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46화 (46/215)

〈 46화 〉 2­10. 티오리아의 약초원.

* * *

2­10. 티오리아의 약초원.

아일라와 나는 아침거리를 사 들고 저택으로 돌아온 뒤, 다른 사람들과 모여 아침을 먹었다.

"형님, 그래서 오늘 일정은 어떻게 돼요?"

"일단 너희 가문 약초원부터 들리자. 거기 치료사도 있지? 이 사람들 상태부터 보자고."

"갑자기?"

"감옥에 갇혀있던 사람들의 건강 상태를 보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그건 그렇긴 한데…"

헤르만과 내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요나가 끼어들었다.

"우리 사법부는 형이 확정되지 않은 자들에게 최소한의 생활환경은 제공하고 있으며, 가혹 행위는 하지 않습니다. 원칙이니까요."

"… 딱히 그런 뜻은 아니에요. 가혹 행위 문제를 떠나서, 감옥이란 환경이 심리적으로 안 좋은 건 맞잖아요. 심리적인 압박감도 엄연히 질병의 원인이 됩니다.

"아…."

사실 아모스와 아일라가 감옥에 있었던 건 1달 정도다. 그사이에 큰 병은 생기지 않았겠지. 하지만 치료원에 가는 이유는 따로 있다.

아일라의 몸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시점이라면 괜찮겠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이 있다.

"요나도 따라오실 거죠? 약초원에 갔다가 거리에서 시간을 좀 때울 거에요."

"알겠습니다. 제가 교사님을 따라다니면서 저 둘을 감사하는 게 원칙이니까요."

그나저나 정말이지… 게임에서는 음습한 냉혈한으로 묘사되는 요나가 원칙, 정의, 원칙, 정의 거리니까 적응이 안 되네….

지금 요나의 모습을 보면 게임 속 그 모습은 전혀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그만큼 요나에게 큰 사건이 일어난다는 거겠지.

당시에는 캐릭터 성이 영 이상한 쪽으로 잡힌 줄 알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작중 요나의 모습은 PTSD라고 짐작되는 부분도 많았다.

타인에 대한 불신.

동시에 자신의 행적을 부정하는 대사.

범죄에 대한 병적인 집착.

수면 부족을 겪는듯한 묘사.

미래에 악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지금의 요나에게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다. 그건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부조리한 일이다.

굳이 말하자면… 요주의 인물, 그 정도다.

내겐 요나의 타락에 대한 단서가 겨우 솜방망이 처벌밖에 없다. 그러니 일단 범죄자들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야겠다.

요나 문제는 당장에 이 정도가 최선이고…

"그럼 다들 준비해서 나가봅시다. 2층 세면실도 쓰면 되니까, 어서들 씻고 조금 있다 모여요."

지금은 눈 앞의 일을 우선하자.

* * *

저택에서 출발한 우리는 약초원에 도착했다.

헤르만은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약초원장인 자신의 어머니, 호리아 티오리아에게 안내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저 왔어요."

"그래, 헤르만. 다른 손님들도 같이 온 거니?"

"네, 요즘 제가 수행하고 있는 왕실 가정교사님과 함께 왔어요."

"오, 안녕하세요. 요나도 왔구나."

호리아는 나와 옆에 있는 요나에게 차례대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네요."

"후후… 가정교사님의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아주 유능하신 분이라고 들었네요."

도대체 어떤 소문을 들은 걸까.

약간 미소가 꺼림칙하다. 무언가를 폭파한다는 소문만 들은 건 아니겠지…

"그래서 오늘은 어떤 일로 찾아오셨나요?"

"각종 질병의 진료 업무도 이곳에서 병행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 두 사람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려고요."

"아, 본인은 아니라는 거죠? 얘들아, 이분들을 데려가서 진료를 시작하렴."

호리아의 말이 끝나자, 밖에서 대기하던 시종 몇 명이 아모스와 아일라를 데려갔다.

음, 아직 부탁을 못한 게 있는데.

"음, 특히나 매독 같은 전염성 질환을 유심히 살펴주시길 바랍니다."

"매독이라… 가정교사님께서는 굳이 그걸 콕 집어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역시나 그 티오리아 사람이라 그런지, 이런 쪽으로는 감이 유난히 좋다.

