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31화 (31/215)

〈 31화 〉 EP14. 그들만의 플라네타리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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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4. 그들만의 플라네타리움. (3)

소녀는 약간 잠긴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바마마는 어느 순간부터 저를 보실 때마다 슬퍼하십니다… 그리고 항상 저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으십니다."

나는 그제서야 왼손으로 이마를 가린채 고개를 들고 공주를 바라보았다.그녀는마치 얼굴에 은빛 실을 이리저리 붙인 채이며, 눈은 아직도 충혈된 상태.

"그런가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공주.

"왜 슬퍼하시는 걸까요."

"에스더님의 발목을 잡고 늘어진 아이라서… 아닐까요."

"그럴수도 있겠군요."

애매한 대답에 고개숙인 아셰리아 공주.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구나.

팔불출 국왕은 전혀 그런 생각은 아닐 것이다.참관 수업을 떠올리면 쉽게 유추할 수 있다.하지만 무조건 부정하는 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거기다 에스더님이라는 호칭… 거리감이 느껴지네.이걸 어찌한다…

아.

"아셰리아님. 가끔 현상을 바라보는 일은 여러 이유가 필요 없습니다."

"네?"

"멀리 돌아가지 말고, 가까운 데서 국왕 폐하가 슬퍼하시는 이유를 찾아보죠."

"가까운 곳이라니요?"

갑자기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국왕 폐하께서 아셰리아님을 바라보실 때 슬퍼하신다고 하셨죠?"

"네…"

"공주님께서는, 국왕 폐하와 에스더님이 결혼하게 되신 연유를 아시나요?"

"… 모릅니다."

"청소년기에 아레트 아카데미에서 함께 수학하시다 눈이 맞고 그만 사고를 치셨다고 하더라고요."

"네?"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을 줄은 몰랐다는 표정. 하긴 아셰리아 공주가 가지고 있을 아버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거기다 내 설명도 엄청 생략되었지.

"여기서 중요한 건, 비교적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셨다는 거겠죠."

나는 손수건을 꺼냈다.

발람에게 던졌던 그 손수건은 무언가 기분이 나빠서 새로 산 손수건을 들고 다닌다.물론 한나가 준거라 버리진 못하지만.

"한 분은 헬렌의 성녀 후보, 한 분은 에우데미아의 왕자다보니 어린 시절 얼굴도 알고 계실 수도 있고요."

물마법으로 손수건을 약간 적신다.그리고 아셰리아 공주의 얼굴에 남은 눈물 자국을 지워주었다.

공주는 처음에는 피하려 했지만, 시선이 한번 내 이마로 향하더니 가만히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아, 봐버렸네 젠장.

"에스더 헬레니아. 그 분의 그림이 후궁에 걸려 있더군요. 보신 적 있으신가요?"

"네…"

"어떠셨나요?"

"그게…"

"아, 참고로 무엇을 느꼈는가 묻는 게 아닙니다. 그저 그 분의 모습이 외형적으로 어떻게 보였나요."

괜히 죄책감을 자극할까 걱정되네.

"아름…다우셨습니다…"

"그렇죠."

눈물 자국을 지우고 머리카락을 가다듬어 주었다. 이미 약간은 젖어 있어서 뭉친 느낌이 남아있지만,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마, 8년 뒤에는 아셰리아님도 에스더님처럼 아름답게 성장하시겠지요."

"설마요…"

"제가 보증합니다. 꼭 그럴거에요."

나는 이미 8년 후의 너를 알고 있다.

그렇기에 확신을 담아 말할 수 있다.

"인간의 감정은 한 단어로 정의될 수 없답니다. 슬픔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고, 상황에 따라 그 의미도 달라져요."

"……"

"국왕 폐하는 아셰리아님의 모습에서 에스더님의 옛 모습을 떠올리신 게 아닐까요. 그 슬픔은 그리움이 아닐까요."

머리카락을 정리해준 나는 적당한 거리에 앉아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그저 추측…일수도 있습니다."

