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78화 (78/215)

〈 78화 〉 2­42. 첫번째 가족 회의...?

* * *

2­42.첫번째 가족 회의...?

잠시 쉬기 위해 눈을 붙였건만... 막상 눈을 떠보니 다음날 점심시간이었다.

하긴 나흘 동안 토벌에 온 신경을 몰두하고 있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잠에서 깨어난 내가 2층에 있는 욕실에서 모습을 정돈하고 1층의 거실로 나가니, 그곳에는 혜윤과 사아씨가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의부님."

"... 그래."

나는 '여기가 당신의 자리입니다.'라는 듯한 오라를 내뿜고 있는 상석에 앉았다.

그나저나...

도대체 아버지라는 건 뭘 해야 하는 거지.

물론 공식적인 자리에서 취해야할 행동의 방향성을 정해두었다. 하지만 내가 고민하는 것은 가정에서의 아버지 노릇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꽤나 책임감을 요구하는 일 아닌가.

거기다 나는 첫 대면부터 혜윤을 몰아세운 사람이다. 나로서도 거리감이 꽤 느껴지는데, 이 아이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의 나로서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혜윤과 사아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일단 일상적인 대화나 앞으로의 방침이라도 말해야겠지.

"그런데, 아모스랑 아일라는 어디 간 거야?"

"의부님께서 토벌을 나가계신 동안 기사분들께서 저택을 지켜주셨어요. 그런데 두분께서는 그게 부담스러우시다며 성당으로 봉사 활동을 가셨었어요. 오늘도 그곳에 가신 게 아닐까요."

비록 내가 그 무서운 수녀님의 신상을 일일이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성당은 대략 알고 있다. 그곳도 게임의 무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에우데미아는 헬렌 교국와의 연이 깊은 나라, 슬럼가 근처의 거리에 세워진 성당은 대사관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 수녀님이 그 성당을 거의 총괄한다고 했으니, 에우데미아 내에서 교국을 대표한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성당이라... 그런데 왠 봉사활동?"

"성당에 버려진 아이들이 많다고 하셨는데,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도우신다고 들었어요."

"아..."

내가 살던 세계에서도 베이비박스라는 개념이 있었듯이, 슬럼가 근처의 성당에 버려지는 아이는 많을 것이다.

단련이나 꾸준히 하라고 타박할 수도 있지만... 아모스는 고아들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거기다 저런 활동이 아모스에게는 삶의 동력이 될 수 있으니, 그대로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는 혜윤에게 물었다.

"그렇구나. 그럼 지금 저택에는 여기 세 명과 헤르만 뿐인 거야?"

"헤르만님 역시 잠시동안 티오리아 가문에 다녀오신다고 하셨어요."

"음. 그럼 우리 셋만 있을 때 해야할 이야기를 미리 해두는 게 좋겠네."

"... 네."

혜윤은 내 말에 약간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사아 역시 비슷한 상황.

나는 말을 이어갔다.

"둘은 나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알고 있어?"

"두달 전에 에코니아에 오신 표류자이시고, 왕실 가정교사라는 것까지는 알고 있어요."

"동시에 나는 가정교사 직을 맡고 있는 동안은 공작의 작위를 가지게 돼. 그렇다면 지금부터 너의 지위는 어떻게 되는 거야?"

"... 설마요."

"설마는 무슨. 알렉산더와 함께 다니려면 어느 정도의 지위는 필요하잖아. 너는 지금부터 이시하 명예 공작의 양자이자 공녀로서, 왕실의 수업 역시 알렉산더와 함께 받게 될거야."

"……."

이건 왕비님이 나에게 부탁했던 일이다.

아무리 당사자의 감정을 중시하는 에우데미아라고 해도, 슬럼가의 아이가 왕자와 맺어진다는 것은 귀족들이 들고 일어나 반대할 것이다.

그래서 중진들에게 혜윤을 입양해주길 제안했지만... 입양은 그들에게도 곤란한 일이었다.

유력가에서 양자를 들이는 일은 드문 일은 아니지만, 그 후보들 역시 귀족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드로 재상은 한나의 결혼이 결정된 것도 아닌데, 하위 귀족들이 자신들의 자식들을 추천하며 입양을 청탁해 난처하다고 했다. 권력에 눈이 먼 잡것들이 꼬이는 것이다.

그래서 임시 공작위를 가지고 있을 뿐이기에 논란이 적을 내가 혜윤을 입양하게 되었지만... 여러모로 고민이 끊이지 않는다.

…….

그래도 아이에게 말할 것은 아니지.

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번에 내가 토벌한 조운회라는 단체가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니?"

"그게..."

내 질문에 혜윤은 고개를 숙이면서 두 손으로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모르는 게 당연한 일이야. 너와 사아씨는 살아남기에도 바쁜 환경에 처해있었지 않니."

"그래도..."

"도피 생활 중에 그런 정보를 모두 얻고 행동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야. 그 일로 자책할 시간에 미래를 생각해보자."

"... 네."

다시 고개를 든 혜윤에게 나는 말했다.

"너가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고는 해도, 결국에 임시 공작의 양자야. 내가 가정 교사직을 물러나는 순간, 너도 평민으로 돌아가는 셈이야."

"이해 했습니다."

"동시에 나는 너의 사교계 데뷔를 크게 도울 수 없는 입장이야. 그렇기에 사교계에서 너만의 입지를 다져놓는 게 중요해. 그걸 못하면 나에게도 꽤 골치아픈 일이 생긴단다."

내 말을 끄덕이며 듣고 있던 혜윤은,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앞의 말씀은 이해했어요. 그런데 의부님께 곤란한 일이 생긴다는 것은..."

