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 250. 개와 고양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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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개와 고양이 (2)
개와 고양이.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지구와 비슷하게. 에코니아에서 개와 고양이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인족의 대표적인 반려 동물이다. 이 단순한 명제는 수인족의 종족별 인구 비율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수인이 하나의 인종으로 인정되기 전에는 마치 가축처럼 인족에게 노예로 부려지거나 애완동물로 부려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 암흑기에 '반려 수인'으로서 인기를 누렸던 종족이 견족과 묘족. 수인들이 마치 부품처럼 소모되던 슬픈 시대였으나, 두 종족은 다른 종보다 비교적 많은 수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수인국이 성립된 이후에도 그들의 인구는 가장 많았으며, 그 수는 지금까지도 유지되었다.
하지만 인구수는 그 자체로 장점은 되지 못했다. 결국 수인국에서 직무를 부여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자격 요소는 개인의 능력.
군에서는 일개 병졸로.
산업 현장에서는 단순 노동직으로.
용병 업무에서도 단순 심부름 전담으로.
견족과 묘족은 자신들의 상위 호환이라고 할 수 있는 종족들에 밀려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은 직종에 종사하게 되었다.
식량은 종족별 식사량을 준수하여 배급된다고는 하지만... 전반적인 생활 여건이나 사회적 인식은 직업에 따라 차등되어 있는 수인국이다.
그런 현실에 만족하지 못해 수인국을 뛰쳐나온 이들이 있었으니...
"오늘은 분실물 의뢰도 두어개 있었고, 애완동물 찾기 의뢰도 해서 돈이 좀 생겼네. 내일까지는 이걸로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
해가 진 늦은 시간.
왕도 남쪽 성문 근처의 상가.
털이 돋아난 검은색 귀와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돋보이는 견인족 소년이 말했다.
하지만 짙은 황색에 가까운 금발의 묘인 소녀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녀의 머리숱은 꽤나 풍성해보이지만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관리하지 못한 듯 여기저기 터럭이 뭉쳐 있다.
"... 클로에?"
소년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소녀는 다급히 돌아보았다.
"아... 미안. 다른 생각을 하다 못 들었어."
"오늘은 열심히 했으니까 돌아가자구."
"... 그래야지."
맥없이 대답한 소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수입이 어느정도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수중에 떨어진 돈은 대동화 다섯 장이 전부.
다른 친구들이 얼마나 벌었을 지는 모르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그들의 삶을 꾸려나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수인국을 나오기만 하면 다른 종족보다 뛰어난 신체 능력을 활용해 이름난 용병이 될 수 있을거라는 확신에 차있던 클로에였다.
하지만 용병 길드에서 받았던 첫 의뢰부터 참담하게 실패하리라고는 그 누가 알았겠는가.
낙담한 그녀에게 소년이 말했다.
"그래도 남문 근처의 상인회 분들이 우리를 좋게 봐주고 계시잖아.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벌이가 나은 일을 주시겠지..."
이는 근거없는 위로에 불과하다.
소년 역시 잘 알고 있다.
수인의 청력으로 남문 상인회 간부들의 대화를 의도치 않게 엿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수인들에게 수송 업무나 호위를 맡겨 봐야 물건이 성히 도착할 리가 없다. 상가 근처의 단순한 일만 시키면서 돈이나 아끼는 게 낫다.
그저 값싸게 부릴 수 있는 인력.
자신들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힘내보자고. 수인국을 떠난 지 고작 1년 밖에 지나지 않았잖아."
하지만 낙담한 소녀에게 달리 건넬 말이 없었던 소년이다.
클로에 역시 그런 소년의 마음은 충분히 알고 있기에... 눈에 맺히려 하는 눈물을 참아가면서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 돌아가자 루이."
* * *
그렇게 도착한 슬럼가의 허름한 숙소.
정당한 값을 치르고 이곳에 자리잡은 것은 아니다. 우연히 주인없는 집이 하나 있기에 자리를 잡았을 뿐이고, 그 누구도 클로에 일행이 이곳에 사는 것을 트집잡지 않았다.
수인들 중 그 누구도 이곳의 주인에 대해 고민할 여유는 없었다. 그저 운 좋게 몸을 누일 곳을 찾았구나. 그런 생각 뿐이었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클로에가 물었다.
"용병 길드 쪽은 어떻게 됐어?"
방에는 촛불 대신 일곱 쌍의 눈만이 형형색색으로 빛나고 있다.
하지만 클로에의 물음에 동료들의 대답은 그리 밝은 것이 아니었다.
"미안. 클로에. 우리 쪽은 오늘 허탕이야."
"우리도..."
클로에와 루이를 제외하면 다른 동료들은 오늘 하루동안 왕도 안의 모든 용병 길드 지부를 돌아다니며 일을 구하러 돌아다녔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용병 길드 사이에서 전부 소문이 났나 봐. 우리는 대놓고 없는 취급을 하더라고."
"다른 수인 아저씨들도 우리 때문에 일이 줄었다고 타박하시더라."
"그럼 용병 길드 쪽은 가망이 없는 거네..."
약간의 희망이라도 있었으면 좋았건만...
점점 상황은 어려워질 뿐이었다.
클로에는 침울한 대화 주제를 전환하기 위해 자신이 사온 음식 봉투를 꺼내며 말했다.
