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 212. 답답함.
* * *
이시하는 처음 카페에 온 날, 교재가 없었기에 수업을 진행하지 못하였다. 그저 간단한 요기를 하고 다같이 저택으로 귀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첫번째 수업.
"세종대왕님… 감사합니다."
"그게 누구야, 형님."
"그런 게 있어…"
다행히 자랑스러운 문자, 한글이 전 세계의 공용어인 에코니아였다. 이시하는 그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면서 교육에 착수했다.
"아일라는 이 신문을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를 전부 체크해. 옆에서 요나가 가르쳐 줄거야."
"교사님…"
요나는 자신이 왜 이걸 해야하냐는 표정.
"어차피 한 주동안 감사한다면서요. 그 동안에 요나가 협조도 해주실 겸, 직접 가르치세요."
아일라의 경우 어렸을 적 배워둔 게 있기에 간단한 읽을 수는 있었지만, 기초적인 맞춤법과 고급스러운 표현들에 서툴렀다.
그렇기에 시하가 선택한 수단은 신문.
신문을 주고 못 읽는 글자는 요나에게 시켜 알려주게 할 심산이었다.
"아모스, 여기 자모음 표야. 단어들 몇 개를 같이 적어두었는데 한번씩 소리내서 읽어봐. 읽지 못하는 글자는 내게 직접 물어보고."
아모스는 글을 배우기도 전에 슬럼가에 끌려왔기에 배운 것이 없었다. 그래도 주변에 있는 문자들을 겨우겨우 읽을 수준은 되었기에, 읽는 습관을 들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시하였다.
"형님, 나는 지금부터 뭘 해야 해?"
"너는 잠시 따라 나와봐. 아모스, 내가 없는 동안에는 요나에게 알려달라하면 돼."
시하의 말에, 요나는 똥씹은 얼굴이 되었다.
세 명에게 각자 할 일을 준 시하는, 헤르만을 카페 밖의 한적한 곳으로 데려갔다.
"헤르만, 긴히 부탁할 일이 있는데."
"형님, 무언가 예감이 안 좋은데…"
"취지는 좋은 일이야."
"취지만 좋은거겠지…"
역시 눈치가 빠르다고 생각하는 시하였다.
"첫 참관수업에 초청된 멍청이들, 이번 건국제 연회 때 관료직에서 죄다 짤렸지?"
"음… 그렇지. 지방 영주들 중에는 부모 자식 관계를 끊어버린 사람들도 있어. 그게 아니더라도, 자기 영지로 데려가버렸고."
시하의 첫 참관수업에 발표를 맡았던 관리들. 그들은 국왕 내외가 바쁜 틈을 타, 집무실의 아셰리아에게 일을 매번 떠넘기던 자들이다.
그들은 지난 건국제 본일 연회에서 '짜여진 각본'에 따라 왕가의 규탄을 받게 되었다. 명백한 업무 태만이기에, 항의할 명분마저 없던 지방 영주들은 순순히 처벌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네 여동생에게 가서, 아셰리아 공주님을 가장 귀찮게 한 쓰레기를 알아 와. 특히, 본가에서 의절당하고 재정난에 허덕이는 놈으로."
"뭐요? 갑자기?"
요즘따라 '갑자기?' 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헤르만이었다.
"그리고 나선 말이야…."
작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한 시하.
그걸 들은 헤르만은…
"형님, 악마였어?"
"그거, 마족 차별 발언이야. 나도 밑작업은 해야하니까… 시간은 닷새정도 줄게, 서둘러라?"
"하아…"
한 숨을 쉬며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 * *
수업 둘째 날.
참가자는 이시하, 요나스트롱, 아일라, 아모스.
"요나님, 다 적었습니다."
"어디 봅시다."
아일라는 의욕적으로 배우려는 편이었다. 자신이 맞춤법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지금은 받아쓰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아일라, 여기 틀리신 부분을 체크해뒀습니다."
