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51화 (51/215)

〈 51화 〉 2­15. 속죄하는 방법

* * *

2­15. 속죄하는 방법

"아모스, 너에게 부탁할 일이 있었다고 했지?"

"… 그렇소."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아모스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신이 원칙을 깬 대가.

그것을 치뤄야할 때가 왔다고.

하지만 뒤따르는 말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걸 말하기 전에, 사과해야할 것이 있어."

"사과…라니?"

"너에게 거짓말을 여러 개 했거든."

이 사람이 자신에게 사과할 것이 있었나.

아모스에게는 감이 오지 않았다.

"전혀 모르는 것 같네… 그럼 처음부터 말해줄게. 애초에 나는 아일라를 어떻게 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 널 고민하도록 하는 장치였지."

이건 오히려 사과할 일이 아니었다.

지금껏 해온 걱정이 쓸모 없어졌긴 했지만, 누님이 안전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드는 그였다.

고민하도록 하는 장치.

그 말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 다음부터가 중요해. 너희의 공부를 이 카페에서 진행하게 된 건 우연일까?"

"형님, 그거 꼭 말해야 하는 거야…?"

"전부 말해야 해. 아모스는 알 권리가 있어."

"하아…"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아는 유일한 인물, 헤르만은 걱정이 될 뿐이었다.

평소 사람이 필요하다던 시하였다. 아모스를 자신의 사람으로 끌어들이려면, 이런 사실은 숨겨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모스 본인이 전부 알고, 선택해야만 해."

하지만 시하의 어조는 너무나 강했다.

헤르만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모스, 어제부터 위화감은 없었어?"

어제.

갑자기 제과점에 진상 손님이 늘어난 날.

"공부 장소는 왜 하필 여기일까. 너가 테라스에 앉은 것. 제과점에 가게 된 것. 오늘 일을 너가 제일 먼저 알아차리게 된 것. … 이상한 손님들이 어제 오늘에 걸쳐 온 일까지."

그리고 오늘.

썩어빠진 귀족이 찾아와 후원을 한다며 제과점 부녀에게 행패를 놓은 날.

"설마…"

"전부, 내가 의도했어."

"저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고나 있소?"

아모스는 제과점의 부녀를 떠올렸다.

자신이 속았다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소!"

"착각하지 마. 너가 직접 구하지 않았어도, 저들은 죽을 일이 없었어."

그들은 무기를 든 귀족 앞에서 반항조차 못하며 떨고만 있었다. 당시 부녀의 심정은… 본인이 어렸을 적 느끼던 두려움과 비슷했을 터.

그 소녀만큼은. 어릴 적 자신이 느낀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저 아이가 느꼈던 두려움은 어떻게 할거요…"

"그게 내가 사과해야할 부분이겠지."

시하의 당당한 모습에…

아모스는 어이가 없어져 버렸다.

"확실히 할게. 너가 만약 지키려 하지 않았으면… 저 쓰레기는 내가 직접 막았어. 하지만 그 순간, 내 목적은 실패한 거나 마찬가지겠지."

문득 느껴지는 위화감.

아모스는 그 위화감에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잠깐… 내가 구하러 갈 것도 알고 있었소?"

"… 확신은 없었지. 하지만 너가 가지 않았다면, 나는 돈이나 주고 너희를 내쫓았을 거야."

아모스에게 시하의 말은, 마치 자신이 제과점 부녀를 지키길 바랬다는 것처럼 들려왔다.

"대체 왜…"

"너. 한 달 전에는 죽으려 했었지."

"……."

속죄하고 싶었다.

더이상 사람들 앞에 서고싶지 않았다.

슬럼가의 독방에 갇힌 채로, 죽으려 했었다.

하지만 이 사람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는 걸까.

"사람들에게 속죄하겠다는, 그런 얄궂은 생각으로 죽으려 한다니. 정말 멍청한 생각이야."

"당신이… 내 무엇을 안다는 것이오."

"그렇지. 전부 알지. 독방에 갇혀 죽으려 한 것도, 아일라를 위해서라며 독방을 나온 것도. 네가 정말 한심한 놈이라는 것도 잘 알아."

"……."

아모스는 잠자코 들으려 했다.

"사람들이 벌벌 떨면서 돈을 바친다, 그딴 알량한 이유로 뒤질 생각을 한 놈이니까."

"… 그만하시오."

하지만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이 스스로를 얼마나 원망했는지…

자신이 다른 이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자신의 마음 속 죄책감이 얼마나 컸는지…

자신의 모든 걸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시하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속죄가 그딴 쉬운 방법으로 된다니, 착각도 작작해야지. 자신이 무슨 성인도 아니고…"

아모스 본인도 모르는 사이, 손이 나갔다.

방금 전 귀족을 쓰러뜨렸던,

본능적으로 허리의 반동을 최대한 준 타격.

신장차가 나다보니, 당연히 맞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시하는 자연스럽게 대처했다.

왼팔으로. 주먹을 막는다기보다는, 무게감을 받아낸다는 느낌으로 방어.

오른손으로는 막은 팔의 상완을 밀치자, 아모스의 팔은 자연스레 안으로 굽어버렸다.

