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52화 (52/215)

〈 52화 〉 2­16. 나만이 알고 있는.

* * *

시하가 아모스와 아일라의 '수업'에 시간을 쓰는 동안, 알렉산더 왕자와 아셰리아 공주는 동관에서 후궁으로의 이사를 끝마치게 되었다. 이제는 온 가족이 한 집에서 모여 살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함께 살게 된 지 일주일.

지금은 후궁의 조식 시간.

식당에는 국왕 내외와 알렉산더 왕자, 아셰리아 공주. 이렇게 네 사람이 한 식탁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식탁에서 가족 간의 거리는 꽤나 짧은 편이다. 이시하가 본다면, 현대의 가족들이 쓰는 식탁과 비슷하지만 약간 클 뿐이라고 할 것이다.

국왕 가족은 가벼운 조식과 저녁 만찬만큼은 온 가족이 모여 함께하도록 정해두었다.

그동안은 공주의 얼굴을 보기만 하면, 사별한 에스더의 얼굴을 떠올리던 필레몬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을 채우겠다는, 그의 다짐이 반영된 결정이다.

물론, 필레몬 본인은 자신의 본심을 왕비, 루시아 이외의 사람에겐 말하지는 않았다.

"알렉. 오늘도 거리에 나가는 거니?"

왕비, 루시아가 알렉산더에게 물었다.

"오늘은 나가지 않습니다."

"흐음, 그러니?"

"네, 아마 오늘은 후궁 뒤편에서 검술과 심상 마력 수련을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나가지 않는다.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오늘따라 왕비는 그럴 수 없었다.

자신에게 들어온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루시아는 아들을 약간만 떠보기로 했다.

"음… 그렇구나, 알렉. 예전과는 다르게 외출할 때마다 호위도 알아서 구하고, 미리 나에게 말해주기까지 하니. 어머니로서는 안심이란다."

"하하… 감사합니다."

원래부터 루시아는, 알렉산더가 외출할 때마다 다른 이들에게서 보고를 받고 있었다. 유일하게 알렉산더의 동선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은 타라스 마을의 재앙출현 사건. 이시하가 우연히 수습하여 다행인 일이었다.

타라스 마을의 건을 제외한 경우. 루시아는 알렉산더가 외출할 때마다 믿을만한 기사를 파견하여 왕자의 안전을 신경써왔다. 아무리 프라시스 가의 자제인 기디언과 함께 다닌다 해도, 둘은 아직 어린 아이에 불과하니까.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아들이 성실해졌을까. 궁금하기도 하네."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드리긴 부끄럽지만, 당연한 일을 이제야 깨달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루시아가 위화감을 느낀 건 최근이다.

원래라면 왕성 밖으로 나가는 보고를 돌아오고서야 하던 아들이었다. 하지만 타라스 마을의 사건 이후로 알렉산더는 변했다.

처음에는 '야외 수업'의 덕택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약간 의아한 구석이 있다. 수업의 교훈이 알렉산더에게 영향을 끼쳤을 수 있었겠지만, 이시하가 따로 알렉산더의 외출에 대해 신경쓴 부분은 없었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를 믿고 싶지만… 그래도 마냥 믿기만 하는 건 책임을 회피하는 일. 루시아는 이 부분을 확실히 파악하고 싶었다.

"거리를 나가는 이유도 약간 궁금하구나."

"음… 수업에서 느낀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왕자의 외출 빈도가 심상치 않다. 마치 거리에 꿀이라도 발라둔 것 마냥, 하루가 멀다며 왕궁을 나서는 알렉산더였다.

"그게 어떤 것인지 물어봐도 되겠니?"

"민생을 직접 제 눈으로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구나."

이것 역시 '야외 수업' 이후의 일이다. 이사하의 수업에서 알렉산더는 '조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루시아는 그 수업의 내용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에, 알렉산더의 대답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루시아가 알렉산더의 외출을 의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

"최근, 어떤 소녀와 함께 다닌다는 기사들의 보고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누구니?"

"오호라, 그건 나도 궁금하구나."

루시아의 폭탄 발언.

그 발언에 필레몬 역시 반응하였고…

조용히 식사를 계속하던 아셰리아 역시, 지금의 화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평범한 소녀가 이런 이야기에 흥미가 가지기 시작하는 건, 분명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 그게…"

순식간에 알렉산더에게 집중된 이목.

알렉산더는 아셰리아의 시선은 눈치채지 못하였으나, 국왕과 왕비의 이목을 부담스러워 하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스승님과의 야외 수업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슬럼가 초입에 있는 혜국의 전통 빵을 판매하고 있는 가게가 있었는데… 그곳의 딸입니다."

슬럼가 초입.

가게.

딸.

