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왕실의 가정교사-85화 (85/215)

〈 85화 〉 2­49. 경제와 가치. 그리고 삶.

* * *

2­49. 경제와 가치. 그리고 삶.

"지난 시간까지. 우린 여러 나라들의 정치체계에 대해 배웠어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언제나처럼 왕궁에 출근한 나는 학생들의 앞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학생은 알렉산더, 아셰리아, 기디언, 아샤, 그리고 새로이 합류하게 된 유나까지.

평소라면 헤르만 녀석이 뒤에서 참관을 하고 있지만... 오늘은 각 부처별로 회의가 있는 날이라 아모스와 아일라가 대신 참관하는 중이다.

"우리는 이 세계에 여러 사회체제가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오늘부터는 경제에 대해 살펴보려 하는데... 세 나라. 동방의 혜세국, 북방의 에퀼리아, 서방의 수인국을 살펴볼 예정입니다."

오늘 수업의 테마는 사유재산.

굳이 어려운 단어를 써가면서 가르칠 생각은 없다. 물론 이 아이들과 장기적으로 더 깊은 공부를 하려면 정확한 용어까지 정의해가며 하는 게 좋겠지. 단어의 힘은 꽤나 위대하니까.

하지만 나는 수업에서 이전 세계의 용어들은 왠만해서는 쓰지 않기로 정했다. 그런 단어를 설명하다가... 막상 중요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해가 되는 일이니까.

내 작은 다짐인 셈이다.

갑자기 기디언이 손을 들며 물었다.

"선생님, 왜 우리가 살고 있는 에우데미아와 그 우방국인 헬렌 교국은 제외하신 건가요?"

"좋은 질문입니다. 에우데미아와 헬렌 교국이 추구하는 가치는 경제에 종속되어 있지 않아요. 하지만 이 세 나라는 각자가 추구하는 이념이 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네?"

약간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사실 조금 어려운 내용이긴 하다.

나는 기디언의 질문을 시작으로 수업을 꾸려나가기로 했다.

"기디언. 제가 말씀드린 세 나라는 어떤 정치 체계를 가지고 있나요?"

"혜세국은 명월주가 당의 의견을 듣고 대소사를 결정합니다. 에퀼리아는 여러 대표들이 모인 의회와 총리를 선출하구요. 수인국은 최강자를 뽑아 전 종족의 대표로 세웁니다. 그런데 이것과 경제가 서로 연관이 있는 건가요?"

"당연하죠."

나는 칠판에 세 나라의 위치를 그렸다.

그리고

수인국 / 에퀼리아 혜세국.

이런 식으로 사이에 줄 하나를 그었다.

"수왕에게는 모든 종족의 재산, 특히 식량을 철저히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반면에 나머지 두 나라들은 개인이 재산을 자유롭게 관리해요."

"음... 수인국은 특이하군요. 나라가 그런 것까지 사사건건 관리를 한다니."

내 설명에 의문을 표하는 알렉산더.

사실 나도 처음에는 에코니아에 왠 공산주의 국가가 있는가 했지만...

그 역사를 보고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이건 수인의 특징과 큰 연관이 있어요. 수인들은 정말이지 종족이 많죠? 호랑이, 백호, 개, 고양이, 늑대, 여우, 곰, 표범, 토끼, 다람쥐, 새... 이 종족들은 살아가는 문화가 모두 달라요."

"제가 말한 내용들 중에 이상한 점. 눈치채신 분이 있으신가요?"

아이들은 곰곰히 내 말을 떠올리는 중이다.

그러다 유나가 가볍게 손을 들고 말했다.

"수인국이 재산을 국가에서 관리한다고 하실 때, 식량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럼 식량과 관련하여 문제가 있기라도 했던 건가요?"

"정답입니다."

내가 유나에게 정답이라고 하자, 알렉산더와 기디언은 각자 깨달은 게 있다는 듯 '아 ­'하고 낮은 감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디언이 물었다.

"혹시 종족마다 필요한 식량의 양이 달랐기 때문에 수왕부에서 직접 관리하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어요. 제가 했던 말들 중에서 그 힌트가 있답니다."

수왕부. 수인들은 결투를 통해 수왕을 선출하는데, 선출한 수왕을 보좌하는 곳이 수왕부다.

