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57화 (57/215)

〈 57화 〉 2­21. 쪽팔려...

* * *

2­21. 쪽팔려...

알렉산더의 상담을 마친 후, 나는 아모스와 아일라를 데리고 서관으로 왔다. 기사단이나 궁내에 거주하는 고위 병사들이 사용하는 훈련장이 이 곳에 있기 때문이다.

아모스에게 언젠가 발현될 심상 마법은 결국 육탄전을 보조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결국에 아모스는 몸싸움으로 밀어붙이는 전투 스타일이라는 거지. 하지만 카페에서의 싸움을 생각해보면 이 녀석 센스가 너무 없다.

그래서 내가 기본적으로 원리 정도만 알려주려고 한다. 이후에는 어거스트 기사단장에게 부탁해 적당한 스승을 구해주면 되지 않을까.

아일라는... 당장에 마법을 가르칠 교재도 없는데다, 내가 가르치는 것 보다는 다른 이에게 부탁하는 게 나을 것 같다. 하지만 마법사에게도 근접전은 존재하는 법. 그 때를 대비해서 간단한 대처법만 알려줄 생각이다.

그런데...

"공주님, 아샤?"

"네." (끄덕)

"음... 구경하시려고요?"

"네." (끄덕)

응접실에서부터 따라온 공주.

... 대답도 없이 끄덕이기만 하는 아샤.

아샤는 호위로 온 거니까 이해가 되는데... 아셰리아 공주는 나에게 무언가 물어볼 것이라도 있는 걸까. 응접실에서부터 왠지 모르게 시선이 느껴져서 돌아보면 아셰리아 공주였다.

상담하는 도중에 자신도 고민이 떠오른 걸까.

"공주님, 방금 전부터 안색이 안 좋으신데... 고민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 아닙니다. 그저 후궁에 아무도 안 계시는 시간이라, 심심해서 선생님을 따라온 겁니다."

설마... 아셰리아 공주도 사랑?

11살 아이인데다가 사교계도 나가지 않으니, 다른 남자와 접점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가능성이라는 게 있으니...

"혹시나 고민이 생기거나 하면 말씀해주셔야 해요? 상담 정도는 해드릴 수 있으니까요."

"... 네."

흠.

에우데미아에 멍청해빠진 귀족들이 많긴 하지만, 정상적인 귀족 가문이 없는 건 아니다.

그래도...

최소한 변경백 이상의 유력 가문에, 어떤 역경이라도 이겨낼 만큼 스트롱하고, 스위트하고, 스마트하고, 한 사람만 바라보는 핸섬가이가 아니라면! 선생님은 그 결혼 반댈세.

아셰리아의 상대가 개차반이라면 필레몬 국왕과 함께 그 집안을 폭파하러 가야겠다.

팔불출 국왕이라면 기꺼이 동행할 것이다.

"그리고 공주님께서 연습장에 계시면 여러모로 위험하니까... 저기 관객용 스탠드에 가셔서 구경하셔야 해요. 알겠죠?"

"... 네."

뭐... 사랑고민이던 아니던 지금은 자신이 말하기를 꺼려하는 것 같다.

나중에라도 알아서 말해주겠지.

일단 두 사람의 교육부터다.

"아일라는 내가 아모스에게 말하는 걸 잘 생각해봐. 자연 마법을 나중에 배우게 되더라도 자기 몸은 스스로 지킬 수 있어야해."

"네."

"그리고 아모스... 확인할 게 있는데."

"왜 그러시오."

무언가 큰 각오라도 한 듯한 아모스.

순정만화의 남주인공 같은 그의 눈망울은 선글라스 뒤에 잘 감추어져 있다.

"너. 제대로 싸워 본 적 없지."

"제대로 라니?"

"수금을 제외한 활동에는 참여한 적 없지?"

"... 그렇소."

폭력서클에 있었으면서 싸워본 적이 없다니...

