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79화 (79/215)

〈 79화 〉 2­43. 급작스러운 방문.

* * *

2­43. 급작스러운 방문.

너무나 급작스러운 방문.

알렉산더 외의 학생들은 내 저택을 찾아온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온걸까.

"어쩐 일로 다같이 저택에 찾아오신건가요...?"

"오라버니께서 선생님의 저택에 찾아가신다고 하셔서 저도 따라와 보았습니다. 혹시나 선생님께 폐가 되는 일이었을까요?"

내 물음에 아셰리아 공주가 답했다.

물론 갑자기 여러 명이서 들이닥치면 맞이하는 입장에서 곤란하기는 하다. 아무래도 고위층 자제들이니까.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다과는 대접해야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 저택에는 살림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고, 다른 사람들은 돕기만 하는 수준. 사아씨가 사용인으로써 살게 되긴 했지만 이제야 1일차인 상황이고...

여러모로 막막하긴 하다.

"하하... 폐가 된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밖에 서있지 말고 다들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그래도 나는 일반적인 교사가 아니라 왕실의 가정교사. 귀족 학생들은 교사의 집을 찾아가 수업을 듣는 일도 많으니, 이렇게 선생님의 집에 찾아오는 것도 일반적인 일이겠지.

일단 사아씨에게 손님맞이를 할 때 사용할 마도구 정도만 얼른 가르쳐주어야 겠다.

"혜... 아니 유나야. 손님들과 함께 거실에서 기다려줄래? 마도구 설명은 다음에 해줄게."

"음... 네. 알겠습니다."

* * *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사아씨에게 기본적인 요리용 마도구들을 설명해주는 동시에 아이들에게 대접할 차와 과자를 준비해 거실로 향했다.

"집에 이렇게 사람이 많이 온 건 처음이네요."

"역시나 갑작스레 방문한 것이 실례가 되는 건 아닐까요?"

"아니에요, 공주님. 가끔씩은 사람이 많은 편도 좋죠. 거기다 토벌 일정 때문에 그동안 수업도 없었잖아요. 오랜만에 보게 되어서 반갑네요."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자신들의 방문이 민폐는 아닐까 걱정하는 아셰리아 공주. 워낙에 잔걱정이 많은 성격이니 이럴만 하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아마도 아셰리아 공주는 후궁에서 알렉산더가 내 저택으로 외출한다는 소식을 듣고 따라왔겠지. 거기다 만사를 귀찮아하는 아샤는 공주를 호위한다는 이유로 왔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기디언은 무슨 이유로 찾아온걸까.

딱히 기디언이 불편하다는 건 아니지만... 요즘 들어 수업을 마치면 항상 프라시스 공작저로 곧장 돌아가던 기디언이었다. 알렉산더와 같이 다니는 빈도가 꽤나 줄어든 그였는데, 갑자기 함께 찾아온 이유가 궁금했다.

나는 기디언에게 물었다.

"기디언은 알렉산더와 한동안 함께 다니지 않던데, 무슨 일이라도 생겼었나요?"

"그게 말이죠. 스승님..."

"왕자님께서는 빠져 있으세요."

"그래..."

내가 기디언에게 묻자, 알렉산더가 진땀을 흘리며 대신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정말이지 의외로, 기디언은 그런 왕자를 제쳐놓고 자신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생각했습니다. 왕자님의 보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지..."

"저희 가문은 대대로 무를 중시해오긴 했지만, 선대 당주님들 중에는 정치적으로도 훌륭하게 왕가를 보필하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잠시동안 그분들을 본받기 위해 가문의 사서들을 탐구하며 학문에 매진하는 기간을 가졌습니다."

오호...

요즘따라 수업이 끝나면 곧장 자신의 집인 프라시스 공작저로 향하던 기디언이었다.

혹시나 발람 그 돼지놈이 조카인 기디언을 타박해서 일찍 귀가하는 건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는데, 본인의 훌륭한 다짐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하니 다행이다.

