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44화 (44/215)

〈 44화 〉 2­8. 아모스.

* * *

2­8. 아모스.

건국제가 끝난 바로 다음 주 월요일.

왕궁에서는 왕자와 공주의 이사가 한창이고, 나 역시 이사를 해야 했기에 한 주동안 휴가를 받게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사법부장님"

"자네 왔는가, 어서 오시게."

하지만 이 금같은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나는 곧장 왕도의 사법부를 방문했다.

이 방엔 나와 헤르만, 요나와 사법부장이 있다.

"그래서, 저번 슬럼가 급습 작전에서 검거한 인물들의 명단을 보여 달라고?"

"그렇습니다. 이미 1심이 끝나서 치안본부 관할이 아니게 되었으니까요."

"갑자기 명단이 왜 필요한가?"

사법부장, 아론 미모스가 작은 외알 안경을 손가락으로 들추며 물었다.

"그 중에서 쓰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석금은 제가 지불하겠습니다."

"쓰고 싶은 사람들이라?"

내 대답에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아론 미모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의 상징인 긴 회색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범죄자를 쓰겠다라… 차라리 신원이 분명하고 검증된 사람을 쓰는 게 낫지 않겠나."

정론이다.

하지만 나는 꼭, 수감되어 있는 그를 써야겠다.

"대법관님. 예의 없는 것은 잘 알지만, 질문에 질문으로 답해도 되겠습니까?

"… 해보게나."

"검증된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당연히 여러 사람들이 정한 정의에 부합하는, 신용과 실적을 쌓은 사람이 아니겠나."

"그렇다면 그 사람은 선한 사람입니까?"

내 질문에 사법부장은 수염을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설마 자네는 선한 사람을 찾는 겐가. 그것도 이미 구금되어 있는 범죄자들 중에서?"

"그렇습니다."

에코니아 아포칼립스, 나는 그 게임에서 그만큼 '순수한 선'을 보지 못했다. 그 사람은 분명,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을 해내어 줄 것이다.

"허허… 참 재밌군. 선한 이를 찾는 게 어렵다는 건 둘째치고, 그 범죄자가 선하다는 것을 자네는 증명할 수 있겠나?"

"네. 시간만 주신다면 증명해보이겠습니다."

내 대답에 부장실은 고요해졌다.

사법부장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으며,

요나는 화가 난듯, 나를 째려보고 있고,

헤르만은…… 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내 조건을 붙이지."

침묵을 깨며, 사법부장이 말했다.

"자네가 원하는 그 범죄자가 과연 선한 사람인지, 요나를 붙여 감사하도록 할걸세. 그게 아니라면 형을 두 배로 늘려 확정짓겠네. 자네 역시 그때가서 댓가를 치뤄야하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물론, 저번에 보았던 그의 모습은… 게임에서 보였던 것과는 거리가 있긴 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변하는 계기를 알고 있다.

"자네는 정말 자신이 넘치는군."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허허… 자네 둘은 먼저 나가있게나. 요나, 잠시 남아서 이야기를 좀 하자꾸나."

나는 헤르만과 함께 사법부장실을 나왔다.

사실, 나는 이미 슬럼가를 정리하면서 그의 운명을 바꿔 버렸다. 겨우 내 사정을 핑계로, 감히 타인의 삶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그 뒤틀린 운명을 조금이라도 원래의 자리로 돌린다는 것도… 원래라면 내게 허락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나와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타인에게 하찮은 감정과 멋대로의 사정을 휘두르지 않는 것. 이 원칙만큼은 지키며 살고 싶었다.

'저 아이가 너처럼은 되지 않게 해주렴.'

어머니의 말씀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삶의 목적이 생겼다.

아셰리아 공주와 그 주변의 행복.

목적을 위해서. 내가 아는 한도에서만큼은 이제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려서는 안된다. 원칙따위 잠시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거기다 계기를 만드는 것 따위, 가벼운 일이다.

* * *

이시하와 헤르만이 떠난 사법부장실.

"조부님, 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이런 판단을 내리신 겁니까? 이건 정말이지… 조부님답지 않으십니다."

그의 조부, 아론 미모스는 이미 시하가 닫고 나간 문을 아직도 보고 있다.

"어떤 면에서 나답지 않다는 것이냐."

"자신이 구속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으면서, 이미 법에 따라 처벌되고 있는 범죄자를, 석방해서 자기 사람으로 쓴다니요. 조부님께서는 그걸 허락해주신 것 아닙니까!"

화를 숨기지 않고 말하는 요나스트롱 미모스.

"조부님. 미모스라면 원칙에 따라야 법을 행사해야하지 않습니까. 저는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원칙에 따라 법을 행사해야 한다라… 요나, 우리 가훈이 무엇이냐."

요나는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듯 답한다.

