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55화 (55/215)

〈 55화 〉 2­19. 부정맥이라니... 그건 좀 아니잖아요.

* * *

2­19. 부정맥이라니. 그건 좀 아니잖아요.

"부정맥이라니... 그건 좀 아니잖아요."

무릎에 힘이 풀려버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던 시녀, 세라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리사 역시 하늘을 보며 정신을 놓은 상황.

그런 그들을 보며 아셰리아가 말을 걸었다.

"혹시 두 분께서는 다른 견해가 있으신가요? 저도 의학적인 지식은 책으로만 배운 상황이라... 정확히는 모르니까요.."

"음... 그게..."

두 시녀들은 아셰리아의 말억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자세를 고쳤다.

동시에 마음 속으로는 의학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외치고 있으나, 감히 말로 표하지 못하는 두 사람이다.

그도 그럴것이... 어떤 평민이 감히 왕자의 면전에서 '당신은 오해하고 있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시녀들의 모습을 보고 알렉산더가 말했다.

"스승께서는 한 가지 문제도 여러 각도에서 보아야 한다 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것도 그대들의 시선에서 보면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을 터. 가감없이 말해주어도 된다."

그의 시선은 올곧게 시녀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다른 의도는 전혀 없다는 듯 순수한 시선.

시녀들은 그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레, 아셰리아 공주가 처음으로 자신들에게 말을 건 날을 떠올렸다.

그때 아셰리아의 모습은 그저 소중한 고민을 품고 있었던 작은 소녀였다.

지금의 알렉산더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시녀, 세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저희 둘이서 고민을 좀 해볼게요..."

"음. 서로 생각을 정리해보아도 된다."

알렉산더의 흔쾌한 허락에 시녀들은 약간 먼 곳으로 가 의논을 시작했다. 물론 아샤에게는 대화가 다 들리는 거리지만, 시녀들은 그를 모르고 있으니 심리적 안정감은 얻을 수 있었다.

"넌 어떻게 생각해?"

"왕자님은 적어도 호감은 있는 것 같은데... 만난다는 여자애쪽을 잘 모르겠어."

"그렇지? 나도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 방금 통보를 받으셨다고 했잖아. 그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봐야할까?"

"그건 맞긴 해. 그래도 그 이전에 왕자님 마음부터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부터 확실히 해야 대화가 될 것 같은데."

왕자와 공주 앞에서는 마냥 몸을 사리기만 하던 두사람이었다.

하지만 시녀들의 나이도 이제야 열 다섯.

왕자와 공주보다 약간 더 많을 뿐,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한없이 몰입할 때다.

물론 문제가 남아 있긴 했다.

약간 더 적극적인 시녀, 세라가 말했다.

"그런데 대놓고 왕자님께서는 그 여자애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볼 수도 없잖아."

왕자는 결국 자신들과는 머나먼 격의 차이가 있는 존재. 함부로 자신들이 그의 감정을 정의할 수는 없는 법이다.

특히나 에우데미아의 정서에서 그런 발언은, 상하 관계가 아니더라도 무례한 일이다.

"왕자님 성격을 잘 모르다 보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

"너무 성실하신 분 같은데... 저런 성격의 남자들은 대부분 자기 마음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고백도 못 하더라. 한참 뒤에나 알아채고 후회하는 스타일이랄까..."

세라의 걱정에 리사는, 알렉산더에게 잔혹한 진단을 내렸다. 연애는 타이밍. 그 격언은 어느 세계에서든 옳다.

그 후로도 두 사람은 왕자의 감정을 자각시킬 방법을 고민하다 티테이블로 돌아갔다.

"두 분. 의논은 끝내셨나요?"

"네. 공주님."

"그럼 어서 말해보게. 듣는 것 만으로도 만족하니, 부담은 갖지 않아도 된다."

두 사람을 맞이하는 아셰리아와 알렉산더.

알렉산더는 기대감에 찬 눈길로 그들을 보고 있다. 그에 두 시녀 중 약간 더 차분하게 생각하는 편인 리사가 말하기 시작했다.

"왕자님 지금 말씀드리는 건 가정입니다. 절대로 가정이니까, 저희를 나무라시면 안되요."

"음, 가정도 문제 해결에 좋은 접근법이지."

"왕자님. 금발... 이 아닌 금수를 닮은 외모에, 햇빛에 피부가 탔으며, 성격마저 양아치인 수인 남자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음... 사람 성격을 함부로 단정지으면 안되지만, 정말 그렇다면 좋은 사람은 아니겠군."