"으음…"
"이해가 잘 안 되시는 부분이 있나요?"
요나 역시 무언가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보고, 신문의 문장을 읽으며 도와주는 상황.
"제가 같은 단어를 여러번 틀리네요."
"흐음…. 오랫만에라…"
하지만 요나는 가르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자신이 맞춤법이나 철자를 틀린 경험이 적었기 때문. 실패한 경험이 적은 요나로서는 이런 기초를 어떻게 가르칠 지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 때, 이시하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요나, 단어를 한번 분리해서 가르쳐 보세요."
"분리하라니요?"
"아일라는 '오랫만에.' 라고 적었네요. 원래는 '오랜'에 '만에'를 더한 글자죠. 사이에는 시간이라는 단어가 생략되어 있는거예요."
"흠, '오랜 시간만에.'. '오랫 시간만에'는 어색하니, 오랜이 맞다고 가르쳐드리면 되는군요."
"이해가 빠르시네요."
"역시 가정교사님은 직업이 직업이시다보니, 이런 교육론에 해박하시군요."
"하하하… 교육론이라니, 과찬이십니다."
초등학생 과외도 도맡아 했었기에, 단어를 쉽게 가르치는 방법을 알 뿐인 시하였다.
하지만 요나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막힌 부분을 시원하게 뚫어내는 방법론을 제시해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마치 가뭄에 단비와 같았다.
"아모스, 지금 뭐하고 있어?"
"아."
그에 반해 아모스는 집중력이 좋지는 못했다.
그의 자리는 테라스의 가장자리. 창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기 좋은 자리였다.
"쓰는 거야 나중에 대리인을 고용하면 된다지만, 읽고 뜻을 파악하지 못하면 살기 어렵다고."
"그게… 미안하오."
"밖에 무슨 일 있나?"
"그런 건 아니고…."
아모스가 보던 풍경.
건너편 제과점의 딸이 아버지에게 목말을 탄 채, 꺄르르 거리며 좋아하고 있다.
아모스는 그 모습을 보며 자연스레 자신의 예전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한 달 전 수금을 나갔던 자신의 모습.
후자의 자신은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음, 아모스. 저 제과점 가서 먹을 것 좀 사올래? 출출하니까 수업에 집중을 못할수도 있고."
"아, 그게…"
"여기 대동화 세 장. 가격에 맞춰서 사오면 돼."
"… 알겠소."
저 평화로운 제과점을 멀리서 지켜보고만 싶었을 뿐, 가까이 가기는 너무나 무서운 그였다.
하지만 아모스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하나뿐인 아일라 누님의 생명을 구한 은인이 하는 말이었다. 거기에 자신이 출출하다고 생각하여 돈을 내주는 상황 아닌가.
그렇기에 하는 수 없이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카페를 나와 제과점까지.
그것은 8미터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모스에게는 너무나 먼 거리였다.
더군다나 자그마한 딸까지 있는 제과점.
덩치 큰 아모스에게 너무나 두려운 상황이다.
"후우…"
하지만 다시금 마음을 진정시킨 아모스는, 대동화 세 장을 손에 꼭 쥔 채로, 제과점을 향해 발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그렇게 도착한 제과점.
겨우 제과점에서 빵과 과자를 사는 일이다.
하지만 아모스는 그 상황이 너무나 두렵다.
"아… 안녕하시오."
"안녕하십니까, 손님!"
제과점의 주인이 쾌활하게 아모스를 맞이한다.
방금까지 거리에서 목마를 태우던 남자다.
"여기, 대동화 세 개분, 포장 부탁하오."
"알겠습니다. 메뉴는 어떻게…"
"음…"
아모스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 모습을 보고 제과점의 딸이 다가왔다.아이의 나이는 겨우 7살 근처로 보인다.
아모스는 그 작은 아이가 너무나 무섭다. 그 반응을 보이면 자괴감이 들 것만 같다.