"중도(中?)를 지키는 자로서, 어디에도 물들지 않은 정의로 판결한다…. 그를 위해서 원칙은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론 미모스는 자신의 질문에 답하는 하나뿐인 손자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보고 있다.

자신의 손자가 원칙을 숭배하는 이유.

그것은 조부로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미모스로서 가르쳐야 할 중도를 아직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였다.

"요나. 중도를 지킨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겨우 원칙을 지킨다는 것으로 중도를 행할 수 있다면, 이 에우데미아의 땅에 우리 미모스 가문은 존재할 가치가 없게 된단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 중도일 리는 없지 않습니까."

"그건 당연하지, 네 말이 옳다."

조부에게 자신의 정의를 부정당한 요나는, 왜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거기에 자신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하는 조부로 인해, 다시 한번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이것이 좋은 기회라 여긴다. 이번 기회에 그 가정교사를 잘 지켜보거라."

"……."

"만약 그가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너의 손으로 그 범죄자에게 형을 집행하거라."

"… 알겠습니다."

요나의 마지못한 대답에 아론은 보기 드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거수일투족을 살필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 범죄자가 어떤 사람인지만 확인해보겠다는 자세로 임하거라. 그리고… 치안본부 고문역은 잠시 쉬어도 좋다."

"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요나 역시 사법부장실을 나가고.

방에는 아론 미모스만이 남았다.

그는 안경을 고쳐쓰고, 시하 일행이 오기 전 처리하고 있던 문서를 다시 보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들과 며느리가 떠오르는 날이었다.

* * *

사법부 건물 지하 감옥.

범죄의 여부는 확실하지만, 형기가 확정지어지지 않은 죄인들을 가둬두는 곳이다.

감옥 복도를 걷던 이시하는 이윽고 어떤 철장 앞에서 멈춰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2M가 조금 안되는 키.

약간은 투박해보이는 각진 얼굴.

짧은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이다.

어딘가 영화에서 나오는 '미래에서 온 초강력 마초 로봇'을 연상케 하는 인물.

하지만 많이 먹지는 못해 체격은 줄어 있다.

그는 감옥의 벽에 몸을 기댄채 앉아 있다.

"안녕, 아모스."

"……."

이시하의 인사에도 아모스는 아무 말이 없다.

시하는 아모스의 눈을 자세히 보았다.

눈은 죽어 있었다.

누군가의 어린 시절처럼.

"덩치 큰 놈이 무기력하니 보기가 영 안좋네."

"… 날 왜 찾는 거요. 죽이려는거요?"

아모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불량배 집단에 있었지만, 지금껏 자신이 무언가를 주동적으로 저지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나는 분명 죽일만한 놈이지요."

하지만 마음 속에는 죄책감 뿐이다.

"글쎄, 죽이러 온 건 아닌데."

"그럼 왜 온거요."

"살리러 왔는데?"

의외의 대답에,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있던 아모스는 그제야 시하 일행을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지금껏 본 적 없는 고급스러운 옷.

잘먹고 잘사는 티가 나는 세 사람이 있었다.

"애초에 넌 이제서야 갓 성인이 된 나이. 출신을 따지고 보면 여러모로 감형을 받게 되겠지."

"슬럼가에서 저지른 행동에 증거가 없고, 적극적으로 너의 무죄를 주장한다면… 감옥에서 겨우 몇 년만 살다 나갈 수 있었을거야."

그 중에 검은 머리의 남자가 옅은 미소를 띈 채 자신에게 말하고 있다.

"필요 없소."

"뭐가 필요없다는 건데."

"감옥을 나가는 일 따위, 필요 없소."

"흐음."

아모스는 다시금 눈을 돌리고, 감옥의 벽돌 바닥 틈새에 낀 작은 돌멩이들을 살폈다.

하나.

둘.

셋.

그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빌었다.

그렇게 아모스가 돌을 세는 사이, 건너편에 수감되어 있는 남자들이 입을 열었다.

"거, 높으신 분 같은데. 생각도 없는 녀석 꺼내주려 하지말고, 저나 꺼내 줍쇼."

"나으리, 저희도 어릴 적부터 그곳에 납치되어 있었습니다. 우릴 좀 꺼내주십쇼."

두 사람이 말하자, 감옥 내의 대부분이 자신도 꺼내달라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입을 열지 않는 자는 겨우 둘 뿐이었다.

아모스.

빛바랜 금발에 기가 약한 눈의 여자.

시하는 아모스의 건너편 감방의 남자들을 유심히 보다가, 그들 중 한 명에게 물었다.

"한 명은 알겠는데… 너, 이름은?"

"카인이라고 합니다. 나으리."