시하는 상완을 밀친 손을 그대로 뻗어 가까워진 아모스의 턱을 올려쳐 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억!"

아모스는 그 충격에 고개가 들리고, 이어진 밀어차기에 엉덩방아를 찍어버렸다.

앉아 있던 요나는 그 모습을 보고 시하를 말리고, 아일라는 뛰쳐나가 아모스를 감쌌다.

"교사님, 너무 심하십니다!"

"그만 해주세요, 제발!"

그 모습을 보고 시하는…

또다시 엔크라테아에 왼팔을 걸치고

깊은 한 숨을 내쉰 후 말했다.

"네가 죽었다는 사실을 누가 알아주기라도 할까. 그래, 네 옆의 아일라 정도만 알아주겠지."

에코니아 아포칼립스.

선한 인물들의 끝이 언제나 안 좋았던 게임.

"네가 죽는다고 바뀌는 건 하나도 없어. 죽어보았자, 세상에 시체 하나가 생겨날 뿐이야."

그런 게임에서, 시하에게 아모스의 루트는 특히나 더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왜 악인은 죄책감을 가지지 않으며, 마음 약한 아모스는 죄책감을 못 이겨 죽음을 택하는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아모스는 주저앉은 채, 자조하듯 말했다.

"내가… 어떻게 해야했소."

"살아야지."

"내가… 살아도 되는거요?"

아모스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다.

간절하게,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죽으면 마음이야 편하겠지. 하지만 딱 거기까지야. 너는 벌레처럼 살아서라도 더 구해야 해."

시하는 게임 속 아모스의 독백으로 답했다.

"넌 언제나 남을 위하고 싶은 주제에, 남들 눈치를 보고 지레 겁을 먹은채 죽으려 했었지."

본래의 흐름에서는, 아일라가 죽고나서야 아모스는 다짐한다. 그렇기에 끝이 좋지 않았다.

간부까지 오르는 그 과정에서 저지른 죄의 부채감을, 아모스는 이기지 못했으니까.

"만든 상황이긴 하지만… 넌 삶과 아일라를 걸고 밖으로 나갔지. 그리고 두 사람을 구했어."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순간 너가 품었던 마음 만큼은 온전히 네 것이야. 그건 내가 설계한 것이 아냐. 원래부터 너가 품고 있었던 너만의 본심이야."

"……."

"난 너처럼 순해빠진 착한 놈이 아니라서… 이런 방법이 아니면 네 본심을 자각시켜 줄 수 없어.내가 사과해야 하는 건 이거였어."

아모스는 잠시간 생각했다.

그리고 시하를 똑바로 쳐다 보며 말했다.

"나에게, 무엇을 시킬 생각이었소?"

무언가,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해버렸다.

이유는 없다.

"사람 돕는 일을 시작할거야. 너가 맡아."

"그 일을 하면… 구할 수 있는 것이오?"

"내가 미래를 어떻게 알아. 확실하지는 않아도, 그저 내 예상을 말하자면…"

자신의 예상일 뿐이다.

사실을 제대로 고지하는 시하.

"너는 많은 사람들을 구하게 된다."

아모스는 차분히 생각해본다.

그는 분명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진실만을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한 달 전, 자신은 분명 죽으려 했었다.

사실 방금까지도, 삶에 큰 의지가 없었다.

과연 나라는 인간이, 다른 사람을 두렵게 하는 것이 아닌,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항상 해오던 고민이었다.

"거절해도 돼. 어차피 너희가 살아갈 정도의 돈은 충분히 주려고 했었어."

"… 하겠소"

"……."

머릿속에 제과점 소녀의 미소가 떠올랐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다시금 귓가를 스친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경험을 다시 하고 싶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할 수 있다면 하겠소."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마음 속에 다짐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아모스는 시하에게 조건 하나를 덧붙였다.

"단, 오늘처럼 선량한 누군가가 피해를 입게 되는, 그런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거요."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시하는 대답하며 생각했다.

역시나 아모스는…

스스로 남을 위할 생각을 해낸 사람.

"목숨이 위험할 때도 있을 거야."

"상관 없소."

그렇기에 본인과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그 사실이 자신을 찔러온다.

"죽어라 노력해야할 거야."

"바라던 바요."

아모스의 대답을 들은 후,

시하는 아일라를 바라보았다.

"… 너는 어떻게 할래?"

하지만 아침 식사거리를 사러간 그 날부터, 아일라의 대답은 정해져있었다.

"저번에 말씀하셨잖아요… 할게요."

"그래."

시하는 일어나 테라스 근처로 다가섰다.

밖에는 한 바탕 소란을 겪은 제과점이 보인다.

그리고 그는, 유난히 크게 헤르만에게 말했다.

"저 제과점은 내가 레시피만 조금 손봐주면 더 잘 팔릴 것 같은데… 내가 좀 가르쳐줄까?"

"형님, 빵도 잘 구워?"

"취미였어. 거기다 내가 있던 세상이 빵 굽는 기술은 여기보다 훨씬 더 좋거든?"

"싸움도 취미였다며… 별 게 다 취미야."

