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 251. 개와 고양이 (2)
* * *
아카데미 거리를 하루종일 돌아다녔지만 적당한 일은 구하지 못해 지쳐 있던 클로에였다.
클로에는 하얀 빵모자를 쓴 소녀를 어깨 위에 태운 채 놀아주는 그 덩치 큰 인족의 모습을 잠시 동안 구경하게 되었다.
그렇게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고....
뒤편의 빵집에서 한 동양인 남성이 나왔다.
귀족들이나 자주 입을법한 긴 코트.
약간은 사나워보이는 날카로운 눈매.
그 눈과는 어울리지 않는 약간 어색한 미소.
동방인은 가게를 나오더니, 품에 안고 있던 커다란 빵봉투를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거한에게 넘겨주었다.
뒤이어 가게에서 나온 옅은 금발의 여성... 그녀 역시 덩치 큰 사내처럼 에퀼리아 여성들이 입는 정복을 입고 있다. 그녀는 두 사람과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말을 맞아 외출을 나온 학생들이 가득한 아카데미 거리. 수많은 소음이 뒤섞여 있어 그들의 대화 내용이 정확하게 들리진 않는다.
하지만 저들의 옷차림이나 행동거지를 보면서... 한 가지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루이. 저 사람들 꽤나 잘 사는 것 같지 않아?"
"확실히 옷은 고급스럽네."
"저런 부자들에게서 일을 받을 수만 있다면 꽤 보수가 좋지 않을까?"
"음..."
분명 저들은 부유한 사람들일 것이다.
출신은 모르겠지만... 클로에로서는 저들이 타국에서 온 상인이었으면 하는 바램이 크다.
수인국의 그 높은 장벽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던가. 변경백의 지위가 얼마나 높은지는 충분히 알고 있는 클로에다.
만약 저 사람들이 에우데미아의 귀족이라 해도... 호위조차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지금의 자신들을 도울만한 높은 귀족일 리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 나라의 소문에 민감하지 않은 혜세국이나 에퀼리아의 상인이라면 자신들에게 자잘한 일이라도 주지 않을까.
그런 작은 희망을 품게 된 클로에였다.
하지만 그런 클로에의 생각은 그저 바램일 뿐, 루이의 답변은 부정적이었다.
"부유한 사람들이라면 우리보다는 실적이 더 확실한 사람들에게 일을 맡기겠지. 거기다 우리 소문이 어디까지 났을 줄 알고."
"딱 봐도 한 사람은 동방에서 온 사람이고, 나머지도 에퀼리아제 고급 옷을 입고 있잖아. 다른 나라 출신이면 우리에게 일을 줄 수도..."
"... 클로에. 너무 조급해하는 거 아냐?"
"……."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루이도 알고 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거기다 지금와서 생각하는 일이지만...
실패했던 그 의뢰는 처음부터 수상했다.
"클로에. 저번 의뢰가 실패했던 건 네 탓이 아냐. 너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잖아."
귀족의 화물 운송 의뢰. 루이는 클로에가 충분히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운송 루트에 산재되어 있는 위협은 충분히 조사했으며, 다른 용병들에게 자문도 구한 상태.
근거는 충분했으며, 수인국에서 종사하던 일과 크게 다를 게 없었기에 수락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수인국의 드높은 장벽 바깥으로 갓 나온 그들이 간과한 점이 있었으니...
타인을 너무나 신용했다는 것이다.
"다른 경험많은 용병들도 그 의뢰 하나만큼은 피하고 있었어. 그런 와중에 길드는 아무 실적도 없는 우리에게 일을 맡겼지."
"일을 의뢰했다던 그 변경백의 아들도 이상했어. 우리를 혼내긴 했지만... 그 냄새. 그 냄새만큼은 화가 난 인족이 내는 게 아니었잖아."
수인국에서는 수왕부가 업무 하나하나를 충분히 분석하여 등급을 매기고, 그 등급을 토대로 모든 수인들에게 일을 분배하게 된다.
하지만 수인국 바깥의 용병 길드는 다르다.
각 나라의 국법으로는 용병 길드에서 의뢰의 위험 여부를 엄격히 따지도록 정해져있긴 하지만, 그 법은 잘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길드는 담합의 결과로 생겨난 집단. 결국 의뢰는 각 지역의 용병 길드에 모이게 되고, 용병들은 길드를 통해 의뢰를 수주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길드는 오는 일을 굳이 쳐낼 필요가 없으며, 일이 실패했을 때의 부담은 고스란히 용병들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처음 밖으로 나온 거니까... 이번 일은 시행착오라고 생각하고 다음에 잘 하면 되지."
"……."
고향에서 클로에는 사교성이 좋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묘인족답게 조심성이 많은 아이였다.
매사에 정보를 신중하게 수집하고, 모든 경우를 따져가며 선택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클로에가 단지 돈이 많아 보인다는 이유로 헛된 희망을 품으려 한다니. 평소 낙천적인 로이로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조금씩 천천히 해보자. 이런 건 클로에 너답지가..."
"... 나다운 게 뭔데?"
"……."
날카로운 어조로 루이의 말을 끊는 클로에.
순식간에 바뀐 어조에 루이는 당황했다.
"그래, 인정할게. 너 말대로 그 의뢰는 충분히 이상했어.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나는 주변을 잘 살피지도 않고 의뢰를 고른 셈이고, 결국에 실패했어."
