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248. 미샤 베이커리.
* * *
248. 미샤 베이커리.
추운 겨울이 지나고...
에우데미아의 왕도에 봄이 찾아왔다.
아모스는 방에 있는 거울을 보며 시하가 사준 수트를 입은 모습을 단정히 정돈하는 중이다.
문 밖에서 아일라가 물었다.
"아모스, 준비 다 됐어?"
"음... 조금 더 기다려줘. 누님."
아모스와 아일라가 시하의 저택에 살게 된 이후로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르게 되었고, 둘의 일과는 나름대로 규칙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주중에는 시하와 함께 왕궁으로 가서 각자 자신들의 스승과 함께 수련을 하게 된다.
아모스는 기사단원 한 명에게 신체강화 마법을 쓰는 요령과 맨손 격투술을, 아일라는 한나에게 자연 마법 수업을 받고 있다.
그 후 저녁에는 시하와 함께 세상을 살기 위해 필요한 상식들을 공부하는 시간까지. 주중에는 두 사람이 취할 수 있는 여가 시간은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아모스의 방문 밖에 기다리는 아일라에게 거실에 있던 시하가 물었다.
"둘이 어디 가려고?"
"네, 공작님. 미샤네 빵집에 들렸다가 성당의 아이들도 보러 가려구요."
미샤. 아모스가 구해냈던 빵집의 소녀다.
바쁜 주중을 보내고 맞이하게 되는 주말.
아모스와 아일라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카데미의 거리로 이사하게 된 미샤의 빵집이나 슬럼가 근처의 성당에서 보내게 된다.
대답을 들은 시하는 고민하다 말했다.
"요즘 거기 장사는 잘 돼?"
"공작님께서 전해주신 디저트 레시피가 아카데미 학생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해요. 특히나 에퀼리아 출신들은 대량으로 사가서 먹는 학생들도 많다고 해요."
"그건 다행이네."
"주인 아저씨도 공작님께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 그렇구나."
시하는 복잡한 심정으로 대답했다.
아모스의 다짐을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빵집의 두 사람에게 몹쓸 짓을 하지 않았던가.
빵집의 이전도 돕고 레시피도 전해주어 잘 되었다고 하니 다행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죄책감을 털어낼 수는 없던 시하였다.
"그럼 오늘은 나도 쉬는 날이니, 오랜만에 그 빵집이나 다녀올까. 성당은 그 수녀님이 무서워서 못 가도, 그 빵집에는 가끔 내가 얼굴 정도는 비춰야 홍보에도 도움이 되겠지."
"그런 이유가 아니어도 주인 아저씨는 공작님께서 가시면 좋아하실거에요."
"그래, 그럼 나도 옷 좀 갈아입고 나올게."
"알겠습니다."
* * *
평소 왕성에 출근하는 복장을 입고 거리로 나선 시하. 그런 시하의 양 옆에는 수트를 입은 아모스와 아일라가 함께 걷고 있다.
처음에는 수트나 걸음걸이가 익숙하지 않아 어색함을 보였었지만, 지금은 각자의 멋이 흘러나오는 둘이다.
아모스는 그 듬직한 덩치와 더불어 멋들어진 선글라스로 순해보이는 눈을 숨겼으며,
아일라는 마력을 꾸준히 사용하며 몸을 관리했기에 피부와 머리칼의 생기가 돌아와 전형적인 금발 미인의 상을 띄게 되었다.
그런 두 사람을 양 옆에 끼고 거리를 나선 시하였으니, 주변의 이목이 쏠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저택에 마차를 둬야 하나... 가끔은 이렇게 쏟아지는 시선이 부담스럽단 말이야."
"보스가 꽤나 유명한 분이시니 말이오."
"... 보스라 부르지 말랬지."
"그래도 보스만큼 어울리는 단어가..."
"……."
대중이 부담스러운 시하와 그런 그에게 얼빠진 소리를 하는 아모스.
그런 두 사람의 옆에서 아일라가 말했다.
"다른 귀족 분들께서는 마차로 출퇴근을 하시더군요. 제가 마차와 마부를 알아볼까요?"
최근 시하의 비서 역할을 하게 된 아일라였다.
