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239. 남김없이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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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남김없이 죽여라.
[왕도 신문]
슬럼가 화재사고 발생... 모녀가 숨져.
밤새 슬럼가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한 모녀가 숨지게 되었다.
22일 왕도 치안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2시 22분 잿빛 분수거리의 단층 상가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다.
상가에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던 모녀는 미처 밖으로 피하지 못해 숨지게 되었다. 숨진 소녀는 13세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불은 왕도 치안본부에 의해 22분 안에 진화되었다. 치안본부는 해당 거리의 다른 주택에 화재가 번지기는 하였으나, 숨진 주민 외에 다른 인명피해는 없다고 전했다.
치안본부의 화재 담당관은 '해당 사건에 마법을 사용한 방화의 흔적이 보인다'며 정확한 화재 원인과 용의자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왕실 가정교사인 이시하 공작이 이번 사건에 유감을 표하며 삶의 터전을 잃은 자들에게 보상금을 전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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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데미아의 왕도 아레트에서 북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지방의 영지. 그곳은 메네오라 백작령이라 불리운다.
메네오라 백작령은 에우데미아의 변방에 위치해 있으며, 농업과 임업이 주요 산업이기에 찾는 사람도 달리 없는 한적한 영지다.
그런 영지에 자리를 잡고 인신 매매, 매춘, 도박, 불법 경매 등의 불법 행위로 세를 불린 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조운회이다.
그리고 조운회의 아지트.
모우회주 윤흠서는 조운회주에게서 넘겨받은 일의 보고를 하기 위해 그곳을 찾았다.
혜세국의 전군에 있을 때부터 자신을 따른 네 사람과 전신에 로브를 두른 어떤 남자도 함께다.
"의뢰를 완수하고 돌아왔다."
"오, 이번 일에는 꽤나 시간이 걸렸군. 그런데 대상을 생포하지는 못한 것 같은데..."
조운회주는 자신의 자리에 앉은 채 모우회주를 맞이했다.
그는 짧게 정돈한 수염을 기르고, 전신에는 금붙이를 군데군데 착용하고 있다.
그의 말에 윤흠서가 답했다.
"생포나 살해, 두 가지 중 하나면 된다고 했었지. 거주지를 사방에서 틀어막고 불을 질렀다. 죽음까지 확인했으니 틀림 없을 것이다."
"생포를 하는 편이 훨씬 보수가 좋다고도 말했을텐데. 기세등등하던 전군의 부장께서는 이번 일에 자신이 꽤나 없으셨나보지?"
"거기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많지."
쾅.
윤흠서는 조운회주의 책상에 왼손으로 칼을 박아넣었다.
예상치 못한 일에 당황한 조운회주는 윤흠서의 용태를 살피더니, 그의 오른팔이 비어있음을 뒤늦게 확인했다.
"... 자네, 팔 한짝은 어디로 간겐가?"
"왜 이번 일에 에우데미아의 기사가 꼬인거지? 분명 호위 따위는 없을 거라 들은 것 같은데."
"……."
"잔머리 굴리지 마라. 왼팔 하나로도 네 놈 정도는 충분히 죽여버릴 수 있다."
스릉
윤흠서의 말에 조운회주의 수하들이 무기를 뽑아들었다.
하지만 그에 대응하듯, 모우회주의 수하들과 로브를 둘러쓴 남자도 각자의 무기를 뽑는다.
조운회주가 다급히 말했다.
"어허. 무기들 집어넣어라. 이번 일을 얕잡아본 내 잘못이다. 자네도 진정하게나, 모우회주. 내가 모든 일을 전부 파악할 수는 없지 않는가."
"……."
"자네가 비록 목표를 생포해오지는 못했지만... 대금은 생포를 전제로 정해뒀던 만큼 주겠네. 거기다 헬렌 교국의 의수도 장만해줄테니 부디 진정하게나."
모우회주는 핏발이 선 눈으로 조운회주를 한참동안 노려보았다.
로브를 두른 남자가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자, 모우회주는 책상에 박았던 칼을 뽑아냈다.
"이번 일로 모우회의 손실이 크다. 대금은 최대한 빨리 준비하도록."