내가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고 말하자, 아이들은 내가 말했던 내용을 되새기며 고민에 빠졌다.

꽤나 어렵겠지.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이번에는 아셰리아 공주가 말했다.

"종족마다 특기 분야가 다르지 않을까요?"

"조금 더 설명해주실래요. 아셰리아 공주님?"

"... 인족 역시 누군가는 싸움에 능하고, 누군가는 농사를 잘 짓고, 누군가는 제작에 능하죠. 그런데 수인은 종족마다 성향과 신체가 크게 다르니, 그런 차이가 더 크게 나타날 것 같아요."

"정확합니다. 수인국의 역사는..."

수인국은 건국 초기에 큰 소란을 겪은 적이 있다. 그 원인을 요약하자면...

'너네는 덩치만 더럽게 커서 농사도 제대로 못 짓는데 왜 그렇게 많이 쳐먹느냐.'

농업에 종사하는 종족이 쏘아올린 비난의 화살은 코끼리나 곰 같은 덩치 큰 수인들에게 향했고, 그로 인해 건설이나 방위에 종사하던 그들은 일을 내려놓고 봉기. 나라가 마비되었다.

다행히 초대 수왕은 뇌마저 근육인 전형적 수인이 아니었기에... 각 종족의 식사량과 특기 분야의 차이를 인정하고, 식량만큼은 중앙에서 엄격히 배급하며 통제하는 방식이 된 것이다.

"자신의 몫을 필요한 양보다 많이 취할수록 그만큼 타인은 굶게 된다... 이게 초대 수왕으로부터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공정함이에요. 수인들은 식탐을 경계하고 절제를 추구하죠."

"수왕을 뽑는 결투도 단순히 힘만을 보지는 않아요. 결투에 참여할 자격으로는 아레트 아카데미 졸업장도 필수이며, 대중 앞에서 자신의 공정함을 인정받아야 해요."

내 설명이 끝나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산더는 말했다.

"그래서 경제와 이념이 연관이 되어 있다고 말씀하신거군요. 그럼 혜세국과 에퀼리아의 경우에는 어떤 이념이 있습니까?"

"지금 설명하기엔 수업 시간을 초과할 것 같은데... 간단히 요약만 해드릴게요."

이미 이 주제를 시작하기 전에 꽤나 많은 시간을 썼기에 수업 시간은 거의 끝나가는 상황.

하지만 수업을 마치기엔 알렉산더와 기디언 녀석의 눈빛이 너무 초롱초롱하다 해야하나...

이대로 수업을 그만두기는 부담스러웠다.

나는 칠판에 단어를 조금씩 덧쓰며 말했다.

"에퀼리아는 개인의 근면함과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삶을 강조합니다. 그렇기에 일한 만큼 보수를 받고 개인의 씀씀이에는 절대 관여하지 않아요. 국가에서 보조금을 준다 해도 일을 하도록 돕기 위한 금액만이 주어져요."

"혜세국은 베품을 추구하며 인색함을 경계합니다. 사실 명월주가 온 백성들을 비춘다는 것도 베품을 뜻하는 거죠. 동방에서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미덕이고, 그러지 않는 부자들은 사회 전체에서 큰 비난을 받게 되요."

이 정도면 아이들의 궁금증은 해소되었겠지.

두 녀석 역시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시간에는 두 나라의 경제에 대해 자세히 알아봅시다. 모두들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 * *

그렇게 하루의 수업을 마치고.

"다들 저녁으로 먹고 싶은 건 없어?"

"저번에 의부님께서 해주신 볶음밥이 먹고 싶습니다."

나는 유나, 아모스 그리고 아일라와 함께 저녁거리를 고민하며 귀가하게 되었다.

"볶음밥?"

"일전에 얇은 고기와 채소를 넣고 매콤하게 볶았던..."

"아. 차돌박이 필라프를 말하는 건가... 너희 둘도 그걸로 괜찮아?"

"오히려 환영이오. 나도 맛있게 먹었었소."

"저도 좋습니다."

아직 사아씨에게 레시피를 알려주지 않은 음식을 말하다니.

오늘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그럼 오랜만에 주방에 서야겠네. 사아씨는 싫어하겠지만."

"그보다는 미안해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가?"

"에코니아 전역에서 그렇게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는 귀족은 의부님 뿐일 겁니다."

