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27화 (27/215)

〈 27화 〉 EP13. 결투와 여왕의 소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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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결투와 여왕의 소원. (1)

어머니께.

어머니, 어릴 적 해주셨던 말씀이 요즘 꿈에서 자주 떠오릅니다. 우리가 그 집에서 나오고 나서, 제가 열 살이 되어서였던가요. 시장에서 말씀하신 적이 있었죠.

저 아이가 나처럼은 되지 않게 해달라.

물론 저 말씀을 지킨답시고 도장 친구랑 사고도 많이 쳤죠. 동네 애들 괴롭힌 양아치들 패버리겠다고 설쳐댄 게 기억납니다. 둘이서 어머니 속도 많이 썩였네요. 이건 죄송합니다.

아마 중학교에 다니다가 교사의 길을 걸으면 어머니의 말씀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서 그쪽으로 진로를 정했던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 가시고 나서, 힘들다는 이유로 왜 그 시절 그 말씀을 잊어버렸던 걸까요. 지난 6개월이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저는 지금 이세계에 와있어요. 제가 어릴 때 하던 여왕님이 나오는 그 게임 기억나세요? 믿기진 않지만, 그 여왕님의 어린 시절에 왔어요. 왕실에서 그분을 가르치라고 하네요. 어쩌다 보니 교사의 꿈을 이루어버렸습니다.

교사 일은 할 만해요. 그런데 여기도 멀쩡한 사람 괴롭히는 인간들은 많습니다. 가끔 마음속에 화가 치밀어요.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여기와서는 저지른 일이 꽤 많습니다. 저쪽에서는 잘 되던 조절이 안되요.

내일은 귀족이랑 결투까지 하게 되었어요. 그 인간처럼 애를 수단으로 대하더라고요. 참을 수가 있어야죠. 언제나처럼 이길 거니까, 걱정은 하지 마세요.

여기에서 편지를 쓴다고 그곳에 닿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읽어주셨으면 해요.

이시하 올림.

그 날이 와버렸다.

오늘 날씨는 맑음.

두 주 동안 열심히 해왔다.

내가 엄청난 강자가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는 모두 했다.

결투 장소는 서관 외부의 기사 수련장. 튼튼한 지반 위에 굵지 않은 모래가 뒤덮인, 학교 운동장과 비슷한 곳이다.

수련장의 주변을 두르듯 단상이 깔려있는데, 그곳에는 관중들이 있었다. 발람 프라시스는 관중은 많아야 하지 않겠냐며 업무량이 적은 토요일로 결투 일자를 변경하자고 했었다. 내 입장에선 수련 시간이 늘어나는 일이라 나쁘지 않은 제안이기에 수락했었지.

그래서 그런지 관중들이 정말이지 많다. 평소 지나가며 보던 관리들을 시작으로 못보던 귀족들까지 와있다. 웬일로 재앙 출현 정보조차 없는 날이었나 보다.

거기다 낯익은 저 사람들은 도대체 왜 와있는지 모르겠다. 다른 판타지에서 보면 기겁할 조합. 녹색 머리에 겉보기엔 키가 크고 젊은 엘프 여성과 허리까지 오는 수염이 인상적인 드워프 한 명이 함께 서 있다. 아레트 아카데미의 교장, 교감 부부다.

아카데미의 최대 후원자는 에우데미아 왕실이지만, 전통적으로 자유로운 학풍을 위해 내정에는 간섭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저 두 사람이 사실상 아카데미의 수장이다.

“저기 헤르만, 저분들은 왜 오셨대?”

“아카데미 교장과 교감이요? 엊그제 한나가 도움을 청할 일이 있다고 해서 불렀어요.”

“도대체 왜?”

“그건 형님이 더 잘 아시지 않을까요.”

내가 왜?

억지로 까기, 멈춰!

“결투할 때 최대한 적은 인원수로 주변에 충격흡수 결계를 치기로 했대요. 한나와 재상님 둘로는 벅차서 두 분을 불렀대요.”

음, 썩었어도 프라시스의 검기가 빠져나가면 관중이 다칠 수 있다. 그런 걸 우려한 건가?