"그런가요. 하지만 제 눈에는 적어도 아셰리아님을 향한 국왕 폐하의 분노나 미움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

공주는 또다시 시선이 땅으로 향했다.

부정하고 싶은 거겠지.

"탄원식에도 그저 딸의 침소에 침입한 괴한을 묻어버릴 생각이셨고, 발람 그 돼지의 말에 공주님이 추궁당하자 꽤 화를 내셨답니다."

공주는 당시에도 지금처럼 고개숙이고 있었기에, 국왕의 얼굴을 보지 못했겠지.

"참관 수업에 폐하를 꼬드기러 갔을 때, 관리들의 이야기를 하니 안절부절 못하셨죠. 수업 당일에는 공주님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말에 약간은 고개를 다시 들었다.

"저는 왕가의 일을 거의 모르니까요. 제 주장이 틀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제3자의 시선을 참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그래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해요."

자신이 확인하기 전까지는바로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아주 작은 희망은 가지게 되었나.

소녀는 이제 내 눈을 보며 말을 이었다.

.

"그렇다면 어마마마와 관리들은 어떻습니까. 항상 저를 연민한다는 듯이 바라봐요.생모를 잃은 아이. 그렇기에 저를 불쌍하다는 듯 보십니다."

"하지만 저는… 저는 제가 불쌍하지 않아요. 저는 나쁜 아이인 걸까요…"

아무리 여려도 역시 이 아이는 똑똑하다. 그렇기에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너무나도 잘 안다.

공주는이 말을 하면서도 양 손을 만지작거렸고, 앞을 보려 애쓰지만 눈빛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군요."

"당연한건가요?"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걸 보면, 국왕에 대한 대화는 어느정도 받아들인 걸까.

"일반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는 불쌍하죠. 전쟁이나 재앙의 습격으로 생겨난 수많은 고아들은 분명 애처로운 존재들입니다."

재앙. 그 단어에 타라스 마을의 그 풍경이 떠올랐다. 거기다 불쌍한 아이라… 아비없이 자란 어디의 누구씨도 들은 이야긴데.

나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늘어지듯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손가락 사이로 밤하늘이 보였다.

"루시아님이나 관리들이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죠. 세간의 인식에 따르면 아셰리아님은 불쌍한 게 맞으니까요."

거… 밤하늘 한번 더럽게 맑네.

소녀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시선을 다시 아래로 내리는 일은 없었지만 약간은 불안한 어조로 고했다.

"역시 전… 나쁜 아이인건가요."

대화를 나누다가 시선을 피해버린다니…타라스 마을 생각이 나서 하면 안될 짓을 해버렸네.

"공주님. 저희 머리를 좀 식힐까요."

"네?"

왜 이런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을까.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테이블 근처의 잔디밭에 누워버렸다. 역시 궁궐의 잔디라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순간 안좋은 생각이 떠올라서요. 이럴 때는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꽤 나아진답니다. 공주님도 해보실래요?"

나와 두어 걸음 차이나는 의자에서 공주는 나를 멍하게 보고 있다.

그리고 이내 조심스럽게 다가와 내 근처에 앉았다. 하긴 공주님께서 풀밭에 눕는 건 이상한 일이긴 하지.

"한 명 사람은 각자가 주인공인 이야기 속에서 살아간답니다. 주인공은 자라면서…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토대로 사고하죠."

공주도 밤하늘을 보고 있다.

별이라. 공교롭게도 에스더네.

"지금부터는 제 지인의 이야기입니다."

내 이야기라고는 못 말한다. 애초에 나는 어린 시절 이후로 그 인간을 입에 담은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좋은 예가 되지 않을까.

"어떤 소년은 어린 나이에 아비와 거리를 두고, 어머니와 단 둘이 살게 되었습니다. 이 소년은 불쌍한 아이인가요?"

"아마…도요?"

"분명 소년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를 걱정했답니다. 하지만 소년과 가장 친했던 친구는 그를 축하했죠."