"하하하... 칭찬 고맙다."

함께 살게 된 지 세 달의 시간이 지나서일까. 저택에 사는 사람들끼리는 이런 대화도 자연스럽게 나누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내가 유나의 의부라는 사실이 꽤나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많이 나아진 셈이다.

그렇게 세 사람과 집으로 향하고 있자니... 묵묵히 있던 아모스가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저기... 보스."

"왜 그래?"

"그게..."

이 녀석은 수련을 마치고 정신이 혼미해졌을 때만 보스라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보스가 입에 붙었다.

나도 포기다 포기.

그나저나 왜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방금 수업 때 수인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지 않소? 궁금한 게 생겨서..."

수업 내용에 대해 질문을 한다니.

아모스가 내 수업을 참관한 횟수는 꽤나 되지만,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오... 너가 수업 내용으로 질문이라니. 무언가 궁금한 거라도 생긴 거야?"

"그, 그게..."

말을 더듬는 아모스 녀석.

"수인들은 다른 나라에 가면 어떻게 되오?"

"어떻게 되냐니?"

"왜 다른 나라들은 기본적으로 일을 하면 수당을 받는 거지 않소. 수인국만 다른 게 아니오?"

"아... 다른 나라에 가면 수인들이 잘 적응할 수 있는가 물어보는거야?"

"바로 그거요!"

"... 적응하기 힘든 편이지."

"아..."

이 녀석은 갑자기 왜 이러는걸까.

안절부절못하는 아모스였다.

그나저나 적응을 못하는 수인이라...

물론 그런 수인은 많다.

외국에서는 일확천금을 할 수 있다는 풍문을 듣고 무작정 수인국을 나서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법.

오히려 실패하는 수인들이 훨씬 많다.

수인국이 경제적인 제한이 많긴 하지만... 수인들이 일자리를 구하기는 매우 쉬운 편이다. 수왕부가 각 종족에게 일을 알선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머지 국가들에서는 어떨까...

"수인국과는 다르게 다른 나라로 나온 수인들은 직접 일을 찾아야 하는데... 일이라는 게 한 가지만 잘해서는 안되잖아?"

"... 감이 잘 안오는데."

"예를 들면 곰이나 코끼리 수인은 대부분 대형 화물을 옮기거나 군인으로 근무하거든?"

"음. 그럴 것 같소."

"수인국에선 그 사람들이 대형 화물을 말 그대로 옮기기만 하면 돼.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일의 분류가 그렇게 세분화되어 있지는 않잖아. 그 예로 건축업에서는 화물을 옮기는 동시에 건물도 잘 지어야 하지. 한 가지 일에 종사하려면 여러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거야."

"아..."

"그나마 쉬운 게 용병인데... 용병이란 직업도 사실 싸움만 잘 해서는 안 돼. 사실 잔심부름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거든. 싸움만 잘 하는 수인들을 누가 쓰겠냐 이거야. 그 외에도 일 하나 시키려면 가르쳐야 할 게 워낙 많아서... 갓 세상에 나온 수인들은 일 찾기가 힘들어."

"……."

실제로 게임에서는 이방인에게 들러붙은 젊은 수인들이 있었다.

이름난 용병이 되어 한탕 벌어보겠다며 친구들과 함께 수인국을 나오긴 했는데...

첫 의뢰만에 좌절.

수인국에서는 일을 잘 한다고 생각했지만, 겪은 실패가 너무나 많았기에 자존감은 바닥. 그렇게 친구들은 대부분 수인국으로 돌아가고...

고작 둘만 남게 된 F급 용병 두 사람은, 에우데미아에서 잃어버린 애완견이나 애완묘를 찾는 의뢰를 하며 겨우겨우 연명하게 된다.

게임에서 이방인은 그들과 함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되지만...

결과적으로 재앙을 회피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게 되어 에우데미아는 멸망하게 된다.

그런데 아모스 녀석이 왜 이걸 묻는거지.

"근데 아모스.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야?"

"……."

녀석의 시선이 왠지 모르게 멀어져 있었다.

"아모스?"

내 말도 들리지 않는 모양.

"야!"

"어! 어어! 부르셨소?"

"갑자기 수인 이야기는 왜 물어보는 거냐고."

"그게..."

녀석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한참동안 뜸을 들이더니...

"지난 주말에..."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