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30화 (30/215)

〈 30화 〉 EP14. 그들만의 플라네타리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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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그들만의 플라네타리움. (2)

아프다.

테이블의 상판은 대리석 재질이었다.이마에 비하면 정말 단단하다는 것이다.하지만 상처 많은 아이를 울렸다는 자각 역시 아픈 것 아닐까.

나는 예전부터 상황을 이해하고 타인을 해석하는 능력은 자신있다. 반면에 사람들의 감정 그 자체에 공감하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다.

그렇기에 타인의 행동이나 상황을 이해하고 유도하는 방법은 알지만, 타인의 슬픔이나 외로움 자체를 나누고 위로하는 방법을 모른다.

근원으로 향하고픈 공주.

두 남녀를 손끝으로 잡으려는 아이.

이 두가지를 알고 있던 사실들과 결합해 대부분의 상황을 이해했다. 내가 이 상황에서 그녀가 느끼는 감정을 해석하고 추론해보자면…

그녀는 근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닐 것이다. 그저 근원으로 가 절대자들과 만나 함께 하고 싶을 것이다.

현실로부터의 탈출 욕구.

소외를 벗어나 타인에게 닿고 싶은 소망.

두 가지가 그녀의 바람이겠지. 정말이지 상반된 욕구이기에 이상향을 찾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아셰리아 공주의 마음을 공감해줄 수 없는 인간이다. 그렇기에 나는 아셰리아 공주를 위로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녀의 목적과 그것을 추구하는 이유는 이해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아직 대리석 상판에 머릴 박고 있는 상황.

"아…"

공주는 두 번이나 머리를 박은 나로 인해 고개를 들고 목소리를 흘렸다. 나에게 몸을 향하고 의자 끄트머리에 걸쳐앉듯 소극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표정은 볼 수 없다. 저 탄식과 행동의 의미는 무엇일까.

슬픔. 자책감. 안타까움. 걱정

왜 내가 머리를 박는 모습을 보고 저런 감정을 흘렸을까. 나는 공감할 수 없다. 감정을 알고 있다고 해서 모든 걸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만이다. 그것은 너를 파악했다는 조롱밖에 되지 않는다. 공감이란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다.

내가 그녀의 부적 감정을 해소할 방법. 그저 털어놓게 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마음을 개워내게 하고, 그녀의 올바른 생각에 동조하며, 틀린 생각은 부정해줄 뿐이다. 나는 이것말고는 할 줄 모르는 인간이다.

"공주님 때문에 이러는게 아닙니다."

나를 보고 있던 공주가 움찔거렸다.

"죄책감 가지지 마세요. 제가 머리를 박는 이 행위에 왜 공주님이 죄책감을 가지시는 겁니까."

"하지만 제가 쓸데없는 소원을 빌어서…"

"쓸데 없다니요. 공주님의 상황이 어떤지 저는 어림짐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공주님의 입장에서는 그 소원이 아니면 안되었던 것이죠. 마지막 희망 아니었던가요?"

바닥을 보고 있기에 내 목소리는 음은 낮게 땅을 타고 밤의 공기에 녹아들었다. 그리고 다시 공주가 울먹이는 소리만이 남았다.

"저는 공주님이 현실을 벗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그저 흔하디 흔한 인간일 뿐이니까요. 그렇다고 전 해방자나 잘난 마녀도 아닙니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문장은 예상에 근거한 말일 뿐이다. 그저 멋있어 보이기 위한 문장도 아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다.

"적어도 들어 드릴 수는 있어요."

공주는 숨을 삼켰고… 울먹이던 소리마저 잦아들었다. 그리고잠시간 아무 말도 없었다. 무거운 침묵이 우리를 에워쌌다.

……

"저와 함께 있으면 모두 슬퍼해요."

"그런가요."

"지금도 표류자님이 아프게 되었지 않나요."

침묵을 이겨내고 말한 한마디. 이 소녀의 기저에는 너무나 뿌리깊은 죄의식과 자책감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처음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녀의 배경에 어떤 일이 있었나.

가장 확률이 높은 건.

가족.

에스더 에우데미아.

이 정도가 생각난다.

"제가 왜 아픈 것 같나요."

"그야…"

"안 아파요. 저는 당신을 울린 범인에게 화가 나서 벌을 줬을 뿐이에요. 물론 충분하진 않지만 지금은 개운해졌습니다."