"당연한 소리를 하는구만. 그나저나... 자네 뒤에 그 로브를 쓴 선생은 누구신가."
"우리가 고용한 용병이다."
"용병? 천하의 윤흠서가 용병을 고용하다니. 이거 해가 사방에서 뜰 일이로군."
"알 것 없다. 그럼 나는 쉬러 가보겠다."
"알겠네. 항상 쓰던 그곳을 쓰면 되네."
모우회주와 그 일당이 자리를 비우자, 긴장하고 있던 조운회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저 망나니 새끼가 팔 한짝 잘렸다고 지랄이네."
"회주, 지금이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윤흠서가 저 상태라면 저희 세력만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어허. 이 멍청아. 생각을 해라, 생각을."
조운회주가 머리를 톡톡,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한다.
"투자한 돈의 두 배를 벌어오는 인간이다. 팔 한짝이 잘려나갔다고 벌이가 시원치 않아지면 그때되서 정리해도 되는 법이야."
"그렇군요."
"거기다 이번 일로 줄어든 전력을 확실히 파악하고 일을 진행해도 늦지 않아. 결국 우리가 저들과 부딪히면 손해가 생긴다. 일은 항상 대국적으로 생각해라."
"역시, 회주의 혜안은 대단하십니다."
"그러니까 이런 일을 잘 물어오는거지... 그렇지 않습니까, 고객님?"
조운회주의 말에 몸을 감추고 있었던 한 흑의인이 나타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으로 휘감고 있어, 그의 눈을 제외하면 다른 피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취미가 참 고상하군. 하필 일을 맡겨도 윤흠서, 저 자에게 맡기다니."
"칼 쓰는 망나니는 쓰기 나름이죠. 고객님께서도 이번 일을 지켜보시면서 흥미가 동하지 않으셨습니까."
"1공주를 위해 난을 일으킨 주범 중 하나가 오히려 그녀를 죽이다니. 그분께서 아신다면 배꼽을 잡고 웃으실 일이야."
흑의인은 조운회주의 자리로 다가와 무게감이 느껴지는 주머니 하나를 내려놓았다.
"약속했던 돈이다."
"아니, 확인도 안하시고 주셔도 괜찮습니까?"
조운회주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주머니의 금화를 확인하며 말했다.
흑의인은 그런 조운회주를 신경쓰지 않고 태연히 대답했다.
"왕도에 가서 직접 확인해보고, 거짓이라면 네놈을 포함해 전부 죽이면 될 일이다."
"……."
"나는 지금부터 왕도로 향한다. 귀찮아지지 않으려면... 저놈의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군."
말을 마친 흑의인은 출입문을 향했다.
조운회주는 뒤늦게 그의 등에 대고 말했다.
"어르신께 잘 좀 부탁드린다고 전해주십시오."
* * *
조운회주의 방에서 멀리 떨어진 공터.
"형님 말대로, 역시나 조운회주의 방에는 김원상의 직속 수하가 있었어."
그 공터의 마차에서, 감청 마법을 최대로 활용하고 있던 헤르만이 마법을 거두며 말했다. 조운회주의 방에 발각될 위험을 안고 따라갔던 것은 모두 감청 마법을 위한 것이었다.
헤르만은 이어서 대화가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주변에 마력 장벽을 세웠다.
모우회주는 어이없다는 듯 답했다.
"... 그 자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오? 어떻게 나도 모르는 사실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거요."
"왕실 가정교사. 나도 처음에는 적응이 안되었는데... 익숙해져서 오히려 편해."
"그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됐소. 나도 내가 쓰레기라는 자각은 충분히 있소. 가르쳐주지 않을거라면 그냥 말하지 마시오."
"진짠데..."
헤르만은 약간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윤흠서는 그런 헤르만을 가볍게 무시한 뒤, 마차 안의 항아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정말 가능한 것이오?"
"작전대로만 하면 쉽게 끝나. 나는 오히려 전력을 너무 많이 투입한 것 같은데. 조운회는 어차피 200명 밖에 안된다며."
"겨우 이백명이라니..."
"어차피 반나절 뒤에는 친위대가 이곳을 포위할테고... 나는 오히려 당신들의 마음가짐이 더 신경쓰이는데."