"조운회에서 구출한 여아를 양자로 들였다. 이건 너에게 부여되어 있는 '설정'이야."

"... 네, 숙지해둘게요."

"아무리 명예직이라도 공작. 그런 사람이 곤란에 처했을 뿐인 평민 아이를 양자로 들인 셈이니까. 하위 귀족들 중 몇몇은 자기 자식을 파문시켜서라도 내게 줄을 대려고 할 수 있어."

"직위가 유지되는 동안 왕실과의 연줄로 사용할 수 있으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네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겠니."

"감히 그런 시도조차 할 수 없도록, 제 능력을 보임으로서 귀족들의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 그저 불쌍한 평민 아이로 보여서는 안 된다..."

이런 정치적인 이야기를 곧잘 이해하는 걸 보면, 이 아이도 역시 일국의 공주였구나 싶다.

"이해가 빠르구나. 구조한 아이가 너무나 영특했기에 내가 입양했다. 이런 인식을 귀족들에게 줘야해. 이 부분은 너에게 맡겨도 되겠니?"

"네. 의부님께서 주신 기회이니, 앞으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나와 알렉산더에게 상의해도 돼.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 알겠습니다."

자기 마음을 털어놓던 모습을 생각해보면, 혼자서 끙끙 앓다가 터져버릴 수도 있는 아이다.

그 부분은 내가 충분히 신경을 써야겠다.

나는 다음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럼 다음으로, 혜윤이라는 이름은 너무 위험해. 공적인 자리에서 쓸 이름을 따로 정하자."

"이름... 말씀이신가요."

"'혜'는 명월주 가문의 돌림자 중 하나잖니."

"... 네."

"해방제처럼 혜세국 고위 귀족이 참여할만한 자리는 피할 예정이지만, 그래도 만약이란 게 있으니 개명은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렇겠죠..."

내 말에 혜윤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잠시후...

그녀는 약간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나는 어떤가요."

"윤이라는 이름을 풀어서 유나... 내 성도 이씨니까 이유나가 되겠네. 괜찮다고 생각해."

"네, 그럼 이유나라는 이름으로 할게요."

건들면 안되는 이야기라도 해버린걸까.

혜윤, 아니 유나는 어두운 표정을 한 채로 땅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이 아이를 깊게 알고 있지는 못해서, 섣불리 말을 붙일 수도 없다.

나는 사아씨에게 이야기를 돌리기로 했다.

"사아씨의 이름은 흔한 편이에요? 내 기준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라서..."

"네번째 아이라는 흔한 이름이에요. 혜세국에서 평민 아이라면 대부분 이런 이름입니다. 굳이 바꿔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네번째 아이라니.

이 무슨 성의없는 이름인가.

하지만 흔한 이름이라고 하는데다, 그녀는 공식적인 자리에 나설 일이 없는 인물이다. 본인도 원하지는 않는 듯 하니, 그냥 두어도 되겠지.

"음. 사아씨에게 저택의 관리를 부탁하려고 하려고 해요. 업무 내용은 저택의 청소나 식사 준비. 생활비와 보수는 충분히 지급할게요."

"공주님과 함께 있을수만 있다면, 하겠습니다."

"이제는 공주님이라고 부르면 안 돼요. 아가씨라고 불러야 해요. 아모스와 아일라 앞에서 공주님이란 호칭은 쓴 적 없죠?"

"그분들 앞에서 실수한 적은 없습니다만... 습관을 들이는 게 좋겠네요. 주의하겠습니다."

이 사람도 혜세국 왕실에서 눈엣가시 취급을 받던 1공주 윤의 유모 노릇을 한 사람이다 보니, 기본적인 예절과 눈치 정도는 있을 것이다.

거기다 따로 사용인을 구하기엔 이 저택은 너무 특수하다 보니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특이한 마도구가 넘쳐나는 해방자의 저택.

집주인은 표류자.

나를 호위하는 티오리아 가문의 장남.

혜세국의 전 공주.

슬럼가 출신의 두 사람.

거기다 요즘은 왕자까지 찾아온다.

이런 환경에 적응하고 모두의 비위를 맞출 사람을 찾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일 것이다.

사아씨가 내게 말했다.

"그... 공작님?"

"왜 그러시나요."

"이 저택의 마도구에 익숙하지 않아서요. 공작님께서 없는 동안에는 아일라님께 마법을 부탁해서 식사를 준비했는데, 본격적으로 사용인 노릇을 하려면 적응을 해둬야 할 것 같아요."

"아... 그럼 지금 설명해드릴게요."

생각해보니 이 저택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부엌의 마도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대부분 해방자의 유품이라고 하면 무서워서 손도 못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동안에는 밖에서 음식을 사다 먹거나, 내가 요리를 하고 있었다.

"의부님, 저도 이 저택의 마도구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따라가도 될까요?"

사아씨와 내 대화를 듣고 있던 혜윤이 말했다.

하긴 이상한 마도구가 많지...

"그래, 그럼 부엌부터 시작해보자."

그렇게 표류자 이씨 집안 첫번째 가족 회의...? 비슷한 것이 끝나고, 두 사람에게 부엌의 마도구부터 설명해주기 위해 자리를 옮기는 도중...

똑똑.

누군가가 문에 노크를 했다.

"누구세요?"

"스승님, 접니다."

알렉산더였다.

혜윤을 만나려고 찾아온 모양이다.

참 지극정성이구만.

그렇게 정문을 활짝 열어 주었더니...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 안녕."

아셰리아 공주.

기디언 프라시스.

아샤 티오리아.

내 제자들이 전부 저택에 찾아와버렸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