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76화 (76/215)

〈 76화 〉 2­40. 저울질

* * *

2­40. 저울질.

"회... 회주! 큰일났습니다, 습격입니다!"

조운회의 일원이 회주의 방으로 뛰어들며 말하자, 자리에서 공격용 마도총을 꺼내고 있던 회주가 말했다.

"소리만 들어도 그 정도는 안다. 그런데 습격이라니? 어떤 미친 놈들이 우릴..."

"모우회가 수상한 놈들과 손을 잡았습니다!"

"그 놈들이라면 어차피 머릿수도 얼마되지 않을텐데, 왜 이렇게 소란이 커진게냐."

"놈들이 데려온 자들이 너무 강합니다. 이대로라면 밀릴 겁니다.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끄응... 어디선가 꽤 비싼 놈들을 끌어들였나보지."

초조해진 조운회주는 손톱을 깨물었다.

그리고 이내 일어난 그는 방 안에 있는 귀중품을 챙기며 방에 있는 수하 다섯에게 말했다.

"모두 도와라. 혜세국으로 도망친다."

"회주. 하지만 저희는 아직 고향으로는..."

"닥쳐라. 김원상 대감의 댁으로 향하면 분명 살아날 방도가 생길 것이다."

조운회주는 확신에 가득찬 어조로 말한다.

"윤흠서 저 놈이 이런 짓을 벌이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우리가 심어둔 멍청이들이 일을 그르쳐 공주와 접선했을 수도 있다. 이 정보를 가지고 가서 대감과 협상이라도 해봐야지."

그 말을 끝으로 회주가 귀중품을 챙기는 데 온 신경을 몰두하자, 자기들끼리 시선을 교환한 졸개들은 회주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하하하하!"

멀리서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조운회주우! 어디있나아아!"

조운회주를 찾는 목소리.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설마 아직도 돈에 눈이 멀어있나아아!"

정확히 조운회주의 방 앞에서 멈췄다.

쾅! 방문을 발로 차는 큰 소리와 함께, 요란하게 열린 방문 너머로 두 사람이 등장했다.

두건을 뒤집어쓴 채 벌건 눈을 한 모우회주와 검은 로브를 입고 있는 헤르만이었다.

윤흠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리저리 달라붙는 박쥐새끼. 돈 말고는 보는 눈이 없는 쓰레기. 신념따위 없는 장사치놈..."

"윤흠서..."

"나로 하여금 공주 저하를 시해하도록 하려 하다니... 김원상 그 빌어먹을 놈에게 얼마나 받아 쳐먹은게냐."

윤흠서의 말이 끝나자, 조운회주는 마도총을 그에게 겨누며 수하들에게 말했다.

"뭣들 하느냐! 고작 두 명뿐이다, 살기 위해서는 죽을 각오로 쳐라!"

그의 한마디에 수하들은 각자 무기를 빼어들고 문을 가로막은 두 사람에게 뛰어들었다.

조운회주 역시 수하들을 엄호하듯 마도총의 방아쇠를 당기자, 그의 마력을 머금은 불꽃이 발사되었다.

그 모습을 본 윤흠서는 마력탄을 막기 위해 온 몸에 마력 장막을 두르고 앞으로 나섰으며, 헤르만은 애용하는 단검을 뽑아들었다.

'인간이 상대라면 간단하지...'

헤르만이 왼손을 뻗자 검은 색을 띄는 마력실이 튀어나와 조운회주의 수하 세 명의 목에 붉은 실선이 남겼다.

앞의 세 명이 피를 뿜어내는 목을 부여잡고 쓰러지자, 남은 두 사람은 전신에 마력 장막을 둘렀다. 하지만 그것에는 빈틈이 있는 법.

일류 마법사가 아닌 이상 보호 마법은 인간의 근육을 따라 흐를 수 밖에 없다. 거기다 의식하지 않는 곳에는 언제나 빈틈이 생긴다.

