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69화 (69/215)

〈 69화 〉 2­33. 싸움의 목적과 해서는 안될 말.

* * *

2­33. 싸움의 목적과 해서는 안될 말.

설마 혼자 오던 그 사람이 알렉산더의 스승이라니, 혜윤은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시하가 기사에게 물었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요?"

"여기 계신 분의 말씀에 따르면, 적 7명이 저희를 추격하고 있다 합니다."

"음... 색적계열의 마법을 쓸 줄 아는거니?"

시하는 기사의 답을 듣고, 혜윤에게 물었다.

"... 네."

"적들이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지금은 5분 남았습니다."

"정확히 거리까지 알 수 있니?"

"2400미터 입니다."

"상당히 정확하네. 상대방의 전력은?"

혜윤은 고민했다. 에코니아의 땅에서 색적마법은 희소한 편이다. 만약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싶다면 이 질문에 답변을 피하는 게 옳다.

만약 자신의 정체를 밝혀진다 하더라도, 알렉산더에게 먼저 상의를 하고픈 혜윤이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 마력으로만 따지자면 하급 기사가 넷, 중급 기사가 하나. 나머지는 일반병 수준입니다."

알렉산더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살기 위해서는 정보 하나가 중요한 상황. 혜윤은 결국 자신이 판단할 수 있는 정보는 모두 건네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기다 명월시는 자신의 고향인 혜세국 내에서도 정확한 특징을 아는 사람이 적은 마법.

듣기로 표류자로 알려진 눈 앞의 가정교사는 그 특징을 모를거라 생각했다.

'마력까지 볼 수 있는 색적 마법이라. 그런 특징을 가진 색적 마법을 쓰던 사람은 두 명 뿐인데. 교국의 차기 성녀와 혜세국의 공주. 거기다 킬로미터 단위의 광역 색적이면...'

하지만 시하는 에코니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마법을 알고 있는 인물. 특히 아레트 아카데미에 재학했던 자들의 전력은 충분히 파악하고 있다.

비록 자연 마법과 심상 마법의 차이 자체는 이곳에 온 뒤로 알게 된 그이지만, 각 마법들의 적합한 용도와 위력에 대한 이해도는 세상에 그를 따를 자가 없을 것이다. 시하는 혜윤의 정체를 빠르게 추론했다.

'...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 여자아이의 정체가 아니지. 어거스트 기사단장님은 내 실력이 중급 기사에 맞먹는다 했었는데...'

시하는 상황을 분석하며 알렉산더 일행을 눈으로 훑기 시작했다.

이미 오랜 시간을 달려왔기에 꽤나 지친 알렉산더와 혜윤. 아직 경험은 적은듯한 젊은 기사.

이들을 데리고 싸운다면 승률은 어떻게 될까.

고민을 끝낸 시하가 말했다.

"세 사람은 먼저 내려가세요."

"혼자서 싸우실 생각이십니까? 아무리 스승님이라도 위험합니다!"

시하의 판단을 만류하는 알렉산더.

일전 스승의 결투를 관전하기도 했던 알렉산더다. 시하가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만에 급격히 강해진 모습을 확인했으며, 수업이 끝날때마다 서관에서 수련을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거기다 자신이 고전하던 그 재앙의 늑대를 단칼에 죽여버렸던 시하가 아닌가. 심상 마법을 제쳐두고 생각한다면 스승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혜윤의 판단이 정확하다면 지금 상황은 아무리 스승이라도 위험하다. 이 세상의 싸움은 마력의 질과 양만으로 결정되지 않으니까. 만약 적들이 조직적인 훈련을 받은 자들이라면 혼자인 스승이 위험해질 것이 분명하다.

걱정하는 알렉산더에게 시하가 말했다.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왕도 신문에서 제게 붙여준 멸칭을 아시나요?"

왕실 폭발 가정교사.

그에게 발람이 당했다는 소문을 떠들석하게 즐기고 있던 거리의 시민들이다.

그걸 들은 알렉산더가 모를 리가 없다.

