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225. 두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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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두 제자.
"주방장이 고블린이었다고...?"
헤르만이 얼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놀랄만도 하다.
지금의 에퀼리아 연방국은 마도구의 제작과 유통으로 세계의 경제를 움직인다. 그 마도구 사업의 주력 노동자들 중 하나가 고블린이다.
다른 판타지에서는 여기사를 임신시키려고 안달이 난 종족으로 묘사되지만, 에코니아의 고블린들은 묵묵하고 성실하다. 마도구 사업도 이들이 없었다면 이 정도로 흥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노동자 계층인데다가 먼 옛날 마족차별의 피해자이기도 하니, 더러운 일에만 종사한다는 인식은 아직 남아있긴 하다.
우리 세계에서는 얼굴 색과 종사하는 직업, 이 두가지 이유만으로 사람을 대우하는 모습이 바뀌지 않았던가. 이곳은 종족 차이까지 있으니, 고정 관념이 더 오래 가는 것 같다.
헤르만도 그런 생각이 조금은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노릇. 녀석은 자신이 먹은 음식의 접시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이걸... 고블린이 만들었다고?"
망연하게 읊조리는 헤르만.
늙은 고블린 주방장은 들고온 후식을 우리 테이블에 놓아두고서는, 주방으로 총총 걸어 돌아갔다. 마치 도망가는 것 같다.
나와 대화하고 있던 아셰리아 공주는 그런 고블린 노인의 뒷모습을 슬쩍 보고서는, 대화를 위해 멈추었던 식사를 재개했다.
내게 배운 내용을 떠올리기라도 한걸까, 주방장이 고블린이라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나보다. 음식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가며 먹고 있다.
나는 헤르만에게 말했다.
"헤르만, 왜 그래."
"형님. 그... 고블린은... 직종이란 게 있잖아."
"너가 말하려는 건 알겠는데, 주방은 깨끗했어. 거기다 방금 옷차림도 봤잖아. 그냥 키가 작고 피부가 초록색인 주방장. 그 이상 생각하지마. 독검사까지 한 놈이 무슨..."
"고블린이... 깨끗...? 보기만 하면 그런데... 어?"
문화 충격으로 정신이 나갔다...
지금 이 음식은 한 나라의 왕녀인 아셰리아마저 감탄하는 요리다. 그런 요리를 하층 노동자 종족인 고블린이 만들었다고 하면, 어떤 에우데미아의 귀족이 믿을 수 있을까.
"위생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예?"
늙은 고블린 주방장의 갑작스러운 한 마디에 멍하니 대답해버린 나와 헤르만. 주방으로 돌아갔던 고블린 주방장이 어느새 돌아와있었다.
언제 온거야?
방금 전 가져온 후식은 샤베트 종류였다면, 지금은 과일 종류를 가져왔다.
그는 접시를 테이블의 적당한 곳에 내려두고 헤르만에게 말했다.
"본 점의 위생은 최상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주방 청소는 아침, 점심, 저녁에 한 번씩. 마당은 매일 아침에 쓸고. 홀 청소는 손님들이 가실 때마다 매번 제가 직접 합니다."
고블린 주방장은 손을 공손히 모은 채 말했다.
두 손에 방금 전까지 착용하고 있던 장갑은 없었다. 드러난 초록색 피부에는 노인이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주름이 보인다.
"저 역시 샤워는 매일 네 번. 조리를 시작하기 전에는 손을 씻고, 지금처럼 조리복을 완전히 갖추고 요리를 시작합니다. 이 조리복은 점내에 여섯 벌 구비되어 있으며, 점심에는 새 옷으로 갈아 입습니다. 양치도 매일 여섯 번씩 하고요. 다른 고블린들은 구취가 심하답니다."
"그... 그렇군요."
헤르만은 당황하여 대답했다.
방금 내가 뭘 들은거지.
하루에 샤워를 네 번, 양치는 여섯 번...?
이 고블린 노인은 결벽증이 틀림 없다...
아연실색한 나를 보며 노인이 물었다.
"식사는 만족스러우셨는지요?"
