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74화 (74/215)

〈 74화 〉 2­38. 모우회 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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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모우회 심문.

1공주 혜윤의 정체를 숨기고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장 큰 과제가 하나 존재한다.

바로 혜세국의 실세, 김원상의 귀에는 1공주 암살이 성공했다고 전해지도록 하는 것.

나는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마지막 조각을 찾아 그림자들의 지하 심문실에 와있다.

"... 끝을 내러 온 것이로군."

"착각도 참 별나게 하네."

혼자서 깊은 착각을 하고 있는 모우회주.

다행이라 해야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폭발 마법에 휘말렸던 자들은 대부분 기절했을 뿐, 치명상으로 이어진 자는 없었다.

발람에게 쓴 폭발 마법은 외부의 파편들이 퍼져 살상병기가 되었다면, 이번에는 땅 속에서의 폭발이었기에 살상력이 훨씬 적었던 것 같다.

거기다 회주의 눈치가 빨랐던 것도 큰 이유가 되겠지.

"헤르만, 지금 여기 있는 것들이 전부야?"

"잔당이 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형님이 있던 현장에서 체포한 사람들은 이게 다야."

지금 이 심문실에는 나와 헤르만. 그리고 모우회주와 그 일당 여섯 명이 있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그들은 모두 마력의 흐름을 제한하는 수갑을 멘 채로 의자에 묶인 상태.

다른 사람들은 꽤나 혈색이 멀쩡한 편인데, 모우회주는 유독 혈색이 창백해보인다. 아무래도 그 싸움에서 팔이 잘린 후유증이 컸던 듯 하다.

나는 그에게 질문했다.

"모우회주. 당신은 이번 일의 목표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나?"

"... 내가 왜 그걸 알려줘야 하나. 내가 아무리 싸움에서 졌어도, 네 놈에게 그걸 알려줄 필요성을 못 느끼겠군."

에코니아 아포칼립스, 혜선의 루트.

내가 그 스토리에 진입할 때마다, 수상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의문은 이번 사건에서도 여실히 느껴졌다.

1공주 윤의 복수를 하겠다며 자금을 모으던 인간이 어째서 공주를 죽이게 된 것일까.

모우회주는 혜세국에서 꽤나 높은 직위의 무관직을 지낸 인물로 묘사된다. 그렇다면 그는 분명 1공주의 얼굴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목표의 정확한 신원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 당장 석방시켜 줄게."

내 제안에 모우회주의 수하 몇몇이 대답했다.

"그딴 입에 발린 소리에 넘어갈 것 같으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우리를 더 이상 모욕하지 마라. 차라리 곱게 죽여라."

두 사람은 불같이 분노하고.

또다른 두 사람은 고개를 떨군 채 있으며.

나머지 둘은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히 있다.

"회주.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자네의 수하들은 전부 납치 대상의 신원을 모르는 것 같아?"

"이간질하지 마라. 여기 있는 이들은 모두 오랜 시간을 함께한 동료들이다."

"동료니 뭐니... 도적 새끼들 주제에 왜 이렇게 따지는 게 많을까."

"……."

회주는 두 가지 착각을 하고 있다.

하나는 내가 그들을 이간질하고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지금부터 밝혀내야겠지.

"회주.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나."

"이제 막 불혹을 넘겼다."

"나보다는 인생을 거의 두 배나 살았네. 그런 사람이 타인을 너무 잘 믿는 거 아니야?"

"...?"

"헤르만, 저기 두 사람의 의자는 따로 빼둬. 서로의 얼굴이 잘 보이도록 말이야."

다른 모우회 일당들에 비해 비교적 젊은 두 사람. 한 사람은 상당히 마른 편이고, 한 사람은 얼굴에 얕은 상처가 나있다.

이들은 내 질문에 어떤 반응도 없었다.

무언가 불편한 사실을 숨기려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태연한 척을 하기 마련이다.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겉으로는 의연함을 보이고. 머릿속으로는 계속해서 생각한다.

... 아님 말고.

"인간은 정신력으로 자연 마력을 정제하며 사용하지. 하지만 그 정제를 실패하게 되면 마력 중독에 걸려 심마에 빠지게 되잖아."

"……."