"나랑 루이가 상인회에 가서 하루치 식량을 살 돈은 마련했어. 다들 이거라도 먹고 힘내자."
봉투에서 나온 것은 거무스름한 색을 띈 빵.
이 주변에서 파는 음식들 중에서도 특히나 싼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머릿수만큼 빵을 나누어 가져가 먹기 시작했다.
말라 비틀어진 흑빵은 입 안의 수분을 전부 빨아들이는 느낌이었지만, 이미 이 빵에 적응해버린 일행이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식사를 마치게 되었고, 열 명이나 되는 인원을 수용하기엔 좁은 숙소 안에서 각자 자리를 잡고 몸을 뉘였다.
잠시 후...
동료들은 피로에 지쳐 잠에 들었지만, 클로에는 차마 잠들 수 없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운송 도중 재앙을 맞닥뜨린 순간부터일까.
의심도 없이 의뢰를 수락한 순간부터일까.
에퀼리아인에게 사기를 당한 순간부터일까.
반항심에 수인국을 나선 그 순간부터일까.
어린 시절부터... 묘인족치고 다른 종족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며, 일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평가를 심심치 않게 들어온 클로에였다.
분명 밖에서도 잘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친구들 역시 자신을 믿고 이 세상에 함께 나와준 것이 아닌가.
하지만 수인국의 그 드높은 장벽 밖의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
하루종일 참으려 했던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친구들 앞에서는 꼭 참으려 했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터져버린 것이다. 그녀는 다른 아이들이 깰까 소리를 죽여가며 눈물을 훔쳐냈다.
"저기... 클로에."
그런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
클로에의 바로 옆에 누워있던 친구였다.
그녀의 이름은 라나. 귀는 라쿤이나 너구리를 닮아있으며, 전반적인 피부는 하얗지만 눈에는 짙은 다크 서클이 있는 여성이다.
클로에를 제외한 일행 중 유일한 여성이며, 그들 중 유일한 너구리 계열 수인인 환인족이다.
분명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라나는 어느샌가 클로에의 방향으로 몸을 돌린 채 그녀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클로에는 눈물을 흘린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답했다.
"왜... 왜 그래, 라나?"
"... 내가 잠시라도 돈을 벌어 볼까?"
"응?"
갑작스러운 제안에 놀란 클로에.
라나는 뜸을 들이다 말했다.
"나는 손재주가 그나마 좋으니까. 제작 계열길드라도 찾아서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 그건 안 돼."
수인국에서 환인족은 꽤나 고급 인력이다.
다른 투박한 수인들과는 다르게 기술적인 면에서 두각을 보이는 종족이기 때문이다.
마법진과 관련된 기술은 뒤떨어지는 수인국이지만, 환인족의 손에서 탄생하는 정교한 마도구는 다른 나라의 것들과 대비해도 큰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라나는 그런 정해진 삶이 싫었기에 클로에를 따라 나선 친구. 클로에는 그런 라나의 뜻을 알고 있기에 차마 허락할 수 없었다.
"클로에. 우리가 자리를 잡을 동안만 마도구점에서 일할게. 이곳에서는 꽤나 안좋게 소문이 났지만... 동쪽의 혜세국이나 헬렌 교국은 괜찮지 않을까? 뭣하면 마왕령으로 가서 일을 구해봐도 되잖아."
"……."
"우리가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는 자금. 딱 그 정도만 모으고 일은 관둘게... 이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거니까 괜찮아."
라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 당장에 에우데미아의 왕도에서는 제대로 된 일을 받을 수 없는 상황. 분명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는 게 합리적이다.
분명 그게 옳은 방법이겠지만...
클로에는 잠시간의 고민 끝에 말했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 정말로 안되면 그때가서 부탁할게."
"... 알았어. 그때는 꼭 나한테 말해야 한다?"
"응..."
날 믿고 따라준 친구가 걱정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자신은 잠시나마 고민을 해버렸다.
그런 자책감 속에서...
클로에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
* * *
다음 날.
클로에와 루이는 평소보다 조금 더 청결에 신경을 쓴 채로, 평소 향하던 남문 상가가 아닌 다른 장소로 향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아카데미 거리.
비슷한 나이임에도 에우데미아에 유학 온 젊은 고위층 수인들을 볼 때마다, 클로에는 자신의 처지와 그들을 비교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유로 이곳을 무의식적으로 피하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다.
이곳에서 자리를 잡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던 결국 필요한 것은 돈. 악소문이 퍼져버린 용병 길드나 잡일만 주는 남쪽 상회에 계속 매달릴 수 없는 노릇이니 다른 곳을 찾아야만 한다.
그렇게...
아카데미 거리를 배회하게 된 클로에와 루이.
그들의 눈에 한 사내가 들어오게 되었다.
"루이... 저 사람 좀 볼래?"
"우와. 저거 인족 맞아?"
"사실 수인인 거 아닐까..."
인족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높은 키.
솟아오른 승모근.
떡 벌어진 어깨.
한 소녀를 어깨에 태운 채 빙글빙글 돌며 놀아주고 있는 그에게 귀와 꼬리가 없는 것을 보아 인족이 확실하겠지만, 그 풍채는 수인국의 상위 종족들을 떠올릴만큼 건장했다.
한동안 클로에와 루이는...
자신들도 모르게 그를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