하긴, 어쩔 수 없나.

게임에서 아모스의 본격적인 조직 생활은 아일라가 성병으로 죽고난 뒤부터 시작한다.

직접 투기장의 선수로 참여하고, 경매장의 책임자로 활동하며 자신의 실력을 갈고 닦았겠지. 심상마법도 그러면서 습득했을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기다렸다가 이방인처럼 접근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슬럼가의 폭력 서클은 사회 불안요소이기에 빨리 제거하는 것이 낫다. 거기에 아일라라는 원석도 얻지 않았는가. 아모스는 내가 가르치면 될 일이다.

"자, 아모스. 저번에 카페에서 나에게 주먹을 날렸을 때를 복기해보자.

"... 알겠소.

"풀 죽을 필요 없어. 그때는 일부러 네 신경을 긁은 거니까. 지금은 말하는 것만 집중해."

듬직한 어깨가 움츠러든 아모스였다.

결국에 내가 이 둘의 고용주인 셈이니까, 주먹을 휘두른 것에 자책을 느낀 것 같다.

그래도 집중하라는 말에 금방 기운을 차렸다.

"너가 주먹을 뻗었을 때를 재현해보자. 아주 천천히 나한테 주먹을 뻗어 봐."

고개를 끄덕인 아모스는 천천히 팔을 뻗었다.

그리고 나 역시 당시 상황을 재현했다.

"자, 아모스. 방금 너가 주먹을 뻗기 전에 어떤 자세를 취했는지 알아?"

"음... 잘 모르겠소."

"주먹을 뻗기 직전에. 오른 어깨가 뒤로 쏠리고, 왼팔이 앞으로 나왔으며, 상체가 앞으로 나오고, 발도 앞으로 나왔지. 이게 내가 너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었던 이유야."

"……."

"모르겠으면 다시 해봐. 내 말대로 될 걸."

아모스는 다시 한번 천천히, 주먹을 내미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 이제 좀 알 거 같소."

"자, 이제 내가 대처한 방법도 알려줄게.

나는 아모스의 주먹을 막은 상황을 재현했다. 그리고 내 오른팔을 아모스의 팔이 접히는 부분이 가져다댔다.

"여기. 밀어버리면 너의 팔은 어떻게 돼?"

"팔이 접혀 버리겠지."

"팔이 접히면?"

"…….."

처음부터 생각하는 건 어렵겠지.

실제로 보는 게 낫다.

내가 예고도 하지 않은 채 팔 안쪽을 강하게 밀자, 아모스는 팔이 접히는 동시에 아모스의 상체가 앞으로 쏠려왔다.

아모스는 한순간 무게중심을 잃었다. 그리고 서있으려고 남은 한쪽 팔을 버둥버둥 거린다.

"자, 이러면 나도 널 때릴 수 있어. 거기다 넌 나한테 한쪽 팔을 잡힌 상태고, 무게 중심이 무너져서 다른 팔은 붕 떠있지?"

"그렇소!"

"나는 이대로 너의 목젖을 치거나, 눈을 찌르거나, 코뼈를 팔꿈치로 치거나... 오른 팔을 비틀어버려도 되겠네. 아니면 이대로 발을 걸어 넘어뜨린 다음 내 무릎으로..."

"……."

"야. 쫄지 마. 진짜로 안 해."

덩치도 큰 게 겁만 많아서...

아모스는 몸을 써서 싸우는 타입인 녀석이라 이런 수싸움은 본인이 터득해야만 한다.

검과 마법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심상 마법 하나로 버텨야 하니까 당연한 일이다.

... 거기다. 나로서는 아모스가 빨리 심상 마법을 개화하고 무력이 강해졌으면 한다.

"아모스. 사실 너가 오른 손을 뻗을 거라는 건, 일주일동안 관찰해서 알아낸 것도 있어."

"그런 거였소?"

