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53화 (53/215)

〈 53화 〉 2­17. 돈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거. 알아?

* * *

2­17. 돈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거. 알아?

갑자기 나타난 알렉산더의 상담요청.

티테이블에 둘러 서있던 시녀들과 자리에 앉아있던 아셰리아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상담이라니... 어떤 일이신가요, 오라버니?"

"음. 나는 비슷한 나이대 여성에 대해 잘 모르니까. 여성인 너의 시선에서 봐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 말이야."

여동생과의 사적인 자리였기에, 알렉산더는 평소와는 다른 말투를 사용하며 말했다.

아셰리아는 조식 때의 대화를 떠올렸다. 절친한 친구에 스승이라고 하던 거리의 평민 여성.

그 사람을 말하는 걸까?

"일단 이곳에 앉으시죠."

"고마워."

왕자가 티테이블로 다가와 자리에 착석하자, 시녀인 세라와 리사는 원래 있던 자리에서 더 멀리 거리를 두게 되었다.

내심 이 자리를 피하고 싶지만, 왕족의 허락도 없이 도망치듯 가버리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라는 건 사실 구실이고, 왕자님의 여성 상담이라니. 이건 너무나 궁금한 일이지 않은가.

"어떤 일로 상담을..."

"음. 그게... 동생아. 오늘 아침 어머니께서 내게 당부하신 것은 기억하고 있지?"

"네, 신분 노출을 하지 말라는 당부셨죠."

"그게 내 고민이다."

한 숨을 쉬고 말을 이어나가는 알렉산더.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할까… 내게 지금 상황이 너무나 이상해. 대부분의 여성은 더 높은 지위에 있는 남성을 만나는 걸 더 좋아하지 않을까?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

고위 귀족이라서 그 빵집의 여식이 알렉산더 오라버니를 만나는 것이면, 조식 당시 루시아 어머님의 걱정이 들어맞은 게 아닐까.

아셰리아는 그런 생각을 하며 말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오히려 지위를 생각하며 만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을 지위 상승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게 아닙니까."

알렉산더는 그런 아셰리아의 대답에 당황했다. 자신이 이야기하려던 것과 다른 쪽으로 대화가 흘러가고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다. 사실... 나도 너와 같게 생각하고 있다. 내 고민은 그것과는 오히려 정반대야."

또다시 예상 밖의 일이라니. 아셰리아는 조식 시간처럼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녀의 앞에서 하급 귀족 행세를 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가끔 나도 모르게 고위 귀족의 느낌을 내버리는 경우가 있어."

"음... 그건 어쩔 수 없죠."

"나를 수단으로 대하고 있다면 그럴 때마다 오히려 나를 더 잡으려 하겠지. 그런데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은 정 반대다."

정 반대의 상황이라니. 아셰리아는 그 단어만으로 모든 걸 유추할 수 없었다.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

"만나게 된 계기부터 이야기해야 하려나."

그렇게 왕자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야기는 '야외 수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 *

'야외 수업' 다음 날.

알렉산더는 오늘부터 작은 한 걸음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작은 한 걸음이란…

'어제의 점주에게 사과를 해야겠다. 아무리 선생님과 헤르만 형이 보상을 해주었다고 해도... 내가 저지른 일이니까.'

그렇게 알렉산더는 대금화 한 장을 챙겨든 채 단독으로 그 거리로 향했다. 사과는 직접 찾아가 고개를 숙여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슬럼가 초입에 도착한 알렉산더는, 유사 호두과자 가게 앞에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세요. 아, 어제 그…"

"어제 일로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를 알아본 유사 호두과자 가게의 점주.

"어제는 제 식견이 짧아 귀댁에 큰 피해를 입힐 뻔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알렉산더는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 사과했다.

점주는 그 전날, 감정이 북받쳐 해버렸던 무례한 말에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어찌되었건 자신을 도와주려 한 성실한 귀족 자제였다. 그렇기에 알렉산더를 보고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차에, 오히려 그가 고개를 숙이자 곤란해졌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고개를 드세요. 도와주신 분에게 성을 내다니. 어제 일은 제가 오히려 너무 했던 걸요."

"그래도 제가 큰 피해를 입힐 뻔 했다는 건 변치 않습니다. 여기, 그에 대한 보상금입니다."

그렇게.

시하가 본다면 피토를 뿜을 장면이 연출되었다.

"대금화라니… 이건 받을 수 없어요."

"그래도 사죄의 뜻입니다. 받아주세요."

점주는 황급히 거리로 나와 좌우를 살폈다.

이내 다니는 사람들이 없는 걸 확인한 그녀는, 알렉산더를 점내로 데리고 들어갔다.

슬럼가의 쓰러져가는 건물. 점내에는 직접 만든 듯한 가구 몇 개가 위태롭게 서있었고, 그 안쪽에는 모녀가 생활하는 공간으로 통하는 문이 하나 있다.

"저희같은 서민...들에게는 너무나 큰 돈이에요. 이런 돈을 받았다는 게 알려지면 곤란해져요."