모우회주를 째려보며 말하는 헤르만.
그에 윤흠서는 차분히 대답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저 상인놈은 봉기에 참여했을 때부터 이득을 볼 생각 뿐이었소. 처음에는 공주 저하를 시해하도록 유도했다는 사실을 듣고는 꽤나 흥분했으나... 원래 그런 인간임을 떠올리고는 머리가 식었소."
"그럼 다행이고."
처음 진실을 접한 순간에는 차오르는 분노가 속에서 끓어올랐던 모우회주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의 마음은 더없이 평온하다. 지금부터 해야할 일을 한다는, 그런 단순한 의무감을 제외하면 어떤 거리낌도 없다.
"작전 수칙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 자리에서 내용을 정리하는 헤르만.
"전원 얼굴을 가리는 두건을 쓰고 행동할 것. 귀족 복식을 한 인간들은 전부 생포하여 바닥에 꿇려둘 것. 작전 중에는 절대 에우데미아의 어조로 말하지 말 것. 무조건 혜세국 억양을 사용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는 차마 다음을 말하지 못했다.
모우회주는 그의 나머지 말을 이어받아 작전의 목표를 모두에게 전달했다.
"기억해둬라. 혜세국 인간은 남김없이 죽여라."
비록 모시던 공주를 팔아넘긴 자들이라 해도... 먼 타국의 땅에서 같은 고향 출신의 동포들을 죽이는 것. 그 말을 하면서도 윤흠서의 어조에는 한 치 흔들림이 없었다.
마차의 밖에서 조용히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수하들은 마치 그가 전군의 부장으로 있었던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비록 한쪽 팔은 없어졌지만 말이다.
회주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공주 저하를 위하여."
"""저하를 위하여."""
그 목소리에 작게 답하는 그의 수하들.
혜세국을 떠나 4년.
조운회가 사주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복수를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눈을 돌리려고 하였으나 내심 죄책감에 빠져있던 자들이었다.
하지만 오늘이야말로 진정 공주를 위할 수 있다.
그 사실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에 질세라 헤르만 역시 낮게 읊조린다.
"에우데미아를 위하여."
그의 말에 호응하듯, 마차 안에 들어선 항아리들에서는 작은 중얼거림들이 들려왔다.
* * *
해가 사라진 늦은 저녁.
나는 메네오라 령의 어느 숲에서 산채 하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이곳에서 보는 풍경은 나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다.
메네오라 백작령은 백성들이 대부분 1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기에 세수가 적은 편이다. 워낙에 비옥한 땅이라 농사도 잘 되고 삼림도 넓으니 올바른 선택이긴 하다.
하지만 새로이 당주 자리에 오른 현재의 메네오라 백작은 조운회주와 유착관계를 맺고 도적들의 악행을 묵인하고 있다.
그 결과물이 내가 보고 있는 아지트. 도적들의 소굴인 주제에 산성과 같은 위용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까지다.
이미 왕비와 재상이 메네오라 백작의 저택으로 향하여 그가 저질러온 부정을 조사하고 있고... 내가 지금 저곳을 불태워버릴 테니까.
나와 함께 대기중이던 왕궁부장, 카일 티오리아가 말했다.
"시간이 되었네."
"알겠습니다.
오른손의 엔크라테아를 높게 치켜들고.
왼손의 검집은 검집을 땅에 박아넣는다.
내가 움직이는 마력의 흐름이 명확하게 보이고, 그를 이용해 지금껏 사용한 적은 없었던 마법을 천천히 자아내기 시작했다.
검끝에서 덩치를 불려나가는 화구.
내가 비록 마력을 볼 수 있는 사기적인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해도, 결국 상급 마법을 한번에 사용할만한 마력은 보유하고 있지 않다.
조금씩
조금씩
시간을 들여 크게 만들어간다.
중급 마법을 상급의 크기와 위력을 가지도록.
어차피 마력은 시간만 있으면 엔크라테아의 이성 버프로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
거기다... 왠지 모르게 불 마법은 다른 마법에 비해 너무나 익숙한 느낌을 가지게 해준다.
절대로 실패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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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3분.