"그런데 말이야. 만약 정제되지 않은 마력을, 그대로 타인에게 집어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

"...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다."

내 직감이 틀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왜 굳이 범죄자들의 감정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나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를 챙기기도 바쁜 사람이다.

거기다 이 두명이 내가 생각한 진범이 아니라 해도 괜찮다. 결국 회주를 제외한 여섯 명 중에는 납치를 시도한 자가 있을거고, 그에게 공포심을 심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나는 두 사람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

"회주. 나는 마력의 흐름을 볼 수 있어."

"... 뭣?"

"당신의 팔을 자른 것도 그 덕분이야. 마력 장막을 풀어내고 모든 마력을 신체 강화로 돌리던 그 순간, 나에게 팔을 잘렸었잖아?"

회주는 전투의 순간을 떠올리다 중얼거렸다.

"... 그, 그럴 리가."

"당신의 허전한 오른팔이 대신 말해주고 있잖아. 믿울 수 없다면 내가 네 수하에게 자연 마력을 그대로 박아보면 되겠지. 그럼 당신에게 내 능력을 증명하는 셈이 되잖아."

"그만 둬라. 그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회주의 반응에 마주보고 있는 두 사람 역시 분위기를 파악하고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둘 중 상대적으로 마른 인간의 얼굴로 쫙 펼친 내 손바닥을 가져가자, 겁에 질린 그에게서 낮은 탄식이 새어나왔다.

"어... 어어..."

"마침 너희는 마력의 흐름을 제한하는 수갑을 차고 있지. 그 상태에서 정제되지 않은 마력을 계속 주입하면 언젠가 미치지 않을까."

"마... 말하겠습니다. 말할테니 제발...!"

"이제서야 말한다고? 지금 말한다고 해봐야 거짓말 같은데..."

나는 떨고 있는 그의 얼굴을 손아귀로 움켜 쥐었다.

그는 어떻게든 목을 뒤로해 빠져나가려 했지만, 이미 의자에 묶여 있기에 벗어날 수 없다.

나는 그 상태로 탁한 붉은 색과 푸른 색을 띄는 마력을 번갈아 뿜어냈다.

"어... 으어억! 그... 그만둬. 그마아아아안! 말 할게. 전부 다 말 할테니까...!"

"그만 둬라! 말하겠다고 하지 않느냐, 그만 둬!"

회주는 어떻게든 막아보겠다는 듯 의자를 들썩여 보지만,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그는 무게 중심이 크게 어긋나, 앉은 채로 바닥을 구르게 되었다.

"회주, 나도 이론을 정립한 단계일 뿐이야.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 지 궁금하지 않아?"

"이... 이 악마놈...! 지옥에 떨어질 새끼가아!"

내 시야에 보이는 다른 단원들은 하나같이 눈을 질끈 감았거나, 눈을 돌린 상황.

나는 계속해서 손으로 마력을 뿜어냈다.

"아아아아아아악!"

너무나도 처절한 절규.

"내가 말 하겠소. 전부 다 말하겠소!"

그 소리에 내 뒤에 있던 다른 놈이 말했다.

"우리가 목표로 한 꼬마는 혜세국의 폐위된 1공주, 윤! 말했지 않소, 이제 그만 두시오!"

윤의 이름이 나온 그 순간, 나는 시전하던 마법을 멈추고 손을 떼어냈다.

겁에 질려 소리를 지르던 자는 그대로 탈진, 자백을 한 자는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정적만이 감도는 심문실.

회주가 그 침묵을 깨고 물었다.

"그게... 사실이더냐."

모든 것을 실토한 남자는 회주의 물음에 답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역시나.

1공주의 복수를 위한다던 회주가 그녀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요인. 아마 모우회는 진작에 보이지 않는 두 파벌로 나뉘어 있었을 것이다.

나는 헤르만에게 말했다.

"헤르만, 저 사람을 일으켜줘."

"... 알았어."

회주는 꽤나 지친 기색으로 숨을 헐떡이고 있다. 바닥을 구른 것만으로도 무리였나 보다.

하긴, 사법부와는 다르게 자비가 없는 그림자들이다. 이곳에 갇혀 지내는 동안 제대로 된 식사조차 못했겠지.