헤르만은 그들에게 최고 속도로 다가가 상대적으로 경계심이 얕아진 하체를 모두 도려냈다.

허벅지와 종아리를 베인 그들은 전부 무릎꿇게 되었으며, 마력 장막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그들은 이내 목이 잘려버렸다.

"여긴 끝났고..."

헤르만은 조운회주에게 눈을 돌렸다.

그는 한 손에는 마도총,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윤흠서에게 맞서고 있다.

강공의 자세를 취할 때는 뒤로 빠지며 총격을, 버틸만한 공격에는 검으로 흘려내고 역공을.

몇달 전이었다면 윤흠서의 압승으로 결판났을 싸움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하하하! 윤흠서. 꽤나 약해졌구나. 이 정도라면 나도 네 놈을 이길 수 있겠어!"

아무리 상인 출신이라고는 하나, 그 역시 한 단체의 수장이다. 거기다 쌓아온 재력으로 구해낸 온갖 영약으로 마력을 키워왔기에, 마력 총량만큼은 왠만한 무인을 상회한다.

거기에 윤흠서에게는 큰 결함이 있었으니.

'역시나 주로 쓰던 팔이 없는 게 크군...'

전군의 중검술은 온 몸의 무게중심과 마력을 동시에 이동하며 뿜어내는 폭발적인 화력으로 적을 제압하는 검술.

하지만 지금의 윤흠서는 주로 쓰던 팔이 잘려나가 검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없으며, 몸의 무게가 줄어들어 위력 역시 깎여나간 상황이다.

그렇게 수없이 이어지는 공방.

"그 버러지같은 공주년이 그리 중요하더냐!"

"... 끝을 내주마."

"바라던 바다!"

윤흠서는 이대로라면 밀린다고 생각했는지, 평생토록 휘둘렀던 일격을 왼팔로 준비했다.

하늘 높게 든 왼손.

자연스럽게 양 옆구리가 모두 비게 되었다.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조운회주는 총을 쏘며 접근해 윤흠서의 빈 틈을 노렸다.

하지만...

"으읍..."

그것은 함정이었다.

조운회주의 칼은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마력 장막은 뚫어냈으나 힘이 부족했던 칼날은, 윤흠서의 옆구리에 치명상을 내지 못하고 멈춰버렸다.

"아...!"

"흐흐흐... 버러지는 네 놈이지."

윤흠서는 시하와의 전투에서 최후의 일격을 날리던 그 순간 팔이 잘려 패배했었다.

그 패배를 교훈삼아 역으로 조운회주에게 빈틈을 보인 후, 마력장막을 최대치로 두른 몸으로 조운회주의 공격을 받아낸 것이다.

비록 방어력이 부족했기에 옆구리에 상처가 생기긴 했으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조운회주는 자신을 향해 천천히 떨어져 내려오는 검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 *

작전 종료의 신호인 폭죽이 피어올랐다.

반쯤은 재로 변해버린 조운회의 아지트.

왕궁부장과 함께 그곳에 입장하자 수많은 시체들이 치워지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 그중 대다수가 조운회의 복장이었지만, 내가 지시한대로 두건을 쓴 모우회의 시신도 있었다.

이윽고 아지트의 마당에 도착하자, 무릎꿇려진 수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 나타났다. 보고에 따르면 이곳의 인간들은 전부 백오십여명. 그래도 내 예상보다는 적은 인원수였다.

아무래도 토벌 시기가 게임의 시점보다 한참 이르기에 이런 것이겠지. 게임에선 조운회를 찾은 고객들의 수가 지금의 세 배는 됐었다.

내가 이걸 굳이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이방인이 죽여버린 민간인의 수이기 때문이다.

몇몇은 내 모습을 보고 고개를 깊게 떨구었다. 내가 건국제 데뷔를 너무 성대하게 해버렸기에, 날 알아본 귀족들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난 평민이든 귀족이든 봐줄 생각이 없다. 에우데미아는 공권력이 각 지방에 닿기 힘든 국가이기에 처벌의 본보기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감히 왕자 납치를 시도한 집단을 애용한 범법자들로서, 이들은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나는 카일에게 말했다.

