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36화 (36/215)

〈 36화 〉 2장 Prologue ­ 선생님은 거짓말쟁이십니다.

* * *

2장 Prologue ­ 선생님은 거짓말쟁이.

내가 국왕에게 독립 허가는 받았어도, 업무나 건국제 준비로 바빠서 집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는, 왕궁에서 신세를 지는 중이다.

왕궁 동관의 내 방.그 곳에서 나는…

"미래를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나만의 비밀노트에 정보를 정리하고 있다.

새삼 당연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여러 웹소설에서 나오는 회귀자 · 빙의자 · 전이자들은 전부 초반부터 사기를 친다.

몇몇 주인공들은 자신이 일궈온 지식으로 몸을 단련하며 강해진다. 이런 부류는 정말이지 건실한 사람들이다. 대부분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고 스스로 강해지는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몇몇 찬란한 주인공님들께서는, 다른 등장 인물들의 것을 빼앗는 행위로 강해진다. 이 탈취물에는 강해질 수 있는 이벤트, 전설적인 무구, 하물며 소중한 인연까지 포함된다.

나도 물론 게임 속 세계로 전이한 사람이다. 그리고 아셰리아 공주와 그녀의 주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할 각오도 했다.

이방인 이상으로 강해지면 다 부술 수 있겠지.

하지만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들 중 써먹을 게 별로 없었다.

기껏 목표를 정했는데, 기획 단계부터 이러니, 정말이지 나 자신이 한심해진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시간대 탓이 크다.

이방인이 처음 에우데미아에 도착하면, 한 주 정도 되는 시간을 소비해 아카데미 분기에 진입할 수 있다.

이 분기에서 이방인은 입학식을 치르고 17세의 알렉산더와 같은 반에 배정된다.지금의 알렉산더는 13세인 걸 생각하면 4년 뒤겠지.

아레트 아카데미의 입학식은 3월 초. 결론적으로 이방인의 도착은 해방력 200년의 2월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반면에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시점은 해방력 196년 11월. 건국제를 2주 정도 앞둔 상황.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이벤트는 엄연히 3년하고도 3개월 뒤, 해방력 200년 이후의 것이다.

게임 속의 역사는 분명 그대로 진행될 것이다.

버그 스팟마저 이곳에 반영되어 있는데, 게임 속 역사가 반영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렇기에 게임 속 역사는 꽤나 중요한데… 내가 아는 것들 중에서 당장에 쓸만한 게 보이지 않아 막막하다.

거기다 미래의 정보를 지금 이 시점에 적용할 수 있는건지조차 모르니까, 내가 쓸 수 있는 정보는 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할까…

목표를 정했으니 고민할 수밖에 없다.

게임의 루트를 하나하나 떠올려보자.

…….

게임 속 아셰리아 여왕이 맞이하는 최후의 모습이, 자연스레 11세 공주의 모습으로 대체된다.

기분이 참 더럽네.

루트의 결말은 접어두고, 흐름에 집중하자.

분기별로 끊어서, 선택지마다 끊어서,

내가 경험했던 루트의 결말마다 역순으로,

생각하다 보니… 한 루트가 떠오른다.

내가 마지막에서야 클리어한 루트.

내가 게임을 포기하게 만든 그 루트.

여왕이 유일하게 타락하지 않았던 루트.

그래, 흑막. 그 게임에는 흑막이 있었다.

해방력 200년부터 에우데미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완벽한 일정과 결과로 소화했을 때 열리던 루트가 있었다.

그 루트에서 아셰리아 여왕은, 아무런 복선도 없이 갑자기 등장한 흑막의 손에 사망해버린다.

그 루트의 흑막의 이름은… 휴브리스.너무나 어이없던 결말이라 아직도 기억한다.

이방인은 뒤늦게 흑막과 싸우려 하지만, 휴브리스는 이방인을 뿌리치고 왕도를 탈출하게 된다.

루트의 특성상 이방인의 스탯은, 다른 루트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최강의 상태.

그런 이방인을 뿌리치고 도망간다니, 꽤나 강력한 실력자라는 뜻이다.