"제가 지금 낼 수 있는 최고 출력으로 그 마법을 쓰고 전투를 시작하면 잡병들은 전부 정리할 수 있어요. 여러분들이 이곳에 계시면 저는 마법의 위력을 대폭 줄여야만 합니다."

"그건 맞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이유. 이건 적을 죽인다고 해서 승리하는 싸움이 아니에요. 당신의 안전이 승리 조건이에요. 알렉산더, 전투의 목적을 잊지마세요. 적들의 목적은 당신이나 그쪽의 아가씨입니다."

"……."

"저는 적들의 승리 조건을 훤히 드러낸 채로 싸우는 멍청이가 아닙니다. 여러분만 무사하다면... 헤르만이 원군을 요청하고 여기까지 도착할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제가 이기는 싸움이에요."

스승의 말은 구구절절 옳은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이 일을 회피함으로서, 자신의 스승이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 아닌가.

분명 자신이 감당해야만 할 일이다. 감히 스승에게 떠넘겨도 되는가, 그런 고민이 떠오른다.

알렉산더의 표정을 보며 시하가 말했다.

"알렉산더, 그런 표정 짓지 마요. 당신이 책임질 일이 아니에요."

"... 네?"

아무리 게임이라 하더라도.

여왕을 몇번이고 죽인 알렉산더라 해도.

시하는 그런 알렉산더의 모습을 5년간, 그의 짧은 인생을 몇번이고 반복하며 관찰했었다.

시하가 정의했던 알렉산더라는 인간은...

왕족의 의무.

그 무거운 짐을 혼자서만 들려고 하는 멍청이.

그런 아이가 할 고민을 모를 리가 없었다.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것을 짊어지려 하는 것은 오만이고 교만입니다. 왕족도 예외가 아니에요. 이런 때는 순순히 도움을 받아들이세요."

시하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지면에 손을 대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지키는 건 어른의 의무. 아이들은 올바르게 어른으로 자라나서 잘하면 되는 거에요. 기사님, 빨리 두 사람을 데리고 내려가세요."

"... 알겠습니다. 왕자님. 지금은 가정교사님의 말씀을 따라야 할 때입니다."

알렉산더는 할 수 있는 말이 더이상 없었다.

"스승님, 무사하셔야 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저 스승의 무사를 빌면서, 혜윤과 함께 아래를 향할 수 밖에 없었다.

* * *

추격을 진행하는 모우회주, 윤흠서에게 내내 꺼림칙한 생각이 떠오른다.

'방금 그 상흔은...'

납치한 아이들 중 하나가 아군의 환도를 빼앗아 들어 한 사람을 죽였다는 것.

쉽게 납득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눈 앞의 현장이 그걸 보여주고 있었으니 받아들여야만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동방의 환도는 찌르는 것 보다 베는 것에 더 큰 목적을 둔 검. 창고의 문 앞에서 쓰러져 있는 동료의 시체는 검에 등을 찔린 형태였다.

납치를 맡았던 인원에게 윤흠서가 물었다.

"귀족 꼬마를 하나 더 납치했었다고?"

"그렇습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차질없도록 죽였어야지."

"... 죄송합니다."

사로잡은 자들은 급하게 도망쳤기에 미처 흔적을 지우지는 못한 상황.

그 흔적 중에는 아이들의 발자국 외에도 더 큰 군화의 발자국도 남아있었다.

'그 귀족 꼬마에게 호위병이라도 붙어있던건가. 후방을 잡고 단칼에 찌른 솜씨만 본다면 꽤나 실력있는 호위일텐데...'

모우회주, 윤흠서는 일행에게 소리쳤다.

"우리가 꽤나 큰 일을 맡아버린 것 같구나. 모두 이번 작전에는 긴장을 유지해라."

"""예!"""

이후에도 추격은 몇 분간 더 이어졌다.

그리고.

"멈춰라."

회주의 말에, 수하들은 제 자리를 멈춰섰다.

