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58화 (58/215)

〈 58화 〉 2­22. 혼자만의 고민.

* * *

2­22. 혼자만의 고민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아샤의 외침을 들은 왕실의 어른들은 아셰리아와 헤르만에게 뒷수습을 맡겼다. 자신들이 그 자리에 끼어도 아샤는 고개를 들지 않을 것이라는 직감 때문이었다.

그렇게 서관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퇴근 시간을 맞이해 각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국왕 내외는 후궁으로.

다른 가신들은 자신들의 저택으로.

궁내에 거주하는 군인들은 서관 기숙사로.

나머지 관리들 역시 퇴궐한 상황.

현재 훈련장에는 남아있는 사람이 셋 뿐이다. 조금의 휴식 후 대련을 이어나가고 있는 시하, 아모스, 그것을 구경하는 아일라.

그리고 스탠드에는...

"아샤, 다른 분들은 다들 퇴근하셨어. 이제는 고개 들어도 돼."

"……."

"얘가 왠일로 그랬대. 수인국 전사들이 전투 전에 함성이라도 지르는 줄 알았네."

"……."

헤르만이 장난기 넘치는 어조로 아샤를 불러보지만... 머릿속에서 방금 전 상황을 끊임없이 재생하고 있는 아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공주님께서는 혹시 아십니까. 제 여동생이 왜 이러고 있는지."

"그... 글쎄요..."

"허어..."

아셰리아는 헤르만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아샤가 자신의 고민을 상담해주던 중, 대신 화를 내어주다가 폭발해버렸다.

아셰리아는 차마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어차피 형님을 기다려야 하니까... 공주님, 실례지만 저도 여기 앉아있어도 될까요?"

"네, 괜찮습니다."

시하의 집에는 따로 호위가 없기에, 당분간은 같이 생활을 하게 된 헤르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훈련에 참여할 생각은 없는 그는, 공주의 허락을 받고 근처에 착석했다.

그런 헤르만을 보고 아셰리아는 생각했다.

"헤르만님. 갑작스럽게 이런 질문을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만..."

"무엇이든 물어보셔도 됩니다. 저도 일단 티오리아의 일원이니까요."

평소 헤르만은 자신의 선생님인 시하를 호위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인물.

그런 사람이라면 자신의 의문을 간접적으로나마 해소해주지 않을까.

아셰리아는 질문을 이어나갔다.

"... 선생님께서 이곳 생활에 만족하고 계시는 것 같나요? 헤르만님은 옆에서 호위로 계신 기간이 있으니까 아실 것 같아서요."

"생활이라... 정확히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너무 범위가 넓다보니."

"에우데미아에 표류하시게 된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혹여...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는 않으실지. 그런 부분이 걱정되어서요."

"아..."

헤르만에게 있어 아셰리아의 질문은,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었다. 헤르만은 그 사실에 약간의 찜찜함을 느꼈다.

하지만 헤르만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하와 헤르만은 원래 업무로 엮인 사이였고, 헤르만은 어느 순간부터 시하를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나 지식. 이해가 되지 않는 판단이나 실적. 이런 요소들을 경계하는 것은 어찌보면 티오리아 가문의 사명이다.

물론 지금은 시하가 악인은 아닐 것이라는 자신만의 판단을 믿고 친해지기로 마음먹은 상황이지만... 애초에 헤르만에게는 시하를 걱정할만한 친분이 전혀 없었다.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라..."

헤르만은 최근까지 시하의 행적을 떠올렸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워낙에 이곳의 삶에 적응을 잘 하시기도 했고, 적어도 제 앞에서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하신 적은 없습니다."

"그런가요..."

"거기다 어느 순간부터는 정말이지 의욕적으로 사시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참 대책없이 산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말이죠."

"……."

헤르만에게 있어서 시하는. 충동적으로, 큰 계획 없이, 임기응변으로 밀어붙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떤 시점 이후로 그는 변했다.