흑막이라고 하니, 게임 속 루시아 여왕이 재앙에게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의 독백도 떠오른다.

­ 데릴라를 빨리 찾아내 죽였더라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건데…

나는 게임 내에서 데릴라라는 인물을 찾으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도대체가 찾을 수 없었다.

게임 본편에서 찾을 수 없었다는 걸 인지하고 저 독백을 다시 생각해보면, '데릴라'는 인물은 본편 시점 이전에 문제를 일으킨 자라 봐야겠지.

이 나라를 위협하는 '흑막'은 적어도 둘.

게임에서 입수한 정보라곤 이름뿐인 인물들.

휴브리스와 데릴라.

우선해서 찾아내야 할 인물은 후자일 것이다.

데릴라, 하필이면 이름조차 너무 꺼림칙하다.

유대인 영웅 삼손을 꼬드긴 블레셋의 창녀라…

하지만 결국 뚜렷한 해답은 보이지 않는다.

데릴라가 본편 시점 이전에 문제를 일으킨다고 가정해도, 그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모른다.

누굴 죽이기라도 했을까, 아니면 이름마냥 누군가를 꼬드겨 타락이라도 시켰을까.

정보가 너무 없다.

흠…

만약 에우데미아의 국력을 깎아먹었다고 가정한다면 어떨까…

지금 내 주변의 인물들 중, 게임 본편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들이 단서가 될 수 있겠다.

국왕 필레몬 에우데미아.

왕궁부장 카일 티오리아.

제2군 장군 발람 프라시스.

사법부장 아론 미모스.

이렇게 네 사람은 본편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여기에 기사단장이 본편 시작 직후에 죽는 걸 생각하면, 사실상 5명은 본편에 등장하지 않는다.

게임 속 언급에 따르면, 기사단장은 꽤나 강력한 재앙과 싸우다 동귀어진 해버렸다.

기사단장을 죽인 그 재앙을 게임 기준으로 따지고 보면 최고 레벨인 50. 엄연히 작중 최악의 재앙이었다.

그 재앙이 필레몬 국왕을 죽인 놈이라는 것도 기억난다. 아마도… 국왕이 죽을 때 카일 티오리아 역시 죽었겠지.

하지만 아론 미모스의 사망 원인은 도대체가 짐작이 안 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요나가 사법부의 차기 수장으로 낙점되었지만,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임명이 미루어졌다는 정도.

발람 그 멍청이에 이르러서는 프라시스라는 가문의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는 수준이다. 어떻게 해야 사대가문이 흔적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망할 수가 있을까.

기디언은… 타라스에서 이미 죽었다고 가정했을 때, 발람 역시 모종의 이유로 죽은 것이라면 설명이 되긴 한다. 지금의 프라시스 가문은 두 명 말고는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발람은 나와의 결투에서 졌기 때문에 토벌을 자주 나가는 것 아닌가. 내가 없었다면 토벌도 안 나갔을 놈이 분명한데 왜 죽은거야.

답이 안 보이네…

내 노트에는 여러 단어들이 떠다니고는 있지만, 결국 확정된 사실은 전혀 없게 되었다.

에코니아 아포칼립스… 떡밥 회수나 좀 더 잘해주지. 도대체가 아는 게 없네.

알고 있는 역사를 써먹고 싶어도 쓸 게 없다.

마치 빛 한점 없는 어둠 속을 걷는 기분이다.

불안하다.

나는 마법 적성이 높아도 총량이 더럽게 작다.

마력을 가공해 사용할 수 있는 효율이 좋아서 중급 마법을 연달아 쓸 수 있긴 하다.

하지만 한 번에 제어할 수 있는 마력의 폭과 질이 제한되기에 내 한계는 명확하다.

그렇다고 지금부터 마력 총량을 쌓아 간다 쳐도 내게는 시간이 부족하다.

마법사들은 몇 십년 단위를 기본 전제로 깔고 수행하는데, 나는 당장의 8년이 중요하다.

