계는 필요하지만, 자신의 업무에 충분히 해내고 있으며 유능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는 헤르만 티오리아를 통해 모든 일을 전달받는 수뇌부가 당연히 할 수 있는 판단이다.
하지만 하나 더 공통된 의견이 있었으니, 아무리 하급의 재앙을 이겨낸 표류자라 하더라도 프라시스의 가주를 이기진 못한다는 것.
국왕 내외와 재상, 왕궁부장은 그가 결투에 패배하더라도 가정교사 직위를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어거스트의 생각은 다르다.
발람이 어린 시절 모습만 유지하고 있었더라면 더 강했을 것이고, 지금의 상황에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발람은 도움은커녕 사고만 치고 있으며,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로 책임을 미뤄대는 행동은 이제 이해의 범주를 넘은 상황. 어거스트는 발람 프라시스를 견제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왕 내외가 베푸는 예외는 결투의 의미를 퇴색되게 하며, 오히려 발람의 기세만 키우는 행동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어거스트의 입장에서 표류자는 자신의 주제도 모르는 불나방 한 마리로 보일 뿐. 그는 사고를 가장해 불나방을 저지하겠다 다짐하고 동관으로 향하는 중이다.
그렇게 도착한 동관.
검은 머리의 청년 한 명이 동관 앞마당의 한구석을 달리고 있었다. 어거스트는 무심결에 그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흠.”
평범한 자세로 계속되는 뜀박질. 돌연 청년은 한쪽 무릎을 약간 더 굽혀 자세를 낮추고, 왼팔을 허공에서 휘둘렀다. 그리고 더 빠른 속도로 그 지점을 벗어나 달려나갔다.
어거스트의 눈은 그 행위를 놓치지 않았다. 분명 청년은 자세를 낮춘 순간 온몸에 신체 강화마법을 펼쳤다. 그리고 왼팔을 휘두르는 순간 꽤 두꺼운 마력장벽이 생겨났다.
최강자로 평가되는 어거스트의 눈에 저 마력장벽은 완벽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유리처럼 쉽게 부서져 버리겠지. 하지만 지금은 강도가 중요한 게 아니다.
또다시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간 뜀박질. 이번에도 청년은 자세를 낮추고 왼팔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청년의 입에서는 마법의 주문식이 흘러나오며 오른손에는 전류가 일었다.
어거스트는 자연 마법에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는 특유의 심상 마력을 가지고 최전선에 나서는 유형. 자연 마력 적성도 낮았기에 자연 마법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엄연한 왕국 기사단의 단장. 그의 기사단에는 지원 마법사도 존재한다. 그는 전술적인 부분에서 지시를 내리기 위해 마법의 종류는 숙지해야만 했다.
'호오, 대단하군.'
아마 방금의 그 마법은 디스차지. 전류를 방전시키는 초급마법이다. 그러나 청년의 오른손에 발생한 전류는 초급마법의 위력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저 정도 멀티 캐스팅이라면, 아카데미의 학원장이나 이퀄리아의 마탑주 정도만이 가능한데.’
신체 강화, 마력장벽, 디스차지. 일반적인 마법사는 한 번에 하나의 마법만을 사용한다. 그렇기에 영창 도중인 마법사는 그대로 공격에 노출되기 마련. 저 청년은 어째서인지 세 개의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었다.
거기다 디스차지가 아닌 몇몇 마법은 영창 없이 더 빠르게 발동하는 모습도 보였다.
사실 어거스트는 약간 착각을 하고 있다. 지금 교사가 하고 있는 것은 엄연히 말해 멀티 캐스팅은 아니다. 멀티 캐스팅은 한번의 사고에 여러 마법을 전개하는 것. 지금 이시하가 하고 있는 것과는 그 결이 다르다.
‘왼손의 움직임과 마력장벽, 무릎의 굽힘과 신체 강화를 동기화한 건가! 그리고 남은 사고능력은 다른 마법의 구현에…. 저건 마치 마법사의 수련이 아니라 기사의 수련법이군.’
기사는 언제나 전투의 최전방에 서기 마련. 그들은 항상 자신의 몸을 지킬 마법 정도는 두르고 싸워야만 한다. 그렇기에 최대한 영창의 속도를 높이거나 마법 발동에 필요한 준비시간을 줄이는 훈련을 한다.
하지만 지금 저 청년의 훈련은 그것마저 아득히 뛰어넘은 방식. 겉보기에는 쉬운 수련이지만, 의식적인 훈련을 통해 마법과 행동을 엮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자네, 이름이 뭔가?”
“네?”
몰입을 깬 청년이 어거스트를 돌아보았다.
“아, 이시하라고 합니다.”
“자네가 그 소문의 왕실 가정교사로군. 혹시 원래 있던 세계에서 무술을 배운 적이 있나?”
지금, 어거스트의 머릿속에 불나방으로 각인되어 있던 가정교사는 저 멀리 치워진 지 오래다. 그저 한 명의 무인으로써 성장할법한 이 표류자가 신경 쓰일 뿐이다.
신체와 마법의 동기화.
그를 통해 창출한 사고의 여유.
또다시 이어지는 마법의 멀티캐스팅.
세 요소의 결합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그… 취미반이었습니다만?”
“취미반?”
“그저 취미 수준으로만 가볍게 다니던 도장 정도는 있었습니다.”
“저쪽 세계에는 검이나 마법은 없다고 하지 않았었나?”
“마력 자체가 존재하질 않습니다만, 검도는 예절 비슷한 수준으로 존재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는 가정교사.
‘저쪽 세계를 내가 너무 얕보았군. 그저 취미로 무술을 배웠으며, 마력을 터득한 지 한 달이 채 안 된 자가 저런 수련법을 고안하다니!’