"왜 곤란해진다는 것입니까?"

알렉산더의 입장에서 대금화 한 장은, 예산서에 적혀있는 숫자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정책 예산을 판단하는 데 적합한 경제 관념'은 가지고 있었지만, '일반 백성들의 생활을 이해하기 위한 경제 관념'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그게…"

점주의 입장에서는 어제의 일이 의식되어 적절한 설명을 해주고 싶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 상황.

"아무튼 받을 수 없습니다. 도련님의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요."

"그렇습니까…"

소년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의 사죄를 하기 위해 따로 챙겨온 돈이었다. 이번에도 자신이 미처 못 본 부분이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풀이 죽어버렸다.

그 때, 점내의 작은 방에서 한 소녀가 나왔다.

"무슨 일이에요?"

"아가... 아니 딸아. 그게…"

슬럼가의 평민 소녀. 그런 현실을 반영하듯 옷은 허름하다. 하지만 고운 얼굴이나 잘 정돈된 머리카락는 그런 옷에 어울리지 않았다.

소녀는 소년의 손에 들린 대금화 한 장을 보고, 그것을 마다하고 있는 점주의 모습을 보았다.

"어제 말씀하셨던 그 분이에요?"

"... 그래. 어제 일을 사과를 하고 싶으시다고 찾아오셨는데, 너무 큰 돈을 주시는구나…"

"흐음."

소녀는 점주와 알렉산더의 앞으로 다가왔다.

"안녕."

"아... 안녕?"

소녀의 인사는 너무나 당돌했다.

평소 백성들 앞에서는 권위적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알렉산더지만...

'나름대로 귀족의 옷을 입고 왔는데…'

자신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해버릴 정도였다.

"너. 그거 알아?"

"무... 무엇을 말하는 건가."

왠지 모를 긴장감을 느끼는 알렉산더. 소녀는 그런 알렉산더의 손에 들려있는 대금화를 가르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너가 손에 들고 있는 대금화 말이야."

꿀꺽. 침을 삼키는 알렉산더.

그런 알렉산더에게 소녀는 담담하게 고했다.

"돈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거. 알아?"

이것이 소년과 소녀의 첫 만남이었다.

* * *

알렉산더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이지 부끄러운 일이지만… 대금화 한 장이 그렇게 큰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어. 나는 백성을 제대로 바라보겠다고 결심한 지 하루만에 큰 실수를 한 셈이지."

아셰리아는 대금화를 들고 나갔기에 서민들을 당황시켰다는 것은 이해했다. 하지만 소녀의 그 당돌함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스승인 누군가를 연상해버렸고...

자연스레 다음의 일이 궁금해졌다.

"오라버니. 그 이후론 어떻게 되었나요?"

"그 이후로는 뭐... 왕도 은행에 가서 환전을 했지. 그리고 슬럼가가 아닌 곳을 이리저리 다니며 혜윤과 함께 거리의 음식을 맛보았다."

"네?"

역시나 소녀의 행보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또다시 고개가 옆으로 기운 아셰리아. 그런 아셰리아를 보고 알렉산더는 소녀와 거리를 다니게 된 일도 설명하려 했다.

"혜윤... 아. 아직 내가 그녀의 이름을 이야기 해주지 않았구나. 그녀의 이름은 이혜윤. 동방의 혜세국에서 왔다더라고."

"성이 이씨라... 명월주의 성이 이씨였죠. 700년 역사에 후손을 많이 가지려 하는 나라니까. 먼 방계의 인물일 수 있겠네요."

"그래. 그녀도 그렇게 설명해주더구나. 자신은 먼 옛날 명월주가 되지 못한 방계의 후손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가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에우데미아까지 떠밀려왔다 했어."

"음. 나름대로 사연이 있으신 분이네요. 그래서 그 뒷일은 어떻게 되신건가요?"

"그래.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 * *

이후 알렉산더와 유사 호두과자점의 소녀, 혜윤은 왕도 은행으로 향했다. 그리고 혜윤의 의견에 따라 대금화 한 장을 환금했다.

소금화 네 장.

은화 아홉 장.

대동화 여덟 장.

소동화 스무 장.

"음. 너무 많아지니 들고 다니기가 불편한데."

"여기. 이 주머니에 넣어서 다녀."

혜윤은 알렉산더에게 알록달록한 비단으로 만든 작은 복주머니를 주며 말했다.

"이거... 받아도 되는건가?"

"나한테는 나름대로 소중한거지만... 그걸 주는 대신에, 거리에서 군것질거리나 같이 사먹자."

"음?"

원래 알렉산더는 환전을 끝내고 돈을 전부 혜윤에게 건낼 생각이었다.

"나에겐 소중한거야. 따로 돈은 안줘도 돼."

하지만 혜윤은 그 돈을 받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알렉산더로서는 점주에 이어 완곡한 거절을 당한 기분이 다시 느껴졌다.

그렇게 알렉산더는 다시 고뇌에 빠졌고, 그 모습을 본 혜윤이 말했다.