"너는 일주일동안 오른손으로 식사를 했어. 물건을 들때라던가 펜을 쓸 때도 오른손을 썼지. 결정적으로 올리버를 쓰러뜨릴 때도 오른팔로 주먹을 휘둘렀지. 그럼 너는 오른손잡이니까 공격도 오른팔로 할 가능성이 커."

"……."

아무래 내 자연 마력 적성이 좋다고 해도, 나는 마력 총량이 적은 반편이에 불과하다. 물론 나는 다른 등장 인물들의 무력을 파악하고 있으니, 그 점을 이용할 수야 있겠지.

하지만 이 세상에 강자는 많고, 몇몇은 절대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내가 오르지 못할 곳에 존재한다. 내가 그들과 맞붙는다면 결과를 볼 것도 없이 지겠지.

거기다 재앙은 기다리지 않는다. 지금은 판타스매터의 출현 빈도가 적은 편이지만... 본편 시점인 4년 후에는 훨씬 심해질 것이다.

"아모스. 내가 지금부터 가르치려는 건 이런 거야. 상대는 과연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너는 그걸 미리 파악할 줄 알아야 해."

"미리 파악한다니..."

"사람을 지키고 싶다 했지."

"그렇소."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할 지 계속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넌 지킬 수 없어. 그러니까...."

결국 고심끝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두 가지.

먼저, 선한 등장 인물들을 모아 키우는 것. 지금 아모스나 아일라처럼, 수많은 등장인물들 중 원석이라 불릴만한 인간은 분명 있다.

그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무력을 키운 다음. 왕국을 지킬 성벽으로 삼아야만 한다.

"오늘은 좀 맞자."

"뭐요...?"

그리고 두번째는, 현재의 에우데미아 왕국이 가진 전력을 손실없이 유지하는 것. 본편 시점에는 국왕을 비롯한 수많은 강자들이 사망한 상태였다. 만약 본편 시점까지 그 사람들이 전부 살아있어만 준다면... 희망은 커진다.

내가 괜히 그 망겜의 루트를 개척한 것이 아니다. 게임 안에서 읽을 수 있는 자료나 기록도 전부 찾아 정리했던 나다.

물론 지금 당장에는 내가 모르는 역사도 있지만... 역사의 흐름만큼은 안다. 그를 통해 사건 시기를 예측하고 잘 극복해야 한다.

"이것이 대련, 바로 겨루기란 것이다... 물론 내가 네 힘에 맞추려면 신체 강화 마법은 좀 써야겠지만... 그 정도는 괜찮겠지."

"그건... 반칙이오."

"반칙은 무슨. 안 다치게 할게."

"아..."

* * *

말이 대련이지, 아모스는 툭하면 시하에게 반격이나 관절기를 당하기 일쑤였다.

그런 모습을 아일라는 바로 근처에서, 아모스가 아파하는 것을 측은하게 보고 있으며.

저 멀리 관중석 역할을 하는 스탠드에는 아셰리아와 아샤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후우."

"공주님, 왜 그러시나요."

"그게..."

아샤는 요즘 들어, 자신의 주인이 한숨을 내쉬는 빈도가 늘어났음을 자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자신의 고민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아셰리아의 고민은 자신의 특기가 아닌 영역. 그렇기에 직접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아샤 본인의 마음을 찔렀다.

물론 예전에 비해 표정의 변화도 잦고, 감정표현도 풍부해진 아셰리아다. 그 점은 아샤도 인지하고 있었기에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온 아샤이기에, 공주의 잔걱정을 하나라도 덜고 싶은 것이다.

"아샤... 저는 어떤 사람일까요?"

"...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셰리아가 아샤의 질문에 답했다.

사실, 아셰리아의 고민은 원래 이것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응접실에서 생겼던 그 생각은 고민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신의 오라버니가 가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고민을 원만하게 풀어내주는 자신의 선생님.

그런 선생님을 보고, 아셰리아는 시하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 하나가 생겼을 뿐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나쁜 아이가 아니라고 해주셨죠. 하지만 확신이 들지 않아요."