기사단장은 내 전투 능력이 중급 기사 정도라 했지. 그렇다면 내 실력이 한참 부족하다.

게임에서 중급 기사가 개인으로서 죽일 수 있는 재앙은 끽해봐야 20레벨 근처였다.

내가 강해지긴 했어도 결국, 타라스 마을에서 우연히 겪은 '그 상태'로 잡은 개보다 약간 쎈 녀석을 잡는 수준이라는 거다.

여기에 더해 지금 시점의 역사도 짐작 뿐이다. 확신을 가지고 나아갈 수 없다.

과연 나는 해낼 수 있을까…

똑똑­

노크 소리가 내 우울한 생각을 멈추었다.

"누구세요?"

나는 노트를 빠르게 닫아 구석에 숨겼다.

원래는 이런 일로 의심받는 게 걱정되지 않았었다. 의심받아 처벌을 당한다 해도 별 생각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으니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해낸 일이 있다보니 의심을 이유로 숙청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로 인해 지금 내가 할 행동에 제약이 생긴다면, 이 안좋은 상황속에서 할 수 있는 일조차 못하게 된다.

추후 자유로운 행동을 위해서라도 독립은 서두르고 싶다.

"선생님, 아셰리아입니다."

"네, 들어오세요."

노크의 주인은 공주였다.

아셰리아 공주는 오두막의 그 일 이후로 내 방을 자주 찾아온다. 국왕이나 왕비와 이야기를 했다던가,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던가 하는 근황을 전하러 오는 것이다.

공주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동안, 나는 책상에 있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아무 마법서나 펼쳐놓았다.

"안녕하십니까."

"공주님도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려고 온 건가.

공주는 내가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을 보더니, 방 구석에 있는 의자를 가져와 그곳에 앉았다.

의자를 들었을 때 공주의 모습은 등받이에 얼굴까지 가려졌었다. 옮겨줄 걸 그랬나…

"오늘은 부모님과 티타임을 갖고 왔습니다."

나는 마법서를 보는 척을 하며 대답했다.

"대화는 즐거우셨나요?"

"네."

"호오."

공주는 내 책상을 뚫어져라 보며 말했다.

곁눈질로 공주의 얼굴을 슬쩍 보면, 따로 말하고 싶은 게 있는 모양인데…

"저기… 공주님?"

"네."

갑자기 와서는 옆에서 가만히 있으니까.

약간은부담스럽다.

"어떤 일로 오셨나요?"

"……."

그제서야 공주는 내 얼굴을 쳐다 보았다.

음, 켕기는 게 있다보니 시선이 부담스럽다.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네, 언제까지고 왕궁에 신세를 지기엔 부담스러우니까요."

국왕 내외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나 보다.

"왕궁 밖은 위험합니다."

"음… 그래도 치안본부 대원분들이 노력해주시잖아요?"

나름대로 걱정을 해주는 걸까.

나보다 어린 공주가 걱정을 해주니 기특하네.

그래도 왕도의 치안은 꽤나 좋은 편이다.

공주가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위험해요."

"그럼 집을 구할 때 방범 마법과 안전 장치를 꼼꼼히 살펴야겠네요."

"……."

어차피 왕도 내라 위험하진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공주가 걱정을 심하게 하는 것 같으니, 안심시켜줄 말은 해줘야겠다.

"아마도 주말에 집을 보러 갈건데, 헤르만과 함께 보면 문제가 없겠죠."

"… 그렇겠죠. 티오리아는 아무래도 그 쪽 지식에 해박하니까요."

잠시간의 침묵이 지나고…

공주는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시진 않을까요?"

금전이라, 오히려 넘쳐서 불안할 수준이다.

"음… 왕비님께서 제 봉급을 연봉으로 주셨고, 저번 슬럼가의 일로 포상도 꽤나 받았거든요."

왕실 가정교사라는 직위는 왕궁의 관리 중 하나로 분류되어 봉급을 받게 된다고 한다.그런데 내가 일반적인 관리도 아니고, 공작위에 해당하는 관리라꽤나 받는 돈이 많다.