"오랜만에 손님? 근데 아저씨, 멋있다아…"
"미샤, 손님에게 그러면 안돼."
"히잉…"
하지만 아모스의 생각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원래 아모스를 본 슬럼가의 사람들은, 언제나 그의 덩치와 복장을 보고 두려움에 떨었다. 특히 아이들은 오줌을 싸며 울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앞에 소녀는 달랐다.
난생 처음으로 멋있다는 말을 듣게 된 아모스.
그는 서둘러 해야할 말을 찾았다.
"어… 어. 그래, 고맙다…"
고맙다는 말을 한 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을이 도적에게 습격당해 불타고, 친구들과 조직에 끌려온 뒤론 해본 적 없는 말이었다.
"아빠, 아저씨가 고맙다고 하시잖아!"
"그게… 죄송합니다. 손님."
아이는 고맙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에게 당당하게 외치고, 점주는 사과를 하는 상황.
"괜찮소…"
하지만 아모스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잠시 후,
아모스는 종이 봉투를 품에 안은 채 제과점에서 나왔다. 그의 뒤로 부녀도 따라나왔다.
"아저씨, 아직 맛있는 거 전부 골라주지 못했으니까, 다음에도 또 와요!"
"… 그래."
아모스가 안고 있는 종이 봉투 안에는 소녀가 추천한 빵과 과자들로 가득하다.
"안녕히가세요, 손님. 아이에게 맞춰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오시면 서비스도 드릴게요."
"나도 즐거웠소."
"하하, 감사합니다."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아모스였다.
* * *
수업 셋째 날.
"오늘은 마력적성 검사지를 가지고 왔어. 두 명의 심상 마법 잠재력을 볼 거야."
시하는 자신도 언젠가 시험해보았던 검사지 두 장, 카페 수업에 들고 왔다.
"물론, 아일라의 경우에는 자연 마법 적성이 높다고 했으니까… 심상 마법 잠재력은 낮게 나올 수도 있다는 점. 미리 알아 두고."
"둘 다 검사지 중앙에 손을 대면 돼."
이시하의 안내에 검사를 시작한 둘.
아일라의 검사지는 여러 색이 옅게 점멸했다. 이는 심상 마법 잠재력이 없는 사람이 검사지를 잡았을 때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반면에 아모스는…
"…상당히 짙은 검은색이군요."
"그러네요. 그래도 뭐… 검은색도 여러 의미가 있으니까요. 괜찮을거라 생각합니다."
검은색.
분명 부정적인 의미가 더 많은 색이다.
하지만 이시하는 이미 아모스의 심상 마법이 어떤 것인지 게임을 통해 아는 상황이기에, 이 검사 결과에 만족하고 있는 중이다.
"자, 공부합시다. 아모스, 오늘도 수업 끝나고 저 제과점에 가서 먹을거리 좀 사와주세요."
오늘도 아모스에게 제과점을 다녀오라는 시하.
"알겠소."
그의 말에 아모스는…
집중해서 읽기를 마치고…
제과점을 갈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해맑은 소녀의 웃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음 날 역시 수업은 마찬가지였다.
아일라와 아모스는 열심히 수업에 참여했고,
아모스는 제과점 부녀와 인사를 나눴다.
* * *
수업 다섯째 날.
오늘도 읽기 공부를 하는 도중, 아모스는 평소와 다른 위화감을 느꼈다.
밖을 보니, 카페 건너편 부녀의 제과점이 소란스러웠다. 평소와 다르게 사람들로 가득하다.
아모스의 마음 속에 작은 소녀가 떠올랐다.
'장사가 평소보다 잘 되는구만…'
자신 한 명이 가도 오랜만의 손님이라며 좋아하던 소녀였다. 저렇게 장사가 잘 되면 분명 기뻐할 것이다. 자신이 하는 장사도 아닌데, 아모스의 마음은 왠지 모르게 벅차올랐다.
