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35화 (35/215)

〈 35화 〉 EP17. 그저 믿을 수 밖에. (1장 Epilogue)

* * *

EP17. 그저 믿을 수 밖에. (1장 Epilogue)

국왕은 아셰리아 공주의 손을 잡고 오두막을 나오다 나와 헤르만을 발견했다.

그러고서 잠시동안 나를 바라보더니...

"자네는 나중에 나 좀 보게나."

참고로 공주는 슬쩍슬쩍 내 눈치를 보고 있다.

…….

내 몸이 멀쩡해진 것도 국왕이 이 일을 알아챈 이유 중 하나겠지만, 그 이전에 아셰리아 공주가 나와 내기한 일을 국왕에게 털어놓은 것 같았다.

비장한 마음으로 삶의 목표를 정하고 10분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부터 위기가 도래했다.

이것 또한 운명이겠지.

... 설마 짤리겠어.

"자, 일단 내려가자고. 다들 기다릴 것 아닌가."

"... 네, 알겠습니다."

국왕은 그대로 공주의 손을 잡은 채 숲길을 내려갔다. 나와 헤르만은 그저 그 뒤를 따랐다.

약간 앞길이 깜깜하긴 하지만...

마냥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의 표정은 밝았기 때문이다.

* * *

그렇게 도착한 숲의 입구. 그곳에는 왕궁부장, 기사단장과 친위대만이 남아 있었다.

치안본부장은 접근 통제를 해제해야 했고, 첩보대는 주변에 의심을 피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바쁜 와중에 도와준 사람들이라 더 고맙다.

"친위대라는 것들이…"

"친위대니까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너희 둘은 신문 보는 연기가 완벽했어. 은퇴하고 공연이나 하지 그러나?"

"하하하! 평민 나부랭이인 나한테 숨은 재능이 있었다니, 나도 놀랐습니다."

숲 속을 내려온 국왕은 친위대의 치유마법사에게 치료를 받으며 농담을 했다.

정말이지 격식따위 차리지 않는 국왕이다.

게임 속 왕비의 회상에서 간접적으로만 듣던 장면이지만, 직접 보니 신기하다.

"이거, 나 빼고 다 한 패였나?"

여기 없지만 왕비님과 재상님까지 도와주셨으니까... 정말이지 '다' 한 패긴 하죠.

멍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아셰리아 공주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헤르만은 알아서 자리를 피해줬다.

"선생님."

"네, 공주님."

지금까지 수업시간을 제외하면 표류자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렸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밖에서도 선생님이라 불러주니 감회가 새롭다. 나름대로 인정받은걸까.

"감사합니다."

"다 공주님이 열심히 한 거에요."

그 날 밤하늘 아래에서 그랬던 것처럼,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손수건은 정말 쓸 일이 많다. 이세계 필수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선생님께서 없으셨다면, 저는 언제까지고 부모님을 피했을거에요."

"저는 발판만 만들어드린 거에요. 공주님이 정말이지 착하셔서 이렇게 된 거죠."

게임에서 보았던 그녀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아셰리아 여왕은 작중에서 루시아 여왕과 알렉산더 왕자에게 무관심을 넘어 쌀쌀맞은 태도를 고수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부모에게 슬픔을 줄까 겁이 나서 피했던 것 아닌가.

에스더 에우데미아의 죽음이라는 슬픔 속에서 서로가 엇갈렸을 뿐이다. 필레몬 국왕까지 죽은 미래였으니, 아셰리아 공주의 자책감은 해소되지 못한 채로 이어져갔을 것이다.

... 모자란 나는 그런 사람을 동경한거겠지.

"이제부터 가족들과 잘 지내시면 됩니다. 알렉산더 님도 포함해서 말이에요."

알렉산더 역시 너무나 바쁜 정세 속에서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한 아이였다.

게임에서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이런 상황에서 그 정도라도 자라준 게 어디인가. 에코니아라는 세상에서 악한 것은 결국 썩어빠진 재앙들과 몇몇 쓰레기같은 인간들 뿐이다.

"가족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요."

"이제부터라도 행복하게 지내야 하는거죠."

아셰리아 공주는 멀리 떨어진 국왕을 보고 있다. 이제 고개 숙이거나 눈을 돌리지 않는다.

아 아이에게는 오늘 오두막에서 아버지와 눈을 마주한 것이 첫 걸음일 뿐이다.

이제부터 잘 하면 될 일이다.

공주가 말했다.

"선생님, 앞으로도 저를 도와주세요."

"네?"

"아직 저는 미숙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것 말인가.