물론 사대가문에 속하는 다른 분들은 대대로 쌓아온 재산도 있고, 각자 따로 사업도 가지고 있어 나보다 수입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분들과 다르게 왕도에서는 흔치않은 20대 초반 독신 남성. 애초에 쓰는 돈이 적은 사람이다.

일전에 환전을 하러 은행에 갔었는데, 나 혼자 쓰기 어려울 정도의 금액이 예금되어 있었다.

이런 와중에 포상금이라며 슬럼가 두목이 꼬불쳐둔 예산의 30%를 받아버리니, 내 잔고는 하늘을 찌를 기세다.

2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어쩌다보니 취직해 자수성가한 청년, 그것이 바로 나였다.

어머니, 저 금전적으로라도 풍족합니다.

이세계라고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서 금전적으로는 여유가 꽤 되어요."

"그렇군요…."

공주는 힘없이 대답하며옷자락을 꼭 쥐었다.

잠시동안…

하릴없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이 방을 채웠다.

그리고 공주가 곧장이라도 울먹일법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거짓말쟁이십니다…."

"예?"

거짓말이라니.

내가 무슨 말을 했었지?

"곁에 계셔주신다 하셨잖아요…."

아.

아카데미의 숲에서…

"고… 공주님? 저 딱히 가정교사는 그만두지 않아요. 그러니까 진정해주세요?"

내 말에도 불구하고 아셰리아 공주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수업마다 왕궁에 올거고, 공주님께서 부르셔도 왕궁에 올거니까요. 곁에서 없어진다거나 하지 않아요?"

당황한 나는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따지고보면…이 정도로 울 일은 아닐 것이다. 그저 가정교사가 독립해서 다른 집을 구할 뿐인, 그런 일이다.

아니, 오히려 이전에 했어야 할 일이다. 왕궁에서 신세를 진다니, 오히려 과분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자신을타인으로부터 격리해온 공주의 삶을 생각해보면, 충격이 클 수도 있을거라 생각한다.

이 아이는 아직, 다른 사람에게 닿는다는 게 익숙하지 않은 거니까.

"저 어디 안가니까요? 왕자님과 공주님께서 후궁으로 가버리시면 저는 동관에 혼자 남게 되잖아요? 동관에 혼자 있는건 부담스러워서요."

"거기다 다른 공작님들도 공작저에서 출퇴근을 하시니까… 제가 이 세계에서 적응하려면 이 세계의 법도를 따라야겠지요!"

생각에도 없던 말들을 마구 쏟아냈다.

"딱히 공주님과 거리를 두겠다고 생각한 건 절대로 아니에요…."

"그런…가요?"

이제야 좀 그치는 기색이 보여서,나는 손수건을 꺼내 공주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요즘 손수건으로 공주님의 눈물젖은 얼굴을 닦아주는 일이 많구만…

"당연하죠. 이미 이 곳에 정착도 했고, 공주님이 계신데 어디 갈 리가 없잖아요."

공주는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내 뒤에 뭐라도 있는걸까.

사실 아직도 온전히 믿지는 않는 듯 하다.

"믿어보겠습니다…."

"곁에 있어 드릴테니까요…."

이 정도로공주가나에게심리적 의존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가족 외에도 의존할 사람이 나라는 것에 감사해야 하나, 아니면 너무 의존해서 걱정을 해야 하나.

모르겠다.

"시간이 늦었으니… 이제 방으로 가서 주무실까요? 내일은 후궁으로 이사도 하시지 않습니까."

공주는 끝까지 나를 보고 있다.

"알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공주는 일어나 내 방문을 열고 나간 뒤…

문을 반 정도만 닫고 작은 동작으로 인사했다.

그리고 소리나지 않게 조심히 문을 닫았다.

나는 공주가 나간 문을 하염없이 보았다.

"열심히 해야겠네."

답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것 부터 하자.

내가 힘이 부족하면… 사람이라도 써야겠지.

기반부터 만들자.

어떤 일이 닥쳐온다해도…

최소한 극복할 수 있도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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