"아모스, 집중. 지금 중요한 부분이야."
"아, 알겠소…"
그렇게 재개된 수업.
아모스는 최근 자신이 읽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을 느끼고 있기에 꽤나 만족하고 있다.
거기에 충분한 수업 동기도 있다.
'오늘도 수업을 마치면 제과점에 다녀 오라고 했으니, 지금은 열심히 공부나 하자…'
하지만 그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에이! 이 빵 안에서 벌레가 나왔다고! 난 이러면 돈 못내!"
"아니, 손님… 빵은 구워져서 나오는데, 벌레는 방금 잡은 것 같지 않습니까…"
"이 사람이, 손님을 지금 의심하는 거요?"
제과점에 진상이 꼬였기 때문이다.
아모스는 영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아모스, 집중. 아직 수업은 안 끝났어. 두 가지 원칙 정해둔 거, 기억하고 있지?"
"… 네."
하나, 수업 종료 시각은 이시하가 정한다.
둘, 수업 도중에는 이탈할 수 없다.
간단한 두 가지 원칙이었다.
"빵이 다 식어있네… 며칠된 거 아냐?"
"손님, 나온지 두 시간 된 빵입니다."
"그런데 벌써 식어버린다고? 사기 아냐?"
원칙만 지키면, 아일라 누님과 자신은 한 달 뒤에 돈을 받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
거기에 이시하는 충분히 자신들을 대우해주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일을 계속할 의향도 있다.
이건 밑바닥 인생을 청산할 기회다.
"내가 음유시인인데, 서비스 좀 주면 이 제과점 홍보해드릴게. 이거 엄청 싸게 해주는거야. 안준다고? 그럼 가서 노래나 불러야겠다."
자신은 의도하지 않아도 상대방을 위협해버리는 거구. 조직에 있던 시절부터 아모스는 자신의 거대한 체구가 너무나도 싫었다.
자신에게 겁을 먹은 거리의 아이들을 볼 때마다 자신의 마음이 쿡쿡 쑤셔왔다.
그 느낌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 허나 그 느낌이 너무나 싫어서 수금을 거부했었다.
그로 인해 두들겨 맞고, 독방에 감금당하고, 며칠간 식사도 못한 채로 죽으려했었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 제과점 부녀에게 자신의 체격이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저기요, 사장님? 빵에서 잡곡이 씹히는데요?"
"아줌마, 아줌마가 잡곡빵을 사셨잖아요!"
"아니, 이 꼬맹이가 뭐라는거야? 잡곡을 알아서 잘 갈아야지. 왜 씹히게 한 거야!"
아모스는 자신도 모르게 밖을 봐버렸다.
중년의 여성이 소녀와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가고 싶었다.
"아모스, 그 때 한 말을 잊은 건 아니겠지? 10분이면 수업은 끝나. 지금은 집중 해."
수업은 10분.
하지만 중년 여성은 소녀를 손가락질까지 해대며 나무라고 있었다.
'아모스, 너는 순순히 따르는 게 좋아. 그렇지 않으면 저 여자는… 직접 생각해.'
왕실 가정교사.
분명 옷을 샀던 가게에서 들은 직책이다.
정확히 어떤 직책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회색머리 남자나 금발 남자의 이야기 속에서, 공작이라는 단어 정도는 들은 것 같다.
공작.
엄청나게 높으신 분이라는 건 안다.
감옥에서 자신들을 꺼내줄 권력.
주변을 걸으면 인사하는 사람들.
귀족들도 이 사람에게 고개를 숙인다.
그런 사람이 아일라를 해한다면…
아모스는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저 10분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수업 끝. 제과점 가서 먹을 거 좀 사와."
"… 알겠소."
아모스는 최대한 빨리 걸어 제과점을 향했다.
하지만 이미 그곳에 있던 진상들은 떠났고,
자신에게 미소짓던 소녀가 울고 있었다.
이전에 느낀 그 답답함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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