세 가지 단어를 조합한 필레몬은 말했다.

"음, 그럼 평민이겠구나."

"네, 그렇습니다."

에코니아 다섯 개의 나라는 각자의 가치를 중시한다. 그 중 에우데미아는, 나라의 시조인 아레트의 유지에 따라 행복과 감정을 중시한다.

그런 국가성으로 인해 에우데미아의 모든 사회 구성원들은, 남녀 간의 관계에서도 서로 간의 감정을 중시하는 편이다. 왕족들 중에서도 평민과 결혼을 한 경우가적지 않게 있는 편이다.

물론, 정략혼이라는 게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성에게 큰 관심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연애 감정보다 가문의 향상심이 더 큰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진도는 어디까ㅈ… 억!"

"음, 둘은 서로 무슨 관계니?"

팔불출스러운 질문을 하려던 국왕은, 바로 옆에 앉아있던 왕비에게 허벅지를 꼬집혔다.

왕비의 질문에 알렉산더는 골똘히 생각했다.

"각별한 친구이자… 스승일까요?"

"아?"

"음?"

어이없음을 표하는 국왕 내외의 탄식.

아셰리아는 입으로 나올 뻔한 소리를 참아냈지만, 오라버니의 대답이 자신의 예상 밖이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 사실을 보여주듯, 그녀의 고개가 옆으로 15도 정도 기울었다.

"백성들이 사는 거리의 일상을 저에게 소상히 알려주는, 제 새로운 스승님이십니다."

"그… 그러니?"

"예. 그래서인지, 요즘 거리에 나가는 게 더욱 즐거워졌습니다. 여러 곳을 함께 다니고, 거리의 상식을 알려 주고,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친절히 설명해주는. 친구이자 스승입니다."

알렉산더의 생일은 2월. 그렇기에 달로 따지면 12세 생일을 맞은 지 21개월 정도는 되었다.

에우데미아의 연애 풍습이 아무리 감정을 중요시한다 해도, 감정이 생겨나는 요인은 현대와 비슷하다. 남녀는 서로간의 사회적 지위, 외모, 성격, 벌이 등을 따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귀족 남녀들은 일찍이 자신의 약혼 상대를 찾기위해 노력한다. 좋은 이성은 선점하는 것이 유리하니까. 하지만 알렉산더는 12살 생일이 지난 지 거의 2년이 되어감에도 여성에게 향하는 관심이 전혀 없다.

약혼자도 없는 와중에, 거리에서 지위를 노리는 여자가 꼬이지는 않을까. 루시아는 내심 걱정이 되는 것이다. 상대가 아무리 어린 소녀라 해도 가능성은 닫아둘 수 없는 법이다.

"그 아이는 너의 지위를 알고 있니?"

"지위라니요?"

"너가 왕족이라는 사실을, 그 아이도 아니?"

"음… 제가 밝힌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하급 귀족으로 알고 있지 않을까요. 제가 외출할 때는 항상 옷을 갈아입고 나가니까요."

다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상대의 소녀는 알렉산더가 왕족이라는 사실은 모르는 듯 했다.

거기다 하급 귀족을 상대로 미인계를 쓴다니, 차라리 계획적으로 더 높은 지위의 귀족을 상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도 루시아는 고민을 해보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결론이 나지않음을 깨달았다.

"그래, 상대의 아이가 네 지위를 알면 부담스러워 할 수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렴."

"네, 알겠습니다."

알렉산더의 외출 이야기가 끝나고, 각자 자신들의 근황 이야기로 넘어간 가족이었다.

* * *

어느덧 시간은 오후가 되어, 아셰리아는 아샤와 함께 동관 정원의 티테이블로 향했다.

어린 시절부터 언제나 이곳에서 그림을 그려온 곳이다. 아무리 후궁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해도, 이 티테이블이 편할 수밖에 없다.

"안녕하세요, 공주님."

"아셰리아님, 오늘도 와계시네요."

그런 티테이블에 요즘 들어 자주 찾아오는 손님이 둘 있었다. 일전 아셰리아에게 '은방울꽃 장식'을 알려준 시녀, 세라와 리사.

"안녕하십니까."

세라와 리사는 일이 한가하거나 동관 근처에 업무가 있을때마다 동관 앞 티테이블을 찾게 되었다. 소문과는 다른 왕녀의 모습을 본 이후로, 아셰리아를 나이차가 많이 나는 여동생처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건국제 당일, 은방울꽃 장식을 사는 걸 실패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는…

'내년에는 저희가 미리 준비해드릴게요…'

'색, 형태 다 말씀하셔도 됩니다. 건국제 세 달 전에 공장을 습격해서라도 구해드릴게요.'

