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232. 말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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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말하지 마.
헤르만이 오지 않을거라 말했던 슬럼가 빵집의 여인이 뒤늦게 찾아왔다.
그녀는 내게 충격적인 소식 하나를 가져왔다.
그건 바로... 알렉산더가 납치당했다는 것.
"그 사람들은 모우회주라고 했어요."
"모우회라면..."
모우회.
들어보았던 단어다.
혜세국의 공주, 혜선은 아레트 아카데미로 유학을 오게 된다. 이방인은 그 차기 명월주인 그 공주와도 관계를 맺을 수 있다.
혜선은 자신의 언니의 행방을 찾아 이방인과 함께 동분서주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언니는 살해당한 상태였고, 범인은 조운회와 모우회라고 불리우는 형제 조직이었다.
그 루트의 끝에서... 차기 명월주인 혜선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쳐버리는 것으로 루트는 마무리된다.
그녀는 내가 DLC를 플레이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그녀는 DLC에서 아셰리아 여왕처럼 악역 여왕이 되어버리니까.
"헤르만, 왕궁으로 가서 지원을 요청해. 장소는 일전의 그 오두막에서 동쪽으로 40분 거리"
"알았어. 형님은 어쩌려고."
"나 먼저 숲을 뒤져볼게."
그 단체가 알렉산더를 납치하다니... 알렉산더의 회상이나 과거 자료에서는 없던 일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이 있다면, 나는 그들이 쓰던 아지트의 장소는 알고 있다.
... 내가 충분히 반격할 수 있다.
"혼자 가겠다는 거야?"
"알렉산더가 위험해지면 시간을 벌어볼게."
"... 절대로 위험한 짓 하지마."
"알았어."
* * *
모우회의 은신처인 작은 창고.
그곳의 바닥에는 싸늘한 시체가 둘. 그 모습을 보면서 남은 한 사람의 괴한은 생각했다.
'내가 덤볐다가 당한다면...'
모우회주와 그 직속 수하들은 혜세국에서 온갖 재앙을 물리친 경험이 있는 자들. 그에 반해 앞에 있는 혜윤은 아무리 과거에 공주였다 해도 열세살 어린 아이일 뿐이다. 하지만 눈앞의 광경은 더 안전한 선택을 종용하게 되었다.
그는 등을 돌린 채 창고 밖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근처 마차에는 아직 두 사람이 더 있다. 그들을 불러온다면 상황을 만회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푸욱. 소리가 나더니, 도망치던 괴한의 등으로 뾰족한 검이 튀어나왔다.
"어어억...."
탄식을 흘리는 괴한을 넘어뜨리고 등장한 사람은 알렉산더가 호위를 부탁했던 기사였다.
"... 왕자님. 괜찮으십니까!"
기사는 다급히 왕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괴한들의 목적은 알렉산더가 아니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기사들의 입장에서는 무려 일국의 왕자가 납치당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기사들은 납치범들이 인질의 해방을 조건으로 다른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 알렉산더의 짐작대로 나뉘어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기사는 창고 안을 한바퀴 눈으로 훑더니, 혜윤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귀하께서 틈을 만들어주셨기에 제가 난입할 수 있었습니다."
"... 아뇨."
납치범들은 알렉산더를 일개 하급 귀족의 아이로 알고 있었다. 거기에 김원상의 이름이 나온 시점에서 혜윤을 노린 범죄가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혜윤은 기사의 감사에도 떳떳하게 답할 수 없었다.
기사는 둘에게 말했다.
"그럼 두 분을 안전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아직 이곳은 위험합니다. 나머지 둘은 멀찍이 마차에서 연초를 피고 있는데다... 이 정도 규모라면 잔당들이 더 있을 수 있습니다."
"... 알겠네. 에우데미아의 왕도에서 이런 일을 벌이다니. 직접 어떻게든 하고 싶지만 몸 상태가 말이 아니군. 경의 말에 따르겠네."
