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 252. 고양이 소녀라고?
* * *
252. 고양이 소녀라고?
"안녕하세요. 아모스님."
"안녕하십니까, 수녀님."
"음..."
여느때처럼 성당을 방문한 아모스를 맞이해주는 크림색 머리칼을 가진 여성... 시하가 부상을 입었을 때마다 신세를 졌었던 그 수녀였다.
나름대로 존댓말로 인사한다고 노력한 아모스였지만, 주변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그가 작은 실수를 했기 때문이다.
"아모스님... 여기서는 그냥 수녀라고 부르시면 다른 사람들이 화를 낸다니까요."
"아...!"
멋쩍은 웃음을 내비치는 아모스.
그는 이내 호칭을 정정해서 그녀를 불렀다.
"그... 캐서린 대주교님?"
"네. 성당 안에서는 그렇게 불러주세요."
헬렌 교국의 성녀파 대주교 캐서린.
교국은 크게 7개의 주로 나누어져 있으며, 그 주를 총괄하는 자들이나 에우데미아에 파견된 최고 사제는 대주교의 직책을 받는다.
그녀에게도 나름대로의 사정은 있어 바깥에서는 그 권위를 보이지 않지만... 성당 사람들은 그녀에게 존경을 표하고 있으니, 호칭을 잘못 말한 아모스가 눈총을 받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아모스는 주변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미안하오. 내가 그다지 아는 게 없어서... 여러 호칭을 생각하고 말하는 게 아직은 어렵소."
"그럴 수도 있죠. 사실 저는 괜찮은데 다들 호들갑을 떠는 거라니까요."
사실 세상 일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모스로서는 대주교라는 직위가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이 성당에서 제일 높으신 분이구나...라는 인식만을 가지고 있는 그였다.
하지만 평소 직책의 무게를 충분히 체감하고 있었던 캐서린은, 오히려 그런 아모스의 앞에서는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캐서린이 말했다.
"음... 오늘은 아일라님이 안 계시네요. 거기다 왠 빵을 이렇게나 잔뜩..."
"누님께서는 오늘 보스를 저택까지 바래다 주고 오기로 했소. 그리고 이건 보스께서 직접 만드신 빵이오. 성당의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으니 가져 가라고 하시더군."
"공작님이요...?"
후우...
시하가 빵을 보냈다는 사실을 듣고 작은 한숨을 내쉬는 캐서린 대주교. 몇 달 전 그가 부상을 입고 혼절해있던 것을 떠오른 것이다.
이내 그녀는 시하에게 신랄한 평가를 내렸다.
"그 인간은 조금이라도 자기 몸을 사리기만 한다면 정말이지 좋은 사람인데 말이에요..."
"허허..."
"결투를 한답시고 몸을 버리질 않나. 자해하지를 않나. 얼마 전에는 쓸데없이 혼자 나서서 다쳐 오지를 않나..."
발람과 시하의 결투. 그 당시 캐서린은 에우데미아 왕도 성당에 갓 부임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신임 대주교의 첫 행사로 시하의 결투에 치유사 역할을 맡겠다고 나섰고, 이후 어찌저찌 시하와의 인연이 이어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초대 성녀의 가르침을 중시하는 그녀로서는 시하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모스님은 그 인간을 닮으시면 안됩니다. 초대 성녀님께서는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도 소중히 하라 말씀하셨거든요."
"... 무언가 어렵지만 잘 알겠소."
"그 정도면 충분해요. 그럼 아이들에게 가볼까요? 지금이라면 내원에 다들 모여 있을거에요."
* * *
그렇게 도착한 성당의 내원.
그곳에는 성당에서 키우고 있는 고아들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이 슬럼가나 다른 빈곤 구역의 부모들이 버리고 간 아이들이다.
"어. 아모스 아저씨 왔다!"
"제대로 경칭을 붙여서 부르렴."
"안녕하세요, 아모스님."
캐서린의 말에 호칭을 정리하게 된 아이들.
그들은 곧이어 아모스가 들고온 무언가를 보게 되었다.
"아모스님. 그 봉투는 뭐에요?"
"베이커리에서 빵을 좀 가져 왔단다. 인당 하나씩 돌아갈거니까 차례대로 와서 가져가."