주중에는 헤르만이 시하의 부탁을 이것저것 해결해주긴 하지만, 주말만큼은 자신이 일을 대신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덕분에 헤르만은 조금이나마 휴식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래, 아일라. 부탁할게. 돈이나 외관은 신경쓰지 말고 최대한 승차감이 좋은 쪽으로. 아무래도 내 학생들이 높으신 분들이니까..."
"알겠습니다. 상회를 통해 수배해보겠습니다."
그렇게 거리를 걷고 있자...
어느 상인이 아모스의 근처로 와 음식이 든 작은 종이 상자를 건네며 말했다.
"아모스씨, 저번에 그 민폐꾼을 쫓아내줘서 고마웠어요. 이건 그때 보답."
"이런 걸 주지 않아도 되는데..."
"아모스가 이곳을 다니고 난 뒤로 훨씬 장사하기 편해졌다니까. 사양말고 먹어요."
"이왕 준 것이니 고맙게 받겠소. 감사하오..."
이후 할 말을 마친 상인은 다급히 자신의 가게로 돌아가고, 시하는 그 모습을 조용히 보고 있다가 물었다.
"이런 일이 흔해?"
"음... 아무래도 내 덩치가 있다보니, 가끔 난동을 부리는 자들 뒤에서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대부분 해결되었소."
"그런 일이 여러번 있어서요. 아모스와 저에게는 이곳 상인분들이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그거 참 좋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아카데미 거리로 접어들자 멀지 않은 곳에 미샤 베이커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은 이미 학생들로 북적이고 있다.
"사람들이 꽤 많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오전 영업은 끝나오. 그 뒤로는 보스께서 말씀하신대로 브레이크 타임을 가지게 되니 그때 입장하면 되오."
"그렇구나..."
십분의 시간이 지나자 인파는 사그라들고...
하얀 모자를 쓴 빵집의 소녀 미샤가 영업 여부를 알리는 푯말을 돌리기 위해 가게를 나왔다.
"안녕, 미샤."
"어, 아모스 아저씨다! 공작 아저씨도 오셨네!"
"아저씨 아니라구..."
"아모스 아저씨보다 공작 아저씨가 나이가 더 많으니까 당연히 공작 아저씨도 아저씨 아닌가? 왜 아저씨는 아저씨가 아니야?"
"……."
아이의 순수함은 때로 어른에게 잔혹한 법.
시하는 미샤의 말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그렇게 그의 말문이 막힌 그 때, 베이커리 주인이 나오며 말했다.
"공작님 오셨습니까! 미샤, 설마 또 공작님께 아저씨라 한 건 아니지?"
"엥... 왜 아저씨는 아저씨인데 왜 아저씨라 부르면 안되는거야?"
"... 죄송합니다. 공작님."
"괜찮아요... 거리에 시선이 많으니 들어가도 될까요?"
"어이구 내 정신 좀 봐! 어서들 들어오십시오."
미샤의 아버지는 세 사람을 가게 안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방금 막 영업이 끝나서 정리를 못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은데요. 대부분의 메뉴가 품절이네요."
"하하하... 다 공작님 덕 아니겠습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시하는 진열대를 쭉 살펴보았다.
원래는 슬럼가 근처에 있던 조그마한 빵집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아카데미 학생 취향의 빵을 만들지는 못하던 빵집 주인이었다.
그렇기에 시하는 왕실 요리사나 고블린 주방장의 도움을 받아 그에게 여러 레시피를 가르치게 되었고, 그 덕분에 아카데미에 자리를 잡은 베이커리는 성황을 이루게 되었다.
"마늘 바게트랑 단팥빵은 사람들에게 안 먹힐 것 같았는데 의외로 잘 나가나 보네요."
"수인 분들께서는 코가 민감하셔서 마늘빵을 못 드시긴 하지만 단팥빵은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동방에서 오신 분들은 두 가지 모두를 좋아하시구요. 거기다 연유빵은 오개국의 손님분들께서 모두 좋아하십니다."
"오... 가르쳐드린대로 고객들의 수요조사까지 완벽하게 하고 계시네요. 잘 하셨어요."
"처음에는 공작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나 했는데, 막상 이렇게 해보니까 손님분들의 취향을 알 수 있으니 재밌더라구요. 거기다 조사를 기반으로 손님분들께 빵을 추천드리니 단골이 되어 주셔서 굉장히 보람있는 일이었습니다."