전해 들을 바로는, 아셰리아 공주의 친모, 에스더의 호위이자 아카데미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였다고 한다. 원래는 에스더가 재앙에 습격받은 날의 호위에도 참여하고 싶었지만, 교국과의 조약상 따라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상태에서 에스더는 재앙의 습격을 받아 사망하게 되었고, 호리아는 그 일을 계기로 모든 호위 임무에서 사임하게 된다. 꽤 유능했던 것 같지만, 자신의 죄책감이 너무 커서 가문 약초원의 원장으로 있는 것이라고.

"기분 탓일 겁니다. 저 둘은 슬럼가의 조직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입니다. 전염병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이죠. 그저 걱정되었을 뿐이에요."

"흐음, 그랬던 거군요… 저희가 따로 신경 써야 할 사항은 더 있나요?"

"아일라라는 여성에게는 지병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쪽으로 유심히 진단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지병이 문제라면 제가 직접 내려가서 진단하는 게 맞겠네요. 세 사람은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세요."

"네."

약초원의 원장이 직접 진료에 나서겠다는데, 이러면 나는 오히려 안심이지.

대화가 끝나고 호리아는 원장실을 나섰고…

방에는 나와 헤르만, 요나만이 남게 되었다.

"형님. 내가 보기에 둘 다 영양 부족 말고는 건강해 보이던데, 갑자기 여긴 왜 온 거에요."

"그래도 만일이라는 게 있잖아."

"형님이 행동하실 때를 생각하면… 전부 이유와 근거가 충분했었는데."

"사람이 어떻게 항상 그러냐… 이곳에 온 뒤로 나는 그냥 운이 좋았던 거지."

게임 속 아모스의 대화를 생각해보면, 내가 염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래도 확률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가.

거기다…

푸석푸석하고 희미한 금발.

살이라고는 전혀 붙지 않은 체형.

혈색이 옅고 생기가 돌지 않는 피부.

"요나, 사법부 지하 감옥 말이죠. 죄인들의 식사는 어떻게 하나요?"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주는 편입니다. 식사를 제때 주지 않으면 수용된 자들이 난폭해지는 경향도 있고, 법정에 섰을 때 건강 문제로 논란이 있으면 안 되니까요."

지금 요나의 대답에서 알 수 있듯이, 에우데미아의 사법부는 죄인에게도 꽤 인간적인 대우를 해준다. 아모스의 경우에는 슬럼가에서보다 더 잘 챙겨 먹어서 건강해진 티가 나타났다.

하지만 아일라는 전혀 그러지 못했다. 무언가 지병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겠지.

게임 속 아모스의 회상에서도 어렸을 때부터 아일라가 병약하다 했었으니, 틀림없을 것이다.

내가 생각에 잠겨있는 도중, 요나가 말했다.

"교사님, 왜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겁니까."

"이렇게까지, 라니요?"

"저런 죄인들에게 일을 시킬 거라 해서, 이 정도 호의를 베풀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흠…"

아모스와 아일라는 원칙적으로 죄인이 맞다.

요나는 원칙대로 판단할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저지른 죄를 무겁게 여기지 않고 있다. 죄를 경시한다는 건 아니지만… 아모스와 아일라는 그 쓰레기 같은 악의 소굴에서 물들지 않기 위해 발악한 사람들이다.

나는 그 점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 중이다.

"요나, 제가 살던 곳에는 법 없이도 잘 살 사람이라는 말이 있어요. 애초에 법을 어길 일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건 참 재밌는 표현이군요."

"저 말을 듣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의 마음속에 법이 있다는 겁니다."

"… 마음속에요?"

하지만 내가 아모스와 아일라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든 간에, 요나의 삶의 방식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그는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다.

하지만 요나가 진정한 미모스가의 일원이라면, 지금처럼 오직 법만을 보고 살아서는 안 된다. 게임 속 요나 루트의 교훈이야말로 그것이었다.

"선한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따르더라도, 정해진 법을 넘는 일이 없습니다. 애초에 자신의 마음속에 법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악인들은 마음속에 법도라는 게 없어요. 아니, 정확히는 악인에게도 지켜야 할 선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쓰레기들은 자신의 감정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선을 멋대로 밀고 당겨버려요. 자신에게는 한없이 느슨해지고, 타인에게는 엄격한 선을 강요하죠. 그들에게 마음속 선은 자신의 행동에 변명을 붙이기 위한 수단이에요. 요나도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을 거예요."