"여기 있는 자들은 왕궁부장님께 맡기겠습니다. 그림자 부대와 친위대를 이끌고 먼저 복귀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네. 여기 있는 자들을 전부 구속해라."

"아, 그리고 이곳에 납치당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도 데려가주세요."

"그것도 당연한 일이지. 먼저 가보겠네."

카일의 지휘는 신속했다.

그림자들의 수장이자 국왕을 보좌하는 자리에 있기에 친위대와도 친분이 깊은 사람.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워낙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어 끌려가고, 구조된 자들 역시 많다 보니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카일은 자리를 뜰 수 있었다.

그렇게 나만이 남은 마당.

"이제 나와도 돼."

내가 큰 목소리로 말하자, 헤르만을 비롯한 습격조 인원들이 곳곳에서 등장했다.

하지만 그 숫자는 얼마되지 않았다. 헤르만을 제외하면 모우회주를 비롯한 열명 뿐이었다.

모우회의 원래 인원수는 백여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윤흠서에게 조운회와 결탁한 자들을 전부 베어버리고 작전에 임하도록 했다.

윤흠서는 당연한 일이라며 행하기는 했지만 그 수만 해도 이미 오십명. 거기다 이번 습격에서 죽은 조운회의 숫자가 이백명은 넘을 것이니, 사망자는 삼백에 가까울 것이다.

모두 내가 고른 선택지의 결과물이다.

…….

왕궁부장이 했던 말이 또다시 나를 찌른다.

에코니아는 개개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순순히 납득해주지 않는 세계. 이 세상에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방법을 사용해야만 한다.

절대적인 목표를 위해서...

나는 힘을 키우고 있으며,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보편적인 선으로 포장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꾸미고 있으며,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의 가치를 저울질하고 있다.

이번 일도 그 중 하나일 뿐이었다.

전신이 너덜너덜해진 모우회주가 말했다.

"이번 작전에 참가한 인원은 49명. 그 중 사망자는 24명, 중상자는 15명. 지금 멀쩡한 사람은 나를 비롯해 여기 열명뿐이오."

"... 너무 많이 죽어버렸어."

"서른아홉의 희생으로 이백을 죽인 것이오. 거기다 에우데미아 왕실의 그림자들은 굉장하더군. 그들은 우릴 엄호하면서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어. 당신의 작전은 성공적이었소."

서른 아홉의 희생으로 이백을 죽였다.

얼핏 스쳐지나가는 1:5의 교환비라는 생각.

분명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배웠건만, 생명을 숫자로 나타내는 가증스러운 발상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윤흠서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아직 다 끝난 게 아니오."

그를 비롯한 열명의 동방인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이 남서쪽으로 큰 절을 올렸다.

동방이 아닌 남서쪽.

에우데미아의 왕도가 있는 방향.

공주 윤이 있는 곳이다.

아마도 이 절이 끝나면 그 말을 할 것이다.

그가 게임 속에서 울부짖으며 2공주 혜선에게 했던 마지막 말을, 이번에는 내게 할 것이다.

절을 마친 그들은 일어선 뒤 나를 보았다.

그리고 전군의 부장이었던 자는 말을 이었다.

"이번 작전의 목표는 혜세국의 인간은 모두 죽이는 것. 혜세국의 인간은 아직도 남아있소."

역시나...

그 말을 하려는 거구나.

"왕자 납치를 시도했던 조운회와 모우회의 내부 분열. 그 현장을 에우데미아의 왕실이 급습했다... 그런 모습이 당신에게는 가장 이상적이겠지."

열명의 무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무릎꿇었다.

"우리의 죽음으로. 작전은 완성되는 것이오."

나는...

"우릴 죽여주시오."

또다시 저울질을 해야만 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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