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77화 (77/215)

〈 77화 〉 2­41. 행복을 지키는 길

* * *

2­41. 행복을 지키는 길

게임속 역사대로라면 혜선에게 자결하게 해달라 부탁하게 되는 그다. 하지만 지금은 헤르만과 내 손으로 자신들을 죽여달라고 했다.

말 그래도 작전의 완성을 위해서다.

"이 작전을 놓고보면 그 길이 옳아."

"……."

조운회의 아지트에 체류하고 있었던 김원상의 수하는 왕도로 향한 상황. 그 자는 혜윤과 사아가 살던 집이 불탄 모습을 볼 것이고, 더 조사해봐야 그들이 묻힌 무덤 정도만 확인할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공주와 시종의 나이와 비슷한 사망자의 시체가 정확한 신원을 알 수 없도록 소사(?死)당한 채 놓여있겠지.

확인을 마친 뒤에는 조운회와 모우회가 왕국의 정예들에게 습격당해 전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다시 돌아온 그에게 보이는 것은 조운회와 모우회의 시체들 뿐.

하필 에우데미아의 중앙군이 개입했다는 사실에 위화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동방의 탈영병들이 왕도에 침입해 불을 질렀기에 행해진 토벌이다. 괜히 깊게 파고 들어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견적을 낼 것이다.

여기에 윤흠서의 죽음까지 확인하도록 유도한다면, 김원상을 비롯한 외척 세력들로서는 이것만큼 좋은 소식도 없을 것이다.

1공주 사살이라는 목표도 달성했고, 에우데미아에서 입막음까지 대신 해준 셈이니까.

"확실히, 작전은 당신들의 죽음으로 완전해져."

"그렇소. 우리의 죽음으로 공주 저하의 안전이 보장된다면..."

"착각은 하지마. 당신들의 목숨이 1공주를 안전하게 한다고는 말하지 않았어."

"... 무슨 말이오."

"당신들이 죽는다고 해도 나는 막지 않아. 4년전 반란의 주동자 중 한명인 전군의 부장이 죽었다. 당장에 김원상은 만족하겠지. 하지만..."

이번 작전을 행한 목적.

그것은 1공주의 생존 따위가 아니다.

"내 제자인 순둥이 왕자님이 빠져든 아이라서 말이야. 나는 1공주를 숨겨둘 생각따위 없어."

"……."

"이번 일은 그저... 1공주 윤이라는 존재를 세상에서 잠시동안이라도 지우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그 아이는 에우데미아의 귀족들 중 한 명으로 살아가게 될 거야."

알렉산더의 행복.

더불어 1공주 본인의 행복.

그것을 위해 1공주 윤은 더이상 숨어서는 안된다. 단순히 숨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큰 일 따위는 벌이지도 않았다.

나는 그녀를 에우데미아의 귀족들 사이에 대놓고 드러낼 것이다. 폐위된 1공주 윤이 아닌,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게 할 것이다.

그렇기에... 넘어야할 산은 앞으로도 많다.

그녀는 에우데미아의 귀족 사회에서 자신의 입지를 새롭게 다져야 하며, 나는 이 결정을 책임질 수 있는 힘을 키워야만 한다.

윤흠서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공주 저하께 너무나 위험한 일이오."

"알고 있어."

"우릴 이용한 것이오? 우리는 공주 저하의 안전을 위해 이번 작전을 행한 것이었소."

"애초에 우리가 신뢰 관계는 아니었잖아."

"저하께서 위험해진다는 걸 뻔히 알고 있는 인간이, 왜 하필 그런 선택을 하려는 것이오!"

지금 윤흠서는 1공주를 염려하고 있다.

그녀가 살아서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다.

인간은 타인의 행복을 감히 정의하려들 때가 있다. 그런 식으로 멋대로 정의한 행복을 타인에게 들이밀면서 행복해지라고 강요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식으로 강요하는 행복은 당사자에게 있어 진정한 행복이 아닌 경우가 많다.

나는 윤흠서에게 물었다.

"그 아이가 살기를 바란다고 생각해?"

"그건 당연한 게..."

"만약 내가 자신을 혜세국에 넘길 거라면, 알렉산더가 모르도록 해달라고 부탁한 아이야."

"……."

"빈민 행세를 하면서도 내 순진한 제자와 거리를 다녔던 추억이 행복했다는 아이야. 알렉산더를 엄청나게 간절하게 생각하고 있는 아이야."

결국 윤흠서는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나머지 말을 전했다.