아모스는 건너편 감방에 수감된 자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불량배 소굴에서 분명…

"다른 놈들은 귀찮으니까, 너희 둘만 이야기 하지. 한 새끼는 노예로 끌려온 아이를 상대로 시끄럽다며 폭행. 결국 사망에 이르렀지."

"카인. 슬럼가의 보스가 눈독을 들인 열두 살 여자아이를 납치하고 강간, 그런 도중 노예로서 상품성이 떨어지자 보스에게 들킬 우려를 해…."

시하는 말을 더이상 잇지 못했다.

"흐읍."

그리고 화를 삭히려는 듯, 숨을 들이 마셨다.

그가 항상 지어오던 옅은 미소는 어느새 사라져있고, 무표정하고 싸늘한 얼굴이 떠오른다.

스륵 ­

이내 그는 엔크라테아를 뽑아 본능적으로 마력을 한껏 주입한 뒤, 감옥 복도의 끝을 향해 휘둘렀다.

검에서 발사된 마력은 푸른 빛을 띈 채로 날아갔고, 벽에 부딪혀 흔적만을 남겼다.

그 모습에 감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후우."

시하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요나. 벽은 변상할게요. 죄송합니다."

평소의 웃는 얼굴로 요나에게 사과를 건냈다.

시하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진정되지 않을 것 같았다. 엔크라테아를 잡고 있는 것만으로는 가슴 속이 너무나 답답했다.

"그게… 예, 괜찮습니다."

원래라면 화를 내야 맞는 상황이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요나는 당황하여 대답했다.

요나의 대답을 들은 시하는 감옥 안의 쓰레기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러자 한 명은 잠시 위축된 채로, 한 명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즈… 증거가 없지 않소!"

"나는 그런 적 없습니다. 저희는 어렸을 때 끌려와서 시키는 일만 했을 뿐입니다."

시하가 말한 내용은, 에코니아 아포칼립스에서 아모스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조직원 한명 한명을 때려 눕히며 말했던 죄목이었다.

"쓰레기들."

사건의 시간대는 분명 맞다.

그렇다는 건 둘 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

시하는 뒤돌아 아모스의 감방을 보았다.

아모스는 방금 벌어진 일과 그의 말에 놀란 채 감옥 복도를 보고 있었다.

"너. 잠깐동안 내 수행원을 해라."

"뭣…"

"너에게 선택권은 없어. 너와 저기 있는 빛바랜 금발 여자, 두 명을 꺼낼 거야."

아모스는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저 앞에 있는 남자가 옅은 미소를 띈 채 또박또박 말했다는 인식만이 있을 뿐이다.

자신을 왜 꺼내려 하지.

나에게 무슨 가치가 있다는 거지.

그런 생각 뿐이다.

이윽고 회색머리의 남자가 감옥 문을 열고, 세 사람의 뒤에 있던 간수들이 아모스를 꺼냈다. 아모스가 감옥 복도로 나오자, 끄트머리에 있던 빛바랜 금발의 여성도 나오고 있었다.

"아모스, 너는 순순히 따르는 게 좋아. 그렇지 않으면 저 여자는… 직접 생각해."

아모스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귓속말을 남기고, 시하는 먼저 감옥을 나갔다.

그 뒤로 나머지 두 미청년이 따라나갔고, 아모스와 금발의 여성은 간수들의 손에 이끌려 감옥을 나가게 되었다.

* * *

이시하.

헤르만.

요나스트롱.

아모스.

금발의 여성.

그렇게 다섯 명은 사법부 바깥으로 나왔다.

방금 풀려난 두 명은, 잡혀올 때 입고 있었던 폭력배스러운 옷을 다시 받아 입고 있다.

감옥에서 나온 요나는… 한 가지 생각 뿐이다.

조부님께서 사람을 잘 못 본거라고.

정의로운 사람이 그런 냉소적인 얼굴을 하며 나지막이 욕을 뱉을 리가 있겠는가.

"교사님."

"네."

"당신에게 정의란 무엇입니까."

하지만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보석으로 풀려난 죄인들이 선한 인간인가 지켜보는 것.

그저 의문을 표할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건가요."

"저에겐 중요합니다."

시하는 그 말에 고민을 시작했다.

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지키려 노력하는 원칙은 있어도, 정의는 없었다.

"딱히 모르겠는데요."

"예?"

어이가 없어진 요나.

"복구비용은 왕도 은행에 제 명의로 청구해주세요. 그럼 오늘은 날이 늦었으니 가보겠습니다. 헤르만, 오늘은 내 집에서 자고 갈래?"

"……. 형님, 일이야?"

"그래, 손님방에서 자고 내일도 움직여야 해. 당신들은 나 따라오면 돼."

"예…."

시하와 헤르만이 이동하자, 그 뒤를 덩치 한 명과 금발 여성이 따르기 시작했다.

요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그러세요."

자포자기한 채 따라가기로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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