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235. 나는 감정을 지배할 수 있다!
* * *
235. 나는 감정을 지배할 수 있다!
납치사건 당일의 새벽.
시하의 저택.
저택의 주인인 시하는 전신이 붕대투성이가 된 채로 침대에 누워 잠을 자는 중이다.
그 옆에는 일전에도 도움을 줬던 성당의 수녀가 부스스한 머리를 정돈하지 못한 채,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으로 진단을 하고 있다.
원래라면 왕궁의 치유사를 거쳤겠지만, 헤르만은 다른 이유가 있어 그녀를 호출하게 되었다.
수녀가 헤르만에게 말했다.
"공작님께서 보이신 행동은 타락... 아니, 마력 중독의 초기 증상이 맞습니다. 저택에 막 도착하셨을 때도 부정한 마력에 많이 노출된 상태셨구요. 이럴 때는 강제로 쉬게 만드는 게 제일입니다. 헤르만님께서 잘 대처하신 겁니다."
"그렇군요..."
마력 중독.
헬렌 교국에서는 타락이라고 불리우며,
동방에서는 심마, 혹은 입마라고도 한다.
마력 중독, 타락, 심마, 입마.
분명 단어마다 약간의 의미 차이는 존재한다.
하지만 각국의 주안점이 다르기에 명명하는 방법이 다른 것일 뿐, 모두 한 가지 현상이자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용어들이다.
"만약 공작님께서 그 상태에 빠진 채로 범인을 죽이기라도 하셨다면, 이후에도 광증에 시달리는 원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은... 헤르만님도 아시겠죠."
"……."
"공작님께선 심상 마력적성이 전무하시지만, 마력 감응력 자체는 비정상적으로 높다고 하셨죠. 이런 분들이 자칫 인재가 되어버리기 쉽습니다. 옆에서 무리하지 않도록 도와줘야해요."
"... 알겠습니다."
인재 人災
만물을 구성하는 마력 중 부정한 마력에 중독된 인간은 심마에 빠져 점점 타락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심상은 꾸준히 물들게 되고, 결국에는 부정한 심상 마력을 뿜어내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에코니아에서 마력을 사용하는 자들이라면, 자신이 인재가 되어버리지 않도록 항상 스스로를 경계해야만 한다. 꾸준히 명상이나 기도로 자신의 정신을 갈고 닦는 이유도 어찌 보면 심마에 빠져들지 않기 위함이다.
물론 각 국가들이 마력 사용자들을 엄격히 관리하는데다, 사회 구성원들 역시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기에 흔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시하처럼 초기에 치료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이건 어느 정도 해결된 일이니까 넘어가도록 하죠. 제가 불만인 것은 다음이에요."
담담하게 이야기하던 수녀의 어조는 돌연 가시돋힌 것으로 바뀌었다.
"결투 도중에 팔이 날아갈 뻔 하셨고, 그 다음에는 대낮의 거리에서 자해를 하셨었죠. 도대체 이번에는 어떻게 몸을 굴렸길래 이런 꼴이 되셨을까요?"
"... 그러게 말입니다."
욕을 하는건지 존대를 하는건지. 그녀가 수녀임을 고려하면 여러모로 부적절한 단어 선택.
하지만 헤르만은 그저 맞장구를 칠 수 밖에 없었다. 수녀가 그만큼 화를 표출하고 있는데다, 그녀의 말에 틀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팔과 다리는 전부 뼈가 부러지거나 틀어졌고, 몸 속에도 멀쩡한 곳이 없었어요. 근육은 말할 것도 없죠. 만약 헤르만님께서 응급 처치를 하지 않았더라면 옮겨지는 도중에 죽었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어요."
"그렇죠..."
"공작님이 일어나시면 전해주세요. 다음 번에는 몸을 좀 성하게 굴리라구요. 의도가 좋다는 이유로 넘어가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다음 치유마법부터는 저를 찾아오실 때 각오하고 찾아오시라는 말도 꼭 전해주시구요."
"알겠습니다."
이번에만 '특별히' 고통 없는 치료식을 써드린거에요, 수녀는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이후 시하의 몸에 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그녀는 성당으로 향하기 위해 방을 나섰다.
헤르만 역시 그녀를 배웅하려고 방을 나오자, 1층에서 기다리던 아모스가 말을 걸었다.
"보스는 괜찮소?"
"여기 계신 수녀님이 잘 치료해주셨어요."
"오, 감사합니다."
아모스는 슬럼가의 아이가 납치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 역시 숲을 향하고 싶었지만, 시하에게 두 가지 이유로 저지당했다.
첫번째로, 모우회라면 잡병들의 전투력이 현재의 아모스와 맞먹는다는 것. 두번째로, 저택에서 보호 중인 사아 역시 표적이 될 수 있으니 집을 지킬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둘 다 납득할만한 이유였지만, 돌아온 시하의 모습에 부채감을 느끼고 있던 아모스였다.
그런 아모스에게 헤르만이 말했다.
"아모스, 제가 오늘은 조금 지쳐버려서요. 수녀님을 성당까지 배웅해주실래요?"
"성당이라면 슬럼가 근처의 그 거리가 맞소?"
"네."
"알겠소."
아모스는 듣고만 있던 수녀에게 말했다.
"내가 배웅해드리겠소."
"... 네. 고마워요."
그렇게 두 사람이 저택을 나서고, 헤르만은 1층에 있는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 앉았다.
"하아..."