나는 회주에게 말했다.

"회주. 나는 그 아이가 혜세국의 1공주라는 사실은 진즉에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내가 말해봐야 당신은 믿지 않았겠지."

"……."

게임에서, 모든 진실을 알게 된 모우회주 윤흠서는 혜선에게 마지막 부탁을 하게 된다.

자신이 자결할 수 있게 해달라.

회주는 결국 1공주를 죽였다는 죄책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혜선의 앞에서 자결하게 된다.

나는 이미 넋을 놓아버린 회주에게 말했다.

"당신은 조운회주에게 일을 넘겨 받으면서, 대상의 인적 사항을 전혀 전달받지 못했을 거야. 거기다 이런 반응을 본다면... 당신은 공주의 얼굴을 볼 기회조차 없었겠지."

"조운회주가 여러 조건을 붙였을 테니까. 모우회에 이런 쓰레기들을 심어 적당히 회유해두었을 테니까. 그렇게 될 운명이었으니까."

에코니아 아포칼립스.

그 게임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선인들을 언제나 거스를 수 없는 운명 속에서 죄책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양심을 져버린 악인들은 그런 선인들을 비웃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챙긴다.

모우회주가 선인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복수라는 명분을 내건 채, 온갖 악행을 저지른 자다. 하지만 지금의 사태를 생각하면, 그보다 더 큰 죄를 저지른 자들이 있지 않은가.

자신의 권세를 위해 당시 9살이었던 어린 공주에게 누명을 씌운 김원상. 그는 저 멀리 혜세국에서 호의호식하며, 자신이 조운회에 의뢰한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조운회주는 모우회주가 이 일을 성공하던, 실패하던. 입을 피해가 전혀 없는 자다. 아마 이런 생각을 해낸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겠지. 그 역시 한적한 마을의 영주와 뒷거래를 하며 자신의 배를 불리고 있을 것이다.

... 나는 이런 세상이 너무나도 싫었다.

"공주를 위해... 일을 하나 해볼 생각은 없어?"

"왜..."

그 한 마디에, 회주는 나를 보며 물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당신이 도와주기만 한다면, 그 아이가 누리는 지금의 행복을 지켜줄 수 있어."

잠시동안.

그는 나를 멍하니 볼 뿐이었다.

그리고 이내 맥없이 고개를 떨구며 부탁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 * *

이후 헤르만과 나는 심문실을 나와 지상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대화를 이어나가기엔 회주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긴, 자신이 그렇게나 충성을 바치던 1공주를 죽이려 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꽤나 정신적인 충격이 컸을 것이다.

내 옆을 걷던 헤르만이 조심스레 물었다.

"방금 그거. 진짜야?"

"뭐가?"

"사람을 타락시킨다고 한 거..."

"푸흡."

"……."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내가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곳에서 인간의 타락은 심상이 무너질 정도로 부정한 마력을 주입해야만 한다. 고작 자연 마력 조금으로는 사람을 타락시킬 수 없다.

하지만 헤르만에겐 심각한 문제인가 보다. 지금은 녀석답지않게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다.

나는 헤르만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손, 줘봐."

헤르만은 조심스럽게 왼손을 내밀었다.

무서워도 손은 내미는구만.

나는 헤르만의 손에서 약간 거리를 두고, 심문실에서 사용했던 마법을 그대로 시전했다.

"마력에 색을 입히고 차가움과 뜨거움을 번갈아가며 느끼게 했을 뿐이야."

"뭐?"

"내가 정말로 그런 걸 할 수 있었으면 이미 재앙 취급을 받아서 토벌당했지. 너까지 그걸 믿으면 어떻게 해."

"... 휴."

잔뜩 긴장했던 헤르만은 한 숨을 내쉬었다.

"나는 또..."

"거기다 방금 그 수갑은 마력이 모이지 못하도록 방출시키는 거잖아. 정말로 사람을 타락시키려 한다면 그런 수갑은 오히려 방해가 되겠지."

"생각해보니 그렇네..."

모우회를 적당히 겁주려고 한 연기에 속아넘어가다니. 이 녀석은 도대체 나를 어떻게 보길래 그런 걸 가능하다고 여긴 걸까.

참 순수하다, 순수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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