이후 알렉산더는 혜윤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혜윤, 어서 가자."
"……."
하지만 그 손을 선뜻 잡지 못했다.
혜윤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것.
자책감.
죄의식.
격차감.
... 두려움.
"그게..."
건국제의 그 날 깨달아버렸다.
자신은 한낱 도망자.
거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살피며 조심할 수 밖에 없는 몸이다. 그저 용병일 수 있다. 그저 여행객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 하나하나가 자객이 아닌가 의심해야 하는 자신이다.
그 날 수인국의 음식을 파는 그 식당에 가고 싶다고 한 것 역시, 혜세국의 무기들로 무장한 용병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알렉산더는 자신의 기분을 헤치지 않기 위해 취향에 맞지 않은 음식을 애써 비웠지만... 그 모습은 오히려 혜윤에게 칼날이 되었다.
알렉산더는 충분히 자신을 봐주고 있음에도, 혜윤 자신은 온전히 그를 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자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 일은..."
지금의 자신은 한낱 평민일 뿐이다.
거리의 사람들을 보며 알렉산더는 말했다.
사람들의 행복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겠다고.
어렸을 적 부친에게서 항상 들어왔던 목표.
자신은 감히 손에 넣을 수 없었던 꿈이었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지금 그 꿈을 꾸고 있다.
지금의 신분은 폐위된 왕녀. 죽은 것으로 알려진 공주. 평민 중에서도 슬럼에 살아가는 빈자.
그의 옆에 선다면 분명 걸림돌이 될 것이다.
"전부 다 내가..."
이미 김원상은 은신처를 알아버렸다.
분명 혜윤은 그가 국내를 조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못해도 4년으로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배신당했다. 자신이 거처로 삼고 있던 슬럼가에서 납치를 당하지 않았나.
마치 확실한 정보를 얻기라도 한듯이.
혜윤은 존재 자체가 폭탄인 존재.
그런 자신을 알렉산더에게 떠맡길 수 없었다.
그렇기에 말하려 한다.
전부 자신이 원인이었으니, 남겠다고.
시녀의 목숨으로 잠시동안 생을 이어갔을 뿐.
어차피 자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자신이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말하지 마."
하지만 혜윤의 말은 알렉산더에게 가로막혔다.
비록 평민의 삶은 자신이 아예 접하지 못한 것이기에 모르고 있었을 뿐. 타라스 마을의 사건 이후로 한층 침착해진 알렉산더다.
이미 자루 속에 갇혀 있을 때부터, 이 납치는 자신을 목표로 삼은 것이 아님은 짐작하고 있었다.
거기다 혜윤은 겉보기에 슬럼가의 소녀. 왕도에서 이런 리스크를 지고 납치할 가치가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런 납치를 당했다는 것은...
알렉산더는 혜윤의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
그저 그녀가 평범한 소녀는 아닐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너가 누구든 상관없어. 그러니까..."
알렉산더에게는 그런 사실 따위 상관없었다.
혜윤은 언제나 자신을 위해주려 노력했고,
지금은 잃어서는 안될 사람이다.
그 사실만이 중요했다.
"같이 가자."
혜윤의 고민은 잠시나마 날아갔고.
홀린 듯 알렉산더의 손을 잡게 되었다.
* * *
그렇게 세 사람. 알렉산더, 혜윤, 그리고 기사는 주변에 있는 가장 높은 건물을 향해 달렸다.
아레트 아카데미. 그곳에 도착하기만 하면 당장에 교장 부부에게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
20분 정도 달렸을까.
약간 지친듯한 어조로 혜윤이 말했다.
"기사님, 저희를 쫓아오기 시작했어요."
"그게 사실입니까? 아직 거리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는데...!"
혜윤은 지금까지 심상 마법을 발동시킨 채 달리고 있었다.
명월시. 밝은 달의 눈.