와아!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빵으로 달려 들었다.
밋밋한 성당 음식으로 끼니를 떼우던 아이들로서는 이렇게 아모스와 아일라가 가져오는 외부 음식에 신이 나기 마련이었다.
이런 음식을 접한 뒤로 부쩍 반찬 투정이 늘어난 아이들이었지만, 성당의 성직자들은 멀찍이서 이 순간을 바라보면서 참는 중이다.
가져온 빵을 모두 나누어 준 아모스가 말했다.
"남은 게 없구만... 다음에는 성당의 다른 분들도 먹을 수 있을 만큼 들고 오겠소."
"그럴 필요 없어요. 괜히 그런 음식을 먹었다가는... 다들 아이들처럼 되어버릴 걸요?"
"허허..."
시하가 만든 빵은 충분히 인기였으며, 두 사람은 내원 한 켠에서 신나게 빵을 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구경하며 잡담을 나누었다.
그 모습을 얼마나 보고 있었을까.
한 성당 기사가 캐서린에게 다가왔다.
"대주교님."
"네, 무슨 일인가요?"
"그게... 아이들에게 봉사를 하겠다며 수인들이 찾아왔습니다. 적당히 쫓아내려 했지만, 아모스님은 되는데 왜 자신들은 안 되냐며..."
고개를 갸웃하는 캐서린 대주교.
갑자기 아이들에게 봉사 활동을 하겠다니.
에코니아 전역에서... 굳이 고아들에게 '봉사'를 하겠다며 나서는 경우는 꽤 희귀한 일이다.
고아들을 돌보는 시설은 따로 있다는 인식이 강하며, 후원이나 입양 문제가 아닌 경우에 일반 백성들은 시설을 찾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캐서린이 알기로 수인국에 성당은 없지만... 그 곳 역시 수왕부가 고아들을 따로 돌볼 것이다.
"그것 참 이상한 일이네요. 그 사람들이 무슨 행패라도 부렸나요?"
"그게..."
잠시동안 머뭇거리는 성당 기사.
신앙심에 미쳐있다는 표현을 자주 듣는 그들이지만, 오늘만큼은 당황스러운 것이다.
"정문에서..."
"네, 정문에서."
"배를 보이며 드러누웠습니다..."
"배를...?"
말을 따라하던 캐서린은 말을 잇지 못했다.
배를 보미여 드러눕는다...
저는 결백합니다.
저는 당신의 아군입니다.
저는 위험 인물이 아닙니다.
그런 뜻을 내포한 수인들의 제스쳐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 행동은 수인들에게 꽤나 치욕적이기에 왠만해서는 하지 않는 행동.
오히려 그런 행동을 쉬이 취했다는 것에 의구심을 가지게 된 캐서린이다.
하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아모스가 말했다.
"캐서린 대주교님. 그저 아이들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상관 없지 않겠소?"
"……."
캐서린은... 헬렌 교국의 지도부에서 그 능구렁이같은 영감들을 수없이 많이 상대해왔다.
사실 그녀가 지금 에우데미아로 좌천당한 것도, 반쯤은 그 권력 다툼에서 졌기 때문이다.
봉사를 하겠다는 이들에게 의심부터 하다니.
성직자라는 사람이 정치적인 일에 너무 휘말려 있었기에 머리가 돌아갔던 것일까.
그런 생각이 조금은 드는 캐서린이었다.
"그 수인들을 내원으로 데려오세요. 그래도 검증된 자들은 아니니까... 기사님도 여기 잠시 있어주실래요?"
"알겠습니다, 대주교님."
* * *
(시하 시점)
"그 수인들과는 그렇게 대면하게 되었소..."
아모스 녀석의 설명이 끝났다.
그런데 중요한 내용을 못 들은 것 같은데...
"그 뒤론 어떻게 됐는데?"
"나와 캐서린 수녀님께 간단하게 인사를 하더니, 수인들은 아이들과 놀아주기 시작했소. 꼬리나 귀를 잡아당겨져 고생을 하긴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수상한 사람들 같지는 않았소."
귀나 꼬리를 잡아당겨진다.