"……"

"소년의 아버지는 항상 술에 찌들어 소년과 그의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인간이었습니다. 제 세계에서는 정말 흔한 일이죠."

그래, 정말이지 흔한 일이다.

나는 흔하디 흔한 인간이다. 하지만 흔치 않은 어머니와 주변 사람들, 그리고 당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 분은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마도 지금은 행복하지 않을까요."

이야기는 해피 엔딩이 좋은 법이지.

"중요한 건 말이죠. 아무리 비슷해보이는 일이라도, 모든 사건은 각자에게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공주님이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공주의 얼굴은 지금 보이지 않는다.하지만 그 뒷모습에 약간의 반응이 보였다.

"저는 오히려 자랑스럽습니다. 이렇게 배려심 넘치고 현명하게 자라주셨으니까요."

"그렇지는… 않아요."

내 문양을 숨기라고 말해준 일. 분수대에서 자신의 오라버니에게 잘못된 길을 걷게 하자 내게 충고한 일. 결투를 신청한 날 내 침실에서 자신의 발언에 죄책감을 느끼며 사과하던 일…

이외에도 수많은 일들이 떠오른다.

"제가 봐온 공주님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고, 그 사람이 감정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하십니다. 공주님 또래의 다른 아이들은 절대로 못할 일이에요."

"……"

"공주님의 방식이 옳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그 마음은 상냥한 일이 맞습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 중 하나.

이미 이 아이는 반 정도는 어른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직 아이일 뿐이다.

"모든 게 표류자님의 말씀대로라면… 저는 정말이지 행복할 것 같습니다."

공주님은 소리없이 조심스럽게,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잔디밭에 누웠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믿을 수 없어요. 결국 부숴져버릴 헛된 희망을 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 뿐이에요."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거기다… 저는 지금껏 혼자였던 걸요."

혼자라… 내 생각엔 아닌 것 같다.

국왕의 경우에는 공주에게 잘 대해주려고는 하지만, 여러 서투른 행동들이 쌓이다 보니 자신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왕비가 나를 고용한 이유를 생각하면, 직접 행동을 취하는 것이 아셰리아 공주에게 부담을 줄까 두려워 하는 것 아닐까.

왕자와의 관계는 주변 환경이 문제였지.

적어도 공주가 혼자라고 느끼는 것은 어찌보면 이 가족에게 어쩔 수 없던 일. 주변에서 작은 계기만 주워진다면 관계는 개선될 것이다.

거기다 가족이 아니더라도…

그 녀석은 지금도 보고 있지 않을까.

"저와 세 가지, 내기를 하실래요?"

"내기…라니요?"

"제가 내기에서 하나라도 진다면 공주님께서 근원으로 가는 일을 전력으로 돕겠습니다. 제가 이길 경우의 조건은 없습니다. 대신 공주님께선 내기마다 아주 간단한 일을 하나씩만 해주시면 됩니다."

"……"

공주는 약간 고민하는 모습이다.

정말이지 수상한 내기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생각을 부정하고 싶다면…

그런 용기가 있다면 수락하지 않을까.

"하겠습니다."

결심을 굳힌 공주님.

"저는 무엇을 하면 될까요?"

"잠시만요."

나는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 저쯤이려나.

"공주님. 첫번째 내기를 시작하죠."

"네?"

나는 지금껏 해온 대화보다 한없이 목소리를 작게 해 말했다. 공주에게만 속삭이듯 들릴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그렇게 말한 나는 마력을 가공했다.

왼손에는 마력 장막, 오른손에는 얼음검.

공주는 그런 나를 보고 앉아있는 상황.

"표류자님?"

"저를 믿고 가만히 있으세요."

나는…

얼음검으로 공주를 내려쳤다.

챙 ­

"역시 그때 죽였어야 했어."

"아샤?"

내 검은 공주에게 닿지 못했다.

아샤의 양손에 들린 나이프에 튕겼기 때문이다.