그런데 갑자기 기디언은 주먹을 쥐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두려워서 떤다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속으로 무언가 꾹 참고 있는듯한 목울림.

왠지는 모르겠지만 기디언 옆에 있는 알렉산더 녀석이 조금은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가 가문의 서재에 틀어 박힌 동안, 왕자님께서 안전에 주의하겠다 하셨기에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왕자님을 믿고 있었는데, 저번 주에 큰 일이 생겼다고 전해 듣게 되었죠."

주먹을 꾹 쥔 채 화를 참는 실눈 소년 캐릭터.

무섭다.

내가 알던 기디언이 아니라서 더 무섭다.

"출신이 어찌되었건 간에, 혜윤 양께서는 왕자님과 함께 있으셔도 모자람이 없으신 분. 왕자님께서 혜윤 양과 만나는 일은 좋다 이겁니다. 그런데 일국의 왕자라는 분이 기사 두 분만 데리고 외출을 하시다니..."

기디언은 두 달 전만 하더라도, 알렉산더의 말에 잠자코 따르는 순둥순둥한 아이였었다.

그랬던 아이에게 내가 무슨 말을 했던 것인가.

알렉산더를 그렇게나 맹목적으로 따르던 아이가... 오히려 그를 말로 몰아붙이게 되다니.

"저번 타라스 마을의 건은 왕족의 의무를 지킨다고 하셨었고, 거기에 아무런 생각없이 왕자님을 따른 제 과오가 컸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은 정체를 밝히지 않겠다는 고집을 부리신 결과로 혜윤 양까지 위험해지지 않았습니까."

"……."

"물론 이해는 합니다. 왕자님께선 혜윤 양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으셨겠죠. 그래도 다른 방법도 많지 않았습니까."

"그게... 면목이 없구나. 미안하다."

유나는 아무래도 자신이 연관되어 있는 일이다보니 멋쩍은 웃음을 내보일 뿐.

그런 상황에서 알렉산더 녀석은 땀을 삐질거리며 기디언에게 사과를 건내었다.

기디언은 나를 돌아다보며 말했다.

"그. 래. 서. 왕자님께서 선생님의 댁을 방문하실 때는 저와 함께 왕실의 문장을 새겨둔 마차를 타고 오실 겁니다. 거기다 만약 거리에 외출하실 경우에는 왕도 치안본부의 사복 대원들이 왕자님을 호위해주실 예정이구요."

"... 사법부에 요청을 하신건가요?"

"예. 고문을 맡고 계신 요나님께 직접 찾아가 말씀드렸더니, 사건 사고는 예방하는 편이 훨씬 좋다고 하시며 흔쾌히 허락해주셨습니다."

원래는 내가 요나나 사법부장을 찾아가 부탁하려고 생각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기디언이 이렇게나 실행력이 좋은 아이였다니.

앞으로 기디언이 잘 자라준다면 알렉산더의 좋은 보좌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거기다 유나까지 함께 한다면 굉장히 좋은 조합이 되겠지.

"잘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알렉산더를 옆에서 잘 보좌해주세요."

"당연히 해야할 일입니다."

대답마저 믿음직스러운 기디언이었다.

내가 기디언을 칭찬하자, 알렉산더 녀석은 얼굴이 조금씩 새하얗게 질려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게 훨씬 좋은 방향 아닐까.

기디언이 여기 온 이유는 알렉산더의 호위를 다시 하게 되었다, 이 정도 인 것 같고...

그러고보니 유나는 이제부터 이 아이들과 수업을 같이 듣게 된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기디언은 유나를 알고 있었던 것 같지만, 아셰리아 공주나 아샤는 잘 모르는 눈치.

이 기회에 소개를 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알렉산더, 기디언. 이제부터 여기 있는 혜윤은 유나라는 이름으로 살게 되었어요. 이제부터는 바뀐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아... 예쁜 이름이네요. 알겠습니다."