"그 아이가 당장에 바라고 있는 행복은 단순히 숨어지내서는 이룰 수 없어. 그런데 당신이 뭐라고 남의 행복을 정의하는거야."

"……."

"공주를 납치하지 않았어도, 도적질을 하지 않았어도. 당신에게는 그 아이의 행복을 폄하할 자격 따위 애초부터 없었어."

윤흠서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인 채 한참동안 가만히 있으며,

그의 수하들도 땅을 보고 있을 뿐이다.

길다면 긴 시간이 흐르고, 나는 말을 꺼냈다.

"이번 작전은 시작에 불과해."

고개 숙이고 있던 동방의 무인들은 내게 시선을 향했다.

나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이 작전으로 번 시간은 최소 3년. 그동안 힘을 모으고 입지를 다진다. 에코니아의 운명 따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이 방법 말곤 없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 것이오."

"죽어서 편해지는 것도 방법이겠지."

"……."

"하지만 그것만으로 공주가 행복한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느냐. 절대 그렇게는 안되지. 당신들이 가진 삶의 무게는 그리 무겁지 않거든."

윤흠서라는 인간이 가진 삶의 무게.

그가 지금 이곳에서 죽는 것은 과연 이로운가.

아마도 그의 죽음은 김원상의 기분만 더 좋게 해줄 뿐, 운명에 큰 변화를 주지 못할 것이다.

반면에 살아 간다면 어떻게 되는가.

김원상은 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그는 패장일 뿐이다. 거기다 이번 사건으로 모우회는 전부 몰살당했다고 알려질 예정이다. 만약 걱정을 한다면 오히려 그게 멍청한 일이다.

리스크는 없다고 봐도 된다.

"공주는 과거를 잊지 못한다고 했어."

"……."

"하지만 버릴 수는 있다고 했지."

왕자를 납치했다는 전과가 있지만, 그걸 주도했던 것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모두 베어버렸다.

오히려 1공주에게 진정으로 충성하는 자들만이 내 앞에 서있는 것이다. 당연히 1공주와 관련된 일이 생기면 이들은 날 도울 것이다.

거기다... 1공주의 행복을 담보로 하여, 내 목표를 간접적으로 돕도록 할 수도 있다.

결국... 이들의 삶은 내게 도움이 된다.

내 저울은 이들을 살리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 아이의 행복을 지키며 사는 방법도 있어."

"... 그게 가능한 것이오?"

"물론 지금은 당신들이 범죄자일 뿐이니까, 당연히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해. 과거의 원한, 현재의 자신, 미래의 복수까지."

"……."

"분명 힘들겠지. 그래도 책임을 진다며 여기서 개죽음을 당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내 말을 모두 들은 윤흠서는 망연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른 저녁에 작전을 시작했기에, 지금은 이미 날이 저물고 주변에는 달빛만이 감돌고 있다.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그가 말했다.

"왕도의 숲에서 조우해 싸우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대의 말은 전부 옳은 것이었소."

말은 저렇게 하지만... 나에게는 마치 자신의 지난 모든 삶을 반추한 것처럼 들렸다.

그의 어조에 회한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저하를 지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오."

* * *

그 이후로 나는 윤흠서와 함께 조운회주의 방에 남은 귀중품을 마차에 싣고 왕도로 돌아오니, 다음 날 점심 시간대가 되어버렸다.

모우회의 중상자는 헤르만에게 응급 처치를 부탁했기에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었고, 지금은 헤르만과 함께 내 집으로 향하는 중이다.

"시하 형, 스물 다섯명이 살 집을 갑자기 구해달라고 하면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해."

"...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그래도 다행이야. 하나라도 덜 죽어서. 일 한번 같이 해보니까 나름대로 괜찮은 사람들 같기도 하고... 따로 문제는 없겠지?"

"그래. 애초에 사법부장님이 저 사람들의 처우는 알아서 하라했으니. 문제는 없을 거야."

이번 일을 진행하면서, 왠지 모르게 사법부장 할아범이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저번에 요나 녀석을 데리고 다닌 보답이라도 되는 건가 싶었다.

그나저나 티오리아에 맡겨 둔 마차가 조금 신경쓰였다.

나는 헤르만에게 물었다.

"헤르만. 오늘같은 경우에도 도적들의 재산을 치안본부에 맡기고 내가 3할을 받는거야?"

"아니, 이번 일은 왕도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잖아. 도적 토벌로 인해 발생한 재산은 재상부 관할이라, 그곳에 모든 재산을 넘겨야 해."