그럼 나 때문은 아니잖아.

“양측 결투의 당사자들과 주요 입회인은 수련장으로 내려오시길 바랍니다.”

오늘 심판을 맡은 재상님이다.

주요 입회인은 나와 발람의 감독 비슷한 존재로, 나는 헤르만에게 부탁했다. 발람의 입회인은 일전 탄원식에 함께 왔던 그 귀족이다.

“그럼 다녀올게.”

“건투를 빕니다.”

나는 수련장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땅의 재질을 확인했다. 미끄러지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입자의 모래. 나쁘지 않아.

경기장의 정 중앙으로 걷기 시작하니…

수많은 시선이 느껴진다.

호의적인 시선과 적대적인 시선.

그저 흥미로운 것을 쳐다보는 시선.

결과에 따라 벌어질 일을 상상하는 시선.

내가 아는 사람들도 많다.

국왕 내외. 카일 왕궁부장을 시작한 중진.

내 수련을 도와준 기사단장과 한나.

손을 꽉 쥐고 있는 알렉산더.

그 옆에서 걱정스레 보는 기디언.

얼굴은 앞을 본채 곁눈질로 확인해갔다.

마지막에는 아셰리아 공주가 보였다.

오늘따라 약간 더 간절한 느낌.

무표정에서 새어 나오는 느낌이 아니다.

아마도 그것 때문이겠지.

과연 저 아이가 가진 소원은 뭘까.

만약 지더라도 이야기는 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재상님의 옆에 도착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상대방이 서 있다.

“호오, 도망치지 않고 온 것은 인정해주마!”

“도망칠 이유가 없는데 말이죠.”

“하하, 잠시 후에도 그러나 보자.”

원수부의 제2군 장군. 발람 프라시스.

흙빛이라 해야 할 얼굴색.

통통하다고 보기엔 과한 체형.

표독스럽고 인색해 보이는 관상.

겉모습으론 장군인 것을 믿기 힘들다.

“두 공작은 나를 보라. 나는 이 자리에서 국왕 폐하의 대리로서 심판을 맡았다.”

하지만 이 에서의 대인전은 외형만 보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 결국, 자연 마력이든 심상 마력이든, 인간의 내면이 중요한 법.

“결투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신념을 보이기 위한 것일 뿐, 상대의 목숨을 위험케 할 정도의 공격은 금지한다.”

게임에서는 자연 마력 적성을 이성이라 표현했었지, 나는 과연 이성적인가, 그렇기에 내 자연 마력 적성이 높은가. 전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의구심이 들지만, 지금은 내려놓자.

심상 마력으로 보이는 기술을 쓰던 인물들. 그들은 특별한 힘을 휘두르지만, 자신의 마음이 꺾여버리고 나서는 힘을 잃고 몰락했었다.

“이 결투는 일대일. 공작 간의 결투에 다른 귀족들이 개입하는 행위는 공작 암살시도와 같은 죄로 취급함을 여기서 알린다.”

편하게 생각하자. 현실이 되어버린 의 대인전은 결국, 게임에서 내가 해오던 등장인물 가지치기 작업과 비슷하다.

루트의 개방을 위해 없애버려야 할 상대의 의지와 마음을 완전히 꺾어버리는 것. 그 순간까지 방심하지 않고 그때그때 최선의 수를 선택하는 것. 그것이면 된다.

“거리를 벌리고 대기하시오.”

재상의 말에 나와 발람은 등을 돌리고 서로 멀어졌다. 서로에게서 열 걸음. 이 세계의 검과 마법은 서로 비슷한 입지를 가진다. 마력으로 검기를 펑펑 날려대는 검사, 수많은 속성의 마법을 퍼붓는 마법사. 결국에 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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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재상의 신호에 왕실 가정교사 이시하와 장군 발람 프라시스의 결투가 시작되었다. 관중들은 숨을 죽이고 관전하는 상태.

“흥! 선수는 양보한다 했었지. 와라!”

당당하게 말하는 발람 프라시스.

