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56화 (56/215)

〈 56화 〉 2­20. 그만 놀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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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그만 놀리십시오!

사랑하면 어떤 느낌이냐니.

예상치 못한 질문에 멍해져 있던 나였다. 그래도 정신을 차린 뒤에는 교실에서 진행할 상담은 영 아닌 것 같아서 자리를 옮겼다.

일전에 아셰리아 공주가 루시아 왕비에게 그림을 선물했던 후궁의 응접실이다.

국왕은 요즘들어 매주 월·수·금요일마다 판타스매터 토벌에 나간다. 그리고 왕비는 주간에 본관 집무실에 있기에 응접실은 비어있었다.

"그런데 왜 아셰리아까지...?"

"아, 어제 제가 오라버니의 상담 요청을 먼저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동석하려구요."

갑자기 따라온 아셰리아였다.

그래도 알렉산더에게 허락은 받아야겠지.

"알렉산더, 동석해도 괜찮은가요?"

"괜찮습니다. 어제는 아셰리아 덕분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 많은 조언을 얻었습니다."

... 많은 조언이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내가 응접실 소파에 착석하자, 내담자인 알렉산더는 내 맞은 편에 앉았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아셰리아 공주는 내 옆에 앉았다. 자신도 알렉산더의 상담역이라는 걸까.

"사랑을 하면 무슨 느낌이냐니...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해진 거에요?"

"지금 제가 품고 있는 감정이 사랑인지 아닌지가 궁금해서요..."

갑자기...?

내가 알기로 게임 본편의 알렉산더는 사랑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17살에 약혼조차 하지 않은 상태. 게임을 진행해나가도 연애따위는 하지 않는게 알렉산더다.

물론 엄청난 자유도로 이방인의 성별까지 선택할 수 있었던 에코니아 아포칼립스에서는... '우수에 젖은 금빛 왕자님'을 꾀어 보려고 여성으로 플레이하는 사람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어떤 루트를 가도 플레이어는 차인다.

이걸 증명한 것은 알렉산더에 대한 광기와 집착이 가득한 의문의 여성 게이머.

저 문구 말고는 설명할 수 없다. 나도 미친 놈 취급을 받긴 했지만... 그 여자는 사람들이 말도 못 걸 수준의 기세였다.

게시글이나 댓글 하나하나에서 광기가 느껴지는 정도. 오죽했으면 별명이 광년이였겠는가.

그래도 그 광년이에게 고마운 점이 있다면, 이방인이 연애에 신경쓰면 배드 엔딩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준 점이다.

덕분에 내가 할 일이 줄었지...

아니,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정신 차리자. 지금은 상담이 우선이다.

거두절미하고 정리하자면, 원래 역사에서 알렉산더가 사랑에 빠질 일은 없었다.

"음... 알렉산더. 그러니까 자신의 마음이 사랑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이거죠?"

"네."

사랑.

나에게는 꽤나 어색한 단어다.

애초에 연애를 한 번밖에 해보지 못했고... 그것마저 내가 모자란 이유로 끝나버렸으니까.

"알렉산더, 지금 당장에는 그 사람과 어떤 관계라 생각하나요?"

"아마도... 친구 아닐까요."

"으음..."

그런 나에게 이 녀석이 사랑 상담이라니...

내가 전혀 모르는 영역이다.

무언가 부담스럽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의 연애 상담 정도는 많이 해준 적이 있으니까... 비슷하게 가볼까.

"친구 사이인데, 갑자기 사랑을 고민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그게..."

알렉산더 녀석은 내 질문에 표정이 더 어두워지더니, 말을 못하고 있다.

그러자 아셰리아가 말을 거들려고 했다.

"선생님, 오라버니 대신... 제가 아는 선까지 말씀드려도 될까요?"

"아셰리아님. 이런 인간 관계에 대한 고민은 본인이 직접 말하는 게 좋은 법이에요."

"그런가요?"

아셰리아 공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래도 타인과의 관계를 멀리하던 아이니까, 이런 경험도 처음이겠지.

이런 건 제대로 가르쳐 두어야겠다.