인간에게도 귀가 민감한 부분인 만큼, 감각이 크게 발달한 수인에게는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꼬리...
내가 인간이기에 감히 상상할 수는 없다.
그저 지식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게임 내 설명으로는. 척추가 꼬리까지 이어져 있기에 가장 민감한 부분이라고 한다.
신체 구조가 다른 몇몇 종족은 꼬리가 잘린 쇼크로 죽는 경우도 허다하기에... 타인의 꼬리를 만지는 것은 수인국에서 중범죄라고.
해당 범죄를 높으신 분이나 어린 수인에게 저지른 경우에는... 그 악명 높은 '에이오그 수용소'에 갇혀 평생토록 탄광일을 하게 된다.
게임에서도 꼬리 가까이에 스킬을 쓰면 제 자리에서 펄쩍 뛰며 비명을 지르던 수인들이었다.
그걸 참으면서 아이들이랑 놀아준다니...
왠 미친 수인들이지?
"그나저나 아모스. 그 순간만큼은 수상하지 않았다니. 그게 무슨 뜻이야?"
"이후로 그 수인들이 나를 계속 따라오는거요. 그런데 이 다음부터는 아일라 누님께서 설명하는 게 나을 것 같소."
아모스의 말에 아일라가 이어서 말했다.
"... 저는 아모스가 성당을 나올 때쯤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인들이 계속해서 저희를 따라 오더군요."
"따라왔다고?"
"네. 그래서 아카데미 거리에 도착한 뒤로 물어보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따라오는 것이냐고. 그랬더니..."
아모스와 아일라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
"그게... 돈이 급하게 필요한데, 몸을 쓰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좋으니 시켜달라고..."
"뭐?"
"저와 아모스를 귀족으로 생각했나봅니다..."
하필 그런 말을 이 둘에게 하다니.
두 사람이 어떤 마음 고생을 했을지 뻔하다.
아일라는 그 소굴에서 몸을 팔 생각까지 했던 사람이고... 아모스는 다른 꼬마들이 팔려나가는 걸 볼 수밖에 없던 인물이니까...
아일라가 말을 이어갔다.
"저 역시 피고용인에 불과하여 타인에게 일을 알선할 권한은 없다고 말하자... 고양이 수인 소녀가 울먹이더군요."
"……."
"그 모습이 남일 같지는 않아서... 개인 소지금에서 은화 한 장을 주고 헤어졌습니다. 공작님께서 주신 돈을 함부로 사용하여 죄송합니다."
아일라는 내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아마 내가 예로 들었던 사용처를 벗어났음을 사과하는 거겠지.
... 아일라는 가끔 보면 규칙에 얽메여 살아가는듯한 느낌을 준다.
"개인 소지금을 사용했다며. 그건 나한테 죄송할 일이 아니지."
"... 감사합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유나 역시 난감한 표정.
유나 역시 혜세국의 고위층이었으니 수인들의 문제는 꽤나 많이 접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접하는 건 처음이겠지...
수인들은 대륙 서쪽에 거대한 성벽을 쌓고 틀어박혀 살아가게 되었지만, 하위종들은 용병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나오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은 사기 의뢰에 걸리기 마련이다. 사기에 걸린 어린 수인들은 하인의 탈을 쓴 성노예가 되거나 전쟁의 소모품으로 버려지게 된다.
그 게임의 수인 루트에서도 그랬지...
사기 의뢰로 인해 수인 취향의 변태 귀족에게 팔릴 위기에 처한 묘인족 소녀. 그리고 그녀를 구하려던 견인족 소년.
우연히 견인족 소년을 만난 이방인은 두 수인을 비웃는 용병 길드를 부숴버린 후, 착취당하는 수인들을 구해내 작은 촌락에서 함께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잠깐만... 고양이 소녀라고?"
"네. 다른 하나는 견인족 소년이었습니다."
"그 고양이의 인상착의는?"
"일단 머리는 갈색이 도는 금발이었습니다. 그리고 한쪽 눈은 녹색, 한쪽 눈은 푸른 색이었습니다. 옷은 오랫동안 수선해 입은 듯 했고요. 견인족 소년의 인상착의도 말할까요?"
"……."
"... 공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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