"다른 애들은 전부 나를 믿고 고향에서 나온거야. 그런데 내가 전부 망쳐버린 거잖아..."
클로에에게 남은 여유는 없었다.
지금 루이가 그녀를 위로하겠다며 한 말은 클로에의 자책감만 더 키울 뿐이었다.
루이는 당황하며 말했다.
"클로에. 너 탓이라는 게 아니라..."
"내 탓이 아니라고 치자. 그럼. 우리가 지금 일을 가려서 해야할 처지야? 아니면 지금보다 우리 처지가 더 나빠질 수 있어?"
"……."
"이곳에서는 이제 가망이 없어. 왕도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소문이 났을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돈을 벌어서 다른 도시로 가던가 해야지. 그게 아니어도 최소한 다른 아이들을 수인국에 돌려보낼 만큼의 돈은 필요해."
루이를 바라보며 말하던 클로에는 빵집 앞으로 다시금 시선을 돌렸다.
동방인과 여성은 이미 어디론가 이동했는지 없었으며, 거대한 체구의 남성만이 남아있다.
그는 소녀와 작별인사를 나누는 듯 하더니, 이내 커다란 빵봉투를 들고 자신들이 서있는 골목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는 이것 저것 가릴 때가 아니야. 다른 사람에게 꼬리를 치는 한이 있어도 꼭 돈을 벌어야 하는거야."
다른 종족 앞에서 꼬리를 친다.
수인들로서는 그 옛날, 노예나 애완 동물 취급을 당하던 암흑기를 떠올리게 하는 행동이다.
절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그 어떤 종족 앞에서도 보이지 않는 모습이며, 수인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상당한 각오를 내비치는 것이다.
"특히나 부자들이라면 우리가 필요한 돈을 한번에 벌게 해줄 수도 있겠지. 저렇게 혼자 있을 때가 기회야. 지금 어떻게든 잘 보여서 조금이라도 친해지면 일을 줄 수도 있잖아."
루이는...
그런 클로에의 각오를 보고 외면할 수 없었다.
"클로에.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일단 저 사람을 따라가서 관찰할거야. 자세한 일은 그 다음에 생각해볼거고."
"알았어. 최대한 멀찍이서 따라가야겠지? 그럼 내가 냄새를 맡으면서 방향을 잡을게."
"그래, 루이. 해보자!"
* * *
두 사람은 덩치 큰 사내를 미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내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하게 된 두 수인.
"저 사람. 왜 이쪽으로 가는 거야!"
"그러게..."
"저 사람이 왜 슬럼가 근처로 가는 거야? 저런 옷을 입은 사람을 우린 본 적도 없잖아."
그는 자신들이 자리잡은 슬럼가로 향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 방향으로 가는걸까.
설마 소설 속에서 본 뒷골목의 보스라던가 하는 사람일까, 그런 의구심까지 들게 되었지만...
그 목적지는 예상을 한참 벗어난 곳이었다.
"성당...?"
"에퀼리아 사람이 헬렌 교국의 성당을...?"
자신들의 모든 예상과는 다르게, 빵 봉투를 들고 있는 아모스는 곧장 성당으로 직행했다.
북쪽의 에퀼리아.
남쪽의 헬렌 교국.
두 나라는 거리만큼이나 관계 역시 먼 나라다.
"그 돈 밖에 모른다는 에퀼리아에서 온 사람이 헬렌 교국의 성당에 간다고...?"
인간은 근면해야 한다는 이념 아래, 에퀼리아는 경제의 자유를 특별히 더 보장하는 나라다.
그런 나라의 사람이 인간을 순수히 아끼고 사랑하라는 헬렌 교국의 성당에 들어간다니.
상당히 폐쇄적인 수인국은 물론,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보아도 이상할 일이었다.
"저 사람. 뭘 하려는 걸까."
"차마 성당에 들어가기는 부담스럽고... 주변에 있는 지붕에 올라가서 몰래 지켜 볼까?"
"그러는 게 좋겠다. 최대한 조심해서..."
둘은 혹시나 들키지 않도록 먼 곳에 있는 건물들 중 가장 높은 곳을 골라 지붕에 올랐다.
약간 멀긴 해도... 수인답게 시력이 좋은 두 사람이기에 성당 안뜰 쯤은 충분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본 풍경은 또다시 그들에게 충격만을 남겼다.
그 덩치 큰 사내가 가져온 빵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이는 맥이 쭉 빠진 채로 말했다.
"성당에 나쁜 일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클로에. 이제 어떻게 할 거야?"
"……."
"클로에?"
"아. 뭐라고 했어?"
"지금부터 어떻게 할 거냐고."
어릴 적부터 청력이 나빴었고, 무언가에 집중하면 주변 소리는 전혀 듣지 못하는 그녀다.
자주 있는 상황에 루이는 재차 그녀를 물었다.
"음..."
고민을 이어나가는 클로에.
그녀는 이내 루이에게 말했다.
"바깥 아이들은 수인을 좋아한다고 하잖아..."
클로에는 언젠가 수인국에서 읽었던 서적에서 보았던 지식을 루이에게 전했다.
루이는 안좋은 예감을 느꼈다.
기분 탓일까... 그 말을 하는 클로에의 눈이 점점 초점을 잃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저기로..."
"클로에, 너 설마..."
반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그녀는 마지막 말을 고했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 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