"아셰리아님. 자신의 감정이나 인간 관계는 쉽게 정의할 수 없어요. 한 단어로 단정짓기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을 테니까요. 반면에 그걸 듣거나 보는 타인들은 어떨까요."

"음..."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단어로 정의해버립니다. 그게 이해하기 더 편하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이미 감정을 한 단어로 정의하는 행위가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죠?"

"아."

이 아이에게는 떠올리기 괴로운 기억일 수 있어서 조심스러웠는데...

다행히도 내 예시를 이해한 모양이었다.

"우리가 무의식 중에 타인의 고민을 단어로 정의하는 순간, 그 단어에 포함된 선입견이 적용되요. 그러니까... 고민은 함부로 대신 말해줘서는 안되는 거에요."

"...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긴 해도... 아직 11살 어린 아이에게는 약간 어려운 내용이겠지.

아직 의문이 전부 해소되지는 않은 듯, 자신만의 고민에 빠져든 아셰리아였다.

그나저나 알렉산더에게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하나... 고민은 들어 주고는 싶은데, 본인이 말하기를 어려워 하는 상황인가보다.

... 방금 아셰리아 공주에게 한 말 중에 힌트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알렉산더. 지금 자신의 마음이 무엇일까, 엄청 고민되죠?"

"네..."

"내가 지금 그 사람에게 품은 감정이 사랑일까, 아닐까... 정말 고민되겠죠. 하지만 그런 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알렉산더는 말뜻을 모르겠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반응이다.

"알렉산더가 그 정도 고민을 할 정도면... 꽤나 그 사람을 아끼고 있는 것 아닌가요."

"그건..."

"오히려 그런고민 자체가 오히려 두 사람 사이에 걸림돌이 될 수 있어요. 지금도 봐요.평소에 외출을 그렇게 나가는 이유는 그 분 때문 아니었나요? 원래라면 지금쯤 밖으로 나가셨을건데..."

나는 의식적으로 이성을 피했었지만...

친구놈의 권유로 연애를 시작한 적이 있었다.

내 처음이자 마지막 연애.

당시에 나는 큰 실수를 해버렸었다.

그 때 실수로 깨달은 것이다.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 감정 문제로 아무리 고민해봐야, 도움이 되는 건 없었다.

"그런데 스승님. 정작 제 마음을 모르면... 상대방을 어떻게 대할 지, 방향성을 정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알렉산더는 약간 침울한 상태로 한참동안 고민하더니, 꽤나 기특한 소리를 했다.

하긴, 게임 속에서도 언제나 왕족의 의무나 백성 생각만 하던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사랑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면, 자연스레 이런 생각을 하게 되겠지.

... 이렇게나 순수한 녀석이니까, 그 방법을 가르쳐줘도 되지 않을까.

괜찮을 것 같다.

"알렉산더, 그 분과 뭘 하고 싶어요?"

"음... 갑자기요?"

"거리를 함께 걷는다거나, 맛있는 걸 나누어 먹는다거나,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다거나."

조용히 듣고만 있는 알렉산더.

여기까지는 반응이 없네.

그렇다면...

"그러다가 언젠가 손을 잡고 걷게 되겠죠. 나중엔 단순히 잡기만 했던 손인데..."

이 정도는 에우데미아의 귀족들도 하는 행동이다. 물론 대놓고 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손가락 하나하나 깍지를 낀 채로 걷게 되고. 그 후로도 조금씩 둘 사이에 거리가 점점 좁아지고..."

방금 전까지는 멍하게 듣고만 있던 알렉산더 녀석의 얼굴이 약간씩 붉어지기 시작했다.

이거 백 퍼센트 같은데.

"그러다 뒤에서 껴안아 보기도 하고, 팔짱을 껴보기도 하고, 그 뒤로는 포옹도 하고...?"

내가 점점 수위를 올려나가자...

"그 뒤로는 서로 입맞춤ㅇ..."

알렉산더의 얼굴이 아주 새빨갛게 물들더니,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스... 스승님! 그만 놀리십시오!"