한 동방인 남성이 에우데미아 귀족의 복식을 입은 채로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검을 땅에 박은채 한 쪽 무릎을 땅에 대고 있다.

모우회주 윤흠서가 검을 뽑으며 말했다.

"길을 비켜라. 그렇지 않으면 베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주보고 있는 자의 표정에는 한 점 변화가 없었다. 모우회주에게는 오히려 그의 표정이 더 싸늘해졌다는 느낌도 들었다.

어쩔 수 없이 베어야 하는가.

회주가 말했다.

"... 최대한 살생은 피하려 했거늘."

뽑은 검을 전방으로 향하는 회주.

다른 단원들은 그저 보고만 있을 뿐이다.

"모우회주. 성은 분명 윤이었는데, 이름은 뭐였더라... 그래도 뭐, 이름따위 중요하지 않으니까."

침묵을 지키던 남자가 말했다.

모우회주로서는 당황했다. 처음 보는 인간이 자신의 성씨까지 알고 있으니.

"웃기네. 도적단 따위가 도리를 말한다니."

"……."

"멀쩡한 여자들을 매춘굴에 팔고, 애들은 귀족집 변태새끼들에게 넘기고... 백성을 위해 군대를 정비했던 초대 명월주가 보면 참 울겠어."

윤흠서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갔다.

이 사람은 무엇일까.

어디까지 알고 있는거지.

외모를 보고 출신 정도야 알 수 있다.

하지만 저 자의 말은 자신들이 군관이었다는 과거까지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남자가 마지막 한 마디를 내뱉었다.

"복수를 하려고 인간성을 팔다니. 이미 죽은 사람을 위해 산 사람들을 죽이는 놈들만큼 쓰레기들이 없지... 안 그래?"

"부장군! 더 이상 들을 것도 없소. 저 놈은 시간을 끌기 위해 헛소리를 하는 것이오!"

"회주께서 나서지 않겠다면 우리가 베겠소!"

회주의 수하들이 외쳤다.

갑자기 시간이 더뎌지기라도 한 듯, 모우회주에게는 주변의 모든 것이 너무나 느리게 느껴졌다.

자신들의 수하가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고,

남자는 고개를 숙인채...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건 도발이다. 무슨 생각이지...!'

땅에 박힌 그의 검이 푸르게 빛났다.

그와 동시에.

달리던 수하들의 발 밑이 부풀었으며,

모우회주가 서있던 바닥이 솟아올랐다.

회주는 외쳤다.

"바닥에 폭탄이다!"

"뭣...!"

앞서 달리던 수하들은 놀란 채로 황급히 발 밑을 보고 크게 이탈했으며, 회주는 뒷걸음질을 치며 검에 자신의 마력을 주입해 방호벽을 펼쳤다.

그리고

쾅!

예상보다 더 큰 폭발.

방호벽은 그 충격을 버텨내지 못했다.

흙먼지와 돌이 사방으로 비산하고

회주의 몸은 폭발의 충격에 공중에 떠버렸다.

수하들 역시 사방으로 날려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모우단원들은 전부 폭발에 휘말려 날아갔고,바닥에는 둥그런 구멍이 여러 개 뚫린 채사방은 흙먼지로 뒤덮인 상황.

방금 전의 폭음이 남긴 이명만이 시하의 고막을 울리고 있으며, 다른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던 시하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절대로 해서는 안될 말을.

"해치웠나!?"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자욱한 흙먼지 사이로 누군가가 뛰쳐나오며 기합을 내질렀다.

"흐아아아아압!"

눈에 핏발이 가득 선 모우회주였다.

그의 옷은 폭발의 흔적으로 뒤덮여있다.

시하가 화염구를 몇 개 날려보았지만, 모우회주 윤흠서는 마치 미친 사람마냥 그 마법들을 검으로 쳐내면서 거리를 좁혀왔다.

시하는 땅에서 검을 뽑으며 생각했다.

'씨발... 낯선 천장부터 시작해서 왜 이렇게 실언을 많이 하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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