큰 죄라도 저지른 느낌을 가지게 된 둘은 사죄의 의미로 장식을 대신 준비해주겠다고 싹싹 빌게 되었다.

'괜찮습니다. 내년에 선생님과 함께 가서 직접 고르기로 했어요. 저에겐 새로 생긴 가족과도 같은 분이니까, 그런 색으로 고르려 합니다.'

'선생님과 다른 추억도 많이 생겼구요. 두 분께는 오히려 감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셰리아는 내심 시하와의 외출을 만족스러워 하고 있었기에 큰 일이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시녀들은 아셰리아가 가진 마음의 행선지가 근래 유명해진 '왕실 폭발 가정교사'임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 더해 왕녀의 마음이 '사랑'까지는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는 두 사람이다.

"아셰리아 공주님, 이제 내일부터는 다시 가정교사님께서 왕궁에 출근하시겠네요."

"그렇습니다."

"그러고보니, 오늘도 가정교사님 이야기로 꽤나 떠들썩하던데요."

이시하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는 아셰리아.

"오후에 출근하시는 분께 들은 건데요. 슬럼가 근처 거리에서 이상한 귀족이 제과점 하나에 후원하는 대신 돈을 뜯으려 했다나."

"그걸 왕실 가정교사님이 현장에서 적발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아셰리아는 언제나처럼 남을 돕는 스승이 내심 자랑스러웠다.

"항상 그렇게 남을 돕는 분이시긴 하죠."

하지만 다른 기분도 올라왔다. 휴가동안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고 하여, 왕궁에 들리지 못한다고 했던 시하였다. 그렇기에 일주일간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예전에는 층 하나 차이로 방문할 수 있었던 스승의 방이였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분명 건국제 축제에서 추억은 많이 쌓았지만, 물리적인 거리는 오히려 멀어진 두 사람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떠올리자, 아셰리아 공주의 마음에는 약간의 씁쓸함이 돌기 시작했다.

"그런가요? 저희들은 가정교사님의 소문이 약간 무서운 것만 들려와서 의외네요."

"왕도 신문에서는 폭발이라는 단어가 관심을 끌기 쉬워서… 그런 쪽으로 기사를 쓰는 게 아닐까? 왕도 신문 기자들은 유명하잖아."

"하긴… 쓸데없이 귀족들의 미모 랭킹이랍시고 순위를 메기질 않나. 그걸 당하는 귀족들 심정은 전혀 고려도 안하지."

"… 오히려 좋아하던 것 같던데. 예전에 관리분들이 지나가면서 왕도 신문 랭킹 상위권에 등재되었다고 자랑하시더라고."

"이해할 수 없어…"

시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셰리아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스승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샤가 보고를 위해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상의를 갈아입히려다 찾게 된 왼팔의 문양. 아셰리아는 그 문양을 발견하고서는, 그가 표류자라는 확신에 들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하가 표류자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문양을 자신만이 알고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그 후론 옷을 갈아입히던 상대가 남성임을 뒤늦게 떠올렸었다. 당시 아셰리아는 서둘러 시하의 왼팔을 두꺼운 천으로 둘러 숨기고, 동관의 집사장을 불러 환복을 부탁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기억이다. 표류자라는 생각에 들떠 다른 걸 보지 못했었으니까.

그 이후로도 추억은 많다.

자신의 침실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떠오르고.

도서관에서 함께 역사와 마법을 이야기했고,

처음으로 방문해본 박물관 외출도 떠올랐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기억.

자신의 스승과, 언제나 자신을 지켜온 아샤.

그 둘과 함께 올려다본 밤하늘이 마음 속에 떠올랐다. 벌써 두 주 정도 되는 시간이 흘렀지만, 수많은 별들이 박혀있던 그 밤하늘은 아직도 마음 속에서 생생히 떠오른다.

어느새 마음속 씁쓸함은 사라지고,

'나만이 알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

아셰리아는 생각했다.

'좀 더 알고, 닮고 싶어…'

아셰리아에게 이시하라는 존재는, 처음으로 자신을 한 사람 소녀로 대해준 사람이다. 동시에 그 누구도 해소시킬 수 없었던 그녀의 고독을 해소시켜준 사람이기도 하다.

소녀에게는 만능으로 보이지 않을까.

그런 사람에게 어린 소녀가 특별한 감정을 갖는 건 무리가 아니다. 물론 이 특별한 감정이란, 어린 시절 이시하가 게임 속 아셰리아 여왕에게 느꼈던, 어린아이의 동경과도 같았다.

그렇게 아셰리아와 시녀들이 근황 이야기를 하고, 아샤는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도중,

이 자리엔 익숙하지 않은 누군가가 나타났다.

"그… 동생아."

알렉산더 왕자였다.

"상담을 좀 부탁하려 하는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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