녀석의 머리 위로 스팀이 나오는 효과가 보이는 건 기분탓이겠지.

그나저나...

싫다는 말은 안 하네.

이건 확실합니다.

"프흡"

"웃지 마십시오..."

장난삼아 웃는 척을 하니, 왕자는 두 주먹을 꽉 지고 무릎에 붙인 채 부들부들 떨고 있다.

아, 재밌다. 알렉산더가 조금 진정되면 그때쯤 한 번 더 놀려야 겠다.

슬쩍 곁눈질을 하니,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아셰리아 공주는 자신의 오라버니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뭐가 보이기라도 하는 걸까.

"그래서 알렉산더, 싫어요?"

"네?"

"제가 말씀드린 걸. 그 분이랑 하는 것요."

조금은 진정되어 가던 녀석의 얼굴이 다시 홍당무로 변했다.

아, 놀리는 거 재밌다.

매체가 발달한 현대에서는 이런 반응을 보이는 아이를 구경하기 힘들 것이다. 사랑에 성욕이나 감정 소모, 경제적인 면같은 여러 고민을 함께 하게 될 거니까.

지금의 알렉산더는 순수하게 사랑만을 고민하는 아이니까 이런 게 되겠지.

"알렉산더. 차근차근 생각해보아도 되요. 지금은 서로가 함께 하고 싶은 거만 생각해요."

"그래도 되나요..."

"대신, 상대가 진심으로 싫어하는 건 하지 마요. 그걸 파악하는 건 알렉산더의 몫이고요."

"싫어하는 것..."

지금은 이 정도만 알아도 된다.

거기에... 여러 면에서 풍족한 왕자님이다. 금전적인 면이라던가, 권위같은 건 이미 있는 아이다. 사랑에 장애물같은 건 별로 없겠지.

만약에 생겨도 내가 폭파시켜버리면 그만이다. 이 녀석도 결국에 내 제자니까...

"아."

"왜 그러시나요, 선생님?"

"떠오른 게 있어서요."

불현듯.

친구 녀석의 명언이 떠올랐다.

"알렉산더,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릴게요."

"무엇입니까?"

"언젠가. 알렉산더가 지금 제가 하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면, 그 때 마음이 사랑이에요."

"네...?"

알렉산더는 허리까지 내쪽으로 굽힌 채로, 내 얼굴을 보며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고 있다.

"언젠가 팟­ 하고. 느낌이 올 때가 있어요."

"팟...?"

"그 때 지금 제 말을 떠올리면, 사랑이에요."

"...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당연히 모르죠."

이건 은근히 효과가 크다.

팟 ­

"결론은, 사랑인지 아닌지 고민하다가 그 사람을 소홀히 대하지 말라는 거에요."

"아... 알겠습니다."

이 정도면 알아 들었겠지...

알렉산더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외출을 좀 하고 오겠습니다."

"네. 왕비님께 보고는 먼저 드리세요."

"네, 감사합니다. 스승님."

나름 도움은 된 것 같다.

응접실에 들어올때만 해도 침울했던 녀석이, 조금은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알렉산더 녀석이 응접실을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 옆에서 내 옷자락을 잡아 당겼다.

그에 시선을 옆으로 돌리니,아셰리아 공주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선생님."

"네?"

"그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뜸을 들이는 아셰리아 공주.

그러더니 시선을 홱하고 정면으로 돌렸다.

"아닙니다."

"음... 지금 말씀하시기 부담스럽다면 나중에 말씀해주셔도 되요?"

"네..."

나에게 할 말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방금 알렉산더와 상담하는 도중에 나눈 이야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언젠가는 말해주겠지?

"일단 왕자님의 상담은 끝났고..."

그나저나 알렉산더가 사랑이라니.

그저 우연일 수도 있지만, 게임 본편의 알렉산더와는 꽤나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이대로 계속한다면...

아셰리아 공주의 미래도 찾을 수 있을까.

…….

"아셰리아님, 저희도 일어나볼까요?"

"... 알겠습니다."

그 미래를 찾으려면 이런 시간도 아깝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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