아셰리아 공주는 약간 뜸을 들이다 말했다.

"... 앞으로도 제 곁에 계셔주실 수 있나요?"

"당연하죠, 공주님을 돕겠다고 했었잖아요."

"네... 감사합니다."

* * *

국왕 몰래카메라로부터 이틀이 지난 금요일.

지난 이틀 간 국왕과 왕비는 이따금씩 왕자와 공주를 호출해 함께 차를 마셨다고 한다. 나는 그저 만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것이 다기에, 그들간에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지금 왕비님께 불려왔다.

... 내 운명은 어떻게 될까.

똑똑. 긴장한 채로 노크를 했다.

"폐하. 가정교사 이시하입니다."

"들어오게나."

후궁 응접실의 한 소파에는 국왕과 왕비가 앉아 있었다. 나는 그 맞은 편에 앉았다.

다탁 위를 보니 공주가 그렸던 그림은 아직 이곳에 있었다. 왕비가 잘 숨겼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엄청난 짓을 해주었군."

"하하하..."

국왕의 말에 속이 뒤틀린다.

곧이어 옆에서 왕비도 거들었다.

"거기다 아셰리아에게 칼을 들이밀어서 아샤를 끌어내다니, 정말이지 미친 분이신가요?"

"……."

공주님, 어디까지 말하신 겁니까.

혹시 제가 무슨 죄라도 지은 겁니까.

"그래도 결과는 좋았으니 봐드리죠. 오늘은 필레몬이 당신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해서 불렀어요."

"선처에 감사합니다..."

오늘은 완전히 지고 들어가는 기분이다.

국왕이 말했다.

"오늘 용건은 두 가지이네. 첫 번째 용건은, 자네는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

"정확히 어떤 말씀이신지..."

"내 딸, 아셰리아와의 세가지 내기. 그것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왕비는 국왕의 모든 말을 들으며,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이유라니, 그건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그걸 묻는 건 아닌 듯 했다.

도대체 어떻게 대답할 지 모르겠다.

"자네가 여기 오고 나서 이루어낸 것은, 자네의 출신이나 능력을 생각하면 이적??에 가까워. 이건 분명 나만의 생각이 아니야."

국왕은 나를 끊임없이 몰아붙였다.

"자네는 이 모든 결과를 확신했었나?"

아.

"아셰리아를 죽이거나 해하려던 생각은 물론 없었겠지. 하지만 자네의 계획들 중 하나라도 실패했다면?"

국왕은 만일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저 아이가 만약 꺾이기라도 했다면?"

공주의 마음을 걸고 도박을 한 것은 아닌가.

그 도박의 결과에 책임질 생각은 있었는가.

"나를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나는 자네의 교사 직위를 해제할 수 밖에 없네."

이건 아마… 지키기 위한 그의 첫 걸음이다.

…….

타라스 마을 사건은 우연이 만든 산물이었다.

슬럼가 토벌은 내게 당연히 성공할 일이었다.

결투에서는 여러 조건 속에서 승산이 보였다.

하지만 이번 공주와의 세가지 내기는…

징검다리를 놓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저 될 것 같다는 직감 뿐이었다.

나는 도대체 왜 내기를 제안했을까.

나는 무슨 근거로 이런 내기를 한 걸까.

세가지 내기 모두 실패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행동했을까.

그 직감의 근거는 무엇이었는가...

에코니아에 처음 도착한 날을 시작으로,

겪었던 일들이 하나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

이유는 있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내가 잊어버리고 있던 것이었다. 이유나 확신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확신같은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행동을 했는가."

"저는 이곳에 떨어진 뒤로 봐온 다른 분들을 믿고, 필요한 자리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 무슨 뜻인가."

국왕과 왕비는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 탄원에서, 국왕님께서 공주님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흠."

"저 불온한 남자를 추궁해야겠다, 발람이 공주를 추궁하는데 어쩌지, 내가 공주의 말을 끊어 버린 것인가, 아무 신용도 없는 인간을 가정교사로 앉혀도 되는가."

"……."

"국왕님께서는 직접 표현하지는 않으셨어도, 공주님을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국왕은 앉은 그대로 허리를 뒤로 쭉 펴며 소파에 기대었다.

"왕비님께서도 탄원부터 저를 주시하고 있으셨고, 언제나 제 동향을 파악하셨으며, 가정교사로 선임한 이유도 말씀해주셨지요. 그 이유는 아셰리아님을 위해서였습니다."

왕비는 말없이 차를 홀짝이고 있다.