고개를 끄덕이며 그 상황을 상상하는 왕자.

리사는 거기에 추가타를 넣었다.

"그 수인이 갑자기 혜윤 양과 결혼하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실겁니까?"

얼굴이 어두워지는 알렉산더. 세라는 왕자의 표정을 보고 안도했다. 저 정도 반응이라면 왕자의 감정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왕자는 얼빠진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건 혜윤이 원하는건가?"

듣고만 있던 시녀, 세라는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보며 이마를 탁­ 쳤다.그런 세라를 무시한 채, 리사는 이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그녀가 원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상황에 대해 왕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게 그녀의 행복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

세라의 의식은 점점 멀어져간다.

그에 반해 리사는 여전히 담담하다.

"분명히 어쩔 수 없다고 하셨어요. 이제 다음 가정입니다. 그녀가 원하지 않는다면요."

"바로 그 수인 놈을 왕국 밖으로 추방해야지. 상대방이 원치 않는 혼인이라니, 에우데미아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일이다."

알렉산더는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에 리사는 의기양양한 어조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왕자님. 저희는 평민에 불과하기에 왕자님의 감정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평민 남성들도 왕자님과 같은 증세를 자주 호소해요."

"아, 그런가? 이건 도대체 어떤 증세인가!"

드디어 활로를 찾았다는 양, 알렉산더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런 알렉산더를 보며 리사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했다.

"상사병 초기이십니다."

"상사병...?"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없거나, 제대로 관계가 진행되지 않을 때 찾아오는. 심리적으로 고통을 느끼는 병이에요."

"나는 혜윤의 연인이 아닌데..."

이 상황이 되어서도 너무나 성실한 알렉산더였다. 티테이블 근처에 있는 유일한 남성인 그는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모습을 보고 리사는 나름의 조언을 했다.

"... 왕자님은 그 분의 행복을 바라는 것에 너무 성실하신 것 같습니다. 물론 왕자님의 마음은 사랑이라는 단어와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친구 사이라면 어쩔 수 없다는 표현은 안 해요."

"오오... 리사. 무언가 연애 경험 많아 보여."

어느새 의식이 돌아온 세라는 능숙한 조언을 하는 리사에게 감탄했다.

"세라... 나는 그런 헤픈 여자가 아니고, 남들한테 연애 상담만 많이 받았을 뿐이야."

그런 세라에게 리사는 약간 화가 나있는 듯한 어조로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왕자에게 원래 하려던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왕자님. 일단 사랑까진 아니더라도 왕자님께서 그 분을 많이 아끼시고 있다는 건 알았습니다. 그럼 다음 이야기를 해보죠."

"다음 이야기라니?"

"그 분은 어쩌다 왕자님께 찾아오시는 걸 줄여달라고 하신건가요?"

"내가 찾아갔더니 그 날은 바쁘다고 했었다. 그리고 내가 귀족이라면 평민인 자신과는 교류를 줄여야 하지 않겠냐고..."

남녀 간의 관계는 서로 손뼉이 맞아야 하는 법. 혜윤은 알렉산더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시녀들은 지금 주어진 상황만으로는 감히 판단할 수 없었다.

"복잡하네요..."

왕자의 고민 상담은 점점 미궁으로 빠지고...

"나는... 과연 혜윤을 사랑하는가..."

"……."

고민을 상담하러 온 알렉산더에게는 새로운 고민이 더해져 버렸다. 그의 혼잣말에는 아무도 답해줄 수 없었다.

왕족의 의무만을 생각해왔던 왕자.

사교계에서도 그런 행보는 이어져왔다. 알렉산더는 왕족으로서 여러 귀족과 친분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했었다. 남녀로서의 관계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던 그다.

그가 벌써부터 사랑을 고민하게 되었다.

이것 역시 가정교사 이시하가 없었던 본래의 역사에서 바뀐 흐름 중 하나다. 분수 거리에 가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테니까.

아셰리아는... 그런 오라버니의 뒤편을 유심히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눈에 보이는 세상에는, 여러 색들이 뭉게구름을 펼치고 있었다.

* * *

내 일주일 휴가가 끝나고.

나는 업무로 복귀를 해야만 했다.

"오늘은 나라마다 재앙에 대항할 힘을 기르는 방법이 다르다는 걸 배웠었죠. 이제 다음 수업을 위한 숙제를 낼 거에요."

물론 업무라고 해봐야 일주일 중 월, 수, 금에 걸쳐서 6시간씩 수업을 진행하는 것 말고는 공식적인 일이 없다.