그는 선수 따위 양보하지 않고 철저히 짓밟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결투의 약속을 한 그 날 보던 눈이 너무 많았다. 그렇기에 차라리 자신이 먼저 말해 체면이나 챙길 셈이었다.

“그럼 사양 않겠습니다.”

이시하는 오른 손바닥을 하늘로 향했다.

그는 한나 프로네시스의 조언을 생각한다.

‘선생님 세계의 자연 이론은 우리 세계보다 훨씬 훌륭해요. 신체 강화에서야 선생님 말씀대로 조심해야겠죠. 부작용이 크니까.’

탄력이 강한 찰흙 재질.

안쪽에 공간을 둔 채로.

공 하나를 만들고 속을 채운다.

약간의 액체와 모래에서 나온 쇳가루.

‘하지만 원소 마법은 선생님이 배운 대로 펑펑 질러버려요. 어차피 보호 수단만 잘 갖추면,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안전하잖아요?’

점점 커지는 공.

이시하는 공놀이를 하듯 이리저리 굴린다.

그런 이시하의 행동에 자신을 놀리는 기분이 들어 얼굴이 찌푸려지는 발람.

“그럼 장군님, 준비되셨습니까?”

“준비는 필요 없다! 빨리하기나 해라!”

발람의 생각에 이시하는 두 주 동안 발악을 했을 뿐인 초짜. 거기다 자신은 보호 마법을 걸친 채로도 마법을 벨 수 있는 프라시스의 인간. 저 마법도 별것이 아닐 게 분명했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분위기는 이상했다. 프로네시스의 부녀와 아카데미의 교장 부부가 결투장에 양손을 뻗은 채 영창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럼 갑니다.”

교사는 자신이 만든 공을 밀어내듯 던졌다.

“네 놈같은 초짜가 무슨…!”

발람은 공을 베어내려 했으나…

­ 폭파. (Detonation)

쾅!

굉음과 함께 발생한 대량의 빛.

폭음은 발람의 말을 덮어버렸으며,

빛은 경기장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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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사그라들고 주변에는 흙먼지만 가득한 상황. 관중들은 이명으로 가득 찬 귀를 누르며 상황을 보고 있다.

흙먼지가 걷히기 시작하고 관중들의 시야에 허물어지고 있는 흙벽이 보였다.

“쿨럭쿨럭! 이이익! 네 놈!”

발람은 충혈된 눈으로 두리번거린다.

군데군데 찢어진 옷.

그 사이로 약간씩 새어 나오는 피.

귀가 먹어 자신의 말조차 들리지 않는다.

마력을 주입해 먹은 귀를 겨우 돌려낸다.

그런 발람 근처에 이슬이 내렸다. 그리고 저 멀리 무너지고 있는 흙벽의 뒤로 보이는 교사.

“거기 있구나!”

성난 목소리로 검을 상단으로 드는 발람.

휘두른 검에서 흉흉한 마력이 튀어나왔다.

기사단장이 몇 번이고 보여줬던 그 자세.

시하의 눈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무릎을 굽힌 채 자연스러운 신체 강화, 왼손으로 작지만 두꺼운 마력 장막. 최소한의 회피와 최소한의 방어.

하지만 생각보다 발람의 검기는 강했다.

검기가 왼쪽 팔을 스쳐 지나간다.

옷이 피로 젖고, 고통이 밀려왔다.

하지만 계산 내이며, 문제는 없다.

애초에 공격마법은 오른팔로 연습해왔었다.

그 상태로 다음 마법을 입에 담는다.

­ 방전 (Discharge)

바닥의 떨어졌던 물에 전류가 흐른다. 발람이 아무리 신체를 마력으로 감쌌다 해도 비에는 어딘가 젖게 되는 법.

“끄어어어억!”

발람은 감전된 채 추하게 무릎을 꿇었다.

정신을 가다듬은 발람은 귀를 의심했다.

방전?

이 정도 출력은 방전 따위가 아니다.

아무리 물이 있음을 감안 하더라도.

이 정도면 중급마법 이상의 출력이다.

거기다 처음의 그 폭발 마법. 얼굴은 겨우 가릴 수 있었지만, 수많은 조각 파편이 자신의 몸에 상당한 데미지를 줬었다.