웃으며 대답하는 미샤의 아버지.
에코니아의 제과 제빵 기술은 꽤나 발전된 편이었다. 이는 여러 식재료가 보존 마법을 이용해 유통되는 동시에, 가끔 이 세계에 오는 표류자들이 각자 아는 요리를 퍼뜨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하에게 약간의 불만이 있었으니, 에코니아의 빵은 대부분 식사의 바탕이 되는 주식이란 인식이 강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곳의 빵은 곁들여 먹는 음식의 색을 헤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본연의 맛 자체가 없거나 옅은 경우가 많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시하는 각 나라의 유학생들의 취향을 분석했고, 그 자체로 하나의 음식이나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빵의 레시피를 여러가지 고안해내어 이 빵집에 전달했다.
동방 사람들을 겨냥하여 빵 속에 각종 야채와 고기를 마늘과 함께 볶아 채워넣은 야채빵.
코가 민감하고 활동량이 많은 수인들을 위해 향은 약하지만 달콤한 단팥빵과 연유 크림빵.
간편한 식사를 추구하는 에퀼리아 출신 유학생을 겨냥한 각종 샌드위치와 소시지빵까지.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빵들은 표류자 공작이 직접 후원한 베이커리라는 명성과 더불어 아카데미 거리의 명물이 되었다.
"기존 상식을 깨는 빵들이었고, 사장님이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하지 않으셨다면 성공하기 힘든 일이었어요. 자부심을 가지셔도 됩니다."
"하하... 공작님께 이런 말씀을 듣게 된다니, 대단히 영광입니다."
"오늘은 지금까지 알려드린 레시피들과는 약간 다른 필링을 알려드릴게요."
"이 은혜를 이걸 어찌 갚아야 할지..."
"... 괜찮아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있습니다. 거기다 이 빵집이 잘 되면 제 평판도 올라가는 걸요."
자신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레시피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시하는 베이커리의 주방을 향했다.
* * *
잠시 후.
단팥과 크림을 같이 넣는다거나.
옥수수로 크림을 만든다거나.
버터와 단팥을 약간 데워 쓴다거나.
시하는 미샤의 아버지에게 이런저런 레시피 아이디어를 알려준 뒤, 실험삼아 만들고 남은 빵을 들고 주방을 나왔다.
"아모스 아저씨 진짜 높다!"
매장 밖에서는 아모스가 미샤를 자신의 어깨위에 태우고 놀아주고 있었다.
시하는 아모스에게 말했다.
"아모스. 오늘 만든 빵이 좀 남았는데... 성당에 가면서 이 빵들도 가져 갈래? 거기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은데."
"그렇소? 그럼 조금 있다가 가지고 가겠소."
"그래, 나는 먼저 저택으로 돌아갈게."
혼자 저택으로 가겠다는 시하의 말에 아일라가 말했다.
"제가 저택까지 동행할까요?"
"음... 나 혼자 가도 되는데?"
"헤르만님께서 시하 공작님이 혼자 다니도록 두지 말라고 하셨어요."
"... 그 녀석 진짜. 걱정이 너무 심해졌어."
"아모스. 나는 공작님을 저택에 바래다 드리고 올게, 먼저 성당에 가있을래?"
"알겠소, 누님."
시하가 돌아가려는 기색을 보이자...
"공작 아저씨, 잘 가요!"
"... 그래. 다음에 올게 미샤."
"네! 안녕히 가세요!"
미샤는 끝까지 아저씨라는 호칭을 빼먹지 않고 인사했다.
아이의 순진함은 크고 나서 흑역사를 만드는 법. 미샤도 나중에 철 들고 나서는 자신이 어떤 짓을 했는지 깨닫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시하는 답했다.
그렇게 시하와 아일라는 저택을 향하고...
"나도 슬슬 성당에 가야하니... 다음 주에 봐."
"네, 아모스 아저씨도 잘 가세요!"
시하가 건네준 빵을 들고 슬럼가 근처의 성당 방향으로 향하는 아모스.
그런 아모스의 뒤편으로...
검은 그림자들이 뒤따르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