"그런…"

물론 여러모로 개소리다.

"일단 저는 개운합니다. 또 누가 슬퍼했나요?"

대답은 없다. 방금은 소녀의 말을 끊었지만 지금은 그저 조용히 경청해야할 때다. 대강 어떤 것인지는 짐작하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마음 속을 꾹 누르고 있는 무언가를 말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바마마도…어마마마도… 오라버니도…전부입니다. 모두가 슬퍼하는 걸요."

"왜 슬퍼하시는 걸까요."

"그건…"

공주는 말을 꺼렸다.

말하기조차 죄스럽다는 듯이.

"말씀하셔도 됩니다. 여긴 그저 이곳에 흘러들어온지 한달밖에 안된 평범한 표류자 한 명 뿐이랍니다. 가족분들은 지금 여기 없습니다."

눈만 굴려 슬쩍 공주를 보자… 또 땅을 보고 있다. 의자 끝에 걸터 앉았던 그 자세 그대로. 뺨에는 흘리던 눈물이 굳어 자국으로 남았다. 그리고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왕궁.

이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왕래한다.

왕가의 일원

기사와 군인

정부의 관료

지방의 귀족

외국의 사신

내 뚜렷한 기억의 시작은 다섯 살무렵의 왕궁에서부터다.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의 존재를 몰랐을 때, 지금보다 어린 나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아버지와 오라버니의금색 머리카락.

루시아 어머니의 적색 머리카락.

거울을 보면 둘 중 하나여야 했다.

하지만 내 머리칼은 왜 세 분과 다를까.

그저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렇기에 아버지께 여쭈었다.

"아바마마, 제 머리카락의 색은 왜 두 분과는 다른가요?"

그 물음에 아바마마의 감정의 색은 검정색으로 파도쳤다. 나는 그 날 그분의 눈물을 처음 보았다. 아바마마는 내게서 눈을 피하시며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 후로 아바마마는 나와 눈을 마주하지 않으셨다.

루시아 어머니께서는 언제나 나를 아껴주셨다. 하지만 오라버니에 비해 거리를 두셨다. 루시아 어머니의 감정의 색은 보라색. 나는 어렸기에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두분의 침실에 걸린 벽화를 보았고, 역사서와 자료를 끊임없이 찾아보았다. 그리고 나를 시중들던 메이드들에게 끊임없이 물어 알 수 있었다. 에스더 에우데미아.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

나는 그분을 돌아가시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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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년이 지났다. 나는 감정의 색을 이해했다.하나의 색은 분명 여러 감정을 의미하지만, 사람의 행동과 태도를 보면 감정을 명확히 특정할 수 있어. 예를 들면,

나는 아바마마를 슬프게 한다

어마마마는 나를 가엾이 여기고 계신다.

왕족과 귀족 자제에게 일곱 살, 열두 살, 열일곱 살의 생일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일곱 살은 한 명 인간으로서, 열두 살은 한 명 왕국의 일원으로서, 열일곱 살은 한 명 온전한 성인으로서 자제들은 인정받게 된다.

제1왕녀인 나의 일곱 살 생일에는 수많은 사람이 축하를 위해 몰려왔다. 당시엔 몰랐지만, 왕가와 접촉할 수 있는 몇 일되는 이벤트였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분명 나는 축하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왜 생일에도 수많은 검정색과 보라색의 감정을 보아야 했을까. 평소에 그 색들을 보는 건 익숙해. 왕궁에서 나를 스치듯 지나갈 때마다 그 색들을 떠올리니까. 그런데 오늘은 내 생일 축하연이잖아.

검정색 감정을 피운 사람들. 그들은 내 앞에서는 하나같이 눈물을 참았다. 하지만 연회장 한편에 가 그들이 하는 말은 한결같았다.

"그 분을 꼭 닮으셨구려."

"정말이지. 그분이 그립소."

"아셰리아님도 그분처럼 훌륭히 자라시겠지."

보라색 감정을 피운 사람들. 불쌍하다는 듯 연민을 띈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말한다.

"이리도 곱게 자라나시다니 다행입니다."

"씩씩하게 사셔야 합니다."

"힘내세요 아셰리아님."

"불쌍도 하셔라."

나는 슬픔을 자아내는 아이.

나는 불쌍해야하는 아이구나.

어머니를 잃은 나는 슬프고 불쌍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왜 슬프지 않을까.