한숨을 내쉬는 헤르만.
그는 지금껏 많은 마력 중독자들을 겪어왔다.
당장에 중증 마력 중독자가 생겼을 때 처리하는 것 역시 티오리아 가문이 하는 일이다. 거기다 왕실의 그림자로서 혹독한 훈련을 받는 도중 마력에 중독되는 사람들도 꽤 많이 나온다.
그런 삶을 살아온 헤르만이었기에 시하의 마력 중독에도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를 걱정토록 하는 것은 따로 있었으니...
"죽이지 않으면 미래가 어두워진다...라."
시하가 착란 도중에 내뱉었던 말.
헤르만은 왕국에 위협이 되는 수많은 범죄자들을 죽여왔다. 그것은 그림자로서 의무였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칠 때나 거리의 모습을 보고 있을 때는 한없이 밝은 사람이 죽여야 한다는 말을 내뱉는다니.
슬럼가의 범죄자들에게 가차 없는 면을 보이기는 했지만, 결국 죽이지는 않았던 시하다. 그렇기에 방금 그 발언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하가 그 말을 내뱉는 모습은 헤르만에게 너무나 익숙했다.
왕실의 그림자로서 훈련을 받는 이들이 자주 겪는 착란 증세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헤르만은 손바닥으로 두 눈을 가렸다.
"도대체 저기선 어떻게 살았던 거야..."
그렇게 헤르만에게는...
시하에 대한 의문이 하나 더 늘어나버렸다.
* * *
방 안에 스며드는 햇빛에 잠을 깼다.
눈을 떠보니 이제 조금은 익숙해진 저택의 천장이 날 반겨준다.
슬슬 몸을 일으키고 싶은데, 전신에 붕대가 감겨 있어서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내 몸에는 왜 붕대가 감겨있는 걸까.
나는 분명...
"싸우고 있었지."
모우회주.
분명 나는 그와 싸우고 있었다.
거의 벼랑끝까지 몰린 순간 마력의 흐름이 명확히 보였고, 그 덕분에 회주에게 마지막 공격을 먹인 것까지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후로는 아마...
…….
나는 정신을 잃은 모우회주를 죽이려 했다.
헤르만이 날 말렸던 것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하아..."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적어도 한 가지는 알 수 있다.
나 자신이 정말이지 원망스럽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에코니아에 사는 사람들의 생에 감히 관여해도 되는가 고민했었다.
그랬던 내가 다른 사람의 목에 칼을 찌르려 했다. 내가 왜 그랬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죽여야겠다고 결심한 그 순간부터는 정말이지 자연스럽게 움직였던 것 같다.
동시에...
이곳에서 어떤 일이든 하기로 다짐한 나다.
하지만 그런 내가 끝내 죽이지 못했다는 사실에 일순간 안도감을 느껴버렸다. 모우회주를 끝내지 못했다는 사실로 인해 생겨나는 수많은 미래를 잠시동안 잊어버렸다.
나는 아마 죽여야 할 사람의 목숨도, 이미 알고 있는 수많은 미래도... 책임지기 싫은 것이리라.
슬럼가의 조직을 습격할 때는 치안본부의 대원들이 죽여야할 인간들을 죽였고, 나머지 범죄자들은 사법부에 넘겨버렸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미룰 수만은 없다.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나에게는 언젠가 사람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 찾아올 것이다.
이 세계는 원래 그런 세계니까. 한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불행해지는 곳이니까.
과연 나는 그 때가 오면 죽일 수 있을까.
…….
"후우... 고민해봐야 소용없지. 일이나 하자."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태울 시간이 없다.
지금은 당장 눈앞의 일을 해결해야 한다.
나는 주섬주섬 출근용 옷으로 갈아입고, 왠지 모르게 내 머리맡에 있던 엔크라테아를 들었다.
"그래도 너 덕분에 살았다."
엔크라테아가 없었다면 나는 모우회주와의 싸움에서 결국 패배해 죽었을 것이다. 그 시원한 마력이 없었다면 신체 강화에 사용하는 마력이 진즉에 끊겼을 테니까.
거기다 검집에 그런 효과가 있었다니...
마력의 흐름이 보인다는 것은 사기적인 기능이었다. 상대방의 마법을 자세히 파악하는 것이 가능한데다, 아직 완벽하게 이론을 적립하지 못한 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력 장벽과 비슷하게 순수한 마력의 칼날을 만들어 베어버린다던가, 공기의 흐름을 압축해 한번에 방출한다던가. 근거리에서만 쓸 수 있다는 단점은 있지만 그래도 파괴적인 성능이었다.
... 이런 부분에서라도 만족감을 얻고 힐링을 해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조금은 더 강해졌다!
나는 정말이지 대단하다!
나는 감정을 지배할 수 있다!
힐링 끝.
어두운 생각은 그만 두자.
다시 생각을 납치 사건으로 돌려 보자면, 이번 일에는 의문점은 정말이지 많다.
하필 혜선의 언니를 죽이게 되는 모우회주가 왕도에 침입, 왕자와 슬럼가의 아이를 납치.
그리고 그 슬럼가의 아이는 마력 총량을 짐작할 수 있는 광범위 색적 마법의 사용자...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의심하는 그 사건은...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2년 후에나 일어난다. 내가 이곳에 떨어졌기에 생긴 나비효과라도 되는걸까.
그래도 만약 내 추측이 맞아 떨어진다면...
회주를 죽이지 않은 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