초대 명월주가 세상 만물을 굽어 살피고 싶어하던 마음을 담아 만든 심상 마법이다.
작게는 감각을 증폭시키는 용도로 쓰이지만, 그 본질은 불가시의 마력안을 생성하는 것.
마력안은 새로운 감각의 지점으로서 기능하게 되는데, 시전자는 이를 통해 기본적인 오감과 마력을 선택적으로 느낄 수 있다.
혜윤의 두 눈은 달리고 있는 숲길을 바라보고 있고, 머릿속에는 새가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듯 주변을 훤히 보는 중이었다.
"기사님의 추측대로 잔당들이 있었어요. 인원은 다섯. 마차 옆에 있던 둘까지 합류해서 일곱."
"내가 몸이 멀쩡하기만 했어도..."
아직도 약기운이 조금은 남아있는 알렉산더였다. 창고에서 탈출한 뒤로 심상 마력을 모으려고 여러번 시도해보았지만, 머릿속이 몽롱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지금 달리는 것도 한계였다.
기사가 혜윤에게 물었다.
"그들의 무장은 어떻습니까."
"어두워서 무장은 보지 못해요. 하지만 마력으로 신체 강화를 한 채로 쫓아오는데... 적어도 그 창고를 지키던 자들보다는 강해요."
"……."
마력시의 위치가 너무나도 높은 곳에 있는데다, 어두운 밤이기에 정확히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혜윤은 마력을 감지함으로서 추격자들의 실력을 대략적으로 파악했다.
"왕자님, 제가 남아서 시간을 끌겠습니다."
"허락할 수 없다. 경이 아무리 기사더라도 적들의 무력은 미지수. 만약 적들 사이에 실력자가 끼어있다면 우린 각개격파를 당할 뿐이다."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기사.
알렉산더는 단호히 대답했다.
"그래도 방법이..."
"셋이서 최대한 도망치다가 구원을 마주하길 바라는 수밖에. 지금은 이게 최선이야."
그런 대화가 오가는 도중,
혜윤의 마력시에 새로운 인물이 잡혔다.
무언가 흉흉한 기세를 풍기는 인간이었다.
그는 자신들이 향하는 방향에서 올라오고있다.
"우리 앞에서... 누군가 올라오고 있어. 그런데 아군인지는 확실하지 않아..."
세 사람은 그 자리에 멈춰섰다.
"우리가 오던 방향에 집중하고 있었어서... 미안해. 너무 늦게 봐버렸어."
"너가 사과할 게 아니잖아. 그 사람과 우리 사이의 거리는?"
"바로 앞이야. 뒤쪽에서 우릴 쫒아오는 사람들은 지금대로면 15분이야.
고민에 빠진 혜윤.
그녀는 이내 생각한 답을 내놓았다.
"일곱 명과 한 명... 앞쪽으로 뚫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아."
"... 그럴 수밖에 없겠네."
"알겠습니다. 그럼 전진하죠."
방금보다는 천천히 전진하는 세 사람.
기사는 자신의 애검을. 알렉산더와 혜윤은 방금 죽인 괴한들이 들고 있었던 환도를.
혹시모를 위협에 대비해 검을 들었다.
어둠이 깔린 숲에 긴장감이 감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이 족같은 에코니아는... 개새끼들이 너무 많아..."
감각이 확장되어 있는 혜윤의 귀에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애들을... 납치해?"
그의 목소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약간 험한 말을 하긴 하지만...
맥락을 따지자면 아군 같았다.
"암시장을 죄다 정리할까... 변태귀족 고객님 새끼들을 먼저 조질까..."
이윽고 그 사람은.
세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방금 전 마력시에 잡히던 흉흉한 마력은 어디갔는지 사라져있고,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알렉산더가 멍하니 말했다.
"스승님...?"
"알렉산더, 무사하셨네요. 다행입니다."
"뭐요?"
그 사람은 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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