……

패배.

있을 수 없는 단어가 떠오른다.

"나는…! 프라시스의 가주다! 네 놈에게 질 소냐!"

그에게 가주란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것을 제치고 겨우 도달한 자리다. 이제야 주변에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이들도 생겼다.

“패배 따위는 있을 수 없다…이럴 리 없다!나는…나는 프라시스다!”

다리에 마력을 주입해 간신히 잡아낸 떨림.

하지만 그의 시야는 짙은 안개로 가득 찼다.

‘어디냐…, 어디 있는 것이냐.’

발람은 생각을 수정했다. 이 자식은 초짜가 아니다. 이런 몰아붙이는 연계를 학생 나부랭이가 생각할 리 없다. 그걸 자각했기에 목소리의 음량조차 줄인 채 말하기 시작했다.

‘빨리 모습을 드러내라…!’

귀에 온 감각을 집중한 발람.

그런 그를 놀리듯 주변은 고요하다.

……

­ 수류. (Water flow)

잠시의 고요함이 끝나고, 그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흐르는 물이 발치까지 차올랐다.

방금의 감전을 기억하는 몸이 떨기 시작했다.

“에이익!”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5연 참격.

검기는 바람을 타고 전진했으나…

마력장벽에 힘없이 튕기는 소리만이 돌아왔다. 아마 빗나가버려 장외에 부딪혔으리라.

찰방, 찰방, 찰방.

자신의 움직임에 호응하듯 물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지만 교사의 물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물소리를 듣고 내 검기를 피한 것인가.

이 상황에 방전마법이 행해진다면?

저놈은 절연수단까지 갖춘 상태라면?

상황도 생각도 점점 안 좋게 흘러갔다.

­ 동결 (Freeze)

자신의 예상이 무색하게 행해진 마법은 다른 것이었다. 물은 은백색의 얼음으로 물들었다.

발람은 자신의 발을 빼내기 위해 검으로 얼음을 내려쳐 보지만, 얼음은 너무나 튼튼했다. 마력을 더 부여해 내려쳐야 할 것 같았다.

저벅. 저벅. 저벅.

얼음 위를 걷는 소리가 다가온다.

발람의 첫 검기가 스쳤던 영향으로, 그 왼팔에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한 자루의 얼음 검이 들려 있었다.

이시하가 제일 자주 봐왔던 마법. 여왕이 소환하던 심상 마법. 그렇기에 이미지가 뚜렷해 자연 마법으로 흉내 내기는 가장 쉬웠다.

“아, 아아!”

프라시스의 심상 마법은 올곧게 베는 것. 그를 위해서는 온 힘을 집중한 베기가 필요하며, 하반신의 균형이 가장 중요해진다. 하지만 발람의 하반신은 이미 얼려진 상태.

발람은 생각했다.

폭발, 방전, 미스트, 수류, 동결, 빙검.

이시하가 사용한 마법은 단 여섯.

하지만 자신은 이미 이렇게 말려들었다.

선수를 넘긴 게 패착인가.

얼음을 깨고 움직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순간 또다시 마법이 들어온다면?

주문을 전부 영창하지 않았다. 시전이 빠르다.

만약 여기서 벗어난다면 승산이 있는가.

“으… 으윽!”

만약 그가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지금 교사는 왼팔을 제대로 못 가눌 터이니 해볼 만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었다.

“내가…”

하지만 발람의 눈에 흘러내리는 피는 섬뜩한 분위기만 더하고 있었다. 거기다 평소 웃고만 다니던 멍청한 표정이 아니었다. 평소 얼음처럼 차갑다 느꼈던 아셰리아 공주의 그것보다 더 심한 표정이다.

“졌다….”

결투의 규율이고 뭐고, 이미 외통수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여기서 나는 놈에게 죽는다. 그런 공포감이 발람의 마음속을 헤집었다.

“아, 앞으로 스무 수는 더 준비했는데.”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교사는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발람 역시 한 명의 장군이다.

그 역시 여러 전장을 경험했다.

하지만, 자신이 지금 왜 이런 교사 나부랭이에게 공포감을 느끼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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