잠시간의 대치 상황.

"첫번째 내기는 제가 이겼네요."

"네?"

"뭐?"

둘은 나에게 의문을 표했다. 그 후로나는 잔디밭에 그대로 누워버렸고, 이내 아샤는 나를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지켜보다 나이프를 집어 넣었다.

아샤 티오리아.

아셰리아가 여왕이 된 뒤 그녀는 왕궁부장에 임명된다. 대부분의 루트에서 그녀는 아셰리아 여왕 이전의 중간보스로 등장한다.

단 하나, 재앙을 토벌하다가 아샤와 이방인이 접점을 가지는 루트가 있다. 그 루트에서 아샤는 아셰리아 여왕이 타락했음을 주장하는 이방인에게 맞선다.

하지만 수많은 말다툼과 결투 끝에 그녀는 아셰리아 여왕이 이전과는 달라졌음을 인정한다.그리고 아셰리아 여왕과 이방인의 최종결전에서 아샤는 아셰리아 여왕의 등을 찌르고 스스로 자결한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주인이십니다.'

주변 사람을 뿌리치고 최후의 말을 남긴 채로.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알렉산더나 다른 주인공의 루트에 감명받은 상태라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나도 자세한 일은 몰라서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나에게 현실.

나는 아샤가 공주에게 충성하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아샤가 공주에게 마음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언제나 아셰리아 공주의 곁을 지키려 하고, 수업 중에는 맹목적으로 그녀의 편에 선다. 거기다 단지 수상하다는 이유로 나를 죽일 고민까지 하지 않았던가.

같은 티오리아 가문인 헤르만과 비교하면 약간 과한 행보이다. 그 녀석은 게임에서 적당주의지만, 아샤는 말로만 귀찮은 척 하며 공주의 시중만큼은 성심성의껏 들고 있었다.

아마 지금도 청력 강화마법을 통해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었겠지. 아마 낮의 결투를 보고 나를 경계했기에 거리는 평소보다 둔 상태였을 것이다.

"그런데 아샤, 왜 지금까지…"

"공주님이 울고 계신데, 저 남자까지 꼬여버렸으니 제가 퇴궁할 수 없잖아요!"

"그게… 고마워요…"

"… 울지마세요."

공주는 또다시 울먹이기 시작했고, 아샤는 그런 공주의 곁에 앉아 그녀를 달랬다.

그래도 지금 흘리는 저 눈물은 지금껏 흘려온 것과는 다른 의미의 눈물이겠지.

.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공주의 울음이 잠잠해졌다. 닦아주었던 얼굴은 다시 엉망이 되었다.

"정말 두분 사이가 좋으시네요~"

"하아… 짜증나."

아샤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에도 속이면 진짜 죽일거에요."

그리고 공주 곁의 잔디밭에 누워버렸는데… 아샤의 목소리에도 약간의 물기가 있었다.

공주도 그런 아샤를 바라보더니 이내 자신의 자리에 다시 누웠다.

어쩌다 보니 내 천(川)자로 함께 누워 하늘을 바라보게 된 우리 세 명.

공주의 양 옆에는 나와 아샤가 있었다.

"공주님."

"네."

"적어도 혼자는 아니시네요."

"… 네."

하늘의 달과 별들은 아직도 밝았다.

이런 하늘을 우리 세명만이 전세를 내어 관람하고 있다. 이곳은 지금… 우리들만의 천문대, 우리들만의 플라네타리움이나 마찬가지다.

"표류자님."

이제는 약간 기운찬 목소리다.

"네."

"다음 내기는 무엇인가요?"

옆에서 본 공주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약간 어색하긴 하지만 웃고 있었다.

다행이네.

"공주님 지금은 의욕적이시네요."

"저도 저 자신이 적응은 안됩니다."

공주는 나름의 결심을 했다.

그렇다면…

나는 계기를 만들어 줄 뿐이다.

"다음 내기는 말이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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