시하는 헤르만의 핀잔을 가볍게 무시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자리를 아카데미 근처로 옮기면 저택에서도 더 가까워지고… 매출도 오르니까 좋을거 같지 않아? 아모스도 제과점에 자주 들를 수 있고."

아모스는 그의 말을 들으며 안도감을 느낀다.

"탈락 귀족에게 피해를 입은 제과점. 그 현장을 우연히 목격한 왕실 가정교사가 자리 이전과 함께 보상금, 새로운 레시피를 제공…"

"그렇게 처리하라는 거지?"

"잘 아네, 헤르에몽. 해 줘."

"후우… 헤르에몽은 또 뭐야…"

헤르만은 또다시 일을 처리하러 떠나고,

거리를 보던 시하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아무도 들리지 않게 읊조렸다.

"나도 참… 쓰레기네."

* * *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하루가 끝나고, 요나는 혼자 사법부 건물로 돌아왔다.

자신의 조부이자 사법부장, 아론 미모스에게 보고를 올리기 위해서다.

"조부님, 돌아왔습니다."

차를 마시고 있었던 아론 미모스는 그의 손주를 반갑게 맞이했다.

"돌아왔구나. 차라도 한 잔 하겠느냐?"

"아, 감사합니다."

요나는 받은 찻잔 안을 멍하니 들여다 보았다.

찻물은 검은 색이었다.

그는 찻물을 보며 시하와의 대화를 떠올린다.

선인이 원칙을 넘을 때…

그러던 중, 아론이 손주에게 물었다.

"일은 어떻게 되었느냐."

"그게…"

요나는 자신이 가정교사와 나누었던 이야기는 잠시 치워둔 채, 보석으로 나간 두 사람 주위에 있었던 일을 조부에게 소상히 고했다.

"흠…"

아론은 모든 일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가정교사의 행적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아서이다.

범죄자에게 내적인 시련을 설정하고 극복하게 한다. 단지 그것뿐이라면 오만하고 패도적이라는 감상을 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꾸며낸 일을 소상히 말해주고, 사과까지 한다니. 그걸 들은 순간, 아론은 앞의 평가를 철회하고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모순적인 행동.

그런 생각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조부님."

"왜 그러느냐."

"그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고민이라고?"

고민.

요나는 청소년기, 부모를 잃은 그 순간부터 원칙을 스스로 찾아 행하던 아이였다.

그런 손주가 고민이 생겼다고 말하다니, 아론 미모스에게는 꽤나 생소한 일이었다.

"말해보거라."

"선한 사람들이 원칙을 어기는 경우… 그것이 언제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음… 그것만 듣고서는 잘 모르겠구나. 어쩌다 그런 것을 고민하게 되었느냐?"

"시작은 제가 가정교사님께…"

요나는 시하와 이야기한 것을 털어놓았다.

범죄자에게 왜 호의를 베푸는가.

법 없이도 살 사람.

마음 속의 법과 선.

선인과 악인의 차이.

선인이 원칙을 어겨야 할 때…

그리고 다시 아모스…

모든 것을 담담히 듣기만 하던 사법부장, 아론 미모스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이시하, 그 자가 그런 말을 했더냐?"

"네."

"그래서 그것이 고민이고?"

"그렇습니다. 아모스의 결단이 교사님께서 말씀하신 그 순간이라는 자각은 있습니다. 하지만 선을 넘을 때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아론 미모스는 손주에게 전하고 싶은 어떤 말을 항상 마음 속에 품고 있었다. 그 말을 지금 요나에게 해줘야할 지 고민하던 그는…

"나 역시 설명해주지 않길 바랄 것이라고, 그 친구가 말했다지?"

사람을 안달나게 하는 방법.

"예."

그것은…

"그럼 나도 말하면 안 되겠구나."

말을 하다 마는 것이다.

"아니, 조부님마저…"

이번에야말로 해답을 들을 것이라 기대한 요나의 표정은 또다시 망가져버렸다.

부모를 잃고 난 뒤로는 보이지 않던 손주의 표정을 보고, 아론 미모스는 내심 만족했다.

"이것만큼은 직접 고민해보거라."

"예…"

"일주일간 고생했다. 먼저 들어가보거라. 나는 아직 결재해야할 것이 남아있단다."

"알겠습니다. 먼저 저택에 돌아가겠습니다."

요나는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서고,

사법부장실에는 다시금 아론만이 남았다.

잠시 후

"선인이 원칙을 넘을 때라…"

그는 혼잣말로 되뇌었다.

그리고 아론은 마시던 차를 들여다보았다.

찻잔 안에는 검은 찻물이 있었다.

그는 찻물을 보며 말했다.

"암스트롱과 사피라 역시 걸었던 길이란다…"

아론 미모스가 마음 속으로 품고 있던 말.

암스트롱 미모스, 사피라 미모스.

몇 년 전의 사건에 휘말려 죽은 요나의 부모.

요나가 원칙을 맹신하기 시작한 이유.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말하면 안되었다.

요나가 스스로 깨닫고 나서야 말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론은 멍하니 찻잔 안을 볼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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