내 말을 잠자코 듣던 요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의 반응을 보고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 말했던 표현을 다시 생각해보죠. 선량한 사람들은 오히려 법 없이는 살 수 없어요. 선인들은 마음속에 자신만의 법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반면에… 악인들은 타인에게 해를 입혀가며 사리사욕을 채우니까요."

"음…"

요나는 내 말에 다시 한번 생각에 잠기었다.

어제 사법부장실을 나오는 그때, 아론 미모스가 몇 마디를 해두지 않았을까. 그게 아니라면 이 정도로 대화에 몰입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그래도 저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요. 저들은 결국 법을 어겼으니, 선하지 않은 사람이 아닙니까."

"조부님께서는 저 사람들이 선한 사람인지 알아오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계속 고민하고 있었죠. 하지만… 저는 절대 저 사람들이 선인일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 부탁을 사법부장이 흔쾌히 들어준 이유.

아마도 그건 요나를 위해서가 아닐까.

그저 어렴풋이 떠오른 추측일 뿐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의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 요나에게 약간의 고민거리를 주어야겠다.

원래는 이방인이 요나를 일깨워줘야 하지만… 생각의 실마리 정도는 내가 줄 수 있다.

"요나, 선한 사람들이 원칙을 어기는 경우가 딱 하나 존재해요. 한번 생각해보실래요?"

"……."

요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원칙이다.

그런 요나의 마음속 법이란…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하는 원칙.

"잘 모르겠습니다… 법은 원칙이고, 선한 것이지 않습니까. 왜 선한 사람들이 어긴다는 거죠?"

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살아오면서 그는, 법의 존재 이유와 의의에 대해 고민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법은 완전하지 못하다.

법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선한 사람이 원칙을 어기는 그 순간."

나는 속이 여러모로 꼬인 사람이라, 이런 고민을 수없이 많이 하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나는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다.

"그 순간을, 아모스가 보여줄 겁니다. 그때가 오면 요나에게 정답을 말씀해드릴게요."

그나저나 요나와 나는 겨우 네 살 차이 아닌가.

따지고 보면 고3이나 대학교 새내기 정도…

어른 아이를 가르쳐야 한다니.

귀찮구먼.

* * *

진단을 받기 위해 내려갔던 두 사람과 약초원장, 호리아가 돌아왔다.

"남성분은 건강하시네요. 식사를 잘하시기만 하면, 건강한 상태로 지내실 수 있을 거예요."

아모스야 당연하겠지.

체격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가.

지금이야 불량배다운 옷을 입고 있지만, 멋들어진 슈트와 선글라스 하나만 있으면 간지가 줄줄 흐를 것이다.

"그리고 여성분… 성병은 다행히 없었어요. 그런데 희소병인 마력 축적병이 있으시네요."

"마력 축적병이요?"

"선천적으로 마력을 수용하는 체질인데, 몸이 마력을 감당해내질 못해서 생기는 병이에요. 증상으로는 머리카락 색이 옅어지고, 신진대사가 방해받기 때문에 전반적인 건강 상태가 안 좋아져요. 그렇게 점점 죽어가는 거죠."

"그럼 어떻게 해야 나을 수 있죠?"

힐끔 아모스 녀석을 보니, 감옥에서부터 절대 변하지 않던 표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모습이 참… 부담스럽다.

눈망울에 습기가 그렁그렁 맺혔기 때문이다.

어딘가의 마초 같은 체격을 가진 주제에, 표정만큼은 순정 만화의 남주인공. 그 갭이 너무 커서 적응이 안 될 지경이다.

…선글라스를 꼭 씌워야 할 것 같다.

"자연 마법을 배우고 사용하면 됩니다. 엄청난 걸 배울 필요도 없으세요. 마력을 방출해내기만 하면 충분히 해결될 일이에요. 하지만 아예 진로를 그쪽으로 잡으셔도 됩니다. 이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 중에는 대마법사가 많아요."

"어떻게 보면… 마법을 제대로 접할 수 없기에 심각할 수 있는 질병, 그런 거군요."

"그렇죠. 여기 오길 잘하셨어요. 워낙에 희소병이라 정확한 증상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치료법은 이렇게나 간단한데 말이죠."

아모스만 생각하고 같이 석방한 건데, 아일라는 의외로 대마법사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런 게 바로 일석이조가 아닐까.

아모스 역시 내색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쁜 마음은 표정에서 전부 드러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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