알렉산더의 반응에 유나 역시 안심한 모양.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유나는 어제부로 제 양녀가 되었습니다. 제가 비록 명예직이긴 하지만, 당분간 공녀로서 여러분들과 수업도 함께 들을 예정이에요. 유나, 이쪽은 아셰리아 공주님과 호위인 아샤 티오리아입니다. 서로 인사는 나누어 두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공주님."

내가 공주님과 아샤를 소개하자, 유나는 그 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었다.

그리고 아셰리아 공주가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나저나 오라버니와의 관계가 깊으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언니라고 부르면 될까요?"

"네. 알렉산더의 동생분이시니까, 그렇게 부르셔도 되요..."

"그럼 그렇게 부를게요. 유나 언니."

관계가 깊으신 분.

그 말에 유나의 얼굴을 새빨게진 얼굴을 숨기며 대답했다. 중간에서 아이들의 이런 풋풋한 모습을 본다는 건 흐뭇한 일이었다.

유나와 알렉산더는 아직 정식으로 사귀는 단계는 아니지만, 주변 어른들은 대부분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다른 어른들이 보아도 나와 같은 반응이 아닐까.

"자, 그럼 서로에게 소개는 했고..."

내가 이곳에 계속 있어봐야 눈치 없는 어른이 아이들 사이에 끼어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거기다 유나는 사교계에 적응하기 위해 여기 있는 아이들과 친해지는 편이 좋을 것이다.

나는 자리를 비켜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저는 위층 서재에 있을테니, 여러분들끼리 편히 대화 나누세요. 무슨 일 있으면 사아씨에게 부탁하시거나 절 부르시구요."

* * *

그렇게 거실은 아이들에게 내어준 나는 내 방의 옆에 붙어있는 서재로 왔다.

언젠가 해방자가 사용하던 서재.

역사, 마법, 마법진... 이곳에는 그의 평소 관심사로 보이는 여러 책들이 꽂혀있다. 에코니아에서 살아가게 된 나에게 큰 도움이 되겠지.

사실 이사를 결정한 날부터 이곳의 서적을 읽어 보겠다고 다짐했었지만, 저택에 온 뒤로 일이 바빠서 그럴 기회가 없었다.

수업도 없고, 유나의 일을 모두 끝낸 지금이야말로 독사하기 좋은 시간일 것 같다. 나는 책장에서 지금 당장 필요할 것 같은 책을 골랐다.

[에코니아 역사와 심상마법 사용자들]

심상마법은 각 국가나 개인이 보유한 비대칭 전력이기에 사용 방법이나 파훼법은 일급 기밀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는 에코니아 각국의 고위층이 사용하는 심상마법은 실려있지 않겠지.

아마도 책의 제목 그대로 역사 속에 존재했던 특이한 심상마법을 기술해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직 나에게 심상 마법이라는 것은 미지의 존재. 그래도 언젠가는 심상마법 사용자를 상대할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나는 먼지로 뒤덮인 책을 펼쳤다.

똑똑.

그 순간, 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선생님."

아셰리아 공주였다.

다른 아이들과 노는 게 부담스럽기라도 한 것일까. 내가 서재로 올라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나를 따라왔다.

공주가 말했다.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어떤 일인가요?"

"그게..."

무슨 큰 일이라도 되는 걸까.

그녀는 잠시동안 말을 흐리더니 말했다.

"다음 주면 한 해의 마지막이지 않습니까."

"아... 그렇죠."

나는 서재에 둔 달력을 보며 답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나.

내가 에코니아에 떨어진 게 아마 10월이었지.

겨우 세 달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구나 싶다.

"다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수업을 듣는 학생들만 참여하는 송년 모임을 가지는 게 어떻냐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송년회라... 새로 들어온 사람도 있고, 한번쯤은 파티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내가 긍정적인 대답을 하자, 아셰리아 공주가 작게 웃으며 제안했다.

"그래서 말입니다. 혹시, 송년 파티를 선생님 댁에서 진행해도 될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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