나는 왜 나 자신이 불쌍하지 않을까.

낳아준 어머니가 죽었는데 슬프지 않아.

그 분이 그립지도 않아.

내가 불쌍해야 하는거야?

……

나는 나쁜 아이다.

다른 이들에게 있어 당연한 감정.

그 당연한 것을 느끼지 못하는 나쁜 아이.

나쁜 아이인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다가가면 다른 이들은 슬퍼한다. 그러니까 난 그들에게 다가가서는 안돼.

나는 왕족이야.그러니까 난 쓸모있는 것이 되어야 해. 나라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가 되어야해.

……

그 뒤로 나는 왕실의 도서관에만 있었다. 다른 이들과 거리를 둘 수 있는 도서관, 왕족을 제외하면 아무도 올 수 없다. 그곳은 나만의 세계. 그 두려운 색들도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 왕족으로서 내 가치를 올릴 수 있는 책도 많았다.

읽고 읽고 또 읽었다.

그러던 중 발견한 책.

근원으로 향한 영웅들.

모든 감정과 마력의 해방자들.

이분들이라면 나를 이해해주지 않을까. 근원에 묶여있던 모든 것을 다시금 해방시킨 그분들이라면 이런 나를 이해해주지 않을까.막연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삽화 속의 두분은 지금 행복하지 않을까. 앞서 근원에 가셨던 시조님과 성녀님도 행복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내 눈에 두분은 행복해 보였다.

그렇기에 나 자신을 그려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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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살이 되고, 내가 왕족으로서 나의 가치를 보이기 위해 집무실에 처음 간 날. 나는 그저 내 눈에 보이는 틀린 선택지를 서류에서 짚어냈다. 나에게는 당연히 수정되어야 할 오류였으니까.

그러자 관리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처음에는 그 시선이 너무나 무서웠다. 하지만 분명 그 색은 밝은 초록… 순수한 기대의 색.

관리는 나에게 이 부분을 설명해달라 했고, 내가 설명을 마치자 나를 칭찬해주었다. 나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기뻤다.

……

이후로 수많은 이들이 나에게 자문을 구했다. 적어도 이제 관리들은 슬픔과 연민으로 나를 보지 않아. 이걸 열심히 하면 언젠가 부모께서도 나를 온전히 바라봐 주시지 않을까.

물론 나를 이용하려는 나태함과 무시의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저들을 정리하는데 드는 리스크는 크다. 만약 성공해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었다. 분명 틀린 선택지일 것이다. 그렇기에 선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밝았던 알렉산더 오라버니의 색은 점점 초조의 색으로 물들어갔다.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또 나 때문이었으니까.

집무실에 들어가 내가 인정받게 된 그 순간, 나는 오라버니를 밀어버린 것이나 다름 없게 되었다. 관리들이 오라버니를 헐뜯고 무시하는건 내 탓이었다.

나는 아직도 나쁜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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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해도 되는걸까.

내가 슬프게 한 수많은 이들.

아바마마, 어마마마, 오라버니.

낳아주신 어머니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

그 사람들에게 나는 무엇일까.

그저 슬픔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존재.

딱 그 정도가 아닐까.

내가 여기서 말한다는 건.

과연 올바른 선택지일까.

나는 그저 도망치려는 것 아닐까.

도망치는 건 틀린 선택지가 아닐까.

내 소원은 과연 올바른 것이었을까.

당장 표류자님은 내 탓이 아니라 하셨다.

당장 표류자님께 감정은 보이지 않는다.

이분은 다른 이들에게 보이는 그 색들이 없다.

하지만 고개를 드시면 이마는 부어계시겠지.

그렇다면 그 색이 내 잘못의 색이 아닐까.

한참을 고민할 때.

고개숙인 표류자님께서 말씀하셨다.

"틀려보이는 선택지도 결국 길이랍니다."

……

이분은 혹시나. 그런 길을 많이 걸어보신걸까.

그렇기에 오답속에 숨은 정답을 찾으시는걸까.

이곳에서 보인 이분의 행방은 이상했다.

하지만 내가 예상한 부정적인 결과는 없었다.

내가 오답이라 생각한 길들이 정답이었다.

여러모로 이상한 분이다.

혹시나.

나도 만약… 만약에.

틀린 선택지의 길을 걸어본다면

그 속에 숨은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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