뜬금없이 왕궁 생활을 청산하고 저택을 구해 이사하겠다는 결정. 시하는 이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듯 행동했었다.

보석금을 주고 아모스와 아일라를 감옥에서 석방시킨 지난 일주일. 굳이 두 사람을 자기 밑에 둘 특별한 이유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헤르만은... 이 행동들에 어떤 목적이 숨겨져 있을 거란 직감이 들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너무나 계획적이었기 때문이다.

헤르만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아셰리아 공주는 다른 의문을 표했다.

"그건 다행입니다만... 혹시나 고향에 소중한 분을 남겨두고 오시지는 않았을까요."

"소중한 사람이라..."

"가족이라던가... 친우같은."

가족이나 친구라...

에우데미아에 온 이후 가족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한 적 없는 시하였다.

하지만 주변 사람에 대해서는 딱 한 마디, 헤르만과 한나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헤르만은 질문에 답한다.

"가족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건국제를 준비하며 말씀해주신 것이..."

"네."

"주변에 여성이 많은 환경에서 공부를 해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교우 관계도 여성쪽으로 훨씬 치우쳐 있었다고 하셨죠."

"... 네?"

마법적 재능은 남녀를 가리지 않기에 에우데미아는 남녀간의 발언력 차이가 크지 않다.

거기에 사교계의 뒷소문은 여성진 사이에서 더 크게 도는 법. 게임에서도 중요했던 '사교계 평판작'을 시하가 놓칠 리 없었다.

그렇기에 시하는 건국제를 준비하면서 한나에게 여성을 대하는 매너를 검증받았었다.

물론 그 자리에는 헤르만도 있었다.

"이미 여성을 대할 때 취해야하는 매너는 저보다도 많이 알고 계시더라고요. 한나도 꽤나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물어보았더니..."

"……."

"학문의 특성상 여성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자 사람 친구...?도 많이 있었다고 하셨는데, 그게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네요. 그 외에는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런가요..."

헤르만을 통해 자신의 고민을 조금씩 거슬러 올라가던 아셰리아는... 최초로 떠올렸던 질문을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혹여 자신의 우려를 확인하게 될까,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후우..."

"공주님, 다른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음..."

아셰리아가 떠올린 최초의 질문.

응접실에서 자신의 오라버니인 알렉산더에게 능숙하게 조언하는 시하 선생님은, 어딘가 '사랑해본 경험'이 많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아셰리아는 궁금증이 생겨났다.

'혹여 선생님께서는, 다른 여성분과 깊은 교제를 하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하지만 아셰리아는...

차마 물을 수 없었다.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시하 선생님은 표류자다.'

표류자라는 존재들이 이 땅에 남긴 수많은 업적들. 그 업적들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아셰리아는 지금보다 더 어린 시절부터 표류자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에 알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꿈을 안고 살다가... 결국 이 땅에 묻히게 된 자들도 많다는 사실을.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고향에 소중한 사람이나 이루지 못한 꿈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스승에게 연인이 있다면 원래 세계에 남아있을 확률이 크다는 사실을.

'돌아가고 싶어하신다면... 어떻게 하지.'

시하가 온 뒤로 여러 행운이 겹치고는 있지만, 스스로 어두운 유년기를 걸어온 아셰리아다.

그런 그녀가 이 땅에 묻힌 표류자들의 역사를 떠올리니... 고민은 자연스레 몸집을 불렸다.

만약 자신의 스승이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면, 이룰 수 없는 꿈을 위해 방법을 찾으려 한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자신이 무언가를 하기 이전에, 자신의 스승이 어딘가 먼 곳으로 가버리는 건 아닐까.

'나에게 이런 고민을 할 자격은 있을까.'

지금은 시하를 하나뿐인 스승으로 생각하는 자신이다. 하지만 언젠가, 내 소망을 이루어줄 수단으로서 그를 평가하던 시절이 있다.