"공주님께서는, 국왕 폐하를 이유없이 두려워 하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자신이 해가 될까 염려하던 작은 오해였습니다."

"세 분의 진심이 그저 만날 수만 있다면 관계의 개선은 자연스레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상황을 잘 만들기만 한다면... 당연히 그리되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내 이야기에 국왕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자네에겐, 당연한 길이었군?"

"네. 서로의 바램은 같았으니까요."

이것 말고 내게 확신이나 이유는 없었다.

만약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내 진심이다.

"알겠네."

다행히 국왕은 내 말에 납득해준 듯 했다.

그리고 국왕은 다음 내용을 말했다.

"다음으로 두 번째 용건은, 자네에게 세 가지 포상을 하려 하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네는 세가지 내기를 이겼내만, 아셰리아에게 보상을 받지 않았어. 그러니 내가 대신 보상을 주려는 걸세."

보상이라니, 거창한 건 필요가 없는데.

흠...

어차피 부탁하려 했던 것을 말해야겠다.

* * *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군."

국왕은 응접실 바깥으로 난 창을 보고 있다.

창 너머로는 후궁을 나서는 가정교사 이시하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두루마리 하나를 가지고 동관으로 향하고 있다.

"필레몬, 내가 말했지?"

차를 한 모금 마신 왕비가 말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 방 먹었기에 그대로 돌려주려고 했더니, 오히려 몇 대를 맞아버린 건지."

필레몬 에우데미아의 의중.

여차하면 교사직위를 해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가정교사 이시하의 행동을 제한할 생각이었다.

자신의 딸 아셰리아가 따르는 교사이다. 실제로 직위를 해제해 딸에게 미움을 사고싶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이시하가 자신의 행동에 확신이나 근거가 없다면, 언젠가 자신의 딸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는 법이다.

"자연스러운 길이라니."

하지만 자신의 생각대로 할 수 없었다.

서로의 행복을 생각하는 마음이 만나면 자연스레 해결될 일이었다니. 거기다 저 말은 당사자 앞에서 믿었다고 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말을 부정하는 것은, 지금 자신이 느끼는 행복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자제분들과 친밀하게 지내주세요. 일단 그 분들의 거처부터 후궁으로 옮기시죠.'

이시하가 요구한 첫번째 보상. 그것은 이미 국왕 부부가 추진하고 있던 것이었다.

국왕은 딸을 마주할 때마다 눈물이 흐르는 것을 자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이들을 동관으로 보내,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했었다.

하지만 오두막에서 있었던 그 일 이후, 국왕은 아셰리아와 대면해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왕비와 이야기를 끝내고, 아이들이 사용할 방을 옮기던 중이었다.

"루시아, 내가 멋대로 정해서 미안해."

"괜찮아. 그 사람 말도 맞는 걸."

거기다 두번째 보상은.

침소에는 아셰리아의 그림을 걸어두고, 에스더의 그림은 아셰리아에게 물려주라는 것이었다.

'그 그림은 공주님께 양보하시죠. 어차피 두분께서는 추억이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사실 이시하는 국왕 내외가 에스더의 그림을 보고 우울해질까 염려한 부분이 더 컸다.

하지만 국왕 부부의 입장에서는 약간 다르게 들렸다. 마치 공주가 스스로 행복할 때마다, 에스더의 그림을 볼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 같았다.

감상에 잠긴 루시아 왕비가 말했다.

"어차피 에스더는… 우리 마음 속에서 지워질 사람도 아니고 말이야."

"그렇지, 밤하늘만 봐도 떠오르니까."

"그 아이를 어떻게 잊어."

국왕의 시선에서, 교사는 이미 사라져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보상.

'저는 지금부터 왕궁 밖에서 생활을 시작하려 합니다. 허락해주십시오.'

시하는 독립된 생활을 원했다.

다가올 99개의 루트를 막기 위해서라면,립은 그에게 필수적인 일이다. 마침 자신의 봉급과 함께 슬럼가를 토벌하고 받은 상금도 있어 경제적으로 넉넉한 상태. 행동하기엔 적기였다.

"그나저나, 또 뭘 하려는 걸까."

"그래도 우리에게 나쁜 일을 하려는 건 아닐 것 같으니까, 이제 그만 고민하자."

고민해서 뭐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라고 루시아 왕비는 덧붙였다.

국왕 부부는 이시하가 새로이 정한 삶의 목표를 모르기에 걱정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별달리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 우리도 그저 믿을 수밖에 없겠지."

"이미 여러가지 해줬잖아."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하지만 그저 믿을 뿐이었다.

11년 동안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낼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기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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