어거스트 라코니아는 또다시 착각에 빠졌다. 사실 왕실 가정교사 이시하가 이런 수련법을 고안하게 된 연유는 무술과 아무 관련이 없다.
그저 헤르만 티오리아의 조언을 ‘루틴이 필요하다’라고 해석했으며, 그에 알맞은 교육 이론을 채택해 고안한 훈련일 뿐이다.
지금 어거스트가 감탄하는 마법과 신체의 동기화는 그저, 훈련법이 그의 자연 마력 재능과 결합하여 생긴 산출물에 불과하다.
“그… 더 말씀하실 게 없으시면, 다른 수련을 계속하겠습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아, 방해해서 미안했네.”
다시 자신만의 시간으로 돌아간 가정교사.
어거스트는 그 모습을 그저 지켜본다.
가정교사는 다른 수련을 시작했다. 그는 땅에 놓여있던 검을 잡더니 매우 느린 자세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상단에서 하단으로.
중단에서 횡으로.
하단에서 상단으로.
매우 천천히.
이시하는 어떤 검술을 기억해내려 한다. 발람에게 대응하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
그는 다시 검을 구석에 두고.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이걸 보고 있는 어거스트 라코니아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역시나 이세계의 수련법이란!’
‘거기다 저것은, 정말이지 그립군. 오히려 교사이기에 기디언에게 배울 수 있었던 건가….’
어거스트 라코니아는 처음의 동기화 훈련과 지금의 검술 훈련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 아마 저 검술의 훈련은, 자신이 쓰기 위함이 아니라 발람의 검술을 대처하기 위한 것. 그게 아니라면 처음 마법의 동기화 훈련을 할 때부터 오른손에 검이 들려 있어야만 했다.
‘이세계의 무술 도장에서는, 모의 전투에서 본 상대의 무술을 스스로 행함으로써 이해하도록 하고, 또 대응하도록 가르치는 건가! 그것도 취미반이라는 곳에서!’
어거스트 라코니아의 마음속에서, 이세계 대한민국의 태권도장과 검도장은 ‘취미반’이라는 이름의 무시무시한 기사 훈련소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약간, 어려움을 겪는 듯하군.’
어거스트는 약간의 희망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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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속 프라시스 용병의 검술. 그것은 시네마틱 영상으로 나왔었다. 정체가 베일에 가려진 그 검사가 느린 배속의 화면 속에서 휘두르는 검. 그 검로에 모든 것이 하나씩 흐트러졌다.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그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보았었지.
지금 굳이 그 동작을 떠올리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일전 재앙을 잡을 때 느꼈던 그 상태. 나 자신을 포함한 세계가 3인칭으로 보이는 듯 변하고, 모든 정보가 시시각각 들어오던 그 느낌. 그 상태의 조건은 혹시 상대의 동작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의심이 들어서이다.
모든 동작에는 경로가 있고, 그에 따라 신체의 모든 부위가 맞춰져 움직이게 되어있다. 게임 속 재앙이나 몬스터는 엄연히 몹에 불과했기에, 몇 번의 트라이 도중에 그 움직임을 자연스레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프라시스의 검술은 내가 게임에서조차 대응해보지 못한 것, 거기다 실력자의 검술. 그에 반해 나는 일반인에 불과하다.
영상으로만 보았던 것을 따라 한다고 해서, 그 검술이 명확하게 재현될 리도 없다. 거기다 나 자신을 관찰할 수도 없고 말이지.
‘근데 저 사람은 왜 계속 보고 있는 거야.’
기사단장. 어거스트 라코니아.
‘부담스럽네. 나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 건가. 재앙 토벌로 바빠서 마주칠 일은 없을 것 같았는데.’
그는 게임 본편 시작 직후 어떤 재앙에 맞서다 죽게 된다. 하지만 엄청난 무인인 것은 틀림없다. 작중 등장한 재앙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평가되는 재앙과 동귀어진했기 때문이다.
그 재앙은 특정 루트의 최종장에 이방인의 앞에 다시 한번 나타나게 되고, 이방인 역시 큰 피해를 받은 뒤에야 격퇴하게 된다.
“자네.”
지켜만 보던 그가 나를 불렀다.
“어려움을 겪는 것 같군.”
네?
“내가 도와주지. 검을 잡아 보게나.”
“아… 네.”
무려 기사단장이 하는 말인데, 냅다 거절하면 예의가 아닐 것 같아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내가 어설프게 검을 잡고 어거스트의 맞은편에 서자, 그는 자신의 허리춤에 있던 검을 검집째 빼냈다. 그리고 검집에서 검이 빠져나오지 않도록 가죽 같은 것으로 엮었다.
“자네가 원하는 수련은 이게 아닌가.”
그는 한 자세를 취했다.
‘아, 그 자세다.’
몇 번이고 돌려보았던 영상의 그 자세.
“그 여장부의 자세를 어깨너머로 자주 보았거든. 이래 봬도 전장에서 같이 구른 적이 많아. 흉내라면 대충 낼 수도 있고.”
여장부?
실종되었다는 글로리아를 말하는 건가.
“처음은 내가 다른 곳에 시범부터 보이지. 그다음부터 자네가 원하듯 천천히 가보자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기사단장은 벽면을 향해 내가 떠올리려 했던 그 검술을 행했다.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향하는 일격.
한 줄기 빛이 튀어나가고, 큰 금을 내버렸다.
지금 내가 느끼는 건 약간의 감격…
영상으로 보기만 하던 검술을 본 고양감.
그리고…
미쳤어요? 갑자기 벽을 부숴?
“자 시작하자고.”
마치 슬로우모션으로 내려오는 검.
그 검에는 엄청난 무게가 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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