"그래? 그럼 이번엔 못 받겠네..."

돈은 많을수록 좋아서 내심 기대했는데...

이번에는 3할을 받는다던가 그런 건 없나보다.

"아닌데. 토벌같은 경우에는 그걸 해낸 사람들의 공적에 따라 나누어 가지는 거야."

"뭐?"

"그래도 발안자는 결국 형이니까, 대략 4할 정도는 받겠네. 거기다 납치당한 사람들을 구한 공적도 있으니까 따로 왕실 포상금도 받을걸."

"... 그럼 어느정도 받을까?"

"방금 거기서 절반 정도는 받겠지."

"절반."

방금 그 돈의 절반을 받는다니.

사실 조운회주의 방에서 윤흠서와 나눈 말이 있었다.

'이 정도로 많다니... 조운회주 이 인간은 배 터져 죽을 일이 있나."

'원래 혜세국의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갑부였소. 하지만 나머지 둘을 제치려고 봉기에 참여했던 자요. 당신 말대로 배가 터져 죽긴 했구만.'

'... 그렇군요.'

외눈 외팔이 아저씨가 파격적인 농담을 할 정도였다.

얼핏 보기에도 왕도 치안본부가 슬럼가를 토벌하고 쌓아둔 재화보다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거...

"헤르만."

"왜?"

에우데미아 전역에는 크고 작은 도적이 많고...

나는 그들의 위치를 대부분 알고 있다.

"도적 토벌은 돈이 된다."

"... 형님, 미쳤어?"

"전부 토벌한다..."

"마력에 중독된 건 아니지...?"

헤르만과 이런저런 농담을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언덕 위에 있는 저택에 도착하게 되었다.

"거의 나흘만인가..."

"음. 그 정도 걸렸지."

"이번 일도 수고했어, 헤르만."

"하하하... 오랜만에 실전이긴 했지."

맥없이 웃는 헤르만.

게임에서 이 녀석은 실력이 좋아도 살생은 꺼려하던 편이라 호위직만 고집하던 인물이었다.

그런 녀석이 무슨 일인지 직접 잠입 작전을 지휘하겠다고 나섰으니, 꽤나 피곤했을 것이다.

"다녀왔습니다."

"... 다녀오셨습니까."

저택 문을 열고 들어가니, 흰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열 세살 꼬맹이가 나에게 인사를 해왔다.

1공주 윤이었다.

거실에는 사아도 같이 있었다.

사실 사대 귀족들 중 한 곳에 수양딸로 받아주면 안되나 부탁을 하긴 했지만, 대차게 거절당했다. 그래서 직접 보호자가 되기로 했다.

나는 윤에게 말했다.

"일은 잘 끝났어.

"... 그렇군요.

"그래도 지금부터 시작이란 건 알고 있지?"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래..."

토벌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도 몇마디 나누어 본 적이 있는데, 꽤나 총명한 아이였다.

어쩌다 보니 알렉산더와 첫 만남도 듣게 되었는데, 이 아이가 알렉산더의 대금화 살인사건을 방지해 주기도 한 것 같았다.

이 아이는 나처럼 미래에 대한 정보도 없을텐데, 알렉산더의 역사를 바꾼 것이다.

이 무슨 엄청난 업적인가!

나는 이 결혼 찬성일세.

나는 피곤한 몸을 쉬기 위해 침실로 향했다.

이럴 때는 2층에 내 방이 있는게 불편하다. 계단 하나하나가 절벽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가 힘겹게 2층에 다다른 순간.

"그게..."

윤이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운을 띄웠다.

나는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아이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의부님."

…….

한달 뒤면 스물넷인데...

팔자에도 없는 의부가 되다니.

중진이 모여있는 집무실에서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다며 개난리까지 피웠건만, 왠지 모르게 국왕 내외는 저 아이를 내게 맡겼다.

... 정말이지 고민이 태산이다.

"그래. 일단 지금은 내가 피곤해서... 조금 쉬다가 다음 일을 같이 의논해보자."

"알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윤은 내게 고개숙이며 대답했다.

나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없었다.

한 지붕 아래에 살고 있던 그것은 괴물일 뿐이었으니까.나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닮지 않도록 노력해왔을 뿐이다.

... 과연.

좋은 아버지를 모르는 내가 잘 할 수 있을까.친딸이 아니라고 해도, 저 아이의 행복을 지킬 수 있을까.

…….

모르겠다.

일단 쉬어야지.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