당시에는 스승의 사정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을 근원에 데려다 줄 능력이 있는 인물인가,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 자신이 지금 와서야 스승이 곁에 가까이 있었으면 한다는, 얼핏 이기적인 이유로 이런 고민을 한다니. 자기 자신이 가증스러워졌다.

이런 고민을 하는 와중에, 시하에게 '여자 사람 친구'가 많았다는 것을 알아버린 아셰리아는... 원래의 질문은 꺼낼 수 없게 되었다.

그런 환경에서는 남녀간의 교제가 있을 확률이 높으니까. 그 정도는 소녀 역시 알고 있다.

물론 아셰리아의 이러한 생각을 타인이 본다면, 누군가는 논리의 비약이라 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쓸 데 없는 고민이라 하겠지.

하지만 혼자만의 고민은 작게 보이는 법.

응접실에서 질문을 머뭇거린 그 순간부터,

지금 이곳 서관 훈련장에 오는 그 순간까지.

자존감이 낮은 아셰리아에게 작은 질문이 산비탈을 구르는 눈덩이처럼 너무나 크게 불어나버린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 * *

침울해진 아셰리아의 방향으로, 어느새 대련을 마친 시하 일행이 올라 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보고 계셨다니... 춥진 않으세요?"

"... 괜찮습니다."

"후궁의 저녁 만찬 시간도 지난 것 같은데..."

"... 네."

"음..."

시하의 머릿속에는 탄원의 날이 떠올랐다. 아셰리아 공주가 또다시 땅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왜 공주가 이렇게 풀이 죽은 걸까.

계속 생각해보지만... 응접실에서 질문을 꺼리던 일 외에는 별다른 요인이 떠오르지 않는다.

'질문을 해도 된다고 강요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상태를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 시하는 고민에 빠졌다. 그런 시하에게 기진맥진한 아모스가 짜내듯이 말을 전했다.

"... 보스. 배고픕니다..."

"... 보스라니. 그렇게 부르지마."

"그럼 뭐라 부르오..."

"너도 교사님이나 선생님이라 하던가."

"보스..."

대련 내내 팔 한 번 뻗을 때마다 관절기를 당한 아모스는 정신마저 너덜너덜해졌다.

그런 아모스와의 대화에서 시하는 공주의 마음을 풀 수도 있는 방법 하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아셰리아에게 말을 건네었다.

"식사라... 공주님. 저희 저녁 식사나 같이 하러 가실까요?"

시하가 여초 학과에서 배운 생존 수칙 중 하나.

화가 난 여자 동기가 있다면 고기 앞으로.

시하에게 이 원칙은 정말이지 유용했다. 무언가 이유 모를 갈등이 생겼을 때는 90%의 확률로 상황을 해결해주는 수칙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눈 앞의 아셰리아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학생이며, 화가 났다기 보다는 침울한 상태이다.

그래도 지금 이 상황에서 가벼운 산책과 식사를 하면 기분이 풀리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시하다.

'지금 시기에 그 식당이 있으려나... 그곳이 확실하긴 한데, 없어도 다른 곳에 가면 되겠지.'

한 때, 시하는 이방인이 먹는 음식이 분기에 영향을 미치는지 의심했었다. 당시 그는 에우데미아 왕도, 아레트의 모든 골목을 뒤져 숨은 식당들을 전부 찾아낸 적이 있다.

그런 자신만이 아는 식당. 존재만 한다면 음식의 맛이나 효능에는 자신이 있었다.왕궁에서 온갖 미식을 겪은 공주님인 아셰리아마저 만족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시하의 식사 제안에 아셰리아가 답했다.

"별로... 생각이 없습니다."

아셰리아의 풀죽은 답변.

시하는 무릎을 낮춰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권유했다.

"제가 아는 식당 하나가 있는데..."

이제야 고개를 든 아셰리아 공주.

"정말이지 공주님과 함께 방문하고 싶어요."

드디어 공주의 시선이 시하와 마주쳤다.

"... 안될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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