"너. 거리에는 자주 나와?"

"자주는 아닌데… 가끔은 나오는 편이지."

"그럼 한가할 때마다 나랑 여기저기 다니면서 맛있는 거나 사먹자. 이렇게 하면 그 돈을 직접 주는거나 마찬가지지?"

알렉산더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소녀의 의중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보상을 하려는 당사자가 이런 말을 하니, 순순히 따르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그리고. 밖에서는 그런 말투 쓰면 안 돼. 다른 사람들이 전부 너를 귀족인 걸 알고선 뜯어 먹으려 할 걸?"

"뜯어 먹는다니...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

당돌하게 말을 이어나던 혜윤은...설명하기 참 막막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자신의 관자놀이를 짚게 되었다.

그렇게 둘은 여러 곳을 쏘다녔다.

왕도 에레트의 노점 명물 꼬치구이. 두 개를 샀지만 가격은 소동화 네 장이면 충분했다.

서민들이 자주 들르는 식당. 정식 하나와 음료를 둘 주문하여 앞접시에 덜어 나누어 먹었다. 정식의 가격은 소동화 아홉 장.

유명 카페의 디저트. 서민들의 거리에 숨어있긴 하지만, 귀족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나있어 가격이 꽤 나가는 곳이었다. 케이크 세 조각과 음료에 대동화 두 장과 소동화 일곱 장을 썼다.

어느덧 해는 서쪽에 걸쳐 노을로 변한 시간.

두 사람은 슬럼가 앞의 분수에 돌아와 나란히 앉게 되었다. 소녀의 손에는 카페에서 산 케이크 한 조각이 포장된 채로 들려 있다.

"오늘 우리가 얼마나 썼는지. 계산해볼래?"

"음… 대동화 네 장분량이군."

"말투."

혜윤이 똑부러지는 목소리로 말하자, 알렉산더는 황급히 자신의 말을 수정했다.

"아. 대동화 네 장 분량이야."

그렇게 하루동안 두 명이 사용한 돈은... 고작 대동화 세 장 분. 혜윤이 준 복주머니에는 아직 많은 돈이 남아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엄청 사치스럽게 다닌 거야. 이제 대금화가 얼마나 큰 돈인지 알겠지?"

"음... 그렇구나. 이렇게 큰 돈일 줄은 몰랐어."

"… 우리같은 슬럼가의 사람들은 말이야. 누군가 금화를 손에 쥐었다는 소문만 퍼져도 뒷골목으로 끌려가게 돼."

알렉산더는 얼어붙었다.

그런 알렉산더의 모습에 아랑곳않은 채, 혜윤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간다.

"대금화 한 장이면 사람 한 명이 여섯 달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돈이야. 아껴쓰면 1년도 거뜬히 버틸 수 있고. 사람 한 명을 죽도록 패서 돈을 빼앗기만 하면... 1년을 살 수 있는거지."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 아니. 은화 한 장만으로도 사람이 죽는 곳이야."

노을빛을 얼굴에 걸친 채 말하는 혜윤. 그런 혜윤의 길고 검은 생머리가 분위기를 더한다.

알렉산더는 그 분위기에 차마 말을 더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의 옆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이제 왜 사람이 죽는지. 알겠지?"

알렉산더는 고개를 끄덕였고.그 끄덕임을 확인한 혜윤은 환하게 웃었다.

이후 둘은 그저 말없이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잠시간의 시간이 지나고…

혜윤은 벤치에서 먼저 일어났다.

"이제 너도 집에 가봐야지. 오늘 고마웠어."

"고맙다니..."

"나한테는 사치스러운 일이었다니까? 슬럼가 밖으로 나가서 은행도 가보고... 카페에서 디저트도 먹어보고. 옷이 이래서 너한테 민폐를 끼친 것 같지만... 그래도 즐거웠어."

소녀는 소년을 돌아본 채로 웃으며 말했다.

그 얼굴에는 지금도 노을 빛이 걸쳐 있었다.

"이 케이크도 고마워. 엄마한테 오랜만에 맛있는 걸 드릴 수 있겠네."

"어... 그래."

소녀는 이제 슬럼가의 가게로 향했다.

그리고 소년은 그런 소녀를 불러세웠다.

"잠깐만."

"음?"

알렉산더는 다급히 할 말을 찾았다.

혜윤은 알렉산더를 돌아보았다.

"그게... 다음에도 올게."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듯한 혜윤의 반응. 알렉산더는 그런 혜윤의 반응에 말을 이어나갔다.

"아직 이 주머니에 돈이 많이 남았으니까... 다음에도 올게."

받은 복주머니를 보이며 말하는 알렉산더.

혜윤은 그걸 보면서 잠시 멍하게 있었다.그리고 이내 곤란하다는듯 말했다.

"아... 그래. 그럼 다음에 보자."

"잘 들어가."

인사를 마치고.

이번에는 정말로 가게를 향하는 혜윤.

알렉산더는 그 모습을 끝까지 확인하고서야 왕궁으로 돌아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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