하지만 응접실에서... 아셰리아는 망설였다.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듣게 될 답변이 왠지 모르게 두려웠기에, 차마 질문할 수 없었다.

"아샤, 저는 어릴 적부터 품어온 생각이... 철없고 나쁜 생각은 아니었을까 두려워요."

자신에게 확신이 없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혼자서 품게 된다면, 그 생각은 점점... 부정적인 방향으로 몸집을 불리기 마련이다.

자신의 스승에게 차마 건네지 못한 질문은 자신의 마음 속에서 도돌이표처럼 멤돌았고...

아셰리아가 멋대로 생각해버린 한 가지 가능성은, 과거의 자신을 자책하게 만들었다.

"저는... 착한 사람일까요, 나쁜 사람일까요."

"공주님께서 나쁜 사람일 리 없습니다."

아샤는 그런 공주의 물음에 칼같이 답했다.

"오히려 오랜 시간 곁에 있었던 제 입장에서는, 공주님께서 너무 주변을 배려하기만 하셔서 짜증이 날 정도였습니다."

"짜증이라니..."

"공주님께 짜증이 났다는 게 아니에요. 공주님의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이 났다는 거죠. 제가 집무실에서 공주님을 수행할 때마다, 관리들을 얼마나 죽여버리고 싶었는지 아세요?"

"... 미안해요."

"공주님께서 미안해하실 일이 아니에요."

평소 성정이 워낙에 게으르기만 한 아샤다.

하지만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하여, 남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덜 받는 건 아니었다.

귀찮았기에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그녀에게 화내고 싶었던 일은 너무나 많았다.

오히려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참아왔기에, 화가 더 많이 쌓여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주님의 배려도 모르고 뒤에서 힐문하기 바쁜 무능력자 쓰레기들이라던가. 남의 표정에 하나하나에 자기 감상을 늘어놓기 바쁜 발람같은 돼지 새끼라던가......"

아샤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가 이 정도로 말을 쏟아 놓는 건... 아샤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아셰리아의 입장에서도 처음인 일이었다.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 고마워요, 아샤."

조용히 고마움을 전하는 아셰리아.

아셰리아는 자신을 위해 화를 내주는 아샤의 모습에... 내심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공주님께서 내색하지 않고 있어주시는건데...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는 귀족 자제들이라던가. 매번 축제마다 아첨하기 바빠서 공주님의 아픈 구석을 푹푹 찌르는 깡촌놈들이라던가..."

아샤는 아셰리아의 작은 감사를 듣지 못한 채로, 속사포처럼 중얼거림을 계속하다가...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아악!"

온순해보이는 사람은... 오히려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더 큰 화를 참고 있을 수도 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안녕, 동생아. 오늘따라 목소리가 우렁차네."

일주간의 보고를 마친 아샤의 오빠, 헤르만 티오리아가 이시하를 찾아 서관에 왔고.

"푸흐흡... 카일. 자네 딸 목청이 크구만."

"하하하, 부장님. 따님이 참 장군감이야."

"거 참. 친위대로 스카웃해도 되겠어."

"……."

방금 막 토벌을 마치고 서관으로 진입중인 필레몬 국왕, 카일 왕궁부장, 그리고 친위대원들.

그 뒤에는 발람 프라시스와 휘하의 군사.

"아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니?"

"요즘 화병이 생겼나 보구나..."

오랜만에 국왕을 마중나온 루시아 왕비.

그런 누님을 따라온 제드로 프로네시스 재상.

"... 아샤?"

훈련장 중앙에서 대련을 멈춘 채.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는 시하와 아모스, 그리고 아일라.

서관에 들어선 전원이.

아샤 한 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

이내 아샤는 정신을 차리고...

그 자리에서 이마를 무릎에 붙여버렸다.

그리고 남은 팔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쪽팔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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