"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다행이군요. 이곳에 터를 잡은지는 벌써 일주일인데... 고객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 당연하죠.
귀족 지구에서 물은 셀프라니.
아마 들어오자마자 나가버리겠죠.
... 그래도 따지고 보면 메뉴가 죄다 고급이다. 가격이 인당 은화 한장이면 내 체감물가 상으로는 10만원. 그런데 우리가 먹은 음식들은 두 배의 가치는 하는 것 같다. 애초에 귀족들을 타겟으로 삼아야 하는 요리라는 거다.
셀프라는 방식을 선택한 것도... 주방장이 고블린이기에 고객과 마주하지 않으려고 선택한 게 아닐까. 지금 생각해보면 식당의 구조가 주방과는 격리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입지와 구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의문이 생기는데...
"혹시 표류자라도 되시나요?"
"표류자라... 표류자라면 저처럼 고블린은 아니겠죠. 인간이 아닌 종족의 몸에 이세계인이 깃든다면 그건 '덧씌워진 인격'이라 불리니까요.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하시게 되셨나요?"
덧씌워진 인격이 빙의자라는 뜻이었구나.
이 썩어빠진 세상은 다른 세계에서 사람을 데려와 표류시키기도 하면서, 멀쩡한 사람의 인격만 데려와 빙의시키기까지 하나보다.
역사서에 가끔 나오는 단어긴 했는데, 정확히는 몰랐던 단어다. 나는 그 뜻이 정신 분열증 환자라도 되는 줄 알았다.
... 그 대가리를 부쉈다는 초대 마왕도 덧씌워진 인격이라 했으니까 말이다. 나로서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나는 질문을 이어나갔다.
"제가 표류자인데... 여기 음식에서 제가 살던 세계에서 먹어본 맛을 많이 느껴서요. 혹시나 주방장께서도 표류자가 아니신가 했습니다."
"허어..."
고블린 노인은 내 질문에 무언가 반가운 것이라도 본 마냥 반색을 표하며 말했다.
"허허, 제 요리 스승께서 표류자셨습니다."
그 한마디에 아셰리아 공주가 식사를 다시 멈추고 주방장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표류자에 관심이 많은 공주이니 당연한거겠지.
"제가 나이가 꽤 있다보니... 100년 전에 표류하신 분과 연이 닿아 있습니다. 벌써 60년 전의 일이죠. 원래 사시던 세계에서... 그 분의 원래 직업은 쉐프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군요..."
나와 고블린 주방장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셰리아 공주가 그에게 질문했다.
"그 분은 어떻게 되셨나요...?"
"지금은 계시지 않습니다. 돌아가셨거든요"
"아...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세월이 세월이니까요."
아셰리아 공주는 미처 예상치 못한 답변에 약간 슬픈 얼굴이 되었고, 먹고 있던 접시의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고블린 노인은 고개돌린 공주를 자애로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허허. 요즘 보기 힘든 사려깊은 아가씨로군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겉치레로만 미안하다 할 뿐인데... 아가씨께서는 상대방의 감정 하나하나를 진심으로 대하시는군요."
그렇지.
귀족들은 특히 그렇다.
자신이 실례되는 질문을 했어도, 그 대상의 작위를 먼저 생각하고 본다. 평민이거나 자신보다 더 낮은 지위의 인간이라면 사과조차 하지 않고 모르쇠로 넘기는 일이 대다수다.
우리 공주님은 너무 사려깊어서 문제지만... 그래도 후안무치한 인간들보단 훨씬 낫다.
주방장이 말을 이었다.
"이별이라는 것은 언젠가 찾아오는 법. 하지만 저는 오랜 시간동안 그분의 밑에서 배웠습니다. 쌓인 추억이 많다보니... 그렇게 송구스러워 하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셰리아 공주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고블린 주방장의 키는 공주의 앉은키와 비슷하다보니, 둘의 눈높이는 같았다.
잠시간 고민하다가...
아셰리아 공주가 물었다.
"정말 죄송스러운 질문이지만... 혹시 그분께서는. 이곳에서의 삶에 만족하셨나요?"