"동쪽의 혜세국은 병장기나 신체에 마력을 휘둘러 타격을 입히는 무술이 특히나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수업은 별 탈 없이 끝나서 마무리를 하는 중이다. 오랜만의 수업인데도 아이들이 잘 따라와줘서 고마웠다.

그래도 좀 미심쩍은 게 있다면...

오늘 알렉산더는 유난히 기운이 없어보인다.

평소에는 활발하게 의견을 피력하는 아이였는데... 오늘은 아샤급으로 기운이 없었다.

그래도 아셰리아나 기디언이 예전보다 활발하게 수업에 참여해줘서 다행이었지.

"마력의 사용이 왜 이러한 방향으로 발달하게 되었는지, 사회나 문화 측면에서 생각해오는 게 숙제입니다."

아모스와 아일라는 내 수행원 자격으로 교실의 뒷편에서 수업을 참관하고 있다.

수업을 하는 동안에는 다른 곳에 잠시 대기하게 해야시킬 생각도 했지만... 지금껏 슬럼가에서 생활해왔으니, 상식을 조금이라도 접했으면 해서 데려오게 되었다.

"오늘 수업도 모두 수고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자, 이제 수업 끝.

누구 한명만 인사가 짧은데... 기분 탓이겠지.

원래라면 수업이 끝나고 동관에 가서 독서를 했었지만... 이제 동관은 내 거처도 아닌데다, 따로 할 일이 생겼다.

바로 아모스와 아일라를 수련시키는 것.

그런데 문제가 있다.

아일라는 자연 마법을 배우면 된다 치고... 아모스를 어떻게 해야 할까.

아모스는 게임에서 동료로 삼을 수 있는 캐릭터 중, 자연 마력의 적성이라 할 수 있는 이성 수치와 마력 총량이 적은 부류에 속한다.

대신 그의 심상마법이 강하긴 했다.

심상 마법.

게임 속에서는 캐릭터별 고유 마법으로 분류되던, 이성 수치와는 관계없는 마법들.

게임에서는 몇몇 등장 인물들이 이방인을 만나고 내면적인 성장을 거치면서 습득하는 것처럼 보였었다.

여기서 문제점이 있다면... 아모스는 심상 마법을 개화한 상태로 이방인과 조우하게 된다. 즉, 나는 그가 심상 마법을 입수하게 되는 계기를 전혀 모른다.

물론 게임 내에서 그를 동료로 받아 심상마법을 사용한 적이 있긴 하다. 검은 색 베리어로 데미지를 축적해서 돌려주는 형태였지... 저 녀석의 피지컬에 더해서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게 하는 마법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심상 마법을 대처하는 방법만 연구해왔지, 습득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는 뒷전으로 미뤄왔었다. 애초에 나부터가 심상 마법 적성이 없었으니까.

아모스를 훈련시키기 위해서라도 연구를 해야 하려나... 아니, 그 이전에 훈련을 통해 마법이 습득할 수는 있으려나?

그것부터가 문제네...

"스승님..."

"네?"

머릿속으로는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면서 수업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알렉산더가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알렉산더?"

"그게..."

일주일 전만 해도 밝았던 녀석인데, 오늘따라 기운이 없어보여서 신경쓰고 있었다.

"그게 말입니다..."

"차분히. 말씀해보세요. 듣고 있으니까요."

무슨 일이라도 있는걸까. 알렉산더의 얼굴엔 대놓고 '저 고민있습니다.' 라고 적혀 있다.

알렉산더는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기다릴 뿐.

슬쩍 교실 안을 훑어보니...

아모스와 아일라는 저 멀리 교실 뒤편에서 창 밖의 후궁 정원을 보고 있고,

기디언은 무언가 걱정되는 눈빛으로 자신의 주군을 바라보고 있으며,

평소에는 모든 것을 귀찮아 하던 아샤마저 알렉산더와 나를 쳐다보고 있는데다가,

아셰리아 역시 자신의 오라버니를 뚫어져라 관찰하고 있었다.

"그게..."

그리고 마침내.

"사랑이 뭔가요?"

"네? 다시... 말씀해주실래요?"

세계 7대 불가사의.

밀레니엄 미해결 수학 문제.

에코니아 아포칼립스 개발사의 행방.

내가 알고 있는 세계 최고의 난제들이다.

마음 속 난제 명단에 하나가 추가되는 순간.

"사랑하면 어떤 느낌인가요...?"

알렉산더의 사랑.

그것은 난제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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