화구가 점점 커지는 동시에 밝기도 늘어나자, 산채 방향에서 인기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늦었다.
이미 화구는 내 손을 떠났기 때문이다.
내 마법은 숲에 자취를 남기며 굴러가 조운회 아지트의 성문에 박혔고, 나무로 만들어진 거대한 성문은 흔적도 없이 타버렸다.
불은 아지트의 여러곳으로 번져가며 점점 내게 익숙한 그림으로 변해간다.
내 옆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역시나 왕실 폭발 가정교사 다우시구만."
"발람 녀석과의 결투가 엊그제 같은데... 그때와 비교하면 너무 강해진 거 아냐?"
"이제 깝치면 안되겠다."
저번에도 나를 도와줬던 친위대원들이다.
나는 그들에게 최대한 공손히 말했다.
"이번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자네 덕에 국왕님 신수가 훤해졌어. 오히려 우리가 빚을 갚는거지. 맡겨만 두라고."
"토벌에 비하면 이 정도는 케이크를 먹듯이 쉽게 할 수 있지. 걱정 덜어 두시게."
저마다 나에게 한 마디씩 하면서 아지트로 향하는 친위대원들. 우리 방향이 아니더라도 이미 사방에서 포위는 마친 상황이다.
친위대원들이 모두 떠나고, 내가 있던 자리에는 나와 왕궁부장만이 남게 되었다.
왕궁부장, 카일 티오리아가 넌지시 물었다.
"자네는 정말 괜찮은건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아이의 정체를 자네 혼자서만 알고 있겠다니... 그 무슨 고집인가. 나에게는 말해도 되네."
"그렇게 말씀하셔도 안됩니다."
나는 이번 작전을 구상하는 회의에서 혜윤을 권력 다툼에서 패배한 귀족으로만 설명했다.
에우데미아의 영토에 자리를 잡은 도적들을 처치하는 것은 사대 귀족의 의무이니 일단 돕는 거겠지만... 카일 왕궁부장은 나를 의심할 만 하다. 결국 정확한 의도는 밝히지 않았으니까.
"혹시 자네는 모든 책임을 짊어지려는 건가."
예상치 못한 한마디에 움찔해버렸다.
왕궁부장은 어딘가 나사빠진 척을 하다가도 중요한 순간에는 의표를 찌르는 사람이었지.
처음 알현의 방에서 만났을 때부터 그랬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맞는 것 같군."
"너무 멋대로 생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왕궁부장직을 맡은 지도 이십 년이야. 티오리아의 수장으로서 사람보는 눈은 있지."
"……."
"사실 나는 지금까지 자네를 의심해왔네."
의심이라.
사실 의심을 당했다해도 기분이 나빠지진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왕실의 그림자인 티오리아 가문의 존재 의의 중 하나니까.
"수상한 점이 한둘이어야지. 그래도 헤르만 녀석이 말했다네. 근본은 착한 사람 같다고."
"... 그 녀석의 사람 보는 눈이 삐었을 수도 있죠. 단순히 귀찮아서 둘러댄 것일 수도 있고요."
착하다.
그 수식어는 감히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괴물의 씨앗인 나는 무엇이 선인지도 모른 채, 너무나 많은 죄를 지었다. 그리고 그 악독한 사고 회로는 지금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저 어머니의 말씀과 가르침으로 그 사고를 억누르고, 지금껏 관찰해온 착한 사람들을 동경하며, 보편적인 사고를 따라했을 뿐이다.
헤르만은 암살자라는 놈이 마음은 유한 녀석이라, 겉만 번지르르한 것에 잘 속아넘어 간다.
나에 대한 평가도 그 연장선일 뿐이겠지.
"아들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이젠 알 것 같군."
"... 부자끼리 멋대로들 생각하십시오."
"하하. 자네 나름대로 왕실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점은 알고 있네. 그렇다면 나도 의심을 거둬야겠지."
"……."
"원래라면 따로 조사에 착수하려 했으나, 이번 일에 관해서는 더이상 관여하지 않겠네. 그래도 힘들어지면 언제나 말하게나."
"후우..."
저 갈색머리 집안은 아버지도, 아들도, 딸도...
여러모로 귀찮은 집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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