삶에 대한 만족이라...
공주의 질문은 꽤나 어려운 것이었다.
나라면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방장이 답했다.
"스승께서는 이곳 에코니아에서 삶의 목표를 세우셨지만, 끝내 이루지 못하셨습니다."
삶의 목표라... 나에게는 아셰리아를 비롯한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다. 하지만 나도 저 노인의 스승처럼 이루지 못할 수도 있겠지.
...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말이다.
나는 공주와 주방장의 사이에 끼어있는 형편이라 공주의 표정변화를 볼 수 있었다.
한 달 전이라면 무표정으로 일관했겠지만... 지금은 눈과 입이 약간의 슬픔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만족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표정은 한순간 의문으로 변했다.
이루지 못했는데 만족했다니... 무슨 뜻일까.
"그분은 애초에 꿈이 크셨던 분이셨습니다. 눈을 감으시는 그 순간, 자신은 이 정도라면 잘 했다고 말씀하셨죠. 그리고..."
주방장은 약간 뜸을 들이다 말했다.
"그분은 제게 전해야할 것은 모두 전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들 중에는 당신의 꿈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시더군요. 나이 차이가 많아 이별하게 되었지만... 저는 목표를 이어받은 셈입니다."
목표를 잇는다라... 참 좋은 울림이다.
하지만 내 목표는 내가 이뤄내야 한다.
... 나에게는 뒤가 없다.
"고블린의 귀가 밝다보니... 주방 안에 있는데도 두 분의 대화가 약간 들렸습니다. 아가씨께서는 여기 표류자님의 제자이신가요?"
"... 그렇습니다."
"두분의 나이차는 저와 제 스승보다는 적군요. 그렇다면 함께하실 수 있는 시간도 훨씬 길테구요. 참 부럽습니다."
"……."
아셰리아의 시선이 땅으로 떨어졌다.
그녀의 표정은 내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아셰리아가 말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허허. 일개 요리인 주제에 높으신 분들께 너무 큰 참견을 한 걸수도 있지요."
"아뇨, 제게는 도움이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공주님께 도움이 되었다니, 영광입니다."
노인은 이미 전부 알고 있었다는 듯,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나와 공주, 그리고 헤르만은 당황했다.
도대체 어떻게 안 거지...
공주의 변장은 평소와 같다.
노인은 나를 보고 말했다.
"표류자는 50년에 한번 오는 존재, 함부로 자신을 밝히시면 안되는 겁니다. 두 분께서 하고 나오신 변장의 의미가 사라져버립니다. 꼭 주의하셔야 합니다. 왕실 가정교사님."
... 순전히 내 실수 때문이었다.
음식이 맛있다는 이유로 내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를 까발려버리다니, 너무 생각이 짧았다.
"이 뒷방 늙은이가 오지랖을 더 떨자면... 특히나 50년을 채우지 않은 표류자이시기에 더 조심하셔야 합니다. 충분한 실적을 보이셨기에 인정받으신 듯 하지만... 저와 같은 늙은이들 사이에서는 떠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 네?"
당황하여 공주의 눈치를 살피니...
아셰리아 공주도 역시 모르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노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200년 악인기를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 악인기의 시작을 알린 것은... 수많은 표류자들과 '덧씌워진 인격'의 등장이었습니다. 원래라면 50년에 한번 정도 영향을 주던 자들이... 이 세상에 너무나 많이 출현해버린 것이죠."
"……."
"그 표류자들이나 '덧씌워진 인격'들은 선인도 있었고, 악인도 있었습니다. 선악으로 감히 판단하지 못할 자들도 있었지요. 하지만 그들이 사회의 혼란을 가중시킨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 설마.
그럴 리 없다.
내가 플레이한 에코니아 아포칼립스에 표류자나 빙의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노인이 말하는 것은 역사일 뿐일 것이다.
"물론 가정교사님께서는 50년에 근접하여 오셨기에, 그저 휩쓸린 분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앞으로의 처신에 주의하십시오."
고민하는 나에게 노인이 충고했다.
"